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말
1부
의료윤리를 통해 듣는 나지막한 삶의 목소리
―영화와 소설이 말해주는 의료윤리적 진실
아픔은 나눌 수 있는 걸까?
『82년생 김지영』이 의학에 던지는 쓴소리
죽음을 말하는 방법
"문제는 삶이야, 바보야"
알츠하이머병 앞 우리의 삶과 죽음
유전자 편집과 삶의 가치
의사는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관해 의견을 밝혀도 되나
모두 옳고 모두 그르다
2부
현대 의학이라는 고원
―문화를 렌즈 삼아 의료 시스템 이해하기
모든 사람은 거짓말을 한다?
좀비 세상에 대처하는 우리들의 자세
언제부터 인간 신체는 상품이 되었을까
의학과 사회 중간에 선다는 것
더 인간적인 의학을 그리며
3부
병원과 환자 사이 징검다리를 건너
―은유를 통해 본 의료, 의료인, 병, 환자, 그리고 아픈 삶
전쟁을 앞두고 한판 춤사위 벌이기
백신과 의료화, 보호와 침해의 프레이밍
영웅과 희생양 양편 모두에 서 있는 의사
우리 삶, 질환과 더불어 사는 여행
맺는말
주
“어느 한 걸음에도 인간과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 삶에 의료윤리가 필요한 순간들
최근 2, 3년 사이 글 잘 쓰는 의사 작가가 출판계의 블루칩으로 떠올랐다. 전문 영역에 대한 해박한 지식에 안정된 문장력을 겸비한 작가들의 출연은 반가운 일이다. 의료계와 독자의 적극적인 소통과 만남이 의미 있는 것은 그들이 삶과 죽음을 마주하는 전문가들이란 사실 때문일 터, 고령 사회 도래와 함께 존엄한 죽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어떻게 죽을 것인가’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와 궤를 같이하는 물음이 된 지금, 의사 작가들이 이루어나갈 사회적 역할이 더욱 기대된다.
의사 김준혁은 이 책 『누구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에서 ‘의료윤리’라는 조금은 생소한 분야를 독자에게 소개한다. 의학은 “엄밀한 과학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철저히 인간적인 일”이기에 의료진, 환자, 보호자 등 질병과 진료, 치료와 관련된 모든 선택들에 “인간과 인간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고, 그 선택 기준에 어떤 윤리적 문제들이 있는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바로 그 고민을 해나가는 학문이 ‘의료윤리’이다.
이 책은 존엄사, 임신중절, 면역항암제 문제 등 어느 한쪽이 전적으로 옳다 말할 수 없는 다양한 이슈들을 역사와 문화라는 두 축으로 설명하며 우리 삶에 얼마나 많은 의료윤리적 문제가 포진해 있는지 담아냈다. 단순히 제도적 문제라 치부할 수 없는 이유는 그 뒤에 우리 각자의 삶이 있기 때문이리라. 저자는 “어떠한 윤리 이론이나 원칙도 삶을 다 끌어안을 수 없다. 아니, 우리는 삶을 완전히 다 파악할 수 없으며, 우리의 생각 밖에는 항상 삶의 또다른 면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경험할 수 없는 타인의 상황을, 조건을, 생각을 반추할 가상의 집을
마음속에 건설하는 일에 대하여…
―몸과 마음과 사회는 절대적으로 연결돼 있다
천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 <부산행>을 기억할 것이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해 인구 절반이 좀비로 변한 상황, 부산에서 가까스로 백신을 개발해냈다. 그렇다면 이 백신은 누구에게 먼저 주사할 것인가? 백신 개발자와 군인이 먼저인가? 고위 공무원과 학자들인가? 미래를 만들어나갈 어린아이들을 후순위에 둘 수 있는가? 언제나 뜨거운 논쟁거리인 임신중절은 어떤가. 생명이 우선인가 여성의 선택이 우선인가. 생명이 우선이라면 그 생명은 임신의 어느 단계부터 생명이라 부를 수 있는가. 한편 ‘『82년생 김지영』의 내레이터로 설정된 남성 정신의학과 전문의가 시사하는 바는 무엇인가’와 같은 질문이나 ‘의사는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관해 의견을 밝혀도 되나’ 같은 질문 또한 단정적으로 답하기 어렵다. 300쪽이 넘지 않는 이 책에는 이처럼 답 없는 질문으로 가득하다. 그러므로 더더욱 생각해봄직한 이슈들로 말이다.
이런 식의 답 없는 문제를 고민하는 것에 ‘의료인문학’이라는 이름을 붙여도 크게 틀리진 않을 것이다. 좀더 풀어보면 의료인문학은 의학과 사회, 제도와 문화, 개인과 개인의 결정과 선택, 도덕관의 충돌이 빚는 갈등을 고민하는 학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157쪽)
책은 크게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에서는 의료윤리 이론을 역사적 맥락에서 살피고 영화와 소설을 통해 풀어낸다. 더불어 기존의 논의가 이론에서 그치지 않고 어떻게 삶으로 확장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가령 앞서 언급한 『82년생 김지영』의 남성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는 지그문트 프로이트가 사전에 규정한 자신의 이론에 환자를 맞추려고 함으로써 결국 분석에 실패했던 대표적 사례, ‘안나 오’와 ‘도라’의 이야기로 거슬러올라간다.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관련한 질문은 미국 대선의 흑역사라 할 수 있는 ‘존슨 대 골드워터’, 알츠하이머병 진단을 받았던 미 전직 대통령 로널드 레이건과 ‘이란-콘트라 사건’에서부터 미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정신건강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까지 이어진다. 공시적 통시적으로 다양한 사례와 다양한 잣대를 폭넓게 살펴보며, 이 외에도 고통, 여성, 죽음, 낙태, 치매, 유전자 조작, 보호의 의무와 비밀 엄수의 의무, 정신질환과 주체의 문제 등을 다룬다.
