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톤 철학, 서양철학은 플라톤 철학의 다양한 각주다

탁양현 | e퍼플 | 2018년 09월 07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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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西洋哲學의 開祖, 플라톤의 哲學思想



철학이란 무엇인가. 철학은 ‘구라’다.
그러니 Romeo들이여. 누군가의 첫 인상은, 되도록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또한 Juliet들이여. 누군가의 첫 마디는, 되도록 신뢰하지 말아야 한다.
사이 혹은 중간으로만 뒤섞이는 이념의 문턱에서, 그리고 어떤 충만(이득) 속에서, 오로지 시장 한편의 으슥한 곳으로만, 꼬여 드는 자들이 있다. 이념적인 로미오들처럼. 경제적인 줄리엣들처럼.
미국을 role model로 삼든, 부탄을 롤 모델로 삼든, 그저 그러려니 한다. 그림자권력적인 법칙에, 보다 잘 복종한다는 사실 말고는, 달리 설명될 수 없는 현상인 탓이다.
무수한 잡종의 genre 안에서, 수도원마다의 독특한 전통이 있는 법이다. 그래서 그림자권력이 엄밀히 규정해 둔 진리에 저항하는, 眞理不定者로서 살아낸다는 것은, 살아내는 동안 여러 가지 온갖 疾病的 徵候로써 고통스러워해야 함을 의미한다.
그래서 부탄식으로 살고 싶은 자에게, 미국식 삶은 고통스럽다. 그리고 미국식으로 살고 싶은 자에게, 부탄식 삶은 고통스럽다. 독일식, 프랑스식, 이탈리아식…. 죄 그러하다.
동일한 상황의 持難한 반복이다. 동일한 언어의 지난한 반복이다. 그리고 오로지 고유한 법칙성만을 탐색하는 건조한 사유형식들이 있다.
그래서 일까.
되풀이할수록 어쩐지 마귀와 같은 명제들은, 절로 단단해지기만 한다. 개는 사랑하고, 돼지는 먹고, 소는 신는다고들 한다. 그러니 나는 황혼의 기타 소리를 듣는다.
아무래도 평화는, ‘전쟁적 지배’보다는, ‘계약적 복종’을 선호하는 상태다. ‘최후의 전쟁’에 의한, 노예적 정치(통치)의 종말이라고 해도 그러하다. 억압이나 압제를, 그림자권력의 대표적 속성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유치한 가설에 불과하니까. 자못 거침없는 marbling의 현혹처럼.
어떤 존재자에 대해서, 충분히 이해(분석)할 수 있다고, 착각(망상)하는 자들이 있다. 인간존재를 넘어서는, 도약의 가능성을 지닌 유일한 존재자로서, 스스로·저절로 춤추며 노래하는 자들이 있다.
그림자권력에 의해, 봉인되어enveloppé버린다. 거듭 함축되어impliqué버린다. 그렇게 각인되어impressé버린다. 그런 ‘것’들에게 현실세계는, 스스로 춤추며, 저절로 노래하는 황제처럼, 각별한 의미나 가치를 결코 지닐 순 없다.
Matador의 마지막 칼질에, 거대한 황소가 맥없이 나자빠진다. 흥분한 군중들은 거세게 환호한다. 군중들 틈에서, 나는 어쨌거나 스스로 非正常人(범죄자, 불순분자, 정신질환자 따위)임을 시인해야만 했다.
무슨 까닭인지, 鬪牛士보다는 황소의 편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날 밤, 투우장의 황소가 되어서, 칼에 찔리는 꿈을 꾸었고, 다음날 실제로 황소가 되어버린 스스로를 발견해야만 했다.
막장을 향해 갈 데까지 간다. 그래서 길이 끝나는 곳, 그리고 다시 길이 시작되는 곳. 그곳으로 간다. 그러니 죽어간다는 것이야말로, 살아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항상 질서ordre와 명령ordre 그 사이에나 머문다. 그렇다. 진리는 선언되는 것이 아니라 體得되는 것이다. 그런데 왜 시나브로 그곳이 싫어졌을까.
이미 서툰 결핍으로나 간주되는 갖은 욕망 속에서도, 나는 나일 따름인 탓이다. 그곳을 벗어나지 않는 한, 단 한 치도 나아갈 수 없는 탓이다.
