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란, 신이 소유했던 펜”
신의 재능으로 인간의 삶을 살다간 불멸의 작곡가, 그 천재적 재능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행
10년 2개월 2일, 3,720일의 여행 기간, 인생의 3분의 1을 ‘길 위에서’ 보낸 모차르트,
여행을 통해 완성된 천재 음악가의 삶을 쫓다
- 모차르트 불후의 걸작과 천재성의 발원지를 찾아 떠나는 음악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예술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 도서 소개
“천재라는 말로도 모자란, 신이 소유했던 펜”
피가로의 결혼, 마술피리, 돈 조반니…
신의 재능으로 인간의 삶을 살다간 불멸의 작곡가,
그 천재적 재능의 비밀을 찾아 떠나는 여행
총 3,720일의 여행 기간, 인생의 3분의 1을 길 위에서 보낸 모차르트,
여행을 통해 완성된 천재 음악가의 삶을 쫓다
- 모차르트 불후의 걸작과 천재성의 발원지를 찾아 떠나는 음악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예술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모든 재능을 타고난 천재’, ‘신이 내려준 기적’, ‘작곡을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모차르트가 당대 최고의 작곡가로 이름을 날리던 18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그의 이름 앞에는 늘 최고의 찬사가 함께한다. 하지만 그런 화려한 미사여구에 가려 당대는 물론 서양음악사를 통틀어 불세출의 명작을 남긴 모차르트의 실체는 그간 적지 않게 왜곡되어 왔다. 모차르트가 죽은 뒤 가속화된 추모 열풍은 ‘모차르트 신격화’로 이어졌고, 여기에 그의 죽음에 관한 미스터리가 더해지면서 실존인물 모차르트의 삶과 인간적 고뇌, 지난한 창작과정은 영화나 희곡으로 사실과 다르게 각색된 면이 없지 않다.
이 책은 ‘신동 연주자’, ‘천재 작곡가’라는 후광에 가린 모차르트의 실체를 제대로 마주할 기회를 준다. 여러 매체를 통해 클래식 음악을 대중에게 쉽게 전해온 김성현은 모차르트 내면의 인간적 고뇌, 작곡가로서의 성장 과정을 되짚기 위해 탄생지 잘츠부르크에서 마지막 숨을 거둔 빈은 물론 뮌헨과 만하임, 아우크스부르크, 런던과 파리, 밀라노, 프라하에 이르기까지 전 유럽에 걸친 모차르트의 행적을 낱낱이 뒤쫓았다. 음악적 교류 속에 탄생한 모차르트 작품들의 연결고리를 이어주는 것은 물론, 마지막 유작 〈레퀴엠〉의 창작 과정과 그의 죽음을 둘러싼 의문들, 사후 그의 음악이 어떻게 재조명되어 왔는지까지 우리가 미처 알지 못했던 민낯의 모차르트를 가감 없이 소개한다.
영화와 희곡, 뮤지컬 등 모차르트에 관한 수많은 작품 덕분에 우리는 그를 잘 알고 있다고 여긴다. 어릴 적부터 재능을 꽃피웠던 모차르트의 삶은 흡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구체제 질서에서 벗어나 빈의 프리랜서 음악가로 거듭나기까지, 모차르트의 길지 않았던 35년 인생은 눈부신 성공과 쓰라린 좌절, 영광과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 결정적 단절의 지점을 살피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프롤로그」 중에서
“천재성은 타고나는가, 길러지는가?”
