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모든 것을 쓰고자 했던 시인”
120여 명의 이명 작가가 되어 포르투갈어, 영어, 프랑스어로
시, 소설, 희곡, 평론에 걸쳐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펼친 페르난두 페소아의 신비로운 미로 속으로!
기이한 천재 작가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무대 리스본에서
그와 동시대인으로 살며 ‘페소아들’을 만나다!
- 서구 문화권을 넘어 전 세계 독자를 매료시키고 있는 페소아를 만나는 특별한 문학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예술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문학 비평의 세계적 권위자 해럴드 블룸은 저서 『서양 문학의 정전The Western Canon』(1994)에서 유구한 문학사에서 단 26명의 작가를 엄선한 명단에 셰익스피어, 괴테, 조이스, 네루다 등과 나란히 페르난두 페소아의 이름을 올렸다. 이제 페소아는 세계 문학계에 더 이상 낯선 인물이 아니다. 또한 『불안의 책』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하면서 페소아는, 수집해둘 만한 문장들이 곳곳에 넘치는 이 독특하고 매혹적인 작품으로 한국 독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카몽이스와 더불어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작가로 주저 없이 손꼽히는 페소아의 작품들은, 이미 유럽과 서구 문화권을 넘어 베트남어, 스와힐리어, 우르드어 등 40여 개국 이상의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 독자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의 네 번째 책 『페소아: 리스본에서 만난 복수複數의 화신』의 저자 김한민은,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이 기이하고도 천재적인 작가에게 일찍이 매력을 느끼고 국내에 페소아의 작품을 소개하는 데 앞장서왔다. 급기야 그는 포르투갈 리스본으로 떠나 수년간 그곳에 체류하면서, 리스본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을 만나며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작가를, 하나이자 여럿인 이 신비로운 인물을 깊숙이 탐구했다. 여행기라기보다 체류기에 가까운 이 책은 저자 김한민이 100여 년 전의 인물 페소아와 동시대인으로 만난, 밀도 높은 시간의 기록이다.
“삶이란 우리가 삶으로 만드는 것이다.
여행이란 결국 여행자 자신이다.”
_페르난두 페소아
“복수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
하나이자 동시에 수십 명, 그 이상이었던 작가
페소아는 자신의 본명 말고도 여러 사람의 다른 이름으로 창작 활동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집계된 이름만 120여 개 이상이지만, 가장 대표적인 이명 삼인방으로 알베르투 카에이루, 리카르두 레이스, 알바루 드 캄푸스를 들 수 있다. 가명을 사용해 창작 활동을 한 작가는 문학사에서 여럿 있었지만, 페소아처럼 각 인물의 삶을 전체적으로 설계하고 각각의 작품 세계가 독립적인 성향을 띠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기까지 하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처럼 ‘이명’이라는 요소를 빼놓고 페소아라는 작가를 이야기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들이 페소아에게 매료되는 요소를 하나만 꼽으라면 뭐니 뭐니 해도 이명”이라고 저자 역시 가장 먼저 손꼽는다.
페소아는 이미 여섯 살 무렵부터 다른 이름의 인물을 삶에 도입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이것이 더더욱 본격화되어 이명의 이름으로 작품을 써서 발표하기도 했고, 1914년 그의 대표 이명 삼인방이 등장한 이래 그의 창작 활동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저자는 이명들의 작품을 통해 페소아가 지녔던,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에는 너무도 다양했던 창작욕을 가늠해본다. 페소아에게 이명은 “단 한 명의 나에 갇힐 뻔한 ‘다양한 나들’을 해방시킨 창작 기계”였다. “이 모든 것을 뒤에서 조종했던 것도 페소아이지만, 이 모두에게 무대를 내주고 자신을 비우는 것 외에는 한 일이 없다고 너스레를 떤 것 역시 그였다. 한마디로 그는 잘 놀았던 인간, ‘호모 루덴스’(유희의 인간)라는 말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는 시인이었다.”
또한 페소아에게 이명은 문학적 인물 그 이상이었다. 페소아의 이명들은 페소아의 삶에 깊숙이 영향을 끼쳤고, 심지어 페소아의 현실 인물들과 교류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러한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세계를 총체적인 관점으로 접근한다.