물론 아울러 어느 순간부터, 갖은 말장난이 지겨워지기도 했다. 말장난은 아주 재미나고, 누구보다 잘 할 자신도 있지만, 참으로 허망할 따름이니까. 말장난에 길들여져서 자못 익숙해질수록, 삶은 더없이 공허해질 따름이니까.
시답잖은 인연일랑은 죄 악연이 되어버렸다. 그땐 알지 못 했다고 한들, 추레한 변명마저도 될 수 없겠지. 그래서 고립된 기호는, 삼류 호러영화의 스토리와 유사하다.
명백히 드러나지 않는 무의미와 명백히 드러나는 무의미.
직접 죽음을 경험해 보지 않아도, 이미 죽음을 아는 건, 단지 훈육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 그대는, 속이 풀릴 때까지 한껏 짓뭉개다가, 세월이 한참 지난 후에나 쓴웃음 짓겠지.
지금껏 망상 속에서 살았다. 대부분의 인간존재들이 꺼리는 이야기를 언급하는 양, 무작정 쏘다니는 바람과 구름을 굳이 분별치 않는다. 참으로 어이없게 살아내는 가련한 인간존재들에게 부여된, 가혹한 계절의 흔적처럼 고유의 감각에나 덧붙여지는 고유명사들.
고작 그림자권력의 소모품(예견된 쓰레기)에 불과함을, 어떻든지 시인하지 않으려는, 가련한 군중들의 노력이라는 허망함처럼, 모든 것을 울음으로써 해결하려는, 미신적 치료(굿판)만큼이나, 모든 것 웃음으로써 무마하려는, 심리학적 시도(웃음치료) 역시, 당최 허망하기는 매한가지다.
그래서 여전히 착각 속에서 산다. 삶을 활짝 꽃피웠다면 幸運이다. 삶이 그저 그랬다면 多幸이다. 아무래도 여행자의 삶은, 다행스러운 행운이다.
누구나 그 길을 안다. 가장 아름다운 그 길을 안다. 가장 행복한 그 길을 안다. 가장 기쁜 그 길을 안다. 그런데 그 길은, 아름답고 행복하고 기쁜 만큼의 고통을 반드시 요구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적당히 추하고 불행하며 슬프더라도, 고통이 덜한 우회로를 택한다.
여행자의 가슴 속에는 항상 등불 하나가 있다. 그 등불을 좇으며, 한없는 여행길을 떠돈다. 아주 느린 여정이다. 그런데 아주 느린 길은, 정작 빠른 길인지 모른다.
떠나지 않고서는 결코 지금 이 순간을 발견할 수 없다. 떠나 보면 정작 소중한 것은 늘 우리의 곁에 있었음을 알게 된다. 하늘, 땅, 바람, 물, 별, 불…. 행복의 파랑새처럼, 항상 우리의 가장 곁에 있었음을 깨닫게 된다.
그런데 소중한 것들이 늘 곁에 있지만, 우리는 잘 알지 못 한다. 아니 다른 것들이 소중한 줄 안다. 명품, 보석, 주식, 아파트, 자동차, 예금통장…. 물론 이런 것들도 중요하다. 그런데 이것들은 유용한 것이지, 소중한 것은 아니다.
network 속에서, 대체로 일정한 네트워크로부터 일탈한 자들은, 늘 말과 문자를 혼동한다. 아니 일부러 뒤섞는다. 그래서 불현듯 해체될 네트워크를 목적한다.
다만 언어적 사실과 언어적 본질을 자못 엄격히 분리하는 한, 언어는 결국 보편일 순 없다. 자연의 본성 안에서, 지금 이 순간 굳이 좋을 것도 굳이 나쁠 것도 없다.
자꾸 흐려져 가는 흐릿한 꿈속.
저주의 본능 안에서, 늘 흡혈의 욕망에 시달리는 vampire처럼, 시인과 철학자들 역시 환상 속에서 늘 어떤 결핍엔가 시달린다. 그렇게 잘 놀고들 있다. 잘 노는 자들은, 즐겨 노는 자들은 일삼아 욕을 먹는다.
자기보다 가진 것이 적은데도, 무심히 놀 수 있는, 그들의 놀이가 부러워서 배가 아픈 것이다. 설령 그렇더라도 결코 노래하는 법을 잊어선 안 된다. 춤추는 법을 잊어선 안 된다.
消盡과 喪失의 보유Verspätung, 혹은 연기Nachträglichkeit. 누군가를 잔혹하도록 욕하고 싶다면, 정작 거울을 봐야 한다. 그럴 때 거울은 가장 거울다우니까. 그럴 때 비로소 철학함은 시작되니까.
수확을 앞둔 농부의 논이, 고라니 탓에 황폐해졌다. 인간존재의 삶은, 자기가 아는 만큼의 상황 속 체험이다. 그래서 아무런 의미도 없는 무의미한 호흡(헛소리, 소문)들만 난무한다.
정작 자기 자신을, 자기의 세계에서 텅 비우지 않으며, 그저 삭제(제거)해버린다면, 이제 남겨질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수확을 앞둔 농부와 고라니의 결코 해소될 수 없는 관계처럼.
-하략-

