휘트브레드상, 카네기상, 가디언 픽션 상, 스마티즈상을 받은 필립 풀먼의 첫 작품!
유럽 민담에 담긴 여러 주제를 화려하게 버무린,
흥미진진하게 무섭고 때로는 우스꽝스러운 경쾌한 고딕 스릴러.
긴장감과 박진감, 딱 적당할 만큼의 공포가
초자연적 요소, 다양한 화자가 등장하는 연극성, 박력 있는 전개로
숨 가쁘게 펼쳐지며 독자를 빠져 들게 한다.
★내용
카를슈타인 마을에 있는 어느 누구도 만성절 전날 밤에는 집을 나서지 않는다.
이 날은 바로 사냥꾼의 악령 자미엘이 사냥감을 찾으러 오는 날이니까.
그러나 카를슈타인 백작은 바로 그날 두 조카를 사냥 별장에 보내려 한다.
살을 에는 끔찍한 추위와 소름 끼치는 공포 속에 점점 심장을 옥죄어 오는
무서운 계략! 아이들의 유일한 희망은 하녀 힐디인데…….
절대 빈손으로는 돌아가지 않는 사냥꾼의 악령은 과연 누구를 선택할까?
■ 카를슈타인 마을의 여관 ‘즐거운 사냥꾼’ 집 힐디는 겨울밤, 파이프 담배 연기와 가득 찬 술잔 앞에서 흘러나오는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당찬 소녀이다. 지금 즐거운 사냥꾼은 산림 감시대장이 은퇴할 때에만 열리는, 몇 년에 한 번 있을까 말까한 사격 대회 때문에 멀리서 찾아온 장총을 든 사나이들로 가득하다. 온갖 사기꾼, 협잡꾼까지 몰려들고, 마을은 온통 들뜬 분위기다.
힐디는 카를슈타인 성에서 하녀로 일을 하는데, 성에는 부모님이 모두 난파선에서 돌아가신 뒤 유일한 친척인 백작과 함께 살고 있는 루시와 샬럿 아가씨가 있다. 만성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백작이 루시와 샬럿을 사냥꾼의 악령 자미엘에게 제물로 바치려 하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된 힐디는 온몸이 얼어붙을 듯한 공포 속에서도 어떻게든 아가씨들을 도망시키려고 한다. 우선 산악 안내원의 오두막에 아가씨들을 숨기고, 마을로 내려가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엄마는 당장 아가씨들을 성으로 데려다 놓으라고 화를 낸다. 밀렵 죄로 체포된 힐디의 오빠 페터가 사격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감옥에서 도망쳐 지금 즐거운 사냥꾼에 몸을 숨기고 있는 것이다.
음식도 없이 산속에 남겨진 아가씨들, 미친 듯 날뛰며 그들을 찾는 백작……. 어떤 방법도 찾지 못해 절망한 힐디가 다시 성으로 돌아오니, 아가씨들의 예전 선생님 데븐포트 양이 아가씨들을 만나러 와 있다. 힐디는 데븐포트 양과 어떻게든 이야기를 하려 하지만 마치 어떤 사악한 힘이 훼방이라도 놓는 것처럼 끝내 이야기를 나누지 못하고, 게다가 샬럿은 다시 잡혀오고 만다. 힐디는 간신히 수프 그릇 밑바닥에 열쇠를 넣어 전달하지만, 샬럿의 탈출 여부는 확인도 못한 채 그만 성에서 쫓겨나고 만다.
한편 루시는 샬럿이 잡혀가고 난 뒤, 즐거운 사냥꾼으로 내려왔다가 떠돌이 배우 카다베레치 박사를 만나 박사의 공연에서 점을 쳐 주는 이집트 공주로 변신한다. 해골의 마술 환등과 수정 구슬, 영혼의 종소리, 카드놀이와 마법 상자의 환상 세계 속에서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가고…….
드디어 데븐포트 선생님과 하녀 엘리자, 막스, 힐디 등이 모두 만나 그간의 자초지종을 서로 얘기하고, 여러 번 길이 엇갈린 끝에 겨우 루시와 샬럿을 다시 만난다. 재회의 뜨거운 기쁨을 나누기도 전에 데븐포트 선생님은 루시와 샬럿에게는 다시 성으로 돌아가라고 하고, 힐디에게는 오빠와 함께 사냥 별장에 가서 아가씨들을 구하라고 한다. 그러나 힐디와 오빠의 계획엔 차질이 생기는데…….
드디어 만성절 전날 밤, 시간은 자정을 향해 가고, 사냥 별장에 갇힌 루시와 샬럿 앞에 오싹하게 피를 얼어붙게 만드는 소리가 들려온다. 사냥 뿔피리가 내는 단 한 음의 분명한 소리…….
