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주의 정치철학, 수운 최제우, 안토니오 그람시

탁양현 | e퍼플 | 2019년 01월 11일 | EPU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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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소개

保守主義와 進步主義 그리고 大韓民國憲法


‘수운 최제우(1824~1864)’와 ‘안토니오 그람시(1891~1937)’는, 서로 30여년의 時空間的 差異를 갖는다.
최제우가 퇴장하고서, 한 세대쯤 지난 후 그람시가 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天地自然의 거대한 역사적 수레바퀴를 감안하다면, 거의 同時代를 체험했다고 해도 크게 그릇될 것은 없다.
進步는 退步와 대척되는 개념으로서, 발전적으로 나아간다는 의미다. 그러니 天地自然 안에서 ‘온 존재와 온갖 것’들은 죄다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최제우와 그람시를 통해 제시되는 進步主義라는 개념 역시, 지극히 相對的임을 유념해야 한다. 保守主義의 관점에서 對蹠的으로 분별할 때 진보주의인 것이지, 그러한 向心 자체는 지극히 본래적이며 자연스러운 것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우리 역사에서 ‘高句麗의 南下’라는 사건을, 어떠한 관점에서 보는가에 따라, 그 의미규정은 달라진다.
新羅나 百濟의 관점에서 본다면, 자기들의 세력권을 침략하는 행위로 인식할 것이다. 하지만 고구려의 관점에서 본다면, 대륙에서 세력을 다진 후, 해양으로 그 세력을 확장하는 행위로 인식할 것이다.
그런데 현대의 南韓人들은, 대체로 前者의 관점을 갖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것은 朝鮮王朝를 거치면서 형성된, 韓半島만이 우리의 영토라는 半島史觀 탓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고구려의 관점에서 역사를 인식하려는 노력이 요구된다. 신라나 백제와 마찬가지로, 고구려 역시 분명한 우리 韓民族 先祖들의 역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인식적 변화야말로, 진보주의적 사유방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존재가 살아내는 동안, 얼마만큼의 富貴榮華를 누릴 수 있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런 탓에, 누구라도 막연한 羨望을 지닌다. 그러다보면 지극히 유치하고 사소한 일에도, 死生決斷 하듯이 임하게도 된다. 그런 것이 인생이니까.
지난 시절에 필자 역시, 그러한 상황들을 여실히 체험했다. 특별한 利害가 연관되지 않는데도, 그저 자기보다 많은 것을 누린다고 판단되면, 어떻게든 빌미를 잡아 집단적으로 비난을 쏟아내던, 잔뜩 腐敗되어버린 눈빛들, 그런 눈빛들이 당최 잊히질 않는다.
‘니체’의 선언처럼, ‘인간은 극복되어야 할 무엇’일 따름임을 절감한다. 이러한 체험으로써, 필자에게 進步主義的 태도란, 天地自然 안에서 스스로/저절로 그러하게 淡然히 자기의 삶을 살아내는 일이 되었다. 그렇게 필자는 作家가 되었다.
필자로서는 當時가 回想되면, 무슨 까닭인지, 朝鮮王朝의 朋黨이라는 舊態的 ‘떼거리’ 정치와, 그에 얽힌 異端으로서 斯文亂賊이라 규정되어 排斥당한 尹?, 朴世堂, 丁若鏞 등이 연상된다.
또한 民主主義의 盲點인 多數決 獨裁에 의한 人民裁判 식의 作態도 그러하다.
민주주의라는 것이 어떠한 관점에서 활용되는가에 따라, 그것은 전혀 非民主的인 상황을 연출케 된다. 그러니 세월이 흐른 후에도, 그런 자들의 殘像으로서 기억되는 것은, ‘大衆 集團無意識’의 淺薄함과 殘酷함일 따름이다.
東西古今을 막론하고서, 集團共同體의 生來的인 정치적 태도는 保守主義인 것으로 가름할 수 있다. 이러한 정치적 태도를 지니는 것은, 어쩌면 人之常情이다.
제아무리 進步主義를 표방하더라도, 그러한 진보주의가 執權한 후에는, 이내 보수주의적 성향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정치권력을 중심으로 했을 때, 그것을 簒奪하는 순간까지의 진보주의는 가능하지만, 집권한 이후의 진보주의는 不可하다는, 역사적 사실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예컨대, 李成桂와 鄭道傳의 革命勢力은, 보수세력인 高麗王朝에 대하여 시대를 선도하는 진보세력이었다. 그래서 易姓革命을 실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집권하는 순간, 지극히 보수주의적인 정치적 태도를 드러낸다. 국제지향적이며 黃帝國으로서의 자긍심을 지키던 高麗王朝에 비한다면, 더없이 보수주의적인 態勢를 지닐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고서는, 금세 새로운 세력집단에 의해 政權을 찬탈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當代의 문제이며, 역사적 관점에서는 전혀 다른 評價가 내려질 수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현대의 대한민국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가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다.
保守主義는 미국과 일본을 爲始한 自由民主主義와 市場經濟를 이념으로 삼는다. 進步主義는 중국과 북한을 爲始한 ‘무언가’를 이념으로 삼는다. 그런데 그것이 현재로서는 不法하다는 비난에 처할 수 있으므로, 다소 침묵한다.
