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에 치여 일상이 힘겨울 때
관계 맺기가 두렵고 버거울 때
나를 위해 실천하는‘나를 지키는 법’
◎ 도서 소개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 대표작 ‘연습’ 시리즈,
한국어판 100만 부 돌파 기념 특별판 출간
관계 맺기가 두려울 때 〈나를 지키는 연습〉
일본과 한국에서 ‘생각 버리는 법’에 대한 강연과 책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얻은 코이케 류노스케의 ≪화내지 않는 연습≫. 불행한 감정과 고통스러운 우울증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인간의 고통을 찾아 떠난 여행 끝에서 발견한 스스로를 속이는 괴로움. 이 괴로움은 우리를 둘러싼 부정적인 생각이나 말, 행동의 패턴에서 비롯된다. 나쁜 감정으로부터 나를 지키고, 즐겁고 행복한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괴로움을 버리고 나를 지키는 연습’이 필요하다. 일본의 혜민 스님으로 알려진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과 함께 배우는 나를 지키는 삶의 기술. 2010년 한국어판 초판 발매 이후 100만 명의 독자들이 선택한 초대형 베스트셀러를 8년 만에 특별판으로 만난다.
나와 당신 사이에 필요한 적당한 거리
관계의 사슬에서 벗어나면 마음이 자유로워진다
인간을 괴롭히는 생각의 중심에는 관계에 대한 피로가 있다. 가족과의 관계, 연인과의 관계, 직장 동료와의 관계, 심지어 내 안에서 일어나는 나와의 관계까지 누구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코이케 류노스케 스님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피로를 덜 수 있는 방법으로 타인 혹은 부정적인 자아상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라고 제안한다.
가족과도 마찬가지다. 부모는 흔히 자녀를 소유물로 여기며 사소한 부분까지 간섭하기 쉽다. 자녀가 스스로 독립할 수 있을 만큼 성장해서도 부모의 태도는 변하지 않는다. 취업부터 결혼에 이르기까지 부모의 간섭은 끝이 없다. 가족은 누구나 가장 먼저 맺는 관계의 시작이다. 따라서 가장 먼저 가족 간에 소유욕을 버리고 진정한 관계를 형성해야 사회에서도 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움직이지 않고, 집착하지 않는 것이야말로 무소유, 즉 ‘버리기’의 시작이다.
3,000년 부처가 남긴 삶의 지혜도
다름 아닌 ‘나를 지키는 방법’
스님이 제안하는 ‘나를 지키는’ 방법은 복잡하거나 난해하지 않다. 그 면면을 들여다보면 일상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대부분이다. 1부에서는 다른 사람과의 교제를 바로 잡기 위한 방법을 알려준다. 2부에서는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며 ‘극기’할 때 참 행복과 만족이 따라옴을 이야기한다. 3부에서는 비로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 객관적으로 인식함으로써 괴로운 생각을 버리는 연습에서 한 걸음 나아가도록 한다.
≪나를 지키는 연습≫의 내용은 개인의 의지를 스스로 조절하고, 생각에 대한 생각을 전환하자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사람의 생각이란 늘 끝도 없이 이어지게 마련이다. 그 미련한 수레바퀴를 스스로 끊어내지 못하면 오늘은 어제의 후회로, 내일은 또 오늘의 후회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런 고민은 인간의 탄생 이래로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이제 이 책 속에서 만난 잠언들로 장황한 생각을 늘어놓는 머릿속을 하나하나 정리해나가면 어떨까.
◎ 본문 중에서
특히 부처처럼 유명한 사람은 불특정 다수에게 널리 알려져 있어, 일부 사람들에게는 칭송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거센 비판과 중상모략을 받아야 했다. 이는 불전에도 잘 기록되어 있다. 자신의 생각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면 알려질수록, 반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반드시 나타나게 된다.
사람에 대한 호불호는 천차만별이다. 수다쟁이를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에 싫어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호불호의 감정은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좋은 것’이 다른 누군가에는 좋은 것이 아닐 수 있다.
―p.22【비난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받기는 힘들다. 왜냐하면 인간이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는 일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조건 없는 사랑은 갈구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는 한탄하지 말고 이를 충분히 이해하며 경계하라고 했다. 이해타산적이지 않은 진정한 우정이나 애정은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다른 사람에게 잘해주지 않는다. 이를 이해한 다음 스스로 만족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마음의 평온을 찾는 길이다.
