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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를 思想史的으로 보면, 프랑스혁명 이후의 역사적 단계에서 성립된 특정 사상 조류이고, 그 세력은 封建貴族階級이었다는 점을 특색으로 들 수 있다. 그러한 관점에서는, 귀족계급의 사회적 기초가 붕괴됨과 동시에, 보수주의의 역사적 의의도 상실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비록 근대에 있어서, 보수주의의 역사적 기원을 찾는 뜻에서는 타탕한 말이라 할지라도, 그 후의 사정은 달라졌다. 특히 1848년 이후로, 종전의 進步主義였던 自由主義 또는 民主主義가, 社會主義의 대두에 따라 보수적인 경향을 띠게 되었다.
또한 19세기 후반부터는, 시민계급을 세력으로 하는 새로운 보수주의가 재생되었기 때문에,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를 단순히 귀족계급의 사상적 조류라고 한정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이 지점에서, 조선왕조의 보수주의와 ‘近代 保守主義’는 큰 차이를 갖게 된다. 조선왕조가 멸망할 때까지 시민계급적 보수주의는 결성되지 않기 때문이다.
‘근대 보수주의’라는 사상적 조류를 최초로 정식화한 사람은 ‘에드먼드 버크’이고, 그 후 보수주의자들은, 직접적으로나 간접적으로 ‘버크’의 영향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버크’의 저서 ‘프랑스혁명의 고찰’(1790)을 비롯하여, ‘새로운 휘그주의자의 옛 휘그주의자에 대한 어필:Appeal from the New to the Old Whigs’ 등 일련의 저서는, 프랑스혁명의 영향을 받은 영국의 급진적 민주주의운동에 대한, ‘능동적인 공포심’에 쫓긴 결과로 쓰여진 것이다.
그것들은 ‘1789 이념’에 대한 가장 강력한 저항이었을 뿐만 아니라, 보수주의 최초의 이데올로기적 표현이었다. 보수주의는 원래 어떤 특정적인 역사적 상황에 대한 응답으로서 나온 것이므로, 그 본래의 모습은 방어적인 것이다.
그것은 사회구조의 현상유지를 위하여, 현체제에 대한 도전에 방어의 態勢를 취하는 것이다. 따라서 보수주의가 이데올로기라는 면에서 문제되는 것은, 현제도가 어떠한 제도이건, 그 제도 자체를 정당화하려는 점에 있다.
보수주의가 現制度를 방어하려는 이유는, 조상들이 걸어온 길을 벗어날 경우에는, 안전이 위협을 받기 때문인 것이고, ‘安佺(安保)’ 그 자체는, 특정인이나 계급의 ‘생존의 이득’과 결부된 것이었다. 따라서 보수주의자의 現制度 방어는, 주어진 역사적 상황에 대한, 조정과 적응의 과정에 불과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F.J.C. 헌쇼’가 지적한 바와 같이, 보수주의적인 消極性과 그 綱領의 불확실성이 드러난다. 그것은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가 일관된 사상체계를 가지지 못하고, 無體系性을 특징으로 한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율곡 이이’나 ‘에드먼드 버크’의 경우는, 확고한 사상체계를 지니고 있다. 그래서 그 의미나 가치는 아주 인상적이다.
‘K. 만하임’에 의하면, 보수주의의 무체계성은 思考形式의 문제이다. 즉, 근대의 사회구조 변화에 대하여, 진보주의자는 그것을 긍정하여, 현존 제도의 전체적인 개조를 생각하기 때문에, 그 사고형식은 필연적으로 추상적이고 체계적인 것이 된다.
그러나 보수주의자는 변화를 부정하고, 現制度에서 만족을 느끼며, 그것을 유지하려고 하기 때문에, 그의 思惟方式은 구체적일 뿐, 체계적인 것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보수주의는 개개의 구체적인 사실만을 문제로 삼아, 기껏해야 그것을 다른 개개의 사실로 바꾸어 놓을 뿐이므로, 그들에게는 ‘유토피아’가 없다.
보수주의자에게는 ‘지금 여기’만이 유일한 現實世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측면은, 지극히 儒家哲學的인 사유방식이다. 심지어 儒敎는 죽음 이후에 대한 思惟마저도 지니지 않는다. 유교를 대표하는 祭祀 역시, 엄밀히 말한다면,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라, 철저히 ‘산 자’를 위한 것이다. 따라서 이 또한, ‘율곡 이이’가 보수주의자일 수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이다.
여하튼, 그러한 의미에서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는, ‘S.P. 헌팅턴’이 말한 바와 같이, ‘제도지향적 이데올로기’라 할 수 있다. 보수주의의 내용을 간단히 定式化할 수는 없지만, 형식적으로 보면 세 가지 원리, 즉 현재에 대한 변화를 부정하는 ‘保存의 원리’, 과거의 것을 현대에 이용하려는 ‘逆行의 원리’, 현재의 것에서 유기적으로 생기는 ‘進步의 원리’를 결합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세기 후반부터, 시민계급 세력에 의한 보수주의가 재생한 것은, 사회구조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보수주의가 생길 수 있다는 것을 말하는 동시에, 보수주의의 본질에 대한 새로운 문제를 던지고 있다. 보수주의는 종래에 주로 역사적 기원에 착안하여, 귀족계급의 이데올로기로서, 시민계급의 ‘進步主義(自由主義)’와 대립되는 것으로 생각하여 왔다.
그러나 19세기 후반부터는, 그러한 대립이 반드시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다. ‘헌쇼’가 지적한 바와 같이, 현대에는 ‘시민계급(中産層)의 보수주의’와 ‘노동자계급의 진보주의(社會主義)’가 대립되고 있다. 최근 미국에서 논의되고 있는 보수주의 문제도, 그러한 견지에 입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의 左右對立도, 이러한 상황을 반영하고 있다.