■ 《카를슈타인 백작》은 ‘황금 나침반’의 작가 필립 풀먼이 쓴 첫 번째 어린이 책으로, 풀먼이 중학교 선생님으로 일할 때 직접 각본을 써서 학생들과 함께 무대에 올린 연극을 바탕으로 한 작품이다. 나이도 성격도 신분도 가지가지인 수많은 등장인물에 초자연적인 존재인 사냥꾼의 악령까지 더해 숨 가쁘게 돌아가는 극적인 이야기로 풀먼의 천재성을 한껏 드러낸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막이 열리면 연극의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것처럼, 주인공들은 자신의 순서에 따라 차례대로 등장해 말을 한다. 힐디는 야무지고 꼼꼼하게, 루시와 샬럿은 극적인 사건을 갈망하면서도 호기심과 불안감을 감추지 못한 채, 데븐포트 선생님은 진취적이고 냉철하게, 막스는 순박하면서도 약간은 덜렁대면서, 이렇게 주인공들은 각자 자신의 성격대로 서로 다른 말투로 이야기를 이어나간다.(그 분위기를 살리고자 원문 역시 주인공에 따라 각기 다른 서체를 사용하고 있다.)
자기가 목격하고 경험한 사실밖에 알지 못하는 주인공들의 조각난 이야기를 들으면서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짜 맞추는 것은 온전히 독자들의 몫이다. 주인공들과 함께 애태우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한 명 한 명의 숨 가쁜 달음박질과 19세기 스위스 알프스 산맥 한 마을의 혹독한 자연 환경, 바위투성이 절벽과 깎아지른 낭떠러지와 빙판의 얼음 덩어리들이 바로 눈앞에서 펼쳐지는 것처럼 떠오른다.
더불어 꼬리를 무는 사건, 얽히고설킨 관계, 미스터리, 이 모든 이야기가 톱니바퀴처럼 정교하게 맞물린 완벽한 구조, 수많은 복선이 아귀가 딱딱 맞아 떨어지는 쾌감을 선사한다. 특히 초자연적인 힘, 유령, 출생의 비밀 같은 요소들이 음산한 카를슈타인 성과 신비한 기운을 지닌 숲과 맞물리면서 비밀스럽고도 알 수 없는 힘으로 독자들을 빨아들인다.
■ 이 모든 사건은 만성절 전날 밤, 그러니까 할로윈데이에 나타나는 사냥꾼의 악령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11월 1일 만성절은 크리스트 교 교회에서 모든 성인을 기념하는 날이며, 그 전날인 10월 31일 할로윈데이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되살아난다고 믿는 날이다. 요즈음 할로윈데이는 어린이들이 악의 없는 장난을 치는 축제일의 성격을 띠고 있지만, 원래는 고대 켈트인에게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유령이나 마녀 같은 모든 종류의 귀신이 배회하는 불길한 날로 사람들은 바깥출입을 삼갔던 유럽의 오래된 전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날은 결혼, 행운, 건강, 죽음 같은 것은 것을 알아보기 위해 점을 치거나 그 목적을 위해 악마에게 도움을 청하는 날이기도 하다.
여기에 풀먼은 자기가 쓰고 싶었던 여러 가지 요소들을 함께 버무려 넣었다. 사냥꾼의 악령은 피에 굶주린 사냥개들을 앞세우고 자신의 영토에 나타나는 모든 것을 사냥하여 취한다는, 유럽의 민담을 바탕으로 했다. 사격 대회와 은 총알 이야기도 유럽 여러 곳에 전해 오는 민담에 나오는 내용이며, 작곡가 베버의 오페라, ‘마탄의 사수’라는 제목으로 잘 알려진 ‘자유의 사수’에서도 나온다. 악마와 계약을 맺은 자들이 자신 대신 악마에게 바칠 새로운 영혼을 찾는 주제는 독일 낭만주의의 중요한 소설인 괴테의 ‘파우스트’에도 등장한다.
유럽 민담에 담긴 여러 내용, 초자연적인 존재, 권선징악, 악마와의 계약과 영혼의 구제 같은 여러 주제를 버무려서 한 권의 재미있는 작품으로 탄생시킨, 작품의 역사적 문화적 배경을 알고 보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 특히 19세기 초를 배경으로 했으면서도 현대적이고 주체적인 여성 주인공들을 등장시킨 점이 눈에 띈다. 세계 방방곡곡을 홀로 여행하고, 논리적 사고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데븐포트 선생님. 겨우 열네 살 소녀이지만 이 모든 사건의 중심에서 루시와 샬럿을 구해내는 영리하고도 용감한 힐디는 지금 우리 시대에 태어난다 해도 분명 똑똑하고 현명한 삶을 살 것이다. 긴긴 겨울밤, 책 읽은 즐거움을 듬뿍 안겨 주는, 놓치기 아쉬운 빛나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