저자소개

이러하므로, 철학은 ‘구라’다.
온갖 차이différence들을 알아차리게 된 자는, 스스로․저절로 철학하게 된다.
시간을 낭비할 수 있는 진정한 자유 속에서라야, 비로소 ‘소리 없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영원한 초보자의 감각으로서 느린 속도를 타며, 늘 꿈만 꾸는 여행자도 있다. 그래서 삶이 놀이인 자는, 어쩐지 행복한 것이다.
강변을 걷는다.
느린 강물보다 다소 느리게 강변을 걷는다.
강물은 늘 말이 없다.
그런 강물이 좋다.
그래서 우리도 침묵한다.
향신료spice만큼도 역사를 장식할 수 없는 것이 대다수 서민대중의 역사적인 삶이다.
그렇다면 서민대중의 삶은 어떻게 제 의미를 지닐 수 있을까.
온갖 도덕적 시곗바늘들이 죽음(소멸)을 향해서만 쉼 없이 내달리고 있다.
철학적 극복(체념)으로써나 비로소 상상될 수 있는 것들은 당최 무의미다.
그래서 여전히 오랫동안 역사를 작동시켰던 향신료의 희소성처럼 현실세계의 갖은 희소의 가치들이 단지 관습적(습관적)으로 새로운 향신료로 대체되고만 있는 것이다.
짐짓 신화 속에서나 실존하는(실현되는) 자유나 평등 따위의 개념들을 상상해 보라.
내 나이 열 살에는 부모의 사랑만으로 충분했다.
내 나이 스무 살에는 어떻게든 남들보다 잘 하고 싶었다.
내 나이 서른 살에는 어떻든지 남들만큼은 하고 싶었다.
내 나이 마흔 살에는 아주 고요하고 깊은 고독 속에 있다.
마흔 살쯤에는 半解脫이라도 해볼 요량으로 지금껏 아주 많은 공부를 했다.
하지만 여전히 成佛하지도 못 했고, 道通하지도 못 했고, 爲聖하지도 못 했고, 救援받지도 못 했다.
그나마 이제 스스로․저절로 춤추는 자처럼 고독할 줄은 안다.
공부깨나 했다는 옛사람이면 죄다 고독이야말로 성불이나 도통이나 위성이나 구원으로 가는 참된 시작점이라고들 했다.
공부깨나 했다는 옛사람이면 죄다 고독 속에 있을 때면 온갖 眩惑과 갖은 侮辱이 찾아들 것이라고들 했다.
정말 그렇다.
이렇게 멀리 떠나왔는데도, 나를 잠시잠깐도 고독 속에 내버려 두질 않는다.
그래서 더욱 공부깨나 했다는 옛사람의 이야기들이 오롯한 체험으로써 체득된다.
현대의 도덕철학자와 현대적 도덕철학자의 차이는 실로 자명하다.
현대의 도덕철학자는 단지 현대라는 시공간에 생존하는 도덕철학자다.
그런데 현대적 도덕철학자는 현대라는 시공간에 대해 도덕적인(윤리적인) 관심을 갖는 도덕철학자다.
다만 그런 관심이 바람직한 것인지 그릇된 것인지의 여부는 현대에서는 잘 밝혀지지 않는다.
그것은 도덕철학이라는 학문이 애매하고 모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도덕철학의 애매함이나 모호함이 도덕철학자의 책임인 것은 아니다.
어쩌면 누구의 책임도 아니다.
그래도 책임소재를 밝혀야만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저 본래 애매하고 모호한 우주 자체의 도덕적 진리를 굳이 窮究하려고 하는 인간의 욕망쯤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 철학이 있다는 사실쯤일 것이다.
그러다보니 지식(정보)만을 대상으로 삼는 교육(훈육)이 있다.
병자와 범죄자에 대한 예술적(철학적) 치유를 모색하는 인문학도 있다.