이와 같은 대립 樣相의 변화는, 과거에 시민계급세력이던 自由主義가, 새로운 역사적 상황 하에서, 保守主義로 이행되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이에, ‘헌팅턴’은 보수주의를 ‘位置 이데올로기’라 하여, 그것이 어떤 ‘사회집단(계급)의 이익’을 반영하는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어떤 사회집단이 다른 집단에 대하여 가진, 특수한 관계의 존재를 반영하는 이데올로기라 생각하고 있다.
향후 ‘이데올로기로서의 보수주의’의 기능은, 그 성격이나 사고형식과 더불어, 좀더 규명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율곡 이이’와 ‘에드먼드 버크’를 保守主義의 場에 동일하게 배치함은, 그 의미가 크다고 할 것이다.
적잖은 현대의 한국인들은, 조선왕조를 지워버려야 할 汚辱의 역사쯤으로 인식한다. 그러나 역사는, 그것이 好不好를 좇아 取捨選擇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좋든 싫든, 그러한 역사를 통해, ‘現在의 나’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니 모른 척하며 忘却해버린다고 해서, 조선왕조나 대한제국의 역사가 사라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따라서 오히려, ‘율곡 이이’에 대하여 현대적인 보수주의 관점에서 재해석 함은, 그 의미가 더욱 각별하다고 할 것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보수주의’는, 1945년 광복 이래로, 정치적 自由民主主義와 1950년부터 1953년까지 치러진 韓國戰爭과 국제적인 冷戰對立으로 인해 강화된 反共主義 및 韓美同盟, 제5공화국과 1997년 외환위기로 확산된 新自由主義 등, 4가지를 주요한 구성요소로 삼고 있다.
더불어 美國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절대적 영향력으로 인해, 親美的인 성격과 反共主義가 강하다. 이로 인해, 한국의 보수주의는 한국 특색의 보수주의라기보다는, 美國的 保守主義의 하나의 分派라고 부를 수 있는 측면이 있다.
그런데 조선왕조의 중국에 대한 事大主義가 비판의 대상이듯이, 미국에 대한 사대주의 역시 비판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현대의 대한민국이 과거에 비해 나아진 측면은, 패권국과 君臣關係로서 작동하던 ‘조선왕조의 事大主義’가, 패권국과 同盟關係로서 작동하는 ‘대한민국의 同盟主義’로 변화되었음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親美主義者가 되어서 무작정 미국을 옹호한다면, 그것은 ‘조선왕조의 事大主義者’와 별다를 게 없다. 親中主義者의 경우도 매한가지다. 현대의 국제정치의 場에서, 분명한 것은 대한민국이라는 國家의 존속이며, 이를 위해 ‘생존의 이득(國益)’을 도모해야 함이다.
21세기의 국제사회는, 과거에 비해 武力的 戰爭보다는 經濟力을 활용하여 분쟁을 해소하는 경우가 許多하다. 그래서 실제적으로 죽거나 다치지 않으므로, 아주 人權主義的 것으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나 어찌보면 훨씬 잔혹한 방편이, 경제적(물질적)으로 서서히 말라죽이는 經濟戰爭(貿易戰爭)이다. 그러니 이러한 泥田鬪狗의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自國의 ‘생존의 이득(國益)’을 반드시 지켜내야 함은, 실로 不得已다.
영국은 보수주의의 기원이기 때문에, 많은 보수주의 정치가를 배출했다. ‘에드먼드 버크’ 이후, 대표적으로 ‘벤저민 디즈레일리’, ‘윈스턴 처칠’, ‘마거릿 대처’ 등이 꼽힌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제국주의와 결합된 보수주의를, ‘윈스턴 처칠’은 소련에 대항한 반공주의와 결합한 보수주의를 추구했다.
그리고 ‘마거릿 대처’는, 정치적으로는 反共主義를 추구했으며, 경제적으로는 親市場主義的 경제정책을 도입하여, 영국의 福祉病을 해결하고자 했다. 장기간의 노동자 파업을 진압하고, 주요 국영 기업을 민영화였으며, 사회 복지 혜택을 감축했다. 외교적으로는 영국의 ‘유럽 공동체(EC)’ 가입을 거부하는 입장이었다.
조선왕조의 理想主義는 道德主義로써 통치했다. 그러한 바탕에는 중국이라는 覇權國에 대한 事大主義가 작동하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패권국을 능가할 만한 역량을 지니지 못했다면, 그 나름의 방편으로써 ‘생존의 이득’을 도모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렇지 않고서는 국가공동체의 멸망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현재 대한민국의 現實主義는 資本主義로써 통치한다. 그러한 바탕에는 미국이라는 패권국에 대한 事大主義가 작동한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사대주의는 조선왕조의 것과는 다르다. 조선왕조는 유교철학적 군신관계에 의한 사대주의였다. 그러나 현대의 사대주의는 동맹관계에 의한 것이다.
다만, 사대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은, 어느 시대에나 패권국은, 자기의 패권을 유지하기 위하여 언제라도 폭력을 사용할 수 있는 탓이다. 자본주의는 ‘생존의 이득’을 목적하는 경제체제이다. 그러한 시대에 조선왕조의 ‘이상주의적 도덕주의’를 대비시킴은, 좋은 대조가 된다.
결국 조선왕조가 멸망에 이르는 역사적 과정을 체험하였기 때문이다. 도덕주의가 주도하는 사회는 오히려 폭력적이며, 전혀 이상적이지 못하다. 그에 대한 역사적 사례를, ‘율곡 이이’와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검증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