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의 학문적 소통의 토대, 근대어문학 연구의 쟁점
‘근대’라는 시기를 기점으로, 가깝고도 먼 일본이다. 그런데 일본이 가까운 적이 있었는가. 일본이 멀었던 적이 있었는가. 시시각각 변하는 국제 관계에서 민간차원의 교류가 중요하다는 것은 한국과 일본 만큼 절실한 경우가 없다.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는 국제학술대회를 통해 한일의 학문적 소통을 지속적으로 이어왔고, 이번에 그 결과물이 출간되었다. 바로 한일 근대어문학 연구의 쟁점(소명출판, 2013)이 그것이다.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는 2008년부터 2011년까지 한국과 일본의 근대어문학 연구자들을 초정하여 ‘한일 근대어문학 연구의 쟁점’이라는 주제로 총 네 차례의 국제학술대회를 개최하였다. 이 책은 그 국제학술대회에서 발표된 원고들을 수정․보완하여 엮은 결과물이다. 이러한 학술대회의 기획은 한일 양국의 근대어문학 연구자들의 학문적 소통을 위한 중요한 토대라 할 수 있다.
‘근대’라는 특정한 시기를 중심으로 문학과 어학에 관한 한국과 일본 학자들의 연구 성과가 한 책에 묶이는 일은 비교적 드문 일일 수밖에 없다. 근대 초기 언어와 문학은 근대적 국가 체제의 형성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는데, 결국 ‘근대’라는 것이 동아시아적 질서의 재편 과정 속에서 각 나라 간의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태동했다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그러한 배경을 인식한다면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의 시도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며, 반드시 필요한 작업이기도 하다. 또한 넓게 내다본다면 전공별 영역과 국가별 경계를 넘어 ‘근대’라는 특정한 시기의 대상을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한 시도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이 책은 한일 양국의 근대 초기 문학 연구의 쟁점들과 근대국어 연구의 쟁점들, 이렇게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어 입체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한일 양국의 근대 초기 문학에 관하여
근대 초기 문학 연구의 쟁점과 관련된 연구에는 한일 양국의 여섯 학자들이 참여했다. 박애경은 현재까지 이루어진 조선 후기 또는 개화기 시가 연구에 대한 경향을 상세히 검토하고 향후 연구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비교적 소홀했던 근대 초기 시가 문학 연구에 대한 새로운 자극을 준다는 점에서 무척 반가운 글이다.
후지이 히데타다는 총 4개의 글을 실었다. 「일본 근대문학사 연구의 성과와 과제」와 「일본 근대소설 탄생의 세 가지 경로」는 지금까지 일본 근대문학 연구가 이룩한 대표적인 성과들을 소개하고 있다. 일본 근대소설이 탄생한 경로를 신문기사의 발전, 고전문학의 계승, 외국문학의 영향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이 두 편의 글은 일본 근대문학의 형성 과정을 통시적으로 펼쳐 보이고 있어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에게도 매우 유익한 관점을 제공하고 있다.
그의 또 다른 두 편의 글 「명작문학과 국민문학-고도 성장기의 독서 상황」과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와 ‘국민독서의 해’」는 1950~1970년대 전후 일본의 고도 성장기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독서 열풍 현상을 당시의 다양한 자료들을 통해 설명하고 있다. 이들 논문은 고도 성장기라는 시기의 활발한 독서 열풍이 당시의 역사적 사회적 맥락 속에서 매우 자발적인 의지를 통해 이루어졌음을 밝히고, 문학이 지닌 가치와 영향력을 반추해 볼 계기를 마련한다. 한편, 일본문학의 위기가 ‘목표’가 부재하는 현실을 반영한다는 진단은 한국문학 연구에서도 쉽사리 지나치기 어려운 문제임이 분명하다.
신보 쿠니히로의 글은 근대 단편소설이라는 장르의 형성과정을 통해 근대 소설의 의미를 제시한다. 이 글은 장편소설과 단편소설의 차이를 ‘양적’인 것이 아닌 ‘질적’인 문제로 인식하고, 일본 근대 단편소설 양식의 형성과정을 상세히 다룸으로써 일본 근대 소설의 전개 양상을 설득력 있게 고찰하고 있다.
하타노 세쓰코의 글은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1920년대 이후 이광수의 일본 행적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이광수 연보의 빈 공간을 섬세하게 메우고, 그의 일본어 창작 활동의 배경을 소상히 살피고 있다는 점은 이 글의 중요한 성과이다. 이 연구는 대상 자료의 범위를 한층 확대시키는 한편, 새로운 연구 방법의 필요성을 일깨워준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우에다 마사유키의 글은 모노가타리의 전통에서 출발한 일본의 걸출한 두 작가, 쿄카․소세키의 결별 과정을 통해 일본 근대소설의 형성 과정을 설명한다. 전근대적 문학 양식의 전통을 계승한 쿄카의 문학 세계와는 달리 소세키는 의식적으로 점차 서구적 문학 이론을 따르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은 일본 근대 문학의 향방을 가늠하는 중요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노가타리의 전통을 끈질기게 실험한 쿄카의 문학작품들이 오히려 세계적인 보편성을 획득했다는 지적은 한국 근대문학 연구자들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영민의 글은 1920~1945년까지 매일신보에 연재된 장형소설들을 분석하였다. 이 글은 방대한 자료에 대한 실증적인 접근을 통해 1920년대 이후 매일신보에 연재된 장형의 소설들을 크게 네 개의 범주로 유형화하였는데, 번안 및 번역소설․고전 및 야담류 소설․독자 투고 창작 장편소설․전문적 작가에 의한 창작 장편소설이 바로 그것이다. 이 글은 매일신보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한국 근대 장편소설의 형성 과정에 대한 이해를 위한 지표로 활용될 것이다.