어쨌거나 현대는 도덕철학자들과 많이 닮아 있는 ‘수학자로서의 철학자’나 ‘신학자로서의 철학자’보다는 아무래도 ‘예술가로서의 철학자’가 요구되는 시대인 듯하다.
혈압blood pressure을 조절해주는 약은 한 번 먹기 시작하면 평생을 먹어야 한다.
그런데 대체로 혈압은 약으로써 조절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태도에 의해 작동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느 의사는 식생활을 변화시킴으로써 정상적인 혈압이 유지되는 치유법을 처방한다.
하지만 그러한 사실을 알면서도 대부분의 혈압환자들은 여전히 숱한 부작용과 불편을 감내하며 혈압약을 복용한다.
갖은 복잡성(전문성) 안에 은폐되어 있는 사회적(집단적) 습관(利害관계)을 변화시킨다는 것은 그토록 어려운 것이다.
암, 에이즈, 신경증, 정신질환….
죄 그러하다.
지금 여기서 철학, 종교, 정치, 경제….
이런 것들까지 거론하지는 말자.
많은 이들의 혈압이 오를 테니까.
죽음보다도 강한 착각이 있다.
그런데 실상 인간존재에게 죽음보다 강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러니 지금으로서는 딱히 할 말이 없다.
왼쪽 날개左翼가 없어도 새는 살아간다.
오른쪽 날개右翼가 없어도 새는 살아간다.
그러나 사용(소통)될 수 없는 날개는 아무래도 무의미하다.
설령 그렇더라도 날 수 없는 새가 살아가는 방법은 결국 날지 않는 것이다.
21세기는 흔히 匿名의 시대라고들 한다.
예컨대 다양한 인터넷 매체의 온갖 댓글은 그러한 현상을 잘 드러내 준다고들 한다.
그러니 어쩌면 언어놀이야말로 정말이지 ‘스스로·저절로 그러하는’[自然] 현상인 모양이다.
그래서 理性的 판단에 따른다면 당최 도출(표현)될 수 없는 것들이 넘쳐난다.
그래서 그런 것이 딱 이성의 한계임을 인식케 한다.
애당초 이성은 현실세계의 온갖 표면만을 지향적으로 목적하며 작동하는 것이니까.
그 裏面이나 內面일랑은 당최 이성의 영역일 수 없으니까.
그렇다면 인간존재의 이면이나 내면을 그저 Libido나 악마적 본성이나 동물적 본능인 것으로나 규정하고서 은폐하고 외면하면 해결되는 것일까.
그러니 21세기야말로 감성을 떠안을 수 있는 본래적이나 새로운 感性이 요구되는 시대인 것이다.
Peenemünde를 통한 세계제국의 미래라니.
빈칸의 메아리 안에서나 의미는 생산된다.
정복하고 전복하며 동시에 생성하는 기괴한 것들처럼.
어쩐지 어떤 공통감sens commun에나 집착하는 자들로서는, 존재론적 樣式이나 인식론적 常識의 통념doxa을 전도시키려는 역설paradoxa을 욕구한다는 것은, 어쨌거나 불편하며 불쾌한 사실일 따름이다.
그런 그곳에서 그렇게 현대 인류는 탄생했다.
기묘하게도 帝國權力의 미래는 실현되고 있다.
국부론The Wealth of Nations 혹은 자본론Das Kapital.
케인즈John Maynard Keynes 혹은 하이에크Friedrich Hayek.
대부분은 21세기를 병 든 사회라며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어떻게든 그런 사회에 적응하며 아주 건강하게들(선량하게들) 살아간다.
그런데 그러한 적응의 건강성은 당최 애매하고도 모호하다.(탁양현: 철학은 구라다)
-하략-