실상 남한의 진보주의가 추종하는 것은, 人民民主主義와 主體思想인 것으로 판단된다. 이는, 보수주의의 입장에서는 결코 납득될 수 없는 대목이다.
비록 동일한 이념을 추종한다지만, 일본에 대한 역사적 悔恨을 망각할 수 없는 것처럼, 남한의 상황에서 북한의 체제를 추종한다는 것은 당최 이해될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이렇게 단순히 정리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적 상황은, 단지 정치적 요인만으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우선 여기에는, 저 먼 古代로부터 이어지는, 역사적 요인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런데 역사적 요인은, 당최 明晳判明히 드러난 부문이 不在하다.
上古史는 五里霧中이며, 高麗史는 外勢가 왜곡하기 전에 조선왕조가 스스로 이미 철저히 왜곡해버렸고, 朝鮮史는 日帝에 의해 왜곡되어버렸다. 그리고 東北工程과 植民史觀에 의한 왜곡은, 여전히 ‘현재 진행중’이다.
역사적 요인은 이내 문화적 요인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예컨대, ‘우리 민족끼리’라는 슬로건에 대해 異見이 紛紛한 것이다. 과연 民族이란 무엇이며, 누가 민족이며, 어떻게 민족인지의 여부가, 현재에 이르도록 마땅히 밝혀진 바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경제적 요인이 가장 심각한 문제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이, 卓上空論 식의 말싸움쯤으로 마감될 수 있다면 크게 우려할 바 없겠으나, 이러한 대립은 경제적인 결과를 초래하기 마련이다.
경제라는 것은, 인간존재의 ‘生存의 利得’을 결정하는 분야이다. 이를 상실케 되면, 생명의 미래적 보장은 없다. 그래서 경제문제에 대해서는 어느 쪽도 결코 양보할 수 없는 것이다.
옷이나 집을 양보하는 것도 문제이지만, 그런 것은 나눠가질 수도 있다. 경제발전이 되면서 여벌의 잉여가 누적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밥의 문제는 전혀 그 성격이 다르다. 밥이란 것은,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존의 이득’이다. ‘三時 세끼’의 밥을 확보하지 못한다면, 生命(欲望)의 보장은 없다. 그러니 결코 양보할 수 있는 차원이 아니다.
양 측의 대립이 이러한 ‘밥의 영역(욕망의 영역)’을 건드리게 되면, 이내 ‘혁명적 충돌(戰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러한 상황을 불과 몇 해 전에 체험한 바 있다. 그래서 아무리 순한 개라도, 제 밥그릇을 건드리면 문다고 하지 않던가.
政治란, 공동체 구성원의 밥을 보장해 주는 것이 가장 급선무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그래서 人民의 밥(욕망)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政權은, 결국 권력을 빼앗기는 것이다.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에 있어, 그 準據가 되어줄 것이 필요하다. 바로 그것이 大韓民國憲法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어떠한 이론이나 논리이든, 대한민국헌법에 判斷尺度를 두어야 함이 마땅하다. 그런데 法律이라는 것은 言語로써 정립된 것이므로, 그것에 대한 해석과 적용이 문제가 된다.
언어라는 것이 분명히 공통하는 의미를 지정하기 위해 작동하는 것이지만, 그러한 목적을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의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는, 어떠한 논쟁일지라도 현재 시행되는 대한민국헌법에 그 준거를 둠이 타당하다.
그리고 법률의 해석과 적용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이익(國益)’을 목적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대사회에서 국가공동체는 인간존재의 생존에 있어 가장 바탕이 되는 토대이다. 현재 시행되는 대한민국헌법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大韓民國憲法 前文
悠久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大韓國民은, 3·1운동으로 건립된 大韓民國臨時政府의 法統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조국의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의 使命에 입각하여, 正義·人道와 同胞愛로써 민족의 단결을 공고히 하고, 모든 사회적 폐습과 불의를 타파하며, 자율과 조화를 바탕으로, 自由民主的 基本秩序를 더욱 확고히 하여,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각인의 기회를 균등히 하고, 능력을 最高度로 발휘하게 하며, 자유와 권리에 따르는 책임과 의무를 완수하게 하여, 안으로는 국민생활의 균등한 향상을 기하고, 밖으로는 항구적인 世界平和와 人類共營에 이바지함으로써, 우리들과 우리들의 자손의 안전과 자유와 행복을 영원히 확보할 것을 다짐하면서, 1948년 7월 12일에 제정되고, 8차에 걸쳐 개정된 헌법을, 이제 국회의 의결을 거쳐, 국민투표에 의하여 개정한다.

