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울 수 없는 유산, 우리 모두의 트라우마
정권이 바뀔 때마다 늘 그랬지만, 올해 초에도 역시 ‘북한이 심상치 않다.’ 하루가 멀다 하고 북한의 전쟁 위협이 신문지상을 장식하고, 평범한 소시민들의 일상에도 ‘전쟁’이라는 단어가 태연히 침투했다. 한 세기 동안 전 세계를 휩쓸었던 냉전은 미국이나 러시아에서는 이미 그 그림자마저 흐릿해졌지만, 우리에게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생각해보면 휴전 이후, 우리는 언제나 전쟁의 위협 아래 놓여있었다. 북한의 도발이라는 실제적 위협뿐만 아니라, 우리의 의식 구조 자체가 전쟁의 위협을 토대로 형성되어온 것이다. 김원일이 노을에서 설파했듯이, 분단 현실이란 그것과는 전혀 무관한 것으로 보이는 중산층 소시민의 삶마저도 예외 없이 구속했고, 심지어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도 깊은 흔적으로 남아있다. 이 깊은 흔적은 작가들에게도 예외가 아니었다.
우리의 현대문학사를 단 한 문장으로 정의한다면, 그것은 아마도 ‘분단과 반공의 억압에 맞서 의식 깊숙이 각인된 폐해를 도려내는 도정’이 될 것이다. 문학에서 분단과 반공이 문제인 것은 남북 분단이 단순히 지리적인 단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문학의 근본 환경이자 콤플렉스의 근본을 이루기 때문이다. 그 족쇄는 우리 현대 문학에서 대동강이나 성천강 등 북한 지역이나, 다혈질의 함흥 사람들이나 경제관념이 강한 개성 사람들 같은 인물군상을 찾아볼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글을 쓰는 작가의 내면의 틀을 획정해버린 것이기도 하다. 분단 이후 우리의 삶은 근원적으로 ‘반공주의’에 의해 규율되어왔다. 반공주의는 하나의 ‘공포’로 우리 안에 내재화되어, 일반 개인들조차 감시와 통제의 기재를 내면화한 이념적 사시로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균형감각을 가지고 당대 사회의 습관이나 인습, 금기와 획일주의 등에 맞서면서 진정한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 작가들마저 무의식적․의식적 자기검열을 거쳐 창작활동을 비틀거리게 만들었다.
또 다시 우리의 의식의 균형이 무너지려 하는 지금, 우리 소설사에 각인된 분단과 반공의 트라우마를 고찰하는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소명출판, 2013)가 출간되었다.
소설 속에서 찾아보는 분단 트라우마의 원점
한국전쟁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제약하는 일종의 정신적 외상이었다. 현대문학에서 가장 많이 활용되는 제재가 한국전쟁이라는 것은 그런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는 분단 현실을 적극적으로 문제 삼거나 아니면 반공주의와 긴밀하게 관계되는 작품을 대상으로 해 우리 문학, 넘어서 한국전쟁을 겪은 이들과 그 이후 세대들의 의식에 각인된 분단 트라우마를 살펴본다. 한국 현대소설에서 분단의 상처를 깊은 내상으로 간직한 작가들로는 전쟁을 직접적으로 체험하고 전후 분단 체제 아래 반공주의의 규율을 내면화한 박완서, 홍성원, 김원일, 조정래, 이문열, 이호철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에게 반공주의는 심리적 금제(禁制)와도 같은 일종의 트라우마(trauma)였다. 유년기의 억압과 좌절이 한 사람의 성격을 결정하는 근원적 기제(機制)가 되듯이, 반공주의로 인한 공포와 자기검열은 작가들의 상상력을 근본적으로 제한하고 위축시켰다. 반공주의는 공산주의에 대한 단순한 부정이 아니라 고문이나 연좌제와 같은 원초적인 공포와 결합되어 있고, 그래서 분단과 이데올로기 문제를 파헤치고자 할 경우 작가들은 자칫 반공주의의 검열에 걸려들지 않을까 하는 심한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김원일이 평생을 추적한 월북한 아버지의 초상, 이문열이 월북한 아버지로 인해 평생 감내해야 했던 ‘빨갱이 자식’이라는 멍에는 모두 분단이 야기한 상처의 구체적 흔적들이다.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는 먼저 박완서의 소설에 주목한다. 박완서의 작품은 자전소설의 성격이 짙다보니 작가의 개인사가 비교적 충실하게 재현되는데, 때문에 작가의 현실에 대한 견해, 내면심리, 거기에 작용한 사회적 압력과 작가의 무의식적 검열 양상 등이 사실적으로 나타나 작가의 내면에 새겨진 트라우마를 잘 살펴볼 수 있다. 저자는 단편 소설 「그 여자네 집」의 공간성과 개인의 서사가 어떻게 민족의 서사로 나아가는 지를 살펴본다. 또한 박완서에게 큰 영향을 끼친 ‘오빠의 죽음’이라는 모티프에 주목해 작가의 의식의 변모를 드러낸다. ‘오빠의 죽음’이라는 모티프는 목마른 계절과 그 산이 정말 거기에 있었을까에서 모두 다루고 있지만, 동일한 내용의 개인사를 다루면서도 그에 대한 작가의 태도나 서술 방식은 시대에 따라 달라졌다.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는 그 차이를 다룸으로써 박완서의 의식 변화, 그리고 더 나아가 작가의 의식에 영향을 준 사회의 변화를 보여준다.