페소아라는 ‘사람’
그리고 페소아를 기억하고 사랑하는 리스본 사람들
‘페소아Pessoa’라는 그의 성은 포르투갈어에서 ‘사람’을 뜻하는 일반명사다. 그 어원인 페르소나가 ‘가면’을 의미한다는 점, 문학적 정체성이 여럿인 사람이 하필이면 그리 흔하지도 않은 이 성을 타고났다는 것도 기막힌 우연이 아닐 수 없다. 또한 페소아를 프랑스어로 번역하면 ‘페르손느personne’가 되고 이는 ‘아무도 없음nobody’을 뜻하기도 한다는 점 등은 문학 애호가들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이 흥미진진한 인물,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시인에 대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거의 모든 것은, 그가 죽은 뒤 그의 방에서 발견된 트렁크 속에 들어 있던 약 3만 장의 원고들에 의존하고 있다. 그 트렁크는 그러나, 종이로만 가득 차 있지 않았다.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가 읽던 사람, 그가 알던 사람, 그가 섬기던, 그가 무시하던, 그가 질투하던, 그가 모방하던, 그가 사랑하던 사람…….
저자는 리스본에 머물면서 페소아가 남긴 원고와 자료들, 여타 페소아에 대한 연구들을 꼼꼼하게 살피면서 페소아라는 사람, 페소아가 창조해낸 사람, 페소아가 만났던 사람을 종합하며 ‘페소아’라는 인물 그 자체에 다가갔다. 또한 저자는 페소아 연구에 있어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리처드 제니스Richard Zenith 등 리스본의 페소아 연구자들과 교류하며 다채로운 시각을 공유했다.
페소아라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세계’
그 신비로운 미로 속을 걷다
저자는, 페소아에 관해 얘기하는 것은 그 작품 세계의 풍부함 덕분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라고 말한다. 그저 “할 이야기가 하도 많아 고르고 편집하는 데 품이 들 뿐”이라고. 페소아의 삶도 그렇다. 언뜻 겉으로 보기에는 극적인 요소가 그다지 없어 보이지만 작품 세계 못지않게 흥미로운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문예지 활동가’로서 페소아의 활약은 눈여겨볼 만하다. 페소아는 문학과 예술 분야에서 뜻이 맞는 동료 작가들과 모여 문예지를 만들었다. 그에게 1915년은 단연 잡지 『오르페우』의 해였다. 『오르페우』는 단 두 호만 발행되었음에도 포르투갈 모더니즘을 이끄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오르페우』를 이끌고 『오르페우』를 통해 발굴된 ‘오르페우 세대’는 향후 포르투갈 문화 예술계에 큰 영향을 끼쳤다.
1919년 페소아는 평생의 유일한 연인 오펠리아를 만난다. 그는 평생 결혼하지 않았고, 그가 만났던 사람은 오펠리아뿐이었다. 두 사람은 이별한 후에도 편지를 주고받았고, 오펠리아는 페소아가 사망한 지 3년 뒤에야 다른 사람과 결혼했다.
한편 페소아는 신비주의에 관심이 많았다. 비전주의에 관한 책들을 섭렵하던 중 영국의 마법사 알레이스터 크롤리라는 인물을 알게 되고 그와 교류하기에 이른다. 알레이스터 크롤리와 ‘지옥의 입구’에서 벌인 가짜 자살극 사건은, 페소아의 그러한 성향이 불러온 기이한 일화라 할 수 있다.
페소아의 삶에서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을 꼽자면, 어머니의 죽음과 절친했던 시인 마리우 드 사-카르네이루의 자살일 것이다. ‘포르투갈의 랭보’, 20세기 포르투갈의 대표적인 시인으로 꼽히는 사-카르네이루는 『오르페우』의 핵심 멤버로 페소아와 문학적 이상을 공유했으며, 페소아와 깊은 우정을 나눈 거의 유일한 친구라고 할 수 있다. 두 사람은 사 -카르네이루가 파리로 간 이후에도 꾸준히 편지를 주고받았으나, 사 -카르네이루는 스물여섯 살에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저자는 페소아라는 인물을 이루는 그의 생각, 그의 사랑, 그의 친구, 그의 사상, 그의 관심사 등 페소아에 대한 거의 모든 것을 종횡무진 아우르며 탐구했다. 그렇게 저자는 페르난두 페소아라는 인물을 ‘동시대인’으로 받아들이며 이 책을 완성했다.
페소아의 삶과 문학의 무대 리스본을
‘여행 없이’ 여행하다
어머니를 따라 남아공 더반으로 떠나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페소아는, 대학에 다니기 위해 리스본으로 돌아온 뒤, 마흔일곱 나이에 세상을 떠날 때까지 리스본을 떠나지 않았다. 리스본은 페소아에게 삶과 문학의 무대였다. 저자는 이곳에 체류하면서 페소아가 걸었던 길, 페소아가 살았던 곳, 페소아가 다녔던 리스본 대학, 페소아의 작품 배경이 되었던 곳들을 일상 속에서 느끼며 ‘페소아 되기’를 실천하고자 했다.