천재성은 타고난 능력이나 유전적 요인에 좌우된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례로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이 모차르트다. 동시대의 거장 요제프 하이든은 자신보다 24살이나 어린 모차르트의 곡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작품”이라 칭했으며, 7살 소년 모차르트의 연주를 직접 관람했던 독일 문호 괴테는 훗날 “악마가 (평범한) 인간을 조롱하기 위해 세상에 내보낸, 누구나 목표로 삼을 만큼 매력적이지만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위대한 인물”로 모차르트를 꼽았다. 또 다른 천재로 손꼽히는 물리학의 대가 아인슈타인은 “예술가나 음악인으로서 모차르트는 이 세상 인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모차르트의 천재성은 하늘이 선사한 것이기 때문에 보통 인간과는 도무지 비교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익히 알려진 것처럼 모차르트의 재능은 오롯이 타고난 것일까? 그의 인생에는 과연 예술적 단절이나 굴곡이 없었을까? 그가 신동에서 불멸의 작곡가로 진화할 수 있었던 진정한 동력은 과연 무엇인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에 대해서는 이견이 없지만, 그것이 오직 선천적 재능이나 유전적 요인에 기반한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모차르트는 작곡을 하기도 전에 이미 모든 곡이 머릿속에 완성돼 있었다’는 믿기지 않는 일화도 전해지지만, 모차르트 스스로 “길고 고된 작업의 결실”이라고 불렀던 현악 4중주처럼 퇴고를 거듭했던 경우도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모차르트의 경우 그의 재능을 일찌감치 발견해 더 큰 세상에서 선보일 기회를 마련하고 모든 교육적 환경을 제공한 아버지가 존재했다. 더욱이 전 유럽을 상대로 유년 시절부터 계속된 순회공연은 비단 재주를 뽐내는 자리에 그쳤던 것이 아니라, 모차르트 스스로를 신동 연주자에서 장르를 넘나드는 천재 작곡가로 거듭나게 해준 산교육의 무대였다.
“예술가가 여행을 할 수 없다면 그저 비참한 존재일 뿐“
모차르트는 35년이라는 짧은 인생 동안 17차례에 걸쳐 여행을 떠났다. 총 여행 기간은 10년 2개월 2일, 즉 3,720일에 이른다. 인생의 3분의 1을 여행으로 보낸 ‘길 위의 삶’을 살았던 셈이다. 1763년 6월 잘츠부르크에서 출발한 모차르트의 여행길은 1766년 11월에야 끝났다. 후대에 ‘그랜드 투어’라 불리게 된 이 여행은 3년 5개월간 지속되었으며, 당시 모차르트는 무려 88개 지역에서 연주했다. 서양음악사에서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곧이어 모차르트는 1769년에서 1772년까지 세 차례에 걸쳐 이탈리아 여행에 나섰고, 이 여행을 통해 종교 음악과 오페라에 눈뜨게 되었다.
모차르트의 행적을 현장에서 직접 확인한 저자는 ‘여행’이야말로 모차르트가 신동 연주자에서 불멸의 작곡가로 완성될 수 있었던 방법론이었다고 설명한다. 첫 여행이 모차르트의 출현을 유럽 전역에 알리는 기회가 됐다면, 두 번째 이탈리아 여행은 모차르트가 전 장르를 넘나드는 ‘전천후 작곡가’로 거듭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여섯 살에 시작해 타계 3개월 전까지 계속된 여행에서 모차르트는 문화 예술계의 거장들을 두루 만났고,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협주곡과 교향곡, 소나타, 실내악, 종교 음악, 오페라 등 전 장르를 총망라한 불멸의 작곡가로 재탄생할 수 있었다. 모차르트의 교향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 모차르트로 하여금 종교 음악에 눈을 뜨게 해준 조반니 바티스타 마르티니 신부, 모차르트를 아들처럼 아끼며 이끌어준 ‘교향곡의 아버지’ 요제프 하이든, 모차르트의 오페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대본 작가 로렌초 다 폰테 등은 모두 고향을 떠나 타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다. 저자는 여행을 통해 성사된 이들과의 만남이 없었더라면, 모차르트는 한낱 잘츠부르크의 지역 작곡가로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한다.
더욱이 기록으로 남아 있는 모차르트의 세 연인도 모두 구직을 위한 여행 중에 만났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여섯 살 꼬마 모차르트가 손등에 입을 맞춘 뒤 청혼했다고 전해지는 마리 앙투아네트 역시 순회공연 중에 만났으니, 모차르트에게 있어 여행이란 불멸의 작곡가로 변화하는 결정적 계기를 넘어 삶 그 자체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때문에 저자는 모차르트의 삶과 여행, 그 속에서 만났던 인물과 음악 작품을 맞물려 연대기 순으로 설명한다. 여행지와 그곳에서 만난 사람, 그 만남을 통해 탄생한 작품을 소개하는 방식은 다른 예술가의 경우라면 작위적으로 보일 수 있지만, 모차르트의 경우 예술적 교류와 작품 탄생, 그로 인한 삶의 변화들이 즉각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배운 것을 곧바로 응용해 작곡 영역을 넓히는 것은 물론 이전까지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음악 세계를 구축한 것이 오늘날의 모차르트를 있게 한 열쇠다.