―p.33~34【어른이 된다는 것】
지금부터라도 가까운 곳에 있는 가족을 연습 상대로 ‘소유욕’을 버리고, 상대를 자기 마음대로 조종하지 않으려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게 하면 비로소 앞으로 만날 사람과 친해지고 파트너가 되어도,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행복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무소유’의 다른 말은 ‘버리기’라고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을 자신의 소유물처럼 움직이려 들지 말고, 돈이든 물건이든 사람에게든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p.36【마음을 채우는 감각의 능동태】
이렇게 분노가 분노를 낳는 동안에, 성격은 점점 더 비뚤어지고 감정은 꼬여만 간다.
불교에서 권하는 대처 방법은, 억압과 발산이라는 길이 아닌 제3의 길, 즉 ‘응시’이다. 이때 우리가 응시하는 것은 자신의 감정이다.
만일 화가 치민다고 생각되면, 이 ‘화가 치민다’를 따옴표로 묶어버린다. 그다음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 나는 “화가 치민다”고 생각한다…’라고 되뇌며 마음속으로 외운다. 그러다 보면 지금 화가 치민다는 것은 단순한 생각일 뿐이고, 자신의 마음이 만들어내는 것일 뿐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다.
―p.43【가족이니까, 가족이어서】
‘진정한 친구’란 어떤 사람을 말할까? 부처는 네 종류의 ‘친구인 척하는 사람’을 예로 들어 ‘그런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므로 주의하라’고 말했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다가와서 일방적으로 원하기만 하는 사람, 말만 앞세우는 사람, 상대방이 들으면 기분 좋은 말만 하는 사람, 재산을 축내는 사람, 이렇게 네 종류의 사람이다.
앞의 네 종류의 사람은 경전 세 번째의 ‘눈앞에서는 항상 당신을 칭찬한다’에 포함되는 네 가지의 유형을 의역한 것이다. 이런 종류의 사람을 멀리해야 하는 이유는, 거꾸로 생각하면 ‘당신의 문제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이야말로 곁에 두어야 할 사람’이라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p.62【우리는 진정한 친구일까?】
원래 논리 자체는 간단명료한 것이며 자의식이나 감정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에, 듣는 사람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개운하게 하는 효과가 있다. 그래서 마음의 의지가 명확하고 논리적인 사람은 말을 간결하게 하고, 다른 사람을 논리로 설득하려는 불필요한 생각을 하지 않으며, 마음의 평정심을 유지한다. 이런 간결함은 사물의 인과관계, 즉 원인과 결과를 넓은 관점에서 조망한 다음 깔끔하게 정리하는 힘에 의해 뒷받침된다.
―p.73【좋은 사람을 제대로 알아보려면】
우리는 옆집에 사는 사람이 내는 소리가 시끄러워서, ‘거 참 시끄럽네’라며 불평한다. 부처는 이런 상태를 악마의 ‘군 대’가 공격해왔다고 비유한다.
군대가 갑자기 쳐들어와서 우리의 마음을 공격하는 것이 다. 사실 공격해온 군대는 ‘소음’이 아니다. 소음을 싫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마음은 괴롭지 않다. 마음이 공격당하지도 않는다. 소음 자체는 ‘좋고 싫음’이 없다. 하지만 머릿속으로 ‘소음=나쁘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괴로워지고, 그 순간 악 마의 공격이 시작된다. 즉 악마란 ‘소음’이 아니라 소음을 계 기로 마음에 생겨난 ‘불만’이다.
―p.87【악마의 군대는 어디서 오는가】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은 다른 사람에게 강요하지 않는다’는 말은 어른과 아이에게만 국한되지는 않는다. 연인이나 친구 사이, 상사와 부하 사이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될 수 있다.
가령 화가 난 사람에게 짜증나는 말투로 ‘넌 왜 항상 화를 내는 거니? 좀 조용히 할 수 없어’라고 말하면 설득력이 있겠는가.
화를 내면 안 된다고 말하는 본인이 이미 짜증을 내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듣는 사람은 ‘내가 화를 내서 너한테 손해가 되니까 그러는 거야’라며 오해하게 된다.
―p.102【가슴에 손을 얹고, 나를 돌아본 적이 있는가】
당신은 언제 거짓을 말하고 싶은가? 아마도 자신에게 이 익이 되거나 남에게 그럴싸해 보이거나, 결점을 감추고 싶을 때 거짓을 말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부처는 “강한 마음의 소유자는 일부러 거짓을 입 밖에 내지 않는다”고 했다.