上記한 헌법 전문에는 유념할 대목이 여럿 있다. 우선 大韓國民이라는 개념이다. 이는, 말 그대로 大韓民國의 國民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각 개인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국민으로서, 生成的으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국민이란,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지위가 가장 우선되는 존재임은 말할 나위 없다.
대한민국의 역사적 토대로서, 3·1운동, 大韓民國臨時政府, 4·19민주혁명 등을 摘示한다. 그 이전의 역사는, 悠久한 역사와 전통이라는 표현으로써 가름하고 있다.
유구하다는 것은 멀고 오래되었다는 의미다. 그 멀고 오래됨은, 東夷文明(遼河文明)으로부터 始原하여, 古朝鮮, 夫餘, 高句麗, 統一新羅, 渤海, 高麗, 朝鮮王朝로 이어지는 역사를 뜻한다.
대한민국의 국민으로서 가져야 할 使命은, 民主改革과 平和的 統一이다. 南韓의 경우 민주개혁으로써 세계적인 民主化를 이루었으나, 北韓의 상황은 세계에서 최하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非民主的 상황에 있다.
이는, 평화적 통일이라는 사명과도 연관된다. 북한의 비민주적 상황을 해결해야 하는데, 그것은 평화적 통일에 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헌법에 명시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使命을 작동시킴에 있어, 이념적 토대가 되는 것은 自由民主的 基本秩序이다. 이는 곧 自由民主主義를 추종한다는 의미다.
여기서 유념해야 할 점은, 대한민국헌법이 모범으로 삼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라는 것이다. 온갖 형태의 民主主義가 있는 탓이다.
예컨대, 북한의 人民民主主義도 민주주의의 한 형태이다. 그러니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는 분명히 자유민주주의라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기회균등, 능력발휘, 세계평화, 인류공영, 안전, 자유, 행복 등의 개념들이 나열되어 있다. 이렇게 거대한 이상주의적 개념들을 열거하는 까닭은, 각 국민의 자유와 권리 그리고 책임과 의무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다.
그런데 실상 이러한 개념들은 지극한 理想들이다. 人類史에서 이러한 개념들이 동시적으로 충족되는 이상사회는 실현된 바 없으며, 향후에도 그러한 이상사회의 도래를 예견키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헌법에 적시된 理想主義를 현실세계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하는 現實主義가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의미다. 물론 헌법이 지향하는 이상사회를 실제적으로 실현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그러한 目的的 志向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다. 본래 理想鄕이란 실현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상상되기 위한 것임을 유념해야 한다.


-하략-

저자소개

제1조
① 대한민국은 民主共和國이다.
② 대한민국의 主權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는 널리 알려진 조문이다. 여기서 대한민국라는 국가공동체의 正體性을 규정하고 있다. 곧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는 것이다.
민주공화국 개념은, 民主主義와 共和主義가 결합된 것이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자유민주주의라는 사실은, 헌법 전문에 적시되어 있다.
그리고 共和國은, 국가공동체의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국가형태를 지칭한다. 과거의 王國은, 그 권력이 왕에게 있는 국가형태였다.
王政과 共和政의 근본적인 차이는, 주된 권력이 누구에게 있느냐의 여부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므로, 응당 그 주된 권력이 국민에게 있는 것이다. 그러한 규정을 제2항에서 명시하고 있다.

