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행키’의 마음 일기
병원을 나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의 마음 일기
“병원이 아닌 곳에서도, 약물을 쓸 수 없는 곳에서도 마음 아픈 사람들을 위해자기 자신을 처방하는 사람, 저는 그런 의사이고 싶습니다.”
◎ 도서 소개
병원을 나와 마음 아픈 사람들을 찾아 나선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의 마음 일기
“누구에게 말도 못 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사람들을 위해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드리고 싶었습니다.”
누구는 그를 ‘정신 나간 정신과 의사’라고 부른다. 또 누구는 ‘돈키호테’라고 부른다. 일반인들은 물론 동종업계 종사자들의 눈에도 무모해 보이는 일에 덜컥 도전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흰 가운을 입고 병원에서 환자들을 만나던 정신과 전문의 임재영은, 2016년 초 병원을 그만두고 홀로 거리로 나선다. 자비로 구입한 중고 탑차를 몰고서.
그에게는 모험이 아니라 피할 수 없는 사명이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신병원 문턱을 넘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평균 18개월. 이미 중증이 된 대다수 환자를 만나면서 그는 무력감을 느꼈고, 이런 현실을 바꾸려면 의사인 자신이 병원에만 머무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정신질환과 정신병원에 대한 편견을 부수려면, 중증이 되기 전에 마음 아픈 환자들이 병원을 찾을 수 있으려면, 징검다리 역할을 할 누군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렇게 그의 상담 트럭 〈찾아가는 마음 충전소〉가 탄생했다.
이 책은 저자가 〈찾아가는 마음 충전소〉를 만들고 운영하며 겪은 좌충우돌 사건들과, 이전에 병원을 찾지 못하고 홀로 힘겹게 버티다 그곳을 찾은 사람들의 사연을 담은 ‘온 더 로드 다이어리’다.
“지금 나는 정신과 의사지만,
한때는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였다.”
저자 임재영은 병원을 나와 거리로 나서면서 스스로 ‘행키’라는 별명을 지었다. ‘행복 키우미’의 준말이다. 이 행키를 알파벳으로 적으면 ‘hanky’인데, ‘손수건(handkerchief)’의 준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그는 마음 아픈 사람들의 ‘행복을 키우는 사람’이자,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손수건 같은 존재이고자 한다.
그는 판단하는 의사보다는 공감하는 의사이고 싶고, 같이 울며 상대방의 눈물을 닦아주는 의사이고 싶어 한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 역시 마음의 병을 앓는 환자였기 때문이다. 의대에 입학해서 전문의가 될 때까지 그는 우울증을 지독히 앓은 사람이었다. 이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정신과 전문의가 되겠다는 꿈을 키운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그는 누구보다 환자를 대하는 태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이 역지사지라는 말에는 치명적인 함정이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입장 바꿔 생각해본다고
모두가 같은 감정, 같은 판단에 이르지는 않는다.”(P.139~140)
임재영은 스스로가 의사와 환자 사이에 있다고 자각하기에, ‘역지사지’라는 명분으로 의사로서 자만하지 않을까 늘 경계하며 마음 아픈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이 책에는 여러 상담 사례가 등장한다. 일자리를 찾지 못해 자살 충동에 시달리는 남자, 자폐증을 가진 아이를 ‘독박 육아’ 하는 어머니, 알코올중독에 빠진 대학생, 딸이 성폭행당한 후 절망에 빠진 어머니 등이다. 하지만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사례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허구다. 저자는 그것이 어렵게 속 이야기를 꺼내준 분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저자는 마음 아픈 사람들과의 약속을 지키려 한다.
마음의 배터리 잔량이 10퍼센트 아래로 떨어진 사람들을 위해,
인생이 적성에 안 맞는 사람들을 위해
속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하고 끙끙 앓고 있을 누군가를 찾아 임재영은 오늘도 길을 나선다. 그들이 용기 내어 내민 손을 잡아주기 위해, 홀로 힘겹게 버티는 외로운 마음을 알아채기 위해, 또 그들이 마음의 병을 얻기 전에 도움을 주기 위해. 그들의 속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이 되어 위로하기 위해. 이것이 그의 사명이다.
그는 선행이 유행처럼 번지길 바란다. 그가 누군가의 선행을 보고 따라 한 것처럼, 이 책을 읽고 행키의 여정을 알게 된 누군가가 주위의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손을 내밀어주길 소망한다.
◎ 책 속에서
정신과 공부를 하면서 나는 조금씩 달라졌다. 병을 앓고 있던 나(환자로서 나)는 병을 치료해보려는 나(의사로서 나)를 만날 수 있었다. 환자였던 내가 의사의 관점에서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된 것이다. 그러자 내 모습이 한심하고 못마땅한 것이 아니라, 안타깝고 안쓰러워 보였다. (p.13)
죽고 싶을 수 있다. 그럴 수 있다. 그럴 만해서 그런 것이다.
