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조
① 대한민국은 民主共和國이다.
② 대한민국의 主權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널리 알려진 조문이다. 여기서 대한민국라는 국가공동체의 正體性을 규정하고 있다. 곧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
민주공화국 개념은, 民主主義와 共和主義가 결합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실은, 헌법 전문에 적시되어 있다.
그리고 共和國은, 국가공동체의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형태를 지칭한다. 과거의 王國은, 그 권력이 왕에게 있는 국가형태였다.
王政과 共和政의 근본적인 차이는, 주된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여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응당 그 주된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규정을 제2항에서 명시하고 있다.
제2조
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法律로 정한다.
②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在外國民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대한민국의 主權을 지닐 자격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요건은 중요하다. 따라서 엄정하게 法律로써 규정한다. 이는, 議會法律主義의 闡明이기도 하다.
법률을 만드는 집단이 議會다. 그리고 그 의회의 구성원을 선출하는 권리는 각 국민에게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회의 國會議員들이 법률을 제작한다.
그러한 법률로써 다시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통제한다. 이러한 法治主義의 순환적 구조에 의해 권력이 유지되고 존속되는 것이다.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韓半島와 그 附屬島嶼로 한다.
헌법 제3조는,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조항이다. 그래서 제3조를 살피면, 왜 法治主義에서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과정이 요구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문제에 있어, 제3조의 해석과 적용은 결정적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을 불법적으로 점유한 傀儡集團인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언제라도 收復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영토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半島史觀的 영토의식을 갖게 된 것은, 조선왕조의 事大主義에 의한 결과이다.
본래 韓民族의 영토는, 한반도와 만주대륙을 포함한 영역이며, 보다 확장한다면 중국대륙의 동부지역과 일본열도의 서부지역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무작정 우리의 역사적 영토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 지역을 현재 누가 점유하여 지배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와 만주대륙이며, 다만 국제정치적 질서를 좇아야 하므로, 현재적 지배를 인정한다고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본래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라고 한정하는 영토의식은 철저히 止揚되어야 한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이 조항은 제3조와도 연관을 갖는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반드시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前述하였듯이,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와 만주대륙을 포괄함을 유념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통일은 평화적 통일이다. 평화적이라는 의미는, 自由民主主義에 입각한다는 의미다.
자유민주주의는 自由主義와 民主主義의 결합 개념이다. 그런데 단지 물리적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화합적 화합을 넘어서서, 새로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진테제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放縱의 위험을 안고 있고, 민주주의는 多數決의 獨裁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한 위험을 법치주의로써 조화시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래서 대한민국헌법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根幹이기 때문이다.
以下 헌법에서는, 이러한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며,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한 정치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보수주의든 진보주의든 막론하고서,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諸般 행위가 헌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은 자명하다.
‘進步主義(Progressivism)’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旣得權에 대항하면서, 變革을 통해 공동체를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기존 사회체제의 유지를 추구하는 保守主義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보수주의의 경우, 혁명이 아닌 점진적 변화, 점진적 진보를 꿈꾸는 ‘온건한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 의미에서 진보주의의 반대 개념은 反動主義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널리 인식되는 바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적 구도로써 사회체제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상적으로 ‘사회적 질서 유지(安保)’와 ‘시장경제적 자유(資本)’를 추구하는 보수주의와 달리, 진보주의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자율성, 경제적 평등이라는 가치를 옹호한다.
