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에 이미 ‘페미니즘 SF’의 기수로 불렸던 사람,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첫 번째 단행본이 드디어 나왔다
활동할 당시 ‘페미니즘 SF’의 기수로 인정받았고 사후에는 ‘팁트리 상’으로 기림받는 작가인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의 주요 작품들을 담은 중단편선집이다. 팁트리의 작품이 단행본으로 묶여나오는 것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체체파리 비법>을 표제작으로 하여 7개의 작품이 수록되었다. 스페이스 오페라와 펄프 픽션의 외형을 취하면서도 성(젠더), 자아, 환경, 인간성에 대해 진지하면서도 날카로운 시선을 보여주는 팁트리의 세계로 빠져보자.
전 세계에 퍼지는 치명적인 질병이란 소재를 여성에 대한 폭력 문제와 엮는가 하면, 외계인과 조우하는 상황에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질문한다. 시간여행과 우주여행과 질병과 복제문제, 그리고 ‘여자들만 사는 세상’이란 상상을 SF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버무리기도 한다, 우주탐험물 속에 인간성에 대한 진한 통찰을 담기도 하고, 기존 문명의 종말 이후를 다루는 소설에서도 개성을 드러낸다. 전 세계적 네트워크망과 원격조작 신체를 배경에 깔아 나중에 올 사이버펑크란 장르를 예비하는가 하면, 가이아 이론이 탄생하기도 전에 쓰여진 소설에서 지구를 유기체적 생물로 보는 시선을 드러내기도 한다.
이처럼 이 작품집엔 다양한 사유실험으로 이미 수십 년 전에 사람들을 매혹시켰던 작가의 진면목이 드러난다. 이 작품집엔 작가가 가장 왕성한 창의력을 가지고 있던 시기, 앨리스 셸던과 제임스 팁트리 주니어와 라쿠나 셸던의 세 가지 정체성을 가지고 활동하던 1969년부터 1980년까지의 작품 일곱 편이 들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