“축조, 해체, 재건축을 밟아온 비운의 작곡가”
당신이 아는 모차르트는 진짜 모차르트인가?
“모차르트, 날 용서해주게. 자넬 죽인 건 바로 날세.”
영화 〈아마데우스〉의 첫 장면에서 모차르트 살해범 살리에리가 자살을 기도하며 외친 말이다(후대에 밝혀졌지만, 실제 살리에리는 모차르트를 독살하지 않았다). 영화를 통해서도 알 수 있듯 미완성 유작 〈레퀴엠〉의 창작과정과 의문에 쌓인 모차르트의 죽음, 오페라 〈마술피리〉와 프리메이슨 사이의 연관성, 아내 콘스탄체와의 불화설 등 모차르트의 삶과 그의 작품은 당대부터 수많은 의문과 억측을 만들어냈다. 이후 모차르트에 대한 평가가 숭배적 차원으로 격상되면서, 본질의 모차르트는 온데간데없고 포장된 모차르트만 존재했던 것도 사실이다. 낭만주의 시대에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나치시절에는 ‘독일의 민족적 영웅’, 냉전시대 동구권에서는 ‘봉권주의에 맞선 인민 작곡가’로 불리다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모차르트 음악이 두뇌발달에 효과가 있다는 ‘모차르트 이펙트’가 모차르트의 실체를 대신하고 있다.
여기에 ‘순진무구한 천재’이면서 다른 한 편으로는 ‘음담패설을 일삼는 악동’이라는 모차르트의 이중성은 모차르트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저자는 모차르트 사후 출간된 수많은 전기와 후대 학자들의 연구, 편지와 신문기사 등 당대 자료를 통해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하거나 잘못 알고 있는 모차르트의 인생과 작품 세계를 기자 특유의 객관적 시각으로 하나하나 파헤치고 재조명한다. 저자의 말처럼 “본래 얼굴은 하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가면을 뒤집어쓰게 된” 모차르트의 진짜 모습을 퍼즐 조각을 맞추듯 하나씩 제시해준다. 미국 음악학자 제슬로이 말했듯 ‘축조와 해체, 재건축의 과정’을 밟아온 모차르트의 역사를 되짚어보면서, 익히 알려진 모차르트의 음악들이 과연 어떤 배경 속에 탄생했는지, ‘신이 내린 재능’ 뒤에 가린 ‘인간 모차르트’의 참모습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에서
◆ 어릴 적부터 재능을 꽃피웠던 모차르트의 삶은 흡사 온실 속의 화초처럼 보인다. 하지만 잘츠부르크의 봉건적 질서에서 벗어나 빈의 프리랜서 음악가로 거듭나기까지 모차르트의 길지 않았던 35년 인생은 눈부신 성공과 쓰라린 좌절, 영광과 고통으로 가득했다. 그 결정적 단절의 지점을 살피는 것도 이번 여행의 목표였다.
- 〈프롤로그〉 중에서
◆ 우리는 천재 탄생이라는 신화에만 관심을 쏟는 나머지 신화 이면의 인물들을 간혹 잊고 지나친다. 모차르트 신화에서 주연 배우가 모차르트라면, 모차르트의 재능을 누구보다 일찍 알아보고 절대적 확신을 가졌던 연출가는 아버지 레오폴트다. 레오폴트의 눈에 비친 모차르트는 ‘신이 잘츠부르크에 내려준 기적’이었다.
- 〈1장 신이 내려준 선물―잘츠부르크의 신동〉 중에서
◆ 요한 크리스티안 바흐의 영향을 받아 작곡한 교향곡 1번은 모차르트의 스펀지 같은 흡수력을 보여주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1764년 5월 레오폴트는 친구 하게나워에게 보낸 편지에 “우리가 잘츠부르크를 떠날 때 볼프강이 알고 있던 건 지금 터득한 것에 비한다면 그저 하찮을 뿐이라네. 독창력과 상상력이 넘쳐흐르고 있지”라고 적었다.
- 〈2장 모차르트 신화의 시작―1차 그랜드 투어〉 중에서
◆ 모차르트에게 지난 3년간의 유럽 투어가 순회공연이었다면, 이번 이탈리아 여행은 현지 유학에 가까웠다. 우선 베네치아와 나폴리, 로마의 음악 조류를 배우는 동시에 상대적으로 취약했던 이탈리아어를 습득하는 기회가 될 터였다. 이탈리아 현지에서 든든한 인맥을 쌓고, 더 나아가 이탈리아 북부를 다스리고 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궁정 음악가로 취직할 가능성도 타진해볼 수 있었다. 음악과 언어 공부, 인맥과 취업까지 노린 다목적 포석이었다.