또한 육이오가 남과 북으로 개작되는 과정을 통해 작가에게 내면화된 ‘반공의 규율과 양상’을 확인한다. 현실의 시대적 제약 속에서 스스로 창작에 제약을 가할 수밖에 없었던 작가들의 모습은 분단의 현실과 거대한 원형감옥 같은 세계의 폭력성의 증거이다.
또 하나의 반쪽 문학
이 땅의 현실이 ‘남’과 ‘북’의 분단인 만큼 어느 한 쪽의 문학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는 현실을 온전히 조명해낼 수 없다. 남한의 역사와 남한의 문학은 어디까지나 ‘반쪽’에 불과한 것이다.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는 남한문학과 함께 북한문학의 형성과 전개과정을 고찰하였다. 남한문학이 그렇듯 북한문학 역시 분단의 상처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허준(許俊)은 삶과 현실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탐구를 보여주었던 작가로, 「속 습작실에서」와 같은 작품에서 성찰적 주체와 윤리에 대한 모색을 보여주었고, 「잔등」을 통해 해방기의 현실을 가장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잔등」을 통해 폐쇄적인 자의식에서 벗어나 열린 주체로 탈바꿈하고 주체와 다른 이질적인 타자를 수용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성숙한 성찰의 자세를 보여주었던 허준은 해방과 함께 북쪽을 선택했는데, 현대소설과 분단의 트라우마는 허준의 작품을 살펴봄으로써 그 선택의 내적 동기를 찾아본다. 또한 안회남(安懷南)과 현덕(玄德), 한설야가 북한을 택하고 북한문학사에 편입되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분단 현실이 초래한 우리 문학의 비극성을 드러낸다. 일제치하에서 문학을 시작하면서부터 사회주의자의 길을 걸었던 대표적인 카프 작가 한설야(韓雪野)는 해방 이후 북한을 선택하여 초기 북한문학을 주도했다. 최초로 김일성의 전기를 쓰고, 김일성을 소재로 한 다수의 작품을 통해 초기 북한문학의 주춧돌을 놓았던 한설야는 이후 김일성을 뒷전으로 밀어내고 일반 민중을 작품의 전면에 내세웠다. 그러나 이러한 변모 이후 한설야는 숙청을 당하게 되는데 이는 북한이 일인 독재의 고도로 변해가는 노정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독특한 서사물인 총서 불멸의 력사는 그러한 북한의 사상과 이념을 집약한 북한 고유의 집체 창작물이며, 유격대 국가로서의 북한의 특성을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국가적 기획물이다. 또한 남대현의 청춘송가는 북한에서 큰 인기를 누리는 작가의 작품답게 현 북한 사회의 실상을 실감나게 그려놓은 작품이다. 연애와 사업의 한 복판에서 갈등하는 두 젊은이들의 이야기는, 개인적인 삶과 사회활동 사이에서 갈등하는 오늘날 북한 젊은이들의 삶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런 작품들을 고찰하는 과정을 통해 북한문학 역시 분단의 상처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교육된 ‘트라우마’
우리의 의식 속에 새겨진 분단 트라우마의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문학 작품 뿐 아니라 ‘국어’ 교과서에 대한 고찰도 필요하다. 학교 교육이란 국가 권력을 유지하는 핵심 기제이자 동시에 그것을 재생산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그 수준이 다른 나라들보다 한층 심각하고 노골적이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과서의 내용이 바뀐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정권을 정당화하기 위해 교과 내용과 이데올로기를 의도적으로 조직하여 일선 현장에서 교육하기도 하였다. 이승만 정권이 사회과 교과서를 ‘일민주의’로 도배하다시피 한 것이나, 박정희 정권이 ‘새마을운동’을 금과옥조인 양 교과서의 핵심 단원으로 수록한 것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주는 예이다. 우리말과 언어생활 전반을 관장하는 ‘국어과’도 예외는 아니었다.
