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왕조’의 정치철학적 설계자 ‘鄭道傳’은 ‘상’나라 ‘걸왕’을 정벌하고서 ‘주’나라를 세운 ‘무왕’ 그리고 ‘기자의 홍범’과의 정치적 관계 등에 착안하여, ‘기자’와 ‘홍범구주’를 ‘조선왕조’의 정치적 정통성을 정립하는 방편으로서 활용한다. 수천 년의 역사적 間隙을 극복하고서 ‘기자의 홍범’이 현실정치의 표면으로 다시 浮上한 것이다. ‘정도전’은 ‘朝鮮經國典’에서 그 정당성을 선언한다.
‘정도전’은, ‘기자’가 ‘주’나라 ‘무왕’에게 ‘홍범구주’로써 도덕정치의 큰 법칙을 설명하였고, 나아가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의 법령을 지어 ‘朝鮮’에서 실시하였으므로, 이에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고 규정한다. 이러한 ‘정도전’의 선언은 ‘조선왕조’ 말기까지 유효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조선왕조’는 물론이며 현대사회에 이르러서도, 이렇게 단순하고 간소한 ‘아홉 가지 정치법칙’을 만족시키는 정치를 실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다. 그리고 ‘기자’가 ‘홍범’으로부터 敷衍하였다는 ‘八條之敎’ 혹은 ‘八條禁法’은 ‘箕子朝鮮’에서 시행한 ‘여덟 가지 금지법규’인데, 현재에는 殺人禁止, 傷害禁止, 偸盜禁止 등이 전해진다.
‘팔조지교’ 역시 ‘홍범구주’처럼 지극히 간소하며 단순한 것들이다. 그러면서도 현재에 이르도록 정치의 근본이 되는 것이지만, 그렇게 간소하며 단순함에도 그것들을 실현하기는 결코 쉽지 않으니, 근본을 이루는 일은 그만큼 至難한 작업임을 알 수 있다.
‘書經’의 經書的 의미는 책이름인 ‘書’에 담겨있는데, ‘서’는 ‘성인의 말씀[曰]’을 ‘붓[聿]’으로 적는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의 발언은 물론이며, ‘성인’의 말씀일지라도, 모든 것이 기록될만한 자격을 갖는 것은 아니다. ‘성인’의 발언일지라도 ‘天下’의 ‘다스림[治]’에 연관된 것이어야만 기록할만한 가치를 갖는 것이다. 그러한 내용을 기록한 책이 바로 ‘서경’이다.
그리고 그런 ‘서경’에서도, 정치철학적 핵심을 담고 있는 것이 제4권 ‘周書’의 제6편 ‘홍범’이다. ‘서경’은 모두 4卷(혹은 篇)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권은 ‘堯舜’의 시대를 기록한 ‘虞書’다. 제2권은 ‘夏’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夏書’다. 제3권은 ‘商’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商書’다. 제4권은 ‘周’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周書’다. ‘홍범’은 제4권 ‘주’나라의 역사에 포함되어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자면, ‘홍범’은 ‘상’나라의 遺臣 ‘箕子’와 ‘주’나라의 開祖 ‘武王’에게만 해당되는 개념이다. 물론 ‘기자’가 ‘홍범구주’를 정돈한 것은 ‘요순’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니, ‘서경’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이해함이 타당할 것이다.
‘서경’은 ‘漢代’ 이후에 ‘尙書’라고 불리기도 하는데, ‘尙’은 숭상한다는 의미보다는 ‘上’과 통하여 ‘上代의 書’라는 뜻을 갖는다. ‘송대’에는 다시 ‘書經’이라 불리게 된다. 그리고 ‘서경’의 주석서를 ‘書傳’이라고 한다. 때문에 현재에도 ‘書經’을 ‘書傳’ 혹은 ‘商書’라고 混用한다. 이렇게 ‘書經’은 모두 4篇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편 5話, 2편 4화, 3편 17화, 4편 32화로서, 총 4편 58화이다.
‘채침’은 ‘서경집전’에서, ‘서경’의 의미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二帝三王’의 정치는 ‘道’에 근본을 두었고, ‘二帝三王’의 ‘도’는 마음에 근본을 두었으므로, 그 마음을 알면 ‘도’와 ‘정치’를 진실로 말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묘한 ‘하나’로서 ‘中道’를 지킴은 ‘堯舜禹’가 서로 전수한 ‘心法’이고, ‘中’을 세우고 ‘極’을 세움은, ‘商’나라 ‘湯王’과 ‘周’나라 ‘武王’이 서로 전수한 ‘심법’이기 때문이다.
