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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치의 미적 기만성이나 비도덕성에서 이득을 보는 것은, 어차피 지배 계급이다. 이는, 자유민주주의나 인민민주주의나 매한가지다. 근대 산업사회의 대중문화를 문화산업으로 규정한, ‘아도르노’와 같은 좌파사상가들이 보기에, 문화산업으로서의 예술은, 시장의 필요에 의해 통제되고 정식화되며, 대중들은 그러한 상업적인 예술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 키치는 전체주의 사회에 걸맞는 예술 형식이다. 1937년, ‘히틀러’ 정권이 뮌헨에서 현대예술을 퇴폐예술로, 자신들의 이데올로기를 대변하는 예술을, 위대한 독일 예술로 명명해서 나란히 전시하고, 전시 후 현대예술 전시회에 걸렸던 작품들을 불태운 일화는, 1930년대 엘리트 비평가들이 보기에, 키치가 어떻게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직접적으로 연관을 맺는가를 입증한 역사적 사실이다.
키치는 사전에 모든 대답이 미리 주어져 있고, 따라서 어떤 질문도 배제하게 만드는 ‘멸균된 세계관’, 이른바 전체주의적 세계관을 대변한다. 현재적으로 ‘멸균된 세계관’이 가장 잘 작동하는 유일한 체제는, 북한의 주체사상을 신봉하는 ‘인민민주주의’라는 類似예술작품이다.
건강한 자유민주주의 사회라면, 다양한 집단적 관심들이 경쟁하고, 서로 협상하면서 합의를 도출해 내려 노력할 것이지만, 키치의 세계에서는 용납될 수 없다. 따라서 개인주의, 의심, 아이러니 같이, 현대예술이나 아방가르드 예술에 중요한 용어들은, 키치를 침해하는 것으로서, 이들은 키치의 생존을 위해 모두 삶으로부터 추방되어야 할 것들이었다.
그런 점에서 ‘쿤데라’는, “딱 하나의 정치적 움직임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때는, 언제이건 우리는, 전체주의적 키치의 영역 안에서 살게 된다”고 지적한다. 키치로서의 대중예술 혹은 문화산업은, 지배집단에 의해 이루어지는 대중의 여가조작과 연관되어 있는 탓이다.
예술을 감상할 만한 시간적 여유도 금전적 능력도 갖고 있지 못한 서민노동자 대중은, 자신들의 여가시간을 때우기 위해, 정형화되어 있고, 소화되기 쉬우며, 이미 다 조리되어 있는 문화경험을 요구하는 것이다. 산업사회는 인간의 物化를 심화시키면서도, 그 물화를 오히려 충족, 행복, 성취로 생각하게 함으로써, 물화 상태로부터 탈출을 좌절시키는, 여러 장치, 기술, 이데올로기를 갖고 있다.
소비사회에서 욕망은, 사회적으로 생산되고 사회적으로 모방된다. 욕망은 결핍감에서 발생하는 것이지만, 그 결핍감 자체를 사회적으로 대량생산하고, 그 결핍감을 메우려는 것이 후기산업사회인 것이다. 그런데 욕망이 삭제되어버린 ‘멸균된 세계’에서는, 오히려 욕망이 키치 그 자체로서 작동한다.
비록 ‘칼리니스쿠’와 같은 이론가는, ‘아도르노’와 같은 좌파 이론가들이, 키치의 등장을 노동자 대중의 여가와 연관짓는 것은, 너무 협소한 이해 방식이라 지적하면서, 부르주아지와 중산계급, 나아가 부유한 상층계급의 사람들에게도, 키치에 대한 애호가 존재함을 역설한다.
키치는 상층계급이나 하층계급을 모두 만족시키는, 근대 사회 전체의 생활양식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수십여 년의 실험이 끝난 후, 키치의 세계는 붕괴되었고, 붕괴를 피한 일부 세계는 부득이한 변화를 도모해야만 한다. 그러한 변화는 또 다른 키치의 顚倒가 될 것이다.
20세기 초 파시즘의 시대를 살았던 ‘아도르노’가, 키치를 특수한 계급의 문화로 봄으로써, 저항의 가능성을 모색하려 했다면, 20세기 후반 키치가 자본주의 문화 전체를 지칭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 시대에 ‘칼리니스쿠’는, 키치에 대한 저항이나 비판의 불가능성을 짐짓 시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오늘날 키치로부터의 자유를 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밖’을 이야기하는 것의 어려움만큼이나 불가능한 것일 수도 있다. 키치는 현대예술의 傳寫로서의 낭만주의와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어쨌거나 불행, 반복, 권태로서의 현실로부터 도피하려는 키치의 낭만주의적 경향은, 키치의 주된 매력이다.
