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이 여전히 읽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고전소설은 조선시대 이후로 지금까지 살아남아 독서의 대상이 되거나 연구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중에는 진정 고전(古典)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작품들도 있고 조선시대에 지어졌다는 것이 중요한 이유가 되는 작품들도 있다. 전자이든 후자이든 오랜 시간을 견뎌 살아남았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주목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이 드는데, 그 작품이 소위 ‘재미있게’ 혹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독서물로 읽힌다면 그 이유는 뭘까, 그 해답을 찾기 위한 노력의 결과물로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소명출판, 2013)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고전이 시간이 지나도 계속해서 읽히고 주목받는 이유가 무엇인지, 그러한 궁금증을 갖고 시도했던 연구들이 모인, 고전소설의 문학 작품으로서의 면모와 특징들에 주목한 결과물이다. 시간의 두께를 견뎌내며 읽힐 수 있었던 문학 작품으로서의 짜임이나 특징, 혹은 흥미 요소 등에 대한 관심이 이 책에 들어 있는 셈이다. 내재된 흥미 요소는 독서 과정을 재미있게 만들고 재미는 몰입한 후에라야 비로소 맛볼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진지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면 그 작품은 아마도 고전의 반열에 다가설 확률이 높아지게 될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이 책은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라는 제목을 지니게 되었다.
고전에서 느낄 수 있는 문학적 흥취
고전소설에는 흔히 ‘고전소설이 지닌 낭만성’으로 해석되곤 했던 환상적인 요소들이 자주 등장한다. 이러한 환상적인 요소들 중 도술, 도사 등으로 구성되는 도술담 「전우치전」이 있다. 저자는 도술 이야기의 환상성이 조선시대 민중들에게 폭넓게 향유되었던 미감일 수 있다는 점에 주목하며 도술담의 환상성이 우리나라 고전소설의 환상 미감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이라 보고 있다.
고전소설을 읽는 재미의 극대화는 주제와 기법의 절묘한 교합과 호응을 전제로 할 때에만 가능하다. 「옥루몽」은 바로 그러한 소설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작품을 읽는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가장 일반적인 기대 수준은 재미있는 이야기, 즉 ‘흥미’와 ‘서사’에 대한 기대일 것이다. 저자는 「옥루몽」을 서사미학적 관점에서 살펴보고 작품이 지닌 미적 쾌감의 실체와 의의를 살펴보았다.
조선시대 문집에 수록된 글을 보면 제문, 묘비명 등 죽음과 관련한 글들이 다수 수록되어 있다. 고전소설에서도 다양한 죽음의 양상이 다루어지는데, 조선의 죽음 관련서사는 사실 기록과 허구적 서사를 막론하고 신중하고 온건한 서술 태도를 보인다. 또한 충효열과 관련되지 않은 자살을 미화하는 경우는 보기 드문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협창기문(俠娼奇聞)」은 죽음의 방식에서 유교적 이념 수호 대신 화려하게 죽음으로 나아가는 낭만적이면서도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긴다. 이러한 독특한 개성을 보이는 「협창기문」이 고유의 서사인지, 혹은 당대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인지 그 정도를 가늠하고, 죽음의 양상과 성격을 고찰하였다.
새로운 시대, 다양한 시도
조선시대가 새로운 시대를 만나고 경험하면서 그 시기의 작품들은 구시대적 전통 속에서 새로운 물결을 감지하며 다양한 시도들이 행해졌다고 할 수 있다. 해당 작품들은 조선시대에 유통된 서사의 하위 장르들이 변화되어 가는 양상과 방향성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들이다.
고전소설에서 남녀 간의 애정을 주로 다룬 소설의 경우 ‘연애’와는 거리가 먼, 소위 연애 과정이라고 할 수 있는 일정의 유예된 기간들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19세기 소설 중 남녀 주인공의 애정 방식이 전혀 새롭게 그려진 시선을 끄는 작품들이 있다. 바로 「절화기담」과 「포의교집」이다. 이 작품들은 남녀 주인공의 만남과 헤어짐까지 각기 2년여에 걸치는 과정들을 보이며, 기존의 고전소설과는 차별되는 공통적인 지점들을 가진다. 이 책에서는 이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애정 서사를 살핌으로써 우리나라 애정소설의 맥을 가늠해보고 있다.
또한 그동안 연구에서 별로 주목받지 못했던, 그러나 다른 고전소설 작품에 비해 그 형식이 매우 독특한 「한당유사(漢唐遺事)」, 기존의 소설 목록에서 확인된 적 없는 「기우도(奇遇圖)」, 개화 지식인 의전 육용정(宜田 陸用鼎)의 인물전 등을 살펴본 글도 매우 흥미롭다.
고전소설, 하나의 콘텐츠
21세기, 멀티미디어가 더 이상 새로운 매체가 아니게 된 지금 고전소설 역시 콘텐츠로 보아도 무방할 듯하다. 멀티미디어 환경 속에서 고전소설이 새롭게 향유될 수 있는 방식을 모색한 글에서는, 매체 환경의 변화와 관련하여 고전소설 연구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한 때라고 주장한다. 이 책에서는 고전소설 작품을 하나의 콘텐츠로 바라보고, 과거의 작품을 오늘날의 언어로 다시 제공하여 온전한 작품으로 감상 가능하게 제공하는 일이 시급한 과제라 풀어내었다. 이를 위해 고전소설 서사와 디지털 스토리텔링의 관계를 살펴보며 단일 매체와 다중 매체의 서술 방식의 차이를 탐구하고, 고전소설 연구가 멀티미디어에 접근 가능한 방법들을 모색하였다.
문화에 디지털 기술이 접목되고 문화가 상품이 되는 시대가 되었다고 해서 고전소설 혹은 고전문학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고전소설과 문화콘텐츠에 관련된 문제들을 문화콘텐츠 생산자가 아닌, 고전소설 연구자의 입장에서 접근하여 고전소설을 콘텐츠화하는 과정에서 연구자가 제공해야 할 작업에 대해 고찰하였다.
지은이
조혜란(趙惠蘭, Cho, Hae-Ran) 이화여대를 거쳐 동대학 박사과정 졸업, 현재 이화여대 국문과 부교수이다. 고전문학을 전공하고, 19세기 한문 장편소설인 「삼한습유」연구로 박사논문을 썼다. 고전문학 작품이 지닌 미적 특질과 고전 여성 문학에 관심이 있다. 논문은 「삼대록계 국문 장편소설에 나타난 추모 연구」, 「가문과 개인 사이」, 「여성, 전쟁, 기억 그리고 「박씨전」」 등 다수가 있으며 역서로는 삼한습유 역주 외에 심양장계(공역), 소현성록 1(공역) 등이 있고, 저서로는 고전서사와 젠더, 삼한습유-19세기 서얼 지식인의 대안적 글쓰기, 옛 소설에 빠지다, 조선의 여성들(공저) 등이 있다.
고전소설, 몰입과 미감 사이는 고전소설의 감각적인 작품의 결들을 문학적으로 분석하고자 했던 시도의 산물이다. 그리고 독자들이 몰입할 만큼 이야기를 흥미롭게 만드는 고전소설의 서사적 요소들은 어떤 것인지, 고전소설이 시대를 모색해 간 양상, 변화하는 현재 환경에 대한 고전소설 연구자의 모색 등 다양한 주제로 고전소설에 몰입하고 미감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이로써 독자들은 앞으로 더욱 깊이 있는 고전소설 감상을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