‘德’과 ‘仁’과 ‘敬’과 ‘誠’이 글자는 비록 다르나 이치는 하나이며, 모두 이 마음의 묘함을 밝힌 것이다. 하늘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으로부터 표출되는 바를 엄하게 하였고, 백성을 말함에 이르러서는, 마음이 말미암아 베풀어짐을 삼갔으니, ‘禮樂’과 ‘敎化’는 이 마음에서 나온 것이고, ‘典章’과 ‘文物’은 이 마음이 드러난 것이며, 집안이 가지런해지고 나라가 다스려져서 천하가 평안해짐은, 이 마음이 미루어 확대된 것이니, ‘마음의 덕’이야말로 성대하다는 것이다.
‘서경집전’은, ‘書經’이 ‘동아시아 문명권’의 政治哲學書로서 자리매김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텍스트이므로, 기술된 내용의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이를 참조할 때, ‘채침’은 ‘서경’의 해석에 있어 ‘人文主義’의 측면에 집중한다. ‘인문주의’란, ‘홍범’의 ‘天命主義’를 벗어나 ‘人間文明’의 실현을 지향함이다. 즉, ‘하늘의 명령’을 극복하고서 ‘인간의 문명’을 실현하려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당시 ‘南宋’의 ‘性理學’이 추구하는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후 ‘홍범’을 정치철학적 國是로 삼으며, ‘성리학’을 학문적 ‘道統’으로 삼는 ‘조선왕조’에서도, 이러한 분위기는 이어진다. 이러한 분위기가 그릇된 것은 아니며, ‘조선왕조’ 시절까지도 충분히 유효하다고 판단된다.
그런데 ‘홍범의 정치철학’이 현대사회에서 의미를 갖는 측면은, ‘天命’과 ‘人文’의 조화에 있음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다만 현대에 이르러, ‘인문주의’를 짐짓 ‘인간중심주의’와 연관시키려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서 ‘인문’은 ‘인간중심주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근대 이후, 인류는 철저히 인간중심주의적 성향을 선호하고 있다.
예컨대, ‘유럽의 르네상스’ 이후, ‘神中心主義’으로부터 벗어나 ‘人間中心主義’를 실현하여, 서구문명이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으며, 현대문명을 일군 것으로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크게 그릇되지 않다. 그러나 21세기에 이르러 環境破壞, 物質羨望, 生命輕視 등은, 인간중심주의적 편향에 의한 폐해의 심각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인간중심주의’에 의해 오히려 非人間化되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홍범의 정치철학’을 논함에 있어, ‘書經의 洪範’과 ‘箕子의 洪範’에 대한 차이를 明瞭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서경의 홍범’은 ‘經書로서의 서경’에 포함된 ‘홍범’이라는 篇名이다. 이는 歷史學的이고 書誌學的인 의미가 크다. 그런데 ‘기자의 홍범’은 지극히 政治學的인 개념으로서 작동한다. 특히 ‘조선왕조’에게 그 의미는 各別하다.
‘조선왕조’의 정치철학을 설계하고 정립한 ‘정도전’은 ‘조선경국전’에서, ‘箕子의 洪範’에 대하여 규정한다. ‘기자’는 ‘武王’에게 ‘홍범’으로써 ‘도덕정치’의 큰 법칙을 설명하였다. 나아가 ‘홍범’의 뜻을 부연하여 ‘8조’의 법령을 지어 나라 안에서 실시하였다.
이에, 정치와 교화가 성하게 행해지고 풍속이 지극히 아름다웠다. 그래서 ‘조선’이라는 이름이 천하의 후세에 이처럼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제야 우리는 ‘조선’이라는 아름다운 국호를 다시 그대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에, ‘箕子의 善政’ 또한 마땅히 강구해야 할 것이다.
이러하므로, ‘明’나라 ‘天子’의 덕이 ‘周’나라 ‘武王’에게 부끄러울 게 없는 것처럼, 우리 ‘전하(이성계)’의 덕 또한 어찌 ‘기자’에게 부끄러울 것이 없다는 것이다. 때문에 장차 ‘홍범’의 학문과 ‘8조’의 법령을 ‘조선왕조’에서 다시 시행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이렇게 ‘서경’이라는 原典으로부터 분리된 ‘기자의 홍범’은, 하나의 정치철학적 개념으로서 작동한다. 이러한 ‘홍범’은 역사적인 史實이나 실제적인 事實과도 큰 연관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조선경국전’의 선언은 일종의 정치적 선동이며, 그것이 목적하는 바는 권력이기 때문이다. 그런 것이 곧 ‘기자의 홍범’이다. 따라서 ‘서경의 홍범’과 ‘기자의 홍범’의 차이를 인식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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