페소아는 평소에 여행을 부정적으로 생각했다. 이에 대해 저자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내가 좋아하고 공감하는 작가에 관한 책을 쓰면서 그의 여행에 대한 비판들을 못 들은 척하고 일반적인 기행문을 쓸 수는 없었다. 이런 이유들로 이 책이 반쯤은 페소아에 관한 에세이 혹은 연구서처럼 느껴질 수도 있으리라 예상하지만, 그 역시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이 책은 기행문보다는 다소 묵직하고 깊이 있게 페소아의 삶과 문학을 담게 되었다.
페소아의 작품을 읽어본, 이 천재 작가에게 이미 사로잡힌 독자에게 이 책은 페소아라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을 이해하는 데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다. 그리고 페소아를 아직 만나지 못한 독자에게 이 책은, 조금 낯설지만 대단히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페소아라는 인물에 대한 꼼꼼한 안내서가 되어줄 것이다.
삶이 책을 읽고 페소아가 읽고 싶어져서 페소아의 책을 들고
여행을 떠나게 되면 더 좋을 것 같다.
그게 몸으로 하는 여행이든 머리로 하는 여행이든 말이다.
_「프롤로그」 중에서
◎ 책 속에서
나는 내가 영향받을 사람과 환경을 최대한 능동적으로 택하고 싶었고, 고민과 타협 끝에 포르투갈과 페소아를 선택했다. 다행히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는다. 물론 우리가 결정하는 것은 영향의 초기 인자들일 뿐, 그 결정의 의미와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페소아의 마지막 말처럼, 우리는 내일이 무엇을 가져다줄지 전혀 모른다. 나도 한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했던 인물을 이만큼 내 삶에 깊숙이 받아들이게 될 줄 몰랐다.
- 〈프롤로그〉 중에서
페소아에게 다가가고자 들어선 거대한 텍스트의 미로 속에서 길을 잃을 때마다, 나는 누군가를 붙잡았다. 정확한 길을 안내해주리라고 기대하진 않았다. 그저 한 명 한 명에게서 얻은 작은 이야기 조각들을 잘 맞추면 어렴풋하게나마 한눈에 들어오는 지도를 그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를 품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흘러 다녔을 뿐이다. 그 사람들 중에는 실존한 인물도 있고 가공의 인물도 있었으나, 페소아라는 회로를 통과할 때마다 그 경계는 점점 흐려졌다.
- 〈프롤로그〉 중에서
나는 이미 잘 알려진 페소아에 관한 고정된 이미지들을 지워내고, 페소아가 만들어낸 시인 알베르투 카에이루의 표현처럼 ‘안 배워’내면서 페소아와 가능한 한 직접 대면할 필요가 있었다. 좀 더 핵심에 다가가기 위해. 그렇게 나는 페소아의 주변을 가득 둘러싼 사람들의 벽을 뚫고 헤쳐나가며 페소아를 만나려고 했다. 때로는 자꾸만 다른 가면을 쓰고 등장해 혼란을 일으키는 페소아 본인에게조차 “잠깐 비켜봐”라고 말해야 했다.
- 〈프롤로그〉 중에서
딴사람의 이름으로 쓰기, 아니 아예 딴사람이 되어 쓰기—이것은 페소아가 거의 평생에 걸쳐 습관적으로 혹은 강박적으로 지속한 일이다. 현재 자신이 속해 있는 시공간으로부터 벗어나, 또 자아로부터도 ‘유체 이탈’하여, 과거 이력까지 정교하게 만들어낸 어느 타인의 관점을 취한 상태에서 시심을 발휘하는 행동. 그렇게 지어진 시의 시간은 과거와 현재와 미래, 그 어디도 아닌 곳에 위치할 수밖에 없고, 그 시의 시선은 온전히 캄푸스의 것도, 페소아의 것도, 시인이 아닌 실존 인물 시민 페소아의 것도 아니게 된다. 그렇게 복수의 시선들이 탄생하고, 그 시선들이 서로 어지러이 교차한다.