‘국어’ 교과란 엄밀히 말하자면 국가의 정책을 기조로 해서 편찬되는 일종의 어용(御用) 교과목이다. ‘국어’ 교과서에서 반공주의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48년 단정기 이후였다. 전쟁 이후 최근의 7차 교육과정까지 개정을 거듭하면서 간행된 ‘국어’ 교과서는 교과서의 ‘정치적’ 특성을 구체적인 형태로 보여준다. 특히 국가(문교부)가 기획·편찬·공급 등의 제반 업무를 관장한 국정(國定) 교과서의 경우는 검인정과 달리 그 양상이 한층 직접적이고 전면적이다. ‘국어’ 교과서를 통해서 정권은 반공주의를 계몽하고 국가주의적 규율을 강요해서 궁극적으로 자신들이 원하는 형태의 국민을 만들어내고자 하였다. 그런 점에서 ‘국어’ 교과서는 분단과 반공의 트라우마를 다른 어느 곳보다도 깊게 간직한 영역이다. 저자는 ‘국어’ 교과서를 미군정기, 단정기, 전쟁기의 시기별로 살펴보며 ‘국어’ 교과서에 드러난 반공의 규율과 교육 양상을 고찰한다. 국어 교과서에 실린 문학 작품들은 이런 양상을 살펴볼 수 있는 또 다른 창이다. 7차 교과과정의 새로운 국어 교과서에 6차 교과과정까지 찾아볼 수 없었던 납․월북 작가들의 작품이 수용된 것이나, 분단 극복 의지를 담고 있는 작품들이 적극적으로 수용되었다는 점들은 분단 극복을 위한 시대적 의지가 고조되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저자는 이러한 변화의 긍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작품의 선별과 배치에서 목격되는 기능주의적 발상과 태도를 문제 삼는다. 국어 교과서에 수록된 박완서의 「그 여자네 집」과 윤흥길의 「장마」를 고찰하여 문학사에 대한 인식과 작품의 의미, 나아가 작품이 갖는 문제점 등을 분단문학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고, 그 연장에서 교육 현장과 교사의 역할에 대한 견해를 덧붙였다.
우리 안의 트라우마의 맨얼굴
최근 우리 주변에서는 분단문학이라는 말보다 통일문학이라는 말이 한층 더 빈번하게 사용되고 있다. 여기에는 남북한 간에 가로놓인 이질성을 부각하기보다는 민족 고유의 동질성을 발굴하면서 서로 이해하고 교류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고, 그런 과정을 통해서 남과 북이 함께 하는 문학의 장을 만들어 가자는 취지가 깔려 있다. 남과 북에서 함께 수용할 수 있는 작가와 작품을 선별하고, 또 남북에서 동일한 작가가 어떻게 달리 평가되는가를 살피면서 남북한 문학의 ‘원형’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통일문학의 기반을 조성한다는 점에서 바람직하고 또 시급한 일이다. 하지만 이런 식의 발상이 자칫 동질성보다는 이질성이 심화된 현실을 소홀히 하고 통일에 대한 안이한 기대를 부풀릴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북한문학은 우리와는 다른 역사와 원리에 의해 규율되어 왔고, 또 훨씬 정치적이다. 북한이란 우리의 시선으로 포착되지 않는 또 다른 코드의 존재일 뿐만 아니라 엄청나게 왜곡된 상태로 각인되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남한과 북한의 정상적인 관계를 위해서는 그들의 역사적 맥락을 살피고 우리와 다른 그들만의 특성을 존중하려는 심리가 필요하다. 북한에 대한 거부감이 완화되고 정상적인 관계가 정립되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일이 소요될 것이지만, 그런 이해와 조정의 과정이야말로 우리가 치러야 하는 통일의 비용인 것이다.
둘을 가르는 선이 어느 때보다도 불안한 요즈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에게 각인된 반공주의의 실상을 확인하는 일이다. 의식뿐만 아니라 무의식의 차원에서 우리를 사로잡고 있는 망령이 바로 반공주의이자 냉전 이데올로기인 까닭에 그 완강한 실체를 확인하는 것은 바로 그것을 해소하는 첫걸음이다. 문학에서 분단과 반공의 실체와 마주하는 일은 통일이라는 추상적 담론에서 벗어나 구체적 현실에서 문제를 찾고 실천하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