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릉하면 태릉선수촌, 광릉하면 자동차 극장만 생각난다면?
문화적 정체성이 포개어져있는 장소인 숲이 인간과 함께 걸어온 과정과 사회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소명출판, 2013)이 출간되었다.
소나무숲의 촘촘하고 빽빽하게 하늘을 향해 솟구쳐 오른 나무들의 합창과 일무를 보고 감동을 받았다는 저자는 인류의 역사 내내 얽히고 설키며 하나의 산림문화를 형성한 숲을 총체적으로 조명, 환경이 사회경제와 어떻게 관계되어왔는지 몇 개의 맥락으로 풀어냈다.
특히 저자는 환경을 보호하는 선에서 더 나아가 새롭게 좋은 ‘환경을 조성하는 인간’이라는 뜻에서 호모 실바누스는 라틴어의 실반(sylvan-)이라는 나무와 숲을 지칭하는 어근을 활용하여 ‘호모 실바누스Homo sylvanus’라 명명하는데, 이 책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은 그러한 호모 실바누스들과 나무와 숲의 상호작용을 주로 다루고 있다.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은 호모 실바누스가 오랜 시간을 통해서 걸어온 길 중에서 특히 선사시대 혹은 고대사회 한국인의 선조에 해당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숲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살피는데, 그 지리적 위치는 주로 만주와 한반도다. 상대적으로 문헌적 자료가 풍부한 중원과의 비교에 의해서 드러나는 만주-한반도만의 문화적 정체성을 숲과 나무라는 자연을 통해서 음미해 본다. 고고학, 역사학, 민족전통생물학 등의 초학제적trans-disciplinary 조망에 의한 고대 사회의 음미에서 드러나는 것은 단군 신화에 대한 숲과 인간의 상호작용의 측면에서의 재해석, 예맥조선 혹은 후조선에 해당하는 비파형동검문화시기의 숲과 인간의 상호작용, 주몽와 유리의 고구려 건국 설화에서 조명되지 않았던 소나무의 역할, 단군 신화에서의 수목 숭배 전통에서 내려온 요소를 간직한 근세조선의 사직社稷 등이다. 이러한 조망에는 인간집단유전학과 고대 인족의 이주-정착사라는 배경에서 중원의 화하華夏, 만주-한반도의 예濊, 맥貊, 한韓 등과 같은 고대 인족ethnic group들을 인간유전학적 살펴본 기초적 연구가 배경을 이루고 있다.
또, 민족생물학의 입장에서는 숲의 식물집단뿐만이 아니라 동물집단에 대한 조망을 통해서 나무와 포식자동물의 문화적 의미들을 추적하였으며, 이러한 측면에서 ‘문화적 생물종cultural bio-species’이라는 개념을 도출하여 자연-인간 시스템nature-human system 혹은 사회생태시스템social-ecological system의 측면에서 매개 역할을 하는 생물종들을 부각시켰다. 문화적 생물종 개념은 보전생물학에서 이용되는 중추종 keystone species, 곧 한 생태군집에서 전체의 생물집단의 수와 질을 조절하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종의 개념과는 중첩되기도 하면서 인간 사회와의 상호작용이 깊은 생물종들을 제시할 수 있는 것이다.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에서 드러나는 단나무(신단수), 소나무, 곰과 호랑이 등이 이러한 문화적 생물종으로 제시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숲과 인간의 상호작용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저자는 기원전이나 기원 무렵부터 나무와 숲은 만주와 한반도의 현생 인류와 문화적 어울림cultural choreography을 본격적으로 해왔다고 설명한다. 그 때로부터 시작하여 1~2세기 동안에 일어난 근대화 과정에서 크게 변화된 현대 한국인에게서도 현재적 스타일의 숲과의 문화적 어울림이 발견되며 앞으로 더욱 새로우면서도 훌륭한 산림문화를 만들어 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은 또한 고려나 근세조선의 중세사회에서 동물과 식물 모두를 포함하는 숲과 인간의 상호작용을 드러내고자 한다. 숲이 인간 생활에 필요한 굉장히 많은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였기 때문에 중세 사회는 숲과 나무가 인간 사회의 구조와 제도에 깊게 드리워져서 농경문화와는 겹치면서도 차별성을 보이는 독특한 산림문화를 형성한다. 특히 온돌문화는 연료림과 관련이 있으면서도 만주-한반도 계열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중원이나 일본열도와는 또 다른 측면의 문화적 차이를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역사적 배경을 가지는 전통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표현되고 발전될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은 보이고자 한다. 황장소나무와 금강소나무의 문화적 관계에 대한 이야기는 전통과 현대가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아주 재미있는 사례이고, 문화적 생물종으로서의 소나무의 생명과학을 살펴보게 된 것은 현대적 문화로서의 과학을 생물종에 대해 적용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현대 한국인은 문화적 생물종이 존재하는 숲생태계와의 현대적 상호작용을 생태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하게 되는 호모 실바누스로서의 자질을 충분히 가지고 있으며 문화의 여러 장르에서 그것이 고급의 문화로서 다듬어 질 수 있다는 것을 한국인과 숲의 문화적 어울림은 주장하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다양하게 사용되는 재작원료이자 세계경제의 중요한 요소인 나무를 단순히 광범위하게 살폈기보다는 흥미로운 몇 가지 예를 통해 자연과 문화가 인간과 어떻게 관련 맺어 왔는지를 엿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