- 〈3장 신동 연주자에서 오페라의 거장으로―2차 그랜드 투어〉 중에서
◆ 모차르트는 유럽 전역에서 순회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월드 스타’였지만, 잘츠부르크로 돌아온 뒤에는 다시 평범한 궁정 음악가의 처지가 되고 말았다. 유럽의 ‘월드 스타’와 잘츠부르크의 ‘직장인’ 사이에는 도무지 양립 불가능한 거리가 존재했다. 이러한 간극이야말로 모차르트를 끈질기게 따라다닌 존재론적 고민이었을 것이다. 모차르트가 훗날 “잘츠부르크는 내 재능에 걸맞은 곳이 아니다. 우선, 전문 음악가들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다. 다음으로, 극장도 오페라도 없기에 들을 것도 없다”고 푸념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 〈4장 속박과 억압의 사슬―대주교와의 악연> 중에서
◆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의 훼방꾼보다는 영감을 주는 뮤즈에 가까웠던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도 콘스탄체가 부당한 평가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건, 모차르트 사후에 덴마크 출신의 외교관 게오르크 니콜라우스 폰 니센과 재혼했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모차르트의 미망인이 평생 수절하지 않았다는 낡은 고정 관념이 온전한 평가를 가로막은 것이다.
- 〈5장 완성을 기다리는 음악과 사랑―모차르트의 세 여인〉 중에서
◆ 역사에 가정은 없지만, 만약 모차르트가 아버지의 뜻대로 잘츠부르크에 머물렀다면 교향곡 〈파리〉와 오페라 〈이도메네오〉의 작곡가로만 남았을지 모른다.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 〈코시 판 투테〉와 〈마술피리〉, 후기 교향곡과 피아노 협주곡은 모두 빈 시절의 걸작이다. 오늘날 우리가 기억하는 모차르트는 역설적으로 레오폴트의 뜻을 거역했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 〈6장 새장 밖으로 날아오른 새―빈의 자유음악가〉 중에서
◆ 〈피가로의 결혼〉이 오늘날에도 흥미로운 건 ‘직장 성희롱’ 문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의 배경인 귀족 저택을 직장으로 바꿔보면 성희롱 신고 센터에 당장 고발해야 하는 사건이 된다. 이런 주제의 민감성 덕분에 〈피가로의 결혼〉은 현대적 설정으로도 즐겨 공연된다. 1988년 미국 연출가 피터 셀러스가 뉴욕 맨해튼의 트럼프타워 52층에서 하루 동안 일어난 사건으로 재구성한 〈피가로의 결혼〉이 대표적이다.
- 〈7장 스스로 포기하고 추락한 자―세 번째 고향, 프라하〉 중에서
◆ ‘순진무구한 천재’이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음담패설을 일삼는 악동’이라는 모차르트의 이중성이야말로 후세의 다양한 해석과 오해를 불러일으킨 원인일 것이다. 누구에게나 선악과 미추美醜가 내면에 공존하게 마련이다. 하지만 모차르트의 경우에는 어느 한쪽으로 기우는 법 없이 두 가지 모습이 팽팽하게 대치하고 공존한다는 점이 특이하다. 때로는 어느 쪽이 진짜 모습인지 가늠하기 힘들 정도로 후대에 덧씌운 이미지들은 층층이 쌓여갔다. 본래 얼굴은 하나였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수많은 가면을 뒤집어쓰게 됐다고 할까.
- 〈8장 천사가 된 천재―죽음, 그 이후〉 중에서
◆ 숨 가쁘게 쫓아온 모차르트의 생애를 한마디로 압축하면 그는 ‘타고난 천재’보다는 ‘만들어진 천재’에 가깝다. 그를 천재로 만든 건 우선 아버지 레오폴트였고 그다음엔 ‘18세기 유럽’이라는 드넓은 세상이었다. 아무리 타고난 재주가 뛰어나더라도 평생 타고난 재주로만 먹고사는 사람은 없다. 천하의 모차르트도 마찬가지였다. 모차르트의 ‘원천 기술’은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재능이 아니라 오히려 거침없이 받아들이고 소화하는 흡수력과 학습 능력에 있었다.
-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