다만 진보주의는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대성을 띠는 개념이다. 진보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사상이나 정치 집단이 있으며, 그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이념은 진보주의 이념이냐 보수주의 이념이냐가 달라질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진보주의였으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보주수주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사상에는, 共産主義, 社會民主主義, 民主社會主義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社會主義와 아나키즘, 다양한 형태의 集産主義, 女性主義, 生態主義, 左派民族主義, 解放神學, 民衆新學 등이 있으며, 이들 진보적 사상들을 社會自由主義, 環境主義 등과 더불어서 진보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나 ‘아나키스트’들은, 종종 進步主義를 自由主義左派(社會自由主義, 혹은 리버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며, 같은 맥락에서 일부 社會自由主義者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자나 아나키스트들은, 스스로의 사상을 진보주의라는 애매한 용어로 표현하는 것에, 대체로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進步(progress)’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사건과 역사가 더욱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樂觀主義的 가설에 기반한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은, 진보라는 개념은,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다는 상황파악을 저해하고, 사회가 결과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으로써, 자발적 결사와 개인의 자율성을 저해하며, 사람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이러한 시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우는, 民主主義에 대한 입장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를 일종의 고도로 진보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더라도,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옹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민주주의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배 체제에 영향력을 줄수 있다는 환상(지배에서 자유로의 진보를 향한다는 환상)을 심어줘서, 사람들이 직접적이고 자율적인 행동을 행사하는 것을 방해하고, 지배 자체에 대한 반역의 의지를 무마시키며, 국가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지배의 영속을 위한 환상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투표를 거부하며, 이를 장려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진보주의의 개념은, 지역마다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가령 진보 집권이 어려운, 보수적인 미국, 일본, 대한민국에서, 이념 상으로는 中道派에 속하는 자유주의는, 일종의 진보주의 이념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유럽권에서는 진보주의로 간주하지 않으며,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진보적인 남미국가들에게는 보수주의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주의적 정치세력은, 사회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중도좌파 정당인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생태주의 정당인 녹색당, 그리고 적잖은 群小政黨이 활동 중이다.
과거 극심한 매카시즘적 반공주의로 인해, 사회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크기 때문에, 대놓고 자신들이 사회주의자라고 표방하기보다는, 진보주의, 평등주의, 생태주의 등의 가치로써, 우회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더불어민주당’도 국제적으로 진보동맹에 참여하는 등, 일면 진보주의를 표방하기는 하나, 진보정당인 정의당, 노동당에 비하면 보수주의적이기 때문에, 진보주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많다.
정치계 외에 대한민국 개신교계에서도,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흔히 종교, 학문, 신학상 개방성, 사회 구원(社會參與), 진보적 정치이념, 에큐메니컬(敎會一致運動)을 주장하는 개신교도를 진보적 개신교도로 이해한다.
北美와 歐洲처럼 대중에게 쉽게 수용되지는 않지만,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는, 사회 모순을 변화와 개혁으로써, 서서히 해결하려는 이념을 지지하는 수많은 정당과 단체가 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社會主義를 비롯한 進步主義 운동이 활발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共産主義를 표방하는 소련 두 超强大國이 경쟁하는 冷戰 시대에 접어들었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면서, 左派 이념인 공산주의자들 뿐 아니라, 비공산계열 사회주의자, 심지어는 社會民主主義者들마저 공산주의자로 매도 당해 미국사회에서 매장되었다.
韓國戰爭 이후, 매카시즘 광풍이 잦아들면서, 이미 미국인들은 좌파, 사회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이 생겨, 완전히 전멸한다.
때문에 女性主義, 福祉, 世俗主義, 勞動者들의 권리 등을 비롯한 진보주의 이념들은, 당시 기준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중도우파 정당인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주장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社民主義를 포함한 사회주의는 일종의 정치적 禁忌이기 때문에, 경제적 自由主義를 제외한 자유주의는, 진보적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시애틀 의원에 사회주의 의원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남미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친미 독재정권들이 자유주의라는 명목 하에, 전혀 자유롭지 않게 반대파들을 탄압하며, 경제적 자유주의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졌다.