제2조
①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法律로 정한다.
② 국가는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在外國民을 보호할 의무를 진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되는 요건은, 대한민국의 主權을 지닐 자격이다. 대한민국의 국민이 아니라면, 대한민국이라는 국가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권리를 가질 수 없다.
그러므로 그 요건은 중요하다. 따라서 엄정하게 法律로써 규정한다. 이는, 議會法律主義의 闡明이기도 하다.
법률을 만드는 집단이 議會다. 그리고 그 의회의 구성원을 선출하는 권리는 각 국민에게 있다. 국민에 의해 선출된 의회의 國會議員들이 법률을 제작한다.
그러한 법률로써 다시 대한민국 국민의 자격을 통제한다. 이러한 法治主義의 순환적 구조에 의해 권력이 유지되고 존속되는 것이다.

제3조
대한민국의 영토는 韓半島와 그 附屬島嶼로 한다.

헌법 제3조는, 여러 의미가 중첩되어 있는 조항이다. 그래서 제3조를 살피면, 왜 法治主義에서 법률의 해석과 적용이라는 과정이 요구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
특히 북한의 문제에 있어, 제3조의 해석과 적용은 결정적이다. 이 조항에 따르면, 북한은 대한민국의 영토을 불법적으로 점유한 傀儡集團인 것으로 해석된다. 따라서 언제라도 收復되어야 할 대한민국의 영토인 것이다.
그런데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에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半島史觀的 영토의식을 갖게 된 것은, 조선왕조의 事大主義에 의한 결과이다.
본래 韓民族의 영토는, 한반도와 만주대륙을 포함한 영역이며, 보다 확장한다면 중국대륙의 동부지역과 일본열도의 서부지역까지 포괄한다.
그러나 무작정 우리의 역사적 영토만을 주장할 수는 없다. 그 지역을 현재 누가 점유하여 지배하고 있는가의 문제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와 만주대륙이며, 다만 국제정치적 질서를 좇아야 하므로, 현재적 지배를 인정한다고 인식해야 한다.
따라서 본래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라고 한정하는 영토의식은 철저히 止揚되어야 한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이 조항은 제3조와도 연관을 갖는다.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가 한반도 전체를 아우르기 때문에, 반드시 통일을 지향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前述하였듯이, 한민족의 영토가 한반도와 만주대륙을 포괄함을 유념해야 한다.
대한민국이 지향하는 통일은 평화적 통일이다. 평화적이라는 의미는, 自由民主主義에 입각한다는 의미다.
자유민주주의는 自由主義와 民主主義의 결합 개념이다. 그런데 단지 물리적 결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화합적 화합을 넘어서서, 새로이 자유민주주의라는 진테제라고 할 수 있다.
자유주의는 放縱의 위험을 안고 있고, 민주주의는 多數決의 獨裁라는 위험을 안고 있다. 그러한 위험을 법치주의로써 조화시키는 것이 자유민주주의다.
그래서 대한민국헌법이 중요한 것이다. 대한민국의 자유민주주의를 작동시키는 根幹이기 때문이다.
以下 헌법에서는, 이러한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권리와 의무를 규정하며, 그것을 작동시키기 위한 정치제도에 대해 구체적으로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이 개정되기 전에는, 보수주의든 진보주의든 막론하고서, 대한민국과 대한국민의 諸般 행위가 헌법을 기준으로 삼아야 함은 자명하다.