2부에서는 의료 시스템과 병원의 현실에 대해 조망한다. 격리와 권리, 신체의 상품화, 온정주의와 소비자주의, 의료인의 감정 등을 다룬다. ‘감정적으로 초연하면서도 환자의 아픔에 진심으로 공감해주는 의사’라는 쉽지 않은 이상향 앞에 의사로서 가질 수밖에 없는 고민을 비롯해, 인공지능 왓슨이 암 진단을 돕는 세상에서 ‘더 인간적인 의학’이란 어떤 것인지 등에 대해 저자가 숙고한 바가 담겨 있다.
3부에서는 흔히 ‘문둥병’이라 불리는 ‘한센병’이 환자에게 찍는 ‘낙인’과 같은, 질병, 건강, 의학의 은유를 따져본다. ‘투병(鬪病)’, ‘질병과의 전쟁’ 등과 같은 표현도 한 예가 될 것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질병과 의학의 은유는 어떻게 이뤄져 있으며 이것은 의료 시스템과 어떤 연관성을 지니고 있는지에 대해 담았다.
‘햄버거병’은 좋은 은유는 아닌 것 같다. 그것은 일상의 친숙함을 무기로 잘못된 공포를 전파한다. 질병의 ‘전쟁’ 은유도 좋아 보이지만은 않는다. ‘전쟁’이라는 예외 상황은 모든 것을 허용하며, 따라서 ‘영웅’ 의사의 행위를 환자가 감내해야 한다는 식의 암묵적인 강요는 의사와 환자 모두에게 해롭기 때문이다. 답을 찾다보니 푸코의 ‘춤’으로 흘러왔다. 외부의 압력 속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만들어가는 개인은 숭고하기까지 하며, 이렇게 건강과 질병을 다시 생각해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소설가 제임스 조이스의 표현처럼 “세속의 수도승”이 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기에 삶은 너무나 복잡하고 어렵다. 그 앞에서, 우리 서로 손을 붙잡아야 하지 않을까. (189쪽)
“우리는 모두 삶의 어느 순간 환자다.”(234쪽) 의사 작가가 사회를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 공동체의 건강한 삶에 기여하는 콘텐츠와 메시지에 주목하게 되는 이유다. 함께 건강해질 길을 모색할 때이다. 몸과 마음과 사회는 절대적으로 연결돼 있다.
서사 의학과 서사 윤리가 추구하고자 하는 것은 환자의 이야기, 의료인의 이야기를 더 주의깊게 파악, 분석할 수 있는 능력이며, 그 이야기를 구체화할 수 있는 이해의 틀이다. 짧은 대화에서, 환자의 몸짓과 표정에서 질환이 드리운 그림자와 환자의 회복력이라는 햇살을 파악할 수 있다면 우리의 의료는 더욱 풍성해질 거라고 믿는다. (123쪽)
■ 추천사
의료‘윤리’라니. 누군가는 의사들이 충분히 윤리적이지 않기에 이 학문이 존재한다고 생각할 수 있다. 허나 이 학문은 선악을 구분하거나 진리를 제시 하는 것이 아니다. 유사 이래로 임신중절이나 배아 연구, 안락사 등의 첨예한 문제에 정답이 있었던가. 가까이는 죽음을 전하고 다루는 방식에 정답이 있을 수 있을까. 이 화두들은 생명이 있는 것처럼 태어나 시대에 따라 변화한다. 그래서 ‘윤리’를 탐구하는 이 학자의 글에 정답은 없다. 이 유예는 그가 합리와 정의에 가까워지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궁구해나갈 것이라고 읽힌다. 그가 제시하고, 여러분이 살아 있는 한 계속 논쟁중일 이 화두들에, 한 발 더 가까이, 한층 더 깊이 다가가보기를.
_남궁인(응급의학과 전문의, 『만약은 없다』 『지독한 하루』 저자)
김준혁은 요즘 보기 드문 박식가이다. 자신의 주 전공인 치의학에서 시작해 의학과 의료 일반의 역사, 철학과 윤리, 교육에 대한 지식뿐 아니라 문학, 영화, 회화, 음악 등 본인이 체험한 예술에서 뽑아낸 다양한 재료를 배합해 만든 씨줄과 날줄로 현실의 문제들을 파악하기 위한 그물망을 짠다. 이제 그가 이 책에서 제공하는 촘촘한 ‘지식과 체험의 그물망’으로 어떤 지혜를 길어올려 어떤 ‘몸의 이야기’를 만들어갈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이다.
_강신익(부산대학교 의료인문학교실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