때문에 20세기 말, 남미 여러국가들이 민주화된 이후부터, 자유주의는 일종의 보수주의 이념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주의적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영국과 동유럽을 제외하고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함한 자유주의 이념은 中道主義 또는 중도우파 이념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적인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多黨制인 국가들이 많지만,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주의 정당들과, 사회주의 성향의 진보주의 정당들이 양당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印度에서는 국가나 지역에 수많은 정당이 있다. 인도의 공동 진보 연합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의지하는 진보 정치 단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공산주의가 본래 서양 진보주의 운동에서 주된 역할을 했던 개념에서 파생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보주의는 인도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데다가, 사회 수준에서 인도에서 활동하는 여러 좌파 정당은, 서양에서 사회변화와 발전을 추구한다고 간주할 만한 정책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카스트 제도와 관련한 정책은, 힌두 정통파에 지지를 호소하는 非進步黨보다 훨씬 진보스럽다.
북유럽에서는, 20세기 중반에 社會民主主義政黨들이 대개 인기를 얻으면서 유럽내에서 제일 진보적이며,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한 나라들이 되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주의가 아닌 보수주의 우파 정당들이 표방한다.
서독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마저 매카시즘 논리로 탄압한 미국과 달리, 일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하여, 反共主義의 선두에 서기도 하였다.
당시 서유럽에서 공산주의는 극단주의적 이념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비공산계열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주의 이념으로 평가받았다.
공산권 붕괴 이후에는, 반권위주의적 공산주의도 진보주의 이념이라는 시각이 많아졌다.
동유럽에서 진보주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원래 진보주의는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등 좌파적 이념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 반공주의를 외치며 자본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은, 대개 우파나 경제적 자유주의자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념을 진보주의로 표방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공산주의 국가로서, 소련은 계획경제, 복지 등 좌파적인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원래 좌파의 가치로 여겨졌던 가치와는 반대되는 양상을 띠는 부분도 많이 존재 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우파보다는 좌파적인 운동 영역이었던 환경·여성·반핵·인권 등의 문제가,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중도우파나 자유주의자들의 활동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공산당의 폭압적 지배로 인해, 좌파적 대안이 왜곡된 이들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의제들이 급진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유주의단체들이 진보주의 운동의 주축을 이루기도 한다.
특히 자유시장과 개방경제 등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世界化와 新自由主義의 이념은, 민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의 좌파의 경우는, 소련을 계승한 舊左派와 아나키스트나 평화주의자 같은, 소련체제에 저항하거나 러시아 붕괴 이후 등장한, 자유주의적인 신좌파로 나뉘었다.
구좌파는 주로 구시대적 체제를 옹호하며, 무기개발, 내셔널리즘 같은 가치를 추종하기 때문에 보수주의로 분류되며, 신좌파가 진보주의로 분류된다.
대개 右派는 保守主義나 國家主義, 左派는 進步主義나 平和主義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지만, 러시아나 舊共産圈 국가들은, 역사적 특성 때문에 좌파우파 개념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 러시아에서 보수주의는, 우파의 경우는 친푸틴주의자들, 통합 러시아당 지지자들을 의미하며, 좌파의 경우는 소련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반동주의자들을 의미한다.
반대로 러시아의 진보주의는, 우파의 경우 러시아 공화당-인민자유당처럼, 사회적으로도 동성애 합법화 등 진보적인 가치를 추종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경우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어느정도 國有化를 옹호하기는 하나, 권위주의에 반대하며, 평화주의, 생태주의를 옹호한다.
세계 각국의 상황을 본다면, 좌파 국가와 우파 국가의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우도 그러하다.
대체로 남한은 보수주의를 추종하고, 북한은 진보주의를 추종한다. 그런데 그러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 개념은, 原論的인 것이 아니라 時空間的으로 변화된 것이다.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轉移되거나 顚覆되기도 하고, 공간적인 地政學的 흐름에 따라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남북분단으로 그러한 상황들이 지극히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우선 남북통일이 실현되기 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원천적으로 마감될 수 없다.
그리고 설령 남북통일이 실현되더라도, 이제 역사적인 차원의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제기된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를 추종하며 살아내는 동안, 韓民族의 故土와 歷史를 상실해버린 상황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