‘進步主義(Progressivism)’는, 기존 정치·경제·사회 체제의 旣得權에 대항하면서, 變革을 통해 공동체를 새롭게 바꾸려는 성향이나 태도를 말한다.
기존 사회체제의 유지를 추구하는 保守主義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쓰이는 경우가 많지만, 보수주의의 경우, 혁명이 아닌 점진적 변화, 점진적 진보를 꿈꾸는 ‘온건한 진보주의자’도 보수주의자라고도 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본질적 의미에서 진보주의의 반대 개념은 反動主義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널리 인식되는 바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대립적 구도로써 사회체제를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일상적으로 ‘사회적 질서 유지(安保)’와 ‘시장경제적 자유(資本)’를 추구하는 보수주의와 달리, 진보주의는 상대적으로 정치적 자율성, 경제적 평등이라는 가치를 옹호한다.
다만 진보주의는 시대적, 역사적 배경에 따라, 상대성을 띠는 개념이다. 진보로 분류할 수 있는 여러 사상이나 정치 집단이 있으며, 그 스펙트럼도 다양하다.
그렇기 때문에, 시대와 지역에 따라, 그 이념은 진보주의 이념이냐 보수주의 이념이냐가 달라질 수 있다. 그 시대에는 진보주의였으나, 세월이 흐른 후에는 보주수주의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현재 진보적인 것으로 인정받는 사상에는, 共産主義, 社會民主主義, 民主社會主義를 포함하는, 넓은 의미에서의 社會主義와 아나키즘, 다양한 형태의 集産主義, 女性主義, 生態主義, 左派民族主義, 解放神學, 民衆新學 등이 있으며, 이들 진보적 사상들을 社會自由主義, 環境主義 등과 더불어서 진보주의로 규정하기도 한다.
‘마르크스주의자’나 ‘아나키스트’들은, 종종 進步主義를 自由主義左派(社會自由主義, 혹은 리버럴)를 지칭하는 용어로 사용하며, 같은 맥락에서 일부 社會自由主義者들은, 스스로를 진보주의자로 규정하기도 한다.
이 때문에 공산주의자나 아나키스트들은, 스스로의 사상을 진보주의라는 애매한 용어로 표현하는 것에, 대체로 부정적인 자세를 취한다.

‘進步(progress)’라는 개념은, 오늘날의 사건과 역사가 더욱 나은 미래를 향해 나아간다는 樂觀主義的 가설에 기반한다.
그래서 아나키스트들은, 진보라는 개념은, 우리는 지금 이곳에 있다는 상황파악을 저해하고, 사회가 결과적으로 나아질 것이라는 환상으로써, 자발적 결사와 개인의 자율성을 저해하며, 사람을 수동적인 존재로 만든다고 비판한다.
아나키스트들 사이에서, 이러한 시각이 나타나는 대표적인 경우는, 民主主義에 대한 입장이다.
아나키스트들이 아나키를 일종의 고도로 진보한 민주주의라고 주장하더라도, 이것이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불리는 것을 옹호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나키스트들은, 민주주의가 사람들에게 그들이 지배 체제에 영향력을 줄수 있다는 환상(지배에서 자유로의 진보를 향한다는 환상)을 심어줘서, 사람들이 직접적이고 자율적인 행동을 행사하는 것을 방해하고, 지배 자체에 대한 반역의 의지를 무마시키며, 국가를 지속적으로 강화시킨다고 비난하는 경향이 있다.
이에 따라, 지배의 영속을 위한 환상을 거부한다는 의미에서, 투표를 거부하며, 이를 장려하는 주장을 하기도 한다.

진보주의의 개념은, 지역마다 크게 달라지기도 한다.
가령 진보 집권이 어려운, 보수적인 미국, 일본, 대한민국에서, 이념 상으로는 中道派에 속하는 자유주의는, 일종의 진보주의 이념으로 간주된다.
하지만 유럽권에서는 진보주의로 간주하지 않으며, ‘베네수엘라’를 비롯한 일부 진보적인 남미국가들에게는 보수주의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대한민국에서 진보주의적 정치세력은, 사회민주주의 혹은 사회주의 중도좌파 정당인 정의당, 민중당, 노동당, 생태주의 정당인 녹색당, 그리고 적잖은 群小政黨이 활동 중이다.
과거 극심한 매카시즘적 반공주의로 인해, 사회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크기 때문에, 대놓고 자신들이 사회주의자라고 표방하기보다는, 진보주의, 평등주의, 생태주의 등의 가치로써, 우회적으로 사회주의를 표방한다.
‘더불어민주당’도 국제적으로 진보동맹에 참여하는 등, 일면 진보주의를 표방하기는 하나, 진보정당인 정의당, 노동당에 비하면 보수주의적이기 때문에, 진보주의 정체성에 대한 논란이 많다.
정치계 외에 대한민국 개신교계에서도, 진보와 보수라는 말이 사용되는데 흔히 종교, 학문, 신학상 개방성, 사회 구원(社會參與), 진보적 정치이념, 에큐메니컬(敎會一致運動)을 주장하는 개신교도를 진보적 개신교도로 이해한다.
北美와 歐洲처럼 대중에게 쉽게 수용되지는 않지만, 아시아 대부분 지역에는, 사회 모순을 변화와 개혁으로써, 서서히 해결하려는 이념을 지지하는 수많은 정당과 단체가 있다.