‘브로흐’는, 낭만주의 이전에, 美的 理想은 절대적이고 도달할 수 없는 어떤 초월적인 것이었지만, 낭만주의 시기에 미적 이상은, 초월성의 흔적을 상실하고, 작품 자체에 내재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고 지적한다. 우리는, 바로 이러한 原理的 顚倒에 의해, 현대의 ‘인민민주주의’라는 키치가 잉태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키치가 노스탤지어에 경도되어 있다는 점 역시, 낭만주의와의 친화성을 보여 준다. 즉, 키치는 역사적 현실이나, 동시대적 현상을 몇몇 상투어로 대치하면서, 낭만주의적 세계관과 연관을 맺고 있는 정서적 욕구들에 근거하여 번성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키치는, 낭만주의의 진부한 형태라 할 수 있으며, 키치적 정서를 낭만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설득력이 있다. 키치의 역사적 전개 과정, 부르주아 대중사회에서 키치의 미적, 도덕적, 이데올로기적 성격에 대한 규명은, 키치의 他者로서의 예술의 순수성, 도덕성을 옹호하는 데 적극 이용되었다.
그러나 아방가르드 예술을 절대화하고 신화화하는 과정에 대한 반발이나 반작용이 등장하면서, 현대예술 역시 지배 이데올로기로 변질되어 간 예술이었다는 지적이 강력한 설득력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藝術史的 변천을, 동아시아 政治史에서는 중국 공산당의 문화혁명에 비견할 수 있다.
문화혁명은, 키치가 原本을 제거해버리는 simulacre的 격변이었기 때문이다. 이후 모더니즘 이론의 지나친 득세가, 모더니즘의 제도화, 보수주의화를 초래하게 되면서, 그러한 모더니즘에 정면으로 도전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예술이 등장하게 되는 현상 역시 그러하다.
모더니즘의 순수성의 이데올로기적 성격은, 20세기 후반, 다양한 진영의 다양한 관점(탈식민주의, 포스트모더니즘, 포스트페미니즘 등등의)에 의해 비판되었는데, 키치와 연관해서 살펴볼 것은, 우선 모더니즘의 시대에, 현대예술 또는 아방가르드와 키치는, 상호 배타적인 예술이 아니라, 끊임없이 서로를 참조하면서 작용한 예술이었다는 사실이다.
‘랭보’에서 시작해서 ‘다다’와 超現實主義를 거치면서, 혁명적 ‘아방가르드’들은, 자신들의 전복적인 목표를 위해, 키치에서 직접 차용한 다양한 요소와 기술을 사용했다. 키치는, 아방가르드가 일종의 유행이 된,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는, 가장 섬세한 시인과 지식인 집단 내에서, ‘부정적’ 명성을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逆으로 키치는, 성공한 아방가르드를 모방하고 차용함으로써 이득을 취해 왔다. 키치 예술가는, 아방가르드의 비관례성(새로움)이, 성공적인 것으로 드러나 널리 수용되거나, 심지어 상투형이 될 정도에 이르렀을 때에만, 아방가르드를 모방하고 복제했다. 이런 점에서 키치는, 지속적으로 資本的 아방가르드 안에서 재생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유민주주의적 아방가르드가 인민민주주의적 키치를 사용하고, 반대로 인민민주주의적 키치가 자유민주주의적 아방가르드의 장치를 이용했음은, 키치와 아방가르드를 완전히 분리될 수 있는 전통으로 보는 엘리트들과 달리, 명료한 이분법을 통해 설명할 수 없음을 증명하는 하나의 사례이기 때문이다.
또한 1960년대 등장한 ‘팝 아트’로 인해, 이제 20세기 후반의 예술은, 모더니즘 예술과의 급진적인 단절 속에서 이해되게 된다. 미국의 ‘저급한’ 대중문화의 아이콘들을, 고급문화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팝 아트’(광고전단, 수프 깡통, 영화 스타와 같은 대량 소비문화의 요소들을 이미지화) 이래, 키치의 부정적인 함의는 재고의 대상이 된다.
대표적 팝 아티스트인 앤디 워홀은, 코카콜라 병, 캠벨 수프 깡통, 마릴린 먼로, 엘비스 프레슬리와 같은, 대중문화의 일상적인 이미지를 담아냄으로써, “천박함, 반복과 단조로움, 권태감을 자아내는 세상의 시시한 것들에, 축복의 세례를 내린다”고 선언한다.
