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봄
구스타브 클림트 - 참을 수 없는 봄의 가벼움
아이삭 레비탄 - 흐리고 어두운 날
앙리 마티스 - 좋은 일은 창 너머에서 온다
클로드 모네 - 모네의 정원에 비가 내리다
조르주 쇠라 - 소풍
마르크 샤갈 - 달에게 날아간 화가
카렐 파브리티위스 -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
2. 여름
장 밥티스트 카미유 코로 - 추억을 초여름처럼 투명하다
차일드 해섬 - 비밀의 화원
알프레드 시슬레 - 꿈의 기억
파울 클레 - 밤의 회색으로부터 한 번 나타나다
르네 마그리트 - 초현실주의자의 그림을 보는 방법
알베르트 비어슈타트 - 빛 그리고 그림자
3. 가을
에드바르드 뭉크 - 누가 그녀를 데리고 갔나
빈센트 반 고흐 - 별이 빛나는 고흐의 밤
카미유 피사로 - 숨길 수 없다
제임스 맥닐 휘슬러 - 밤의 마을
조셉 말로드 윌리엄 터너 - 세계의 끝이 시작되는 곳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 물랑루즈의 즉흥곡
4. 겨울
얀 베르메르 - 나는 너에게 편지를 쓴다
파블로 피카소 - 피카소의 마지막 이야기
이중섭 - 묶인 새
5. 인터뷰 - 화가 홍순명에게 물었다, 나도 그림에 대해 말할 수 있냐고
6. 추천의 글 - 멋대로 구경하고 멋대로 느끼기
월간 ´PAPER´의 편집장 황경신의 그림 에세이
황경신의 『그림 같은 세상』은 지은이 특유의 톡톡 튀는 문체와 감성적인 글쓰기로 길어낸 내밀한 마음의 풍경화이다. 그녀는 미술사적인 지식에 기대지 않고 최대한 자신의 감수성과 추억에 의지하여 22명 화가들의 삶과 그림 속으로 여행을 떠난다. 그리고 그림처럼 아름다울 수 없는 세상에서, 그림을 통해 ´그림 같은 세상´을 꿈꾼다. 그 꿈은 더 나아가 독자의 꿈을 일깨워주며, 그림을 전공한 사람이 아니라도 그림을 좋아할 수 있고, 그것에 대해 말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은이가 만난 22명의 화가들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뉘어져 있다. ´봄´의 장에는 클림트, 레비탄, 마티스, 모네, 쇠라, 파브리티위스를, ´여름´의 장에는 코로, 해섬, 시슬레, 클레, 마그리트, 비어슈타트를, ´가을´의 장에는 뭉크, 고흐, 피사로, 휘슬러, 터너, 로트레크를, ´겨울´의 장에는 베르메르, 피카소, 이중섭의 그림을 각각 담았다.
이 책은 황경신의 에세이와 관련 작가의 그림, 그리고 ´little more´로 구성되어 있다. 각 글에는 작가의 관련 그림과 단상을 추가하여 감동의 여운을 더해주는가 하면, 각 글마다 첨가된 ´little more´는 편지의 p.s.처럼 읽는 재미가 있다. 또한 본문 말미에는 화가 홍순명과 함께 "왜 누구나 그림과 친해질 수 있는지"에 대한 진지한 대화를 실어, 황경신의 그림에 대한 생각을 보다 뚜렷하게 전달하고 있다.
멋대로 구경하고 멋대로 느낀 22명의 화가
섬세한 감성으로 화가들의 삶과 그 내면을 응시하는 지은이의 독특한 ´그림 바라보기´는 한마디로 "멋대로 구경하고 멋대로 느끼기"(김원, PAPER 아트디렉터)라고 할 수 있다. 우선 선택한 그림들부터 일반적으로 소개되는 명작들과는 거리가 있다. ´클림트´ 하면, 누구나 금박의 장식이 요란한 「키스」나 「유디트」 등을 떠올리지만, 지은이가 선택한 그림은 「아테르제 호수의 섬」처럼 담백하고 고요하기만 한 풍경화들이다.
피카소의 그림 중에서는 유독 피카소가 8살에 그렸다고 하는 「피카도르」에 주목한다. 이를테면 고흐를 얘기하더라도 「해바라기」가 아니라 「몽마르트르」 같은 전혀 다른 각도에서 고흐를 볼 수 있는 그림을 얘기하는 것이다. 선택한 화가들 역시도 평범하지 않다. 레비탄이라는 러시아 화가는 어지간히 미술사를 꿰고 있는 사람들조차도 생소하기만 한 작가이다. 미국의 장대한 풍경을 그린 비어슈타트나 미국의 인상파 화가인 해섬, 렘브란트의 수제자이자 베르메르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던 카렐 파브리티위스 같은 작가들 역시도 쉽게 만나보기 힘든 작가들이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은이의 이와 같은 그림 선택은 그녀가 ´그림을 감상하는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 그녀의 감상법은 통상적인 미술사 지식을 늘어놓는다거나 단지 그림이 주는 느낌만을 챙기는 인상적인 감상에 머무르지 않는다. 그녀의 감상법은 훨씬 더 주관적이고 내밀하다. 때로 그것은 기행문이기도 하며, 미처 보내지 못했던 편지이기도 하고, 혼자 울음을 터뜨리는 독백이기도 하다.
예컨대 지은이가 비어슈타트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안나푸르나 트레킹을 다녀오고 나서이다. 장대한 자연 앞에 느꼈던 경이감을 그의 그림 속에서 다시 발견했기 때문이다. 베르메르의 「열린 창가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는 한때 애를 태우던 사람에게 보내지 못했던 마지막 편지가 오버랩된다. 피카소의 그림을 보면서는 폴 메카트니가 더스틴 호프만의 요청으로 작곡했다고 하는 「피카소의 마지막 이야기」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한다. 파브리티위스의 「황금방울새」라는 그림 앞에서는 자크 프레베르의 「어느 새의 초상화를 그리려면」이라는 시가 그 그림을 보고 쓴 것이 아닐까라는 상상을 펼치기도 한다.
김원은 지은이의 ´그림 보기´가 이처럼 자기 마음대로, 자기 멋대로인데도 불구하고 그 속에 어떤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는 점이 참 신통하다고 말한다. 마치 자신의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기만 실은 누구보다도 그 그림의 중심에 서서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림에 다가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은 춤을 배우는 것과 같다!
책 말미에 실린 지은이와 홍순명의 인터뷰를 읽다 보면 그림은 마치 춤을 배우는 것과 같다는 것을 알게 된다. "나도 그림에 대해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지은이의 도발적인 물음으로 시작하는 이 인터뷰에서 홍순명은 춤의 본산지에서는 우선 음악을 틀고, 무조건 춤을 추다가 음악이 몸 속에 들어왔을 때 비로소 춤의 스텝을 배운다고 말한다. 그림 역시도 우선 좋아하게 되고 그게 즐거워질 때 그림의 형식적 이론을 알아도 늦지 않다는 것이다.
즉, 미술사적인 배경 지식 없이도 "누구나 그림과 친해질 수 있고 누구나 그림을 보고 감동받을 수 있으며 누구나 그것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이다. 황경신의 전제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그녀가 안내하는 대로, 마치 그녀의 일기를 읽어나가듯이 읽어내리다 보면, 어느새 독자들은 그림의 훨씬 가까운 곳에 도달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며, 자신만의 그림보기 방식에 자신감을 가지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