미국에서는, 1940년대까지만 해도 社會主義를 비롯한 進步主義 운동이 활발했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미국과 共産主義를 표방하는 소련 두 超强大國이 경쟁하는 冷戰 시대에 접어들었다.
매카시즘 광풍이 불면서, 左派 이념인 공산주의자들 뿐 아니라, 비공산계열 사회주의자, 심지어는 社會民主主義者들마저 공산주의자로 매도 당해 미국사회에서 매장되었다.
韓國戰爭 이후, 매카시즘 광풍이 잦아들면서, 이미 미국인들은 좌파, 사회주의에 대한 극단적인 반감이 생겨, 완전히 전멸한다.
때문에 女性主義, 福祉, 世俗主義, 勞動者들의 권리 등을 비롯한 진보주의 이념들은, 당시 기준으로 사회주의자들이 아닌, 중도우파 정당인 미국 민주당과 자유주의자들이 어느 정도 주장하게 되었다.
현재까지 미국에서는, 社民主義를 포함한 사회주의는 일종의 정치적 禁忌이기 때문에, 경제적 自由主義를 제외한 자유주의는, 진보적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최근에는 미국 시애틀 의원에 사회주의 의원이 등장하기도 하였다.

남미에서는 20세기 중후반, 친미 독재정권들이 자유주의라는 명목 하에, 전혀 자유롭지 않게 반대파들을 탄압하며, 경제적 자유주의로 인해 사회적 양극화가 심해졌다.
때문에 20세기 말, 남미 여러국가들이 민주화된 이후부터, 자유주의는 일종의 보수주의 이념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주의적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영국과 동유럽을 제외하고는, 경제적 자유주의를 포함한 자유주의 이념은 中道主義 또는 중도우파 이념으로 평가받으며, 사회주의나,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적인 이념으로 평가받는다.
현재 유럽의 대부분의 국가들은 多黨制인 국가들이 많지만,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주의 정당들과, 사회주의 성향의 진보주의 정당들이 양당을 이루고 있는 경우가 많다.

印度에서는 국가나 지역에 수많은 정당이 있다. 인도의 공동 진보 연합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 의지하는 진보 정치 단체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공산주의가 본래 서양 진보주의 운동에서 주된 역할을 했던 개념에서 파생되지 않았다.
그렇기에 진보주의는 인도에서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데다가, 사회 수준에서 인도에서 활동하는 여러 좌파 정당은, 서양에서 사회변화와 발전을 추구한다고 간주할 만한 정책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의 권리, 노동자의 권리, 카스트 제도와 관련한 정책은, 힌두 정통파에 지지를 호소하는 非進步黨보다 훨씬 진보스럽다.

북유럽에서는, 20세기 중반에 社會民主主義政黨들이 대개 인기를 얻으면서 유럽내에서 제일 진보적이며, 사회보장제도가 탄탄한 나라들이 되었다.
그래서 북유럽에서 자유주의는, 진보주의가 아닌 보수주의 우파 정당들이 표방한다.
서독과 프랑스를 비롯한 서유럽 국가들은, 사회민주주의마저 매카시즘 논리로 탄압한 미국과 달리, 일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보수주의자들과 타협하여, 反共主義의 선두에 서기도 하였다.
당시 서유럽에서 공산주의는 극단주의적 이념으로 평가받았기 때문에, 비공산계열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주의 이념으로 평가받았다.
공산권 붕괴 이후에는, 반권위주의적 공산주의도 진보주의 이념이라는 시각이 많아졌다.
동유럽에서 진보주의는 기준이 명확하지 않다. 원래 진보주의는 사회자유주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등 좌파적 이념을 말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과거 반공주의를 외치며 자본화를 위해 투쟁했던 사람들은, 대개 우파나 경제적 자유주의자에 속하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념을 진보주의로 표방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는 과거 소련 공산주의 국가로서, 소련은 계획경제, 복지 등 좌파적인 정책을 추진하였지만, 원래 좌파의 가치로 여겨졌던 가치와는 반대되는 양상을 띠는 부분도 많이 존재 하였다.
때문에 이러한 상황에서, 우파보다는 좌파적인 운동 영역이었던 환경·여성·반핵·인권 등의 문제가, 러시아에서는 오히려 중도우파나 자유주의자들의 활동 영역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과거 공산당의 폭압적 지배로 인해, 좌파적 대안이 왜곡된 이들 국가들에서는, 자유주의적 의제들이 급진적 성격을 갖는 경우가 많으므로, 자유주의단체들이 진보주의 운동의 주축을 이루기도 한다.
특히 자유시장과 개방경제 등으로 상징되는, 경제적 측면에서의 世界化와 新自由主義의 이념은, 민중들에게 자연스럽게 진보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다.
한편 러시아의 좌파의 경우는, 소련을 계승한 舊左派와 아나키스트나 평화주의자 같은, 소련체제에 저항하거나 러시아 붕괴 이후 등장한, 자유주의적인 신좌파로 나뉘었다.
구좌파는 주로 구시대적 체제를 옹호하며, 무기개발, 내셔널리즘 같은 가치를 추종하기 때문에 보수주의로 분류되며, 신좌파가 진보주의로 분류된다.
대개 右派는 保守主義나 國家主義, 左派는 進步主義나 平和主義를 표방하는 경우가 많지만, 러시아나 舊共産圈 국가들은, 역사적 특성 때문에 좌파우파 개념으로 보수와 진보를 나누지 않는 경우가 많다.
현재 러시아에서 보수주의는, 우파의 경우는 친푸틴주의자들, 통합 러시아당 지지자들을 의미하며, 좌파의 경우는 소련시대로의 회귀를 주장하는 반동주의자들을 의미한다.
반대로 러시아의 진보주의는, 우파의 경우 러시아 공화당-인민자유당처럼, 사회적으로도 동성애 합법화 등 진보적인 가치를 추종하면서, 신자유주의를 추구하는 경우가 많다.
좌파의 경우는 신자유주의에 반대하고, 어느정도 國有化를 옹호하기는 하나, 권위주의에 반대하며, 평화주의, 생태주의를 옹호한다.