저급예술 혹은 대중문화의 고급예술의 진영으로의 진입을 알린 팝 아트의 국제적인 성공은, 미학적 양식으로 專有된 키치의 영향력이나 의의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한 사실이다. 팝 아트가 등장하던 1960년대에, ‘수잔 손탁’은, ‘camp’라는 용어를 통해서, 대중문화나 팝 아트를, 기존의 진지한 아방가르드 예술과는 다른 예술이라는 관점에서 정의하려고 했다.
‘손탁’에 의하면, 아방가르드로서의 현대예술 혹은 고급예술은 진리, 아름다움, 진지함에 천착하면서, 예술을 도덕적 교훈이나 도덕적 판단에 종속시킨 예술이다.
그와 달리 경박한 것, 과장된 것, 탐미적인 것, 미학적으로 부적절한 것에, 열정적으로 몰두하는 경향으로서의 캠프 혹은 캠프 취향은, 내용에 대한 스타일의, 도덕에 대한 미적인 것의 승리를 알리는 사건이다. 즉, 아방가르드 예술에 이르기까지 이어져 내려온 진지함과 도덕에의 종속으로부터 해방된, 새로운 예술의 탐미적이고 유희적인 특성을, ‘손탁’은 캠프를 이론화하면서 정식화하려 했다.
이러한 캠프 현상은, 현대의 대한민국 사회에서 일명 ‘강남좌파’라는 일련의 사회적 경향성으로서 발현되고 있다. 참으로 기괴하지만, 지극히 실제적인 江南左派的 搖動의 목적은, 철저한 自己欺瞞에 의한 自己滿足일 따름이며, 결코 진정한 예술작품을 목적하는 행위일 수 없으므로, 응당 키치로서 분별되어야 함이 정당하다.
캠프로서의 예술은, 기존의 도덕을 비판하면서, 새로운 도덕을 제시하려 한, 현대예술의 진지함을 넘어선다. 캠프족은 진지하게 굴지 말고, 놀 것을 제안한다. 삶의 무의미함이나 변혁 가능성에 대한 어떤 믿음도 포기한 캠프족은, 예술의 가치를 遊戲에서 찾는다.
가벼움, 경박함, 도덕적 엄숙주의에 대한 거부, 스타일에의 탐닉이 캠프의 특징이다. ‘손탁’이 말하는 캠프가, 고급예술 진영에서 아방가르드 예술에 대한 반발로 등장한 새로운 예술인지, 대중문화를 포괄한 후기 자본주의 시대 문화 전체를 말하는 것인지는 불확실하다.
다만 분명한 것은, ‘손탁’은 캠프를 물질적으로 풍요로운 사회, 풍요로움이라는 정신병리를 견뎌낼 수 있는 사회의 문화로 간주한다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캠프는 ‘아도르노’가 말한 문화산업에 의한 자본주의 내 문화 전체의 잠식과 일면 유사하다.
‘손탁’은 단순히 캠프로서의 자본주의 문화 전체를 거부하기보다는, 캠프에 대한 전면적인 분석을 통해, 캠프의 성격을 제대로 규명하려 했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캠프 개념을 이해하는 일은, 단순히 키치를 아방가르드 예술의 他者로서 부정적으로 이해하는 것의 편협성을 극복할 수 있게 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
키치나 캠프 개념은, 오늘날 예술이 자본주의 사회와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할 수 없는 지점에 이르렀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해야 하는가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요구한다. 그러니 자본주의와 문화산업에 대한 비판을 계속 견지하려는 이들이라면, 키치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의 문제부터 해결해야 할 것이다.
풍요로운 자본주의 사회에서, 끊을 수 없는 마약처럼 우리를 매혹시키려 드는 키치의 유혹을 무시하고서, 키치의 他者를 말하는 것만큼 쉬운 일은 없을 것이다. 물론 키치의 유혹에 순순히 항복하는 것은, 인간의 본래성을 포기하는 것이라는 비판은, 우리의 무의식 속에 계속 자리할 것이지만 말이다.
대한민국의 서민대중에게, 自由民主主義라는 資本的 예술작품과 人民民主主義라는 複製的 키치에 대한 理解는, 그래서 절실히 요구된다. 이에 대해 명료히 분별할 수 없다면, 분명 개인과 공동체의 ‘생존의 이득’을 도모한다며 실행하는 일이, 외려 모두의 삶을 해체해버리는 破裂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