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데르센상 수상 작가 제임스 크뤼스가 들려주는 세상 이야기.
이야기의 위대한 예술가가 함께 생각하기를 권하는 소중한 우화!
새들의 왕 독수리와 맞닥뜨린 작은 비둘기,
절체절명의 위기를 벗어나고자 비둘기가 시작하는 여덟 편의 이야기를 통해
경험 많은 어른이 자라나는 어린이에게 일러 주고 싶은 세상 이치와 인생 교훈과
소중한 가치를 진지하게, 하지만 재미나게 들려준다.
■ 내용
독수리에게 잡힌 비둘기가 죽음을 피할 수 있을까?
비둘기는 시간을 벌려고 추격자에게 잇달아 이야기를 들려준다.
화가에게 감사 편지를 쓴 거미가 무엇을 대가로 받는지,
굴뚝새를 문 모기가 어떻게 코끼리로 바뀌는지,
또…….
비둘기 한 마리가 갑작스러운 폭풍우에 산속으로 휩쓸려 간다. 어려움은 홀로 오지 않는 법, 폭풍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커다란 독수리가 비둘기를 덮쳐 온다. 비둘기는 바들바들 떨며 바위틈 깊이 물러나다가 돌더미 뒷벽에 작은 구멍이 나 있는 걸 알아챈다. 어쩌면 살길이 열릴지 않을까!
실낱같은 희망으로 조심조심, 하지만 필사적으로 구멍을 넓히면서 비둘기는 이야기를 시작한다. 목숨을 구하기 위해 1001일 동안 밤이면 밤마다 이야기를 했다는 <아라비안 나이트>의 셰에라자드처럼.
처음은 화가에게 감사 편지를 쓰는 거미들 이야기다. 일 년에 딱 한 번 청소를 하는 화가가 자기들을 생각해서 집을 지저분하게 두는 거라고 굳게 믿은 거미들은 아첨을 늘어놓으며 감사 편지를 쓰는데…….
이어서 비둘기는 하찮은 백성들이 언젠가는 들고일어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봤냐고 당돌하게 묻더니, 늘 때리고 욕설을 퍼붓는 주인에 맞서 일손을 놔 버린 당나귀 얘기에, 큰 새들은 독수리가 작은 새들은 굴뚝새가 다스리던 때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능청스럽게 병 속에 갇힌 독수리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독수리는 배가 고프면서도 한편으로는 비둘기처럼 작은 새가 이처럼 대담하고 용감하게 나오는 것이 감탄스럽기도 하다.
다시금 비둘기는 박물관 전시실의 네 이웃, 칼과 화승총과 도자기 시계와 커피 빻는 기계 이야기와 헛똑똑이 햄스터와 숲 속의 자명종 소동을 들려주고, 마지막으로 십칠 년 동안이나 꼼짝 않고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인내심이 바닥난 독수리가 이젠 정말 비둘기를 잡아먹으려는 그 순간, 비둘기는 뒤쪽에 뚫은 구멍 속으로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다.
정말 비둘기의 말처럼 때로는 영리하고 재치 있는 게 크고 힘 센 것보다 나을 때도 있다. 언제든 당장 잡아먹을 수 있는 비둘기를 앞에 둔 독수리는 호기롭게 여유를 보이지만, 비둘기는 독수리의 뽐내기 좋아하는 허영심을 파고들어 결국은 뜻한 바를 이룬다. 부탁하고 애걸하지 않고 오로지 제 힘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독수리가 비둘기를 불쌍하게 여길 리는 없으니, 생명의 본질에 근거한 정확한 판단이다. 힘 센 강자 앞에서 빌고 사정하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는 게 쉬운 일일까?
원숙기에 이른 작가가 세상을 보는 시각은 참으로 넓고도 깊다. 그러면서도 편향되지 않게 근본적인 힘의 관계를 성찰한다. 작가는 오랜 옛날 동물들의 우화라고 말하지만 그 안에 담긴 지혜는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간 이곳에 더 잘 들어맞는 것 같다.
서로의 처지와 이해가 다른데, 자기 위주로 해석하는 위험한 행동과(거미가 고마워한다고 해서 사람한테 자랑거리가 되는 것은 아니지), 작고 약한 이들이 크고 힘센 이에 맞서는 방법과(주인에게 저항한 당나귀들), 주관이 현실을 왜곡하는 과정(굴뚝새와 독수리 또는 모기와 코끼리 이야기) 들이 그렇다. 만약 자기중심의 좁은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잘못 판단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럴 때는 병을 깨뜨린 참새처럼 과감하게 논리의 틀을 깨야 하지 않을까?(병 속에 갇힌 독수리 이야기) 결국 병을 깨뜨려서 나오는 독수리의 모습은 이야기 전개에 맞는 결말이면서 동시에 여러 가지 상징적 의미를 추론하게 하는, 이야기의 재미를 담뿍 담은 해결이다. 사람을 살아가게 하는 일상의 작은 행복과 그 행복을 가능하게 해 주는 평화에 대해 생각해 보고(전쟁이랑 평화는 달라요), 우물 안 개구리로 눈앞의 이익에 집착하다가 중요한 일을 놓치고(햄스터와 계단 이야기), 제 틀에만 갇혀서 사물의 본모습을 보지 못하는 오류(숲 속 자명종 이야기)까지 하나같이 고개가 끄덕여진다. 마지막 이야기, 세상을 돌아다니고 싶은 아들을 위해 일 년을 하루같이 기다리는 어머니의 사랑을 언제까지나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싶다.
함께 생각하기를 권하는 이 소중한 가치를 화가 류재수는 더욱 특별하게 드러내 준다.
우리 그림책 역사를 개척한 선구자로 불리며 웅장한 그림 풍으로 많이 알려진 류재수는 이 책에서는 발랄하면서도 아기자기한 묘사로 자신의 또 다른 역량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추어 아낌없이 펼쳐 보인다. 거미, 새매, 부엉이, 고슴도치, 딱정벌레…… 붓 자국이 생생한 숙련된 터치는 리얼함을 바탕으로 통통 튀는 경쾌함을 드러내는데, 그 그림은 소박하면서도 화려하고 따뜻하면서도 힘이 있고 선이 굵으면서도 동시에 꼼꼼한 아름다움으로 마음을 끌어당긴다. 한마디로 정감 있는 그림을 자꾸만 펼쳐보고 싶어진다. 이는 그림 작가 역시 이야기에 푹 빠져들어 즐겁게 작업을 한 결과이다.
크뤼스는 우리가 아이들을 교육하는 대로 내일의 세상 또한 그렇게 이루어져 갈 것이라고 믿으며 어린이들이 사고하는 동시대인으로 자라나기를 희망했다. 결코 가볍지 않은 작품의 무게를 비록 어린이가 아직은 다 이해하지 못한다 해도, 이 이야기를 읽고 또 읽는 것만으로도 어느덧 작가의 희망은 채워지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