- 〈1장 다시 리스본으로〉 중에서
페소아의 도시는 이론적으로는 간단하다. 운문이라는 씨줄과 산문이라는 날줄로 짜인 문학의 매트릭스 위에 세워져 있다. 그러나 안내판들이 ‘거짓말’들로 점철되어 있고, 통로들이 끝이 없거나 막다른 골목이며, 길을 물어볼 행인들이 모두 가면을 쓰고 있는 게 문제다. 그의 리스본, 그리고 비행기에서 내려 내가 발을 디딜, 재방문하는 리스본. 이 두 도시 사이에서 나는 어떻게 길을 찾고, 어떻게 길을 잃을 것인가?
- 〈1장 다시 리스본으로〉 중에서
이명은 그만의 ‘창작 기계’였다. 그것은 창작의 연료이자 동력, 스파크였다. “복수 複數가 되어라, 저 우주만큼!”이라는 그의 모토처럼, 모든 것이 되어 모든 것을 느끼고 싶었던 그의 놀라울 정도로 큰 문학적 꿈은, 하나의 이름 아래 묶이기 어려운 너무나 다양한 창작 욕망들로 꿈틀거렸다. 게다가 워낙에 까다롭고 높은 기준 때문에 극단적인 과작寡作 작가가 되기 딱 좋은 인물이 바로 페소아였다. 서로 다른 이름들을 배치해 그들만의 방 안에서 가능한 한 부담 없이 쓸 수 있도록 한 그만의 ‘분리 장치’가 없었다면, 이만큼의 작품들이 탄생하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이명들이 대거 탄생한 시기(1914~1915년)를 전후해 그의 생산성이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 〈2장 하나이자 여럿인 사람〉 중에서
페소아에게는 현실이라는 재료를 단순 가공해서, 혹은 촉매제로 이용해서 시인의 느낌을 표현하고 전달하는 종류의 시는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 같은 현실의 재료라도 그는 전혀 다른 맥락에 재배치했고, 늘 약간의 ‘속임수’를 양념처럼 추가하여 색다른 맛을 만들어내려고 했다. 이 과정을 ‘비인격화’라는 방법론으로 이름 붙이며 이론화하기도 했는데, 여기서 발생하는 현실과 문학 사이의 긴장 속에는 그 둘의 관계를 단순화시켜 쉽게 이해하고 정리하려는 사람들을 찜찜하게 또는 당혹스럽게 만드는 힘이 있다. 이쯤 되면 페소아라는 사람은 알면 알수록, 리스본에서 살면 살수록,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점점 더 아리송해지는 작가라는 내 말이 독자에게도 궁색한 변명으로만 들리진 않을 것이다.
- 〈3장 여행 없이 여행하는 자〉 중에서
열여섯 살의 소년이 있다. 유럽 포르투갈 출신의 이 어린 시인은, 아프리카 남아공에 살면서, 미국 보스턴에 사는 시인을 발명하여, 동남아시아의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보내고, 그가 여정 중 오세아니아의 호주에 들러 광부들과 어울리며 쓰는 시를 상상을 하며 창작을 한다. 그리고 영국 이름을 가진 또 다른 필자를 만들어내 그를 신문 독자들에게 그럴싸하게 소개한다. 다섯 대륙을 넘나드는 이 현기증 나는 여로라니! 얼마나 일찍부터 이 사람이 상상과 시, 그리고 지도만으로 여기저기 정신없이 여행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닐 수 없다. 이렇게 유별난 아이였으니, 아주 작은 실제 경험의 ‘불씨’만으로도 큰불을 지르기에 충분하다는 생각을 고집스럽게 발전시켜올 수 있었을 것이다. 상상력과 분석 능력만 있으면 충분하다면서.
- 〈3장 여행 없이 여행하는 자〉 중에서
페소아와 친구들의 흔적을 찾는 사람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은 관광지로 잘 알려진 카페 마르티뉴 다 아르카다Café Martinho da Arcada 와 카페 브라질레이라Café A Brasileira 이다. 이 두 카페는 당시 로시우 광장에 각각 분점이 있었는데, 페소아 일행이 주로 드나들던 곳은 현재 남아 있는 본점보다 사라지고 없는 분점들이었다. 시내 한복판의 목 좋은 시아두 지역에 자리 잡은 탓에 늘 북적거리는 브라질레이라 본점은, 한때는 페소아도 왕래를 했으나 곧 발길을 끊은 곳이다.
