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현대물 #오해 #친구>연인 #달달물 #잔잔물 #힐링물
#평범남 #직진남 #다정남 #순정남 #평범녀 #상처녀 #철벽녀 #순진녀 #건어물녀
취업 준비를 하면서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초등학생 동생을 돌보고 있는 서인. 그녀는 아침마다 어머니를 배웅하기 위해서 동생의 초등학교 근처까지 산책을 가는데, 그때마다 눈에 띄는 체육 선생님이 있다. 번듯한 직장에 잘생긴 외모를 가진 그를 보면 서인은 어쩐지 자신이 사회의 낙오자라는 열등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체육 선생님 도윤은 서인 앞에서 자꾸만 어른거린다. 그것도 서인이 가장 초라하고 불쌍한 장면에서만.
담백하고 깔끔한 문체, 수채화처럼 아름다우면서도 따듯한 줄거리, 그리고 상대의 상처를 보듬어주는 따듯한 연인의 모습. 모든 것이 따듯하고 산뜻한 단편 로맨스.
시간과 비용은 줄이고, 재미는 높여서 스낵처럼 즐기는 로맨스 - 한뼘 로맨스 컬렉션.
<미리 보기>
“집에 카레 있으니까 그거 데워서 먹고, 빨래 널어놓을 수 있으면 그것도 해주고.”
“네네- 알겠습니다. 어머님은 얼른 다녀오기나 하세요.”
“으이구, 말은 잘하지. 다녀올게.”
신호등을 건너는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들고는 몸을 돌렸다.
요즘 아침 공기가 상쾌해서 산책이라도 할 겸으로 나선 배웅은 이제 빼놓을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그냥 거의 충동적으로 데려다 준 것이었는데 이제는 같이 나가지 않으면 은근히 서운해 하는 기색이 보여 자연스러운 일상이 되었다. 어차피 늦잠을 자는 오랜 습관을 고쳐보기로 하기로 했고, 그 김에 토익 공부나 더 하자고 마음을 먹었다.
“준형이 기준!”
“기준!”
날이 따뜻해져서 그런가, 아침부터 초등학교에서는 체육 수업이 활발하게 이어지고 있었다. 이어폰을 귀에 꽂으면서 운동장에 있는 아이들을 흘긋 쳐다봤다. 하나같이 조금씩 탄 얼굴에 알록달록 귀여운 티셔츠와 옷을 입고 옹기종기 모여 있는 초등학생이 보였다. 참 좋을 때였다. 저렇게 아무런 걱정 없이 행동한 지가 언제인지, 이제는 생각나지도 않고 그럴 수도 없다. 그래도 가끔은 마냥 부러웠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 앞에서 지도를 하는 체육 선생님으로 시선이 향했다. 별로 안 보고 싶어도 체육 선생님다운 피지컬에 보통 선생님 같지 않은 외모에 예전부터 저절로 눈길이 갔다. 근데 저 사람은 매번 이 시간에 체육 시간이라고 정해놓은 건가, 늘 돌아오는 이 시간에는 체육 수업을 하는 아이들과 저 선생님이 자주 운동장에 자리하고 있었다. 나는 괜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누나!”
좋아하는 노래 사이로 익숙한 목소리가 흘러들어왔다. 설마 나를 부르는 것인가 싶으면서도 저 나이대의 동생이 있었기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아, 역시 내가 맞았다. 민망했다.
막둥이 동생 서준이였다. 담벼락에 얼굴을 딱 붙이고 빠진 이 하나를 훤히 드러내며 웃는 서준이에게 난감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어색하게 웃어보였다. 지금 수업하고 있는 아이들과 저 선생님까지 쳐다보고 있는데, 괜히 민망해서 얼굴에 열이 오르는 것 같다. 대충 묶은 머리에 마스크를 거의 눈 밑까지 쓰고 돌아다니고 있는 나를 어떻게 단번에 알아본 것인지, 서준이는 좋다고 큰 소리로 나를 다시 한 번 불렀다. 빨리 벗어나고 도망치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서준이에게 다가가 머리를 살짝 쓰다듬었다.
“누나가 바빠서 얼른 가야 돼. 서준이 수업 방해하면 안 되니까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와야 돼. 알았지?”
“응! 엄마 갔어?”
“방금 엄마 데려다주고 오는 길이야. 누나 갈게. 선생님 기다리신다.”
서준이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격하게 흔들고는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나를 향해 한 번 더 손을 번쩍 들어 흔드는 것도 잊지 않았다. 나는 작게 손을 흔들어 주며 나를 보고 있는 체육 선생님을 향해 살짝 목례를 하고 바로 몸을 돌렸다. 창피했다.
“하아...창피해.”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쫓기듯, 어질러져 있는 집안을 대충 청소했다. 그리고 시켜놓은 빨래까지 탁탁 털어서 잘 널어놓고 걷은 빨래는 솜씨 좋게 개는 것도 잊지 않고 제자리에 넣어놓았다. 집안일을 하는 도중에도 틈틈이 아까의 순간이 떠올라 창피하다는 말이 계속 입 밖으로 튀어나왔다. 아무리 생각해도 아까의 내 모습은 창피하기 짝이 없었다. 무릎 늘어난 트레이닝복에 슬리퍼는 다시 생각해도 너무했잖아.
대강 정리가 된 집안을 보고 물을 한 잔 마셨다. 습관적으로 본 시계는 1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벌써 12시. 잡생각에 빠질 시간도 없다. 아직 군데군데 빗자국이 보이는 토익 책을 펴고 틀린 문제를 다시 복습하기 시작했다. 이래서 언제 기업이 원하는 수준까지 올려놓지? 짧은 한숨이 나왔다.
그래, 나는 너무나도 흔한 취준생이었다. 문송합니다, 라는 말이 하루에도 수백 번씩 다가오는 그런 취준생. 나름 이름 있는 대학교에 나쁘지 않은 과를 괜찮은 성적으로 졸업했지만 여전히 취업에 실패하고 있는 중이었다. 토익 성적이 너무 낮고 자격증이 메리트가 없다는 이유가 컸다.
내 나름대로 노력 하고 있는 편이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락날락하는 취업 사이트. 일주일에 많게는 세 번까지 시간을 쪼개서 받는 자기소개서 첨삭. 가끔씩 오는 면접 전화에 알바도 쉬고 준비하는 모의 면접까지. 하루의 시간이 48시간이면 좋겠다고 요즘에는 절실히 생각하고 있을 정도였다.
“네, 사장님.”
[서인아. 오늘 갑자기 미안한데 한 시간만 일찍 나올 수 있을까? 사모님이 일이 있어서 오픈 준비 못 할 것 같아서 서인이 좀 도와줬으면 좋겠는데.]
“한 시간이면 네 시까지 말씀하시는 거 맞으시죠?”
[응. 나와 줄 수 있어?]
“네. 갈게요.”
[그래. 정말 고맙다. 좀 이따 보자.]
갑작스러운 알바 시간 조정에 조금 난감했다. 얼마 정리도 못한 것 같은데 벌써 3시였다. 부를 거면 조금만 일찍 불러주지, 불평이 튀어나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한 시간이라도 더 일하면 돈 더 받을 수 있었으니까 거기에 만족하기로 하자. 점심도 못 먹고 시간을 보낸 탓에 지금 일어서야 했다. 10시까지 버티려면 조금이라도 밥을 먹고 가야했다. 토익 책을 덮고 주변을 정리했다. 나머지는 갔다 와서 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