목차소개

▣ 목차





1. 플라톤철학의 ‘이데아적 영혼’이라는 기원
소크라테스, 인간의 영혼, 탈레스, logos, 아낙시만드로스, 아낙시메네스, 헤라클레이토스,
오르페우스교, 피타고라스학파, 영혼불멸론, 영혼윤회론, agathon, 아리스토텔레스, 파이돈,
불변의 실재, 헤시오도스, daimon, 아프로디테, mythos, 심포시온, 소피스테스, dikaiosyne,
태양 비유, 선분 비유, 동굴 비유, polemos, 알레테이아, 투키디데스, Politiea, 이분법적 구조.

2. 플라톤철학의 대화라는 형식
dialogdramatisch, 소크라테스적 대화, 에토스, dialectic, 로고스, synopsis, 파토스, dialektik,
아리스토텔레스의 변증론, dialektische Dialoge, dialektike, 훌륭한 레토릭, poetic device,
파이드로스, doxa, epistēmē, 프로타고라스, 파르메니데스, 케팔로스, 퓌토도로스, 파이돈,
syndein, synechein, 글라우코스의 재주, to Agathon, 테아이테토스, 메네크세노스, aporia.

3. 플라톤철학의 이상국가 혹은 정체
Idea論, Politeia, 理性, 氣槪, 慾望, eikasia, 페리클레스 비판, 調和된 魂, 智慧, 勇氣, 節制,
지배자계급, 수호자계급, 생산자계급, pistis, 哲人統治, 最高善, 反民主主義者, ochlokratia,
Nomoi, exousia, 適度, 均衡, 詩歌敎育, 辨證術, 混合國家, 카르미데스, 에우티데모스,
noēsis, 民主政, dianoia, 統一性, 妻子共有, 財産共有, ὁμόνοια, 不道德한 알키비아데스.

4. 플라톤철학의 법률 혹은 통치
노모스, 神政國家, 敎育國家, 混合國家, 피시스, Nomoi, 안정, 소송, 실천철학자로서 플라톤,
eunomia, 관습, 법률, Rule of Law, 자유, 우애, 분별, elenchus, 야간회의, aretē, 人治, 法治,
原形의 本, 티마이오스, 데미우르고스, 神的 勞動, 악덕, tautotes, 지혜, 용기, taxis, 治者,
被治者, harmonia, Georg Jellinek, 탐욕, 모욕, 知性의 配分, 악덕, 입법, 절제, Philosophos.

5. 플라톤철학의 예술적 모방 혹은 미학적 추방
디오니소스적인 것, 데아이테토스, 죽음 너머, epopteia, 상상력, 행복주의, 詩人 플라톤,
필론, 안티오코스, 판단중지, eirene, 소요학파, 견유학파, 아르케실라오스, 카르네아데스,
소피스트, dianoia, 논박술, 파이데이아, peripeteia, 고르기아스, tropos, Sui generis, 필레보스, nomos, 살아서 죽어있는 자, rethoric, doxa, 쾌락, 고통, 두려움, 자신감, hē alē thēs doxa.

6. 서양철학은 플라톤철학의 다양한 각주다
파이드로스, 이데아, kallipolis, 좋음의 이데아, sophia, 상기 논증, 유사 논증, arete, 미신,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메논, Sokratikoi Logoi, 메넥세노스, 라케스, mimos, 티마이오스, opsis,
to metrion, 형이상학, 존재론, 데미우르고스, anamnesis, 드라마 작가 플라톤, probabil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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