하지만 죽고 싶을 수 있다는 것이 죽어도 된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p. 15)
문제는 그녀가 ‘병을 얻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주변 사람들은 더 이상 그녀를 자신이 알던 사람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본인도 자신을 예전처럼 바라보지 못한다. 그러다 보면 정말로 다른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정신 건강을 잃고서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건강을 잃고서 건강할 때처럼 살 순 없겠지만, 건강을 잃었다고 해서 모든 것을 잃은 듯 살아서는 안 된다. 건강을 상실했다고 해서 더 많은 것들을 떠나보내며 상실감을 키울 필요는 없다. 가까운 사람들과 함께한 추억을 버린다거나, 나의 가치를 놔버리진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나’ 자신까지 잃어버리는 일은 어떻게든 막아야 한다. (p.25)
우리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노력도 괜찮은 일이지만, 우리 한계 안에서 최선을 다하려는 노력도 꽤 괜찮은 일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오늘’을 살아가려고 한다. 하루살이처럼 하루, 하루를 살아내려고 한다. (p.29)
사실 행복을 키우는 일은 정상이 어딘지 알 수 없는, 끝이 없는 산행과 같다. 하지만 그래서 오히려 좋은 점도 있다. 삶이 끝나는 날까지 지속 가능한 꿈이기 때문이다. 내 꿈은 행키다. (p.56)
힘들어도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사실이 이 일을 계속하게 해주었다. 지치긴 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일을 계속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그리고 나 혼자가 아닌, 우리가 함께 이 일을 하게 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거라고 믿는다. (p.81)
내 마음의 창을 여는 방법을 보다 명확하게 설명한다면,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거나 평가하기를 최대한 자제하는 것이다. 추측은 흰 도화지에 미리 밑그림을 그려놓는 것과 같아서 상대의 마음속 그림을 옮기는 데 방해가 된다. 밑그림을 먼저 그려버리면 거기에 맞게 상대의 마음을 끼워 맞추게 되고 만다. 또한 상대의 그림에 대해 ‘선이 삐뚤다’, ‘원이 찌그러졌다’라며 지적이나 평가하는 행위는 상대를 눈치 보게 만든다. 당연히 상대의 창문은 열리다 만다. 그래서 나는 평가는 최대한 후반부로 미룬다. 그 전까지는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 ‘당신을 알고 이해하고 공감하고 싶다’는 태도로 최대한 마음을 활짝 열어놓기만 한다. (p.87)
할머니가 우는 나를 보며 말씀하셨다.
“제가 이런 얘기를 하면 다른 자식들은 이제 그만하라고 하는데, 이제 잊으라고만 하는데, 선생님은 우시네요. 제 이야기 듣고 울어주시네요.” (p.94)
남들의 반응이나 평가에 신경을 쓸수록 탄탄한 자존감이 아니라 부실한 자존감이 키워진다. 남들을 의식하지 않을 순 없지만 문제는 신경을 쓰는 정도다. 남들의 인정에 목을 매는 사람은 허공에 자존감을 쌓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은 얼마 후 자신이 키운 것이 진정한(탄탄한) 자존감이 아니라 의존감 또는 집착이었음을 깨닫게 된다. (p.109)
“따님을 바라보는 어머님의 표정은 어떨까요?”
다소 뜬금없는 내 질문에 그녀는 당황했다.
“노심초사하는 표정이거나 아니면 죄책감에 빠진 표정? 어떨 것 같으세요?”
그녀는 잠시 눈을 감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정확히 표현할 순 없지만 아주 심란해요. 무겁고 어둡고 불편해요.”
“음…… 그럼 그런 엄마를 마주하는 따님 심정은 어떨까요?”
그녀는 한참을 침묵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숨이 막힐 것 같아요.”
그녀는 짧은 이 한마디를 내뱉고는 하염없이 울었다. (p.118)
우리의 생각은 말랑말랑해지기도 하고 딱딱해지기도 한다. 내가 처한 상황에 따라, 내 마음 상태에 따라 생각의 상태는 달라질 수 있다. 이 상담 사례처럼 인생 최악의 상황이라면, 그 어느 때보다 생각은 딱딱하게 굳어진다. 하지만 아무리 최악의 조건이더라도 해결책을 혼자 찾느냐 함께 찾느냐에 따라 결론은 달라질 수 있다. (p.122)
‘그만두고 싶어요’의 다른 말은
‘그만두기 싫어요’.
‘죽고 싶어요’의 다른 말은
‘죽기 싫어요’.
내 마음이
달리 말하는 것뿐이에요. (p.138)
잊는 것은 잃는 것과 같다. 잊으면 없는 것과 마찬가지니 곧 잃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부터는 우리가 가진 것들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가 가지지 않은 것들, 가지지 못한 것들에게 시선을 뺏기느라 우리가 가진 것들마저 뺏기지 않았으면 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진 모든 것들에 감사하는 첫걸음이다. (p.151)
인생 여행의 목적은 도착이 아니다. 죽음이 삶의 목적이 될 수 없는 것과 같다. 모든 여행의 목적은 과정 그 자체에 있다. 하루하루 쌓여가는 체험의 순간들에 있다. (p.1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