- 〈4장 ‘오르페우’는 계속된다〉 중에서
『오르페우』의 아방가르드적 실험에 공헌한 다른 구성원들에게는 다소 미안한 얘기지만, 페소아와 사–카르네이루라는 쌍두마차가 이뤄낸 문학적 성취와 독창성은 나머지 멤버들을 압도했다고 해도 지나친 평가가 아니다. 이 둘의 천부적 재능과 돈독한 우정이야말로 잡지의 핵심 동력이었는데, 그중에서도 페소아는 이 모든 것의 중심에 서서 실로 전방위적 활약을 펼쳤다.
- 〈4장 ‘오르페우’는 계속된다〉 중에서
『불안의 책』에서 진짜로 불안한 것은 그 책의 존재 방식이다. 책이라고 부를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의 유품인 트렁크 속에서 원고 뭉치로 발견되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다. 다른 페소아의 작품을 논할 때도 편집의 문제가 단골처럼 등장한다. 관련 글이나 논문도 많아 『페소아 편집하기』라는 본격 연구 책자가 있을 정도이다. 에밀리 디킨슨 역시 대부분의 원고를 미발표, 미완성 상태로 남겨놓고 가서 비슷한 문제로 후대 연구자들이 골치를 썩는다고 한다.
- 〈5장 파편과 폐허의 미학〉 중에서
비록 ‘정신적’으로는 그녀가 선수를 쳤지만 ‘육체적’으로 첫 발자국을 뗀 것은 남자 쪽이었다. 회사에서 정전 사고가 발생한 어느 날이었다. 마침 모두 다른 볼일을 보러 나가고 사무실에는 단둘만 남아 있었다. 페소아는 기름 등불을 밝혀 오펠리아의 책상에 놓아주며, 퇴근 시간 즈음해서 “먼저 가지 말고 있어달라”는 메모를 남겼다. 이미 페소아의 호감을 눈치채고 있었던 그녀는 은근히 기대를 품은 채 어서 시간이 가기를 기다린다. 퇴근 시간이 되어 업무 정리를 하고 외투를 입고 있을 때 그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별안간 페소아는 마치 햄릿이 오펠리아에게 하듯, 지극히 중세적인 혹은 연극적인 방식으로 한쪽 무릎을 꿇고 사랑을 고백하기 시작했다.
- 〈7장 모든 연애편지는 바보 같다〉 중에서
세상이 내가 주문한 것과 다른 것을 손에 쥐여줄 수 있음에 무지한 어린아이도, 세상은 어차피 내가 주문한 대로 나오는 법이 없다고 단정한 어른도 아니었던 페소아. 그 중간쯤의 회색 영역 어딘가에서, 세상과 더불어 영원한 의문과 호기심을 품고, 적극적으로 항의하지 않고, 치러야 할 대가는 치른 채, 그저 볼멘 내면의 목소리 혹은 시를 중얼중얼거리며, 포르투갈 특유의 타일 보도블록 ‘칼사다 포르투게사Calçada portuguesa’가 깔린 골목을 지나 어느 언덕 너머로 사라졌던 사람……. 리스본 시민 페소아는 내게 그런 사람이었다.
- 〈10장 리스본 사람들〉 중에서
페소아의 마지막 사진을 한참 들여다본다. 항상 의문이었다. 마흔일곱의 나이인데 벌써 일흔은 되어 보인다……. 무엇이 당신을 이토록 조로하게 만들었는가? 술과 담배 때문에? 너무 많은 사람의 삶을 사느라고? 아니면 그의 말처럼 “너무나 많은 철학과 시학을 살아내느라?”
- 〈12장 페소아와 정치〉 중에서
눈썰미 좋은 여행자라면 창문턱에 몸을 걸치고 따로 하는 일 없이 물끄러미 바깥 거리를 쳐다보는 사람들이 포르투갈에 유난히 많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오죽하면 포르투갈어에는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도 있다. 일상에서 자주 쓰이는 말이라기보다 문학적 표현에 가깝지만 말이다. 한때 한국의 정서를 특징지었던 ‘한恨 ’처럼, 포르투갈을 대표하는 ‘사우다드saudade’의 정서를 일상에서 보여주는 행동 중 하나가 바로 ‘창문하기’가 아닐까 생각한다.
- 〈에필로그〉 중에서
페소아의 광대하고 독창적인 세계만큼이나 감동적인 것은 그의 안목이었다. 사람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세자리우 베르드를, 카밀루 페사냐를, 안젤루 드 리마를 알아보는 눈 말이다. 우리는 어떤가? 언젠가 평론가 에두아르두 로렌수가 따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페소아를 말할 자격이 있는가?” 생전에 몰라보고 이제 와서 칭송하는 것은 가장 쉬운 일이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