그런데 거짓은 왜 나쁠까? 거짓을 말하면 양심의 가책이 느껴지고, 거짓이 들통나지 않도록 논리의 아귀를 맞춰야 한다. 모순된 말을 하게 되면 거짓이 들통나 망신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p.115【선의로도 부담이 되는 거짓말】
이번 장에서는 ‘업’에 대해 다루려고 한다. 불교에서 말하는 업이란 ‘마음에 축적되어 다음에 생길 감정을 낳는 에너지’를 말한다. 업은 과거부터 끊임없이 원인과 결과가 연쇄적으로 엮여서 새로운 감정을 낳는다.
쉬운 예로 도둑질을 하면 경찰에 잡히는 것도 원인과 결과지만, 업이란 이런 대략적인 것에 국한하지 않는다. 뭔가를 생각하거나 말하거나 행동하면 어떤 인상이 마음에 새겨진다. 이 에너지의 여파는 다음의 감정을 낳고, 그 결과로서 좋은 감정 혹은 나쁜 감정이 당신에게 초래된다는 것이다.
―p.124【작은 불씨가 나를 집어삼키지 않도록】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 때문에, 상대방을 알고 있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서로가 나누는 말의 질이 너무 가벼운 나머지 외로움은 더 커진다.
처음부터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것을 전제로 하지 않는다면 어떨까. 처음의 충동적인 외로움을 마음에 두고 고독을 참아내는 동안 그 외로움도 끝나게 될 것이다. 외로움에 대한 내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러나 곧바로 다른 사람과의 ‘연결’만을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고독이나 외로움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서로가 연결되어 있다는 착각은 고독에 대한 내성을 잃게 만든다. 그래서 외로워질 때마다 곧바로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며 ‘연결됐다’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렇게 다른 사람에 대한 요구나 기대는 점점 커져가는데 충족되지 않을 때 초초하고 불안해한다.
―p.133【다만 한순간 연결되는 우리 각자의 우주들】
세상일은 흘러가는 방향대로 흘러간다. 정해진 대로 돌아간다. 어떤 일이든 일어날 만해서 일어난다. 이런 사실을 수용하고 불안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는 것이 마음이 동요되지 않는 과정이며, 마음이 평온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마음이 평온해지는 과정이란 자신과 타인의 감정에는 자유가 없고 노예와 같다는 현실을 깨닫고 이런 끔찍한 현실을 자각해나가는 여정이다. 깨어 있지 못한 채 ‘나는 자유다’라고 꿈꾸는 로봇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자신에게 ‘자유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씩 깨달아가면 결과적으로 자신의 마음에 가해지는 부담을 줄일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무아’의 에센스다.
―p.155【아, 꿈꾸는 컴퓨터였구나】
그러나 ‘나는 할 수 있다’, ‘괜찮아’, ‘하자’ 등은 결코 현실이 아니다. 현실에 없는 허구를 만드는 것이 ‘생각’의 기능이다. 이는 현실에서 마음을 유리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하자’라고 외친다고 해서 집중할 수 있느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마음에 ‘하자’라는 강박관념만 생겨 몸과 마음이 쉽게 지치고 힘들어질 뿐 잘되지 않는다. ‘하자’는 말을 계속 반복함으로써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게 하는 점에서는 집중이 가능할지 모르겠지만, 지금 하고 있는 행동 그 자체를 인식하기보다 ‘하자’라는 추상적인 개념에 사로잡히게 되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현실에 없는 허상에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 자신의 뇌 안에 갇히게 된다.
―p. 180【내일의 답을 품고 있는 오늘】
잘 생각해보면 사실 ‘자신감을 가진다’는 것은 상당히 위험한 일이다. ‘이런 것을 할 수 있으니까 나는 멋지다’, ‘누군가가 내 의견에 찬성해줬으니까 나는 훌륭하다. 그래서 나는 행복하다’, ‘만일 저것도 할 수 있다면 나는 얼마나 멋질까’ 등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자신에게 ‘조건을 붙이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자신감이 생기면 일시적으로 마음이 편해질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과연 진정한 평온일까? 답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잘하면 나를 인정해준다’는 조건을 붙여 ‘못하면 인정받지 못한다’고 자신을 언제나 협박하기 때문이다.
―p. 220【자신감은 약해도 평정심은 강한 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