매리언 엘리노어 짐머 브래들리 (Marion Eleanor Zimmer Bradley, 1930 - 1999)은 미국의 판타지, 가상역사, SF 소설가이다. 그녀의 작품 중 "다크오버 Darkover" 시리즈가 가장 유명하다.
브래들리는 대공황 시절 뉴욕주 알바니에서 태어났다. 17살부터 글쓰기를 시작했고, 1949년 첫번째 결혼을 하였으나, 금세 파경을 맞고, 1964년 화폐학자 월터 H. 브린 Walter H. Breen 과 결혼해서 자녀 두 명을 낳았다. 브래들리와 브린은 1979년부터 실질적으로 별거 상태에 들어 가지만, 그들의 이혼은 1990년 이뤄지고, 그 전까지 브래들리는 브린과 사업적 관계를 유지했다. 1990년 이혼의 계기는 브린이 어린 소년을 성추행한 혐의로 체포, 기소된 사건이었다.
브래들리 스스로 말한 문학적 경험은 어린 시절, 헨리 커트너, 에드먼드 해밀턴, C. L. 무어 등의 작품을 읽으면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17살이 되면서 첫번째 소설 "숲 속의 집 The Forest House"를 집필하였으나, 생전에는 발간되지 못하고 사후 작품집의 형태로 출간되었다.
그녀의 데뷰는 1949년 "놀라운 이야기들 Amazing Stories"에 단편 "외곽 기지 Outpost"를 판매하면서 이루어졌다. 그녀가 직업적 소설가로서 첫 번째 발표한 작품은 "여자 전용 Women Only"로, 1953년 "보르텍스 SF" 잡지에 실렸다. 또한 첫 번째 장편 소설은 "나라베들라의 매들 Falcons of Narabedla" 로 1957년 출간되었다.
동일한 시기에 그녀는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여, 당시 "사변 소설 Speculative Fiction" (로버트 하인라인이 사용한 용어로 SF, 판타지 및 다양한 상상 문학 쟝르의 상위 개념) 이라고 불리던 쟝르의 작품들을 발표했고, 특히 게이와 레즈비언을 소재로 한 소설들을 창작, 발표했다. 그중 "나는 레즈비언이야 I"m a Lesbian" 이라는 소설은 1962년 정식으로 출간되기도 했다. 그러나, 당대의 기준으로 동성애를 다루는 소설 자체가 실제 내용과는 관계 없이 음란 포르노 소설로 간주되었고, 브래들리는 죽기 전까지 해당 소설들을 필명으로 발표했다는 사실을 부인하기도 했다.
1957년, 그녀는 가장 유명한 시리즈가 된 "다크오버" 시리즈의 첫 작품, "행성 구원자들 The Planet Savers"를 발표했다. 이 소설에서 처음 소개된 "다크오버" 중간 지대는, 인간들의 초능력이 극도로 발달해서 마법 같은 방식으로 사용되고, 과학 기술은 굉장히 퇴보하여 중세 시대로 회귀한 가상 공간이다. 브래들리는 그 자신이 다크오버 세계관에 기반한 소설을 창작했으며, 말년에는 다양한 작가들과 협업을 하기도 했다. 결국 그녀가 죽은 후에도, 이 협업 작가들이 다크오버 시리즈를 이어나가고 있다.
그 사이 그녀는 레즈비언 문화 운동을 이끈 "빌리티스의 딸들 Daughters of Bilitis" 그룹과 활동을 함께 하고, 다양한 사회 문화적 단체들과 협력해서 페미니즘과 문화 운동을 벌였다. 특히 그녀는 SF와 판타지 쟝르의 팬덤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다른 작가, 출판사 등과 협력해서 팬덤 문화를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10대부터 그녀는 다양한 SF/판타지 잡지에 독자 투고와 평론 기고를 했고, 본인이 전문 작가가 된 후에도, 60년대까지 팬 잡지를 편집, 간행하는 적극적인 팬덤 활동을 지속했다. 그녀가 간행하거나 편집한 팬 잡지들은 "아스트라의 탑 Astra"s Tower", "낮의 별 Day Star", "모든 것의 상자 Anything Box" 등이 있다. 또한 1970년대에는 유명한 SF/판타지 팬 잡지인 "고르곤 The Gorgon"과 "네크로맨티콘 Nekromantikon"에 기고문을 올리는 등 활발한 활동을 했다.
이와 관련하여, 브래들리는 오랜 시간 동안 다크오버의 팬픽 창작을 장려하는 활동을 벌이기도 했다. 그녀는 무명 작가들과 독자들이 집필한 다크오버 팬픽의 투고를 받아서 정식 다크오버 시리즈의 작품집에 삽입하기도 했다.
또한, 그녀는 오랜 기간 동안 "검과 마법 앤솔로지" 시리즈의 편집을 주도하면서 여성을 주인공으로 한 SF/판타지 창작을 후원했다. 이 시리즈는 신인 작가들의 작품을 투고 받아서 무크지 형태로 발간한 프로젝트라고 할 수 있다. 발데미르 시리즈로 유명한 메르세데스 래키가 이 시리즈를 통해서 데뷰하기도 했다. 브래들리는 이 시리즈에 매우 강한 애착을 가졌고, 캘리포니아 샌프란시스코 근처의 자신의 집에 많은 판타지 작가들을 불러 모아서 이 시리즈와 관련해서 토론과 창작을 병행하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그녀가 죽기 직전까지도 브래들리는 "검과 마법 앤솔로지"를 편집하고 있었다고 한다.
1962년 문학 평론가 데먼 나이츠의 평가가 브래들리의 작품 소개를 정확하게 요약하고 있는데, 그에 의하면 브래들리의 작품은 "뚜렷하게 여성적 취향을 드러내지만, 과장이나 클리쉐, 얕은 속임수가 전혀 없기 때문에 남자 독자들에게도 환영을 받는다."
말년에 계속되는 건강 악화 때문에 고생하던 브래들리는 1999년 심장 마비 며칠 후 사망했다. 그녀의 유골은 화장된 후, 영국 글래스톤베리 토르 (아발론과 관련이 있다고 알려진 장소)에 뿌려졌다.
죽음 후 밝혀진 논란을 보면, 그녀가 얼마나 모순적이고 논쟁적인 삶을 살았는지 엿볼 수 있다. 그녀 자신이 강력한 페미니즘의 후원자였고, 게이-레즈비언 권리 운동의 초기 멤버였지만 사후 그녀는 딸에 의해서 성추행 관련 비난을 받았다.
그녀의 죽음 후, 두 번째 남편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 모이라 그레이랜드가 그녀가 어린 시절 자신을 성추행했으며, 아버지, 월터 H. 브린이 자신과 다른 아이들을 성추행하는 것을 방관했다고 밝힌 것이다. 사실, 브래들리의 두 번째 남편 월커 브린은 소아성애증을 가진 사람으로 여러 번 법적으로 기소되기도 했고, 브래들리와의 결혼 역시 그 문제로 인해서 파경을 맞이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녀 자신이 성추행을 하고 남편의 범죄를 방관했다는 증언은 미국 문학계에 충격을 주었다.
그 결과, 다수의 SF/판타지 작가들이 공개적으로 브래들리의 성 추문에 대한 비난 성명 등을 발표했고, 다크오버 시리즈를 계속 집필 중인 작가들의 경우, 인세의 일부를 성범죄 반대 운동 단체 등에 기부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