사회언어학 관점에서의 근대국어 문제들
사회언어학의 관점에서 근대국어의 문제들을 다룬 연구에는 한일 양국의 다섯 학자들이 참여했다. 고연진의 글은 근대 한국어의 기점에 관한 논의가 중심을 이룬다. 이 논문에서는 ‘근대국어’의 기점에 대한 기존 학계의 논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 후, ‘근대국어’의 기점을 갑오개혁을 전후한 시기로 규정하고 있다. 이 글이 담고 있는 기존의 연구 시각에 대한 비판들과 대안의 제시는 국어사 연구에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러한 주장들이 ‘근대국어’와 관련된 학계의 연구 관행을 좀 더 유연하게 바꾸는 새로운 출발점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고석주의 글은 의미론의 관점에서 근대 한자어의 개념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 글은 근대 초기 신문 및 교과서 등에 나타난 주요 어휘의 말뭉치를 분석하여 이 무렵 사용되던 어휘의 당대적 개념과 의미를 추적하고 있다는 특징을 지닌다. 특히, ‘국민’과 ‘인민’, ‘시민’이라는 한자 어휘의 사용빈도와 용례분석은 언어의 역사적 변천과정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이 글은 최근 학계의 주요 관심사 가운데 하나인 근대 개념어 문제에 대한 구체적 천착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연숙의 글은 일본의 ‘언문일치’ 과정에 대한 상세한 고찰을 시도한다. 이 글에서는 입말과 글말을 일체화시킴으로써 사회의 언어 민주화에 공헌 했다고 간주되는 ‘언문일치’가 위에서부터의 요구에 의해 강요되었을 때 생기는 양면적 특성에 주목하고 있으며, 일본의 ‘언문일치’가 근대 국민국가의 형성과 밀접한 연관 속에서 이루어진 것임을 논증하고 있다. 이러한 프로세스가 일본의 식민지 언어 정책에 고스란히 사용되었다는 지적은 총독부가 실행한 식민지 언어정책의 근본 원리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는 일본 근대국어의 형성과정과 그 의미에 대한 연구자의 탁월한 식견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주는 글이라 할 수 있다.
미쓰이 다카시의 글은 식민지 조선에서 이루어진 한글운동에 관한 연구의 동향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있다. 이 글은 지금까지 주로 민족운동의 관점에서 다루어진 조선어학회의 한글운동이 조선총독부의 식민지 언어정책과 복잡한 이해관계 속에서 이루어진 활동이었다는 점을 전제로 전개된다. 여기서는 식민지 한글운동에 대한 새로운 접근 시각을 제시하는 한편 앞으로의 과제들을 착실히 제시하고 있다. 이 글이 일본의 언어지배와 한글운동에 관한 문제들을 식민지기 정치사, 운동사, 사회사의 문맥으로 환원시키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
김영민의 글은 1906년 창간된 천도교 기관지 만세보를 중심으로 그것에 수록된 부속국문체의 특징과 의미를 살핀 것이다. 지금까지 부속국문체의 의미에 대한 이해가 주로 부정적이었던 것임에 반해 이 글은 부속국문체를 신분과 계층에 따라 결정되던 문자 ‘분리’의 상황을 ‘통합’으로 이끌기 위한 매우 적극적인 노력으로 이해하고 있다.
한일 양국 근대문학 연구의 디딤돌이 되다
이 책은 근대 초기 문학 연구와 어학 연구의 성과를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그간 닦아온 길을 정리해 보고, 앞으로의 방향키를 잡았다는 것이 이 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근대라는 시대적 배경 위에서 한국과 일본은 지리적으로, 정치․사회적으로 씨실과 날실처럼 복잡하게 얽혀왔다. 어문학 연구에서도 이는 두말이 필요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이 책은 다른 듯 닮아있는 모습에서 타자의 시선을 통한 스스로의 고찰․비판․진단이 가능하게 하고, 한일 양국이 발맞추고 소통하는 학문적 분위기를 조성하는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더불어 이 책이 한국과 일본의 근대문학 연구를 위한 디딤돌로 활용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앞서 밝힌 것처럼 이 책이 잡아놓은 방향키를 따라 더욱 많은 연구자들이 영감을 얻고 그 앞에 펼쳐진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구성할 것을 기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