세계 각국의 상황을 본다면, 좌파 국가와 우파 국가의 상황은 정반대로 진행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남한과 북한의 경우도 그러하다.
대체로 남한은 보수주의를 추종하고, 북한은 진보주의를 추종한다. 그런데 그러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 개념은, 原論的인 것이 아니라 時空間的으로 변화된 것이다.
역사적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보수와 진보가 轉移되거나 顚覆되기도 하고, 공간적인 地政學的 흐름에 따라 그러한 변화가 발생하기도 한다.
대한민국의 경우, 남북분단으로 그러한 상황들이 지극히 복합적으로 진행되는 특수한 경우라고 볼 수 있다. 그러니 우선 남북통일이 실현되기 전에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원천적으로 마감될 수 없다.
그리고 설령 남북통일이 실현되더라도, 이제 역사적인 차원의 보수와 진보의 문제가 제기된다.
역사적으로 보수주의나 진보주의를 추종하며 살아내는 동안, 韓民族의 故土와 歷史를 상실해버린 상황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기 때문이다.


-하략-

목차소개

▣ 목차




序說: 保守主義와 進步主義 그리고 大韓民國憲法

제1장. 수운 최제우
1. 東學 創始者 崔濟愚
2. 西學에 對한 東學
3. 求道의 길을 걷다
4. 末世가 된 朝鮮王朝
5. 東學의 敎勢가 성장하다
6. 左道亂正之律로써 처형당하다
7. 侍天主, 事人如天, 人乃天
8. 海月 崔時亨
9. 至氣今至, 願爲大降, 侍天主, 造化定, 永世不忘, 萬事知.
10. 後天開闢
11. 국제정치적 상황의 惡化
12. 甲午農民戰爭과 淸日戰爭
13. 동아시아의 新興宗敎
14. 東學의 信仰的 특징
15. 東學의 思想的 특징
16. 東學과 天主敎
17. 東學과 3·1운동
18. 黃玹의 東學 비판
19. 東學革命
20. 東學의 敎團
21. 守心正氣
22. 東學歌辭
23. 龍潭遺詞
24. 龍潭劍舞
25. 神?體驗
26. 평등사상과 생명사상
27. 개벽사상과 근대화운동
28. 侍天主

제2장. 안토니오 그람시
1. 가난한 집안의 病弱한 障?人 ‘그람시’
2. 進步主義者의 資質과 與件 속에서 성장하다
3. 노동운동에 매진하다
4. 이탈리아 공산당을 창당하다
5. 파시즘과 나치즘
6. ‘조르주 소렐’과 ‘베니토 무솔리니’
7. 民族主義와 國家主義
8. 人種主義와 社會進化論
9. 民族主義的 全體主義
10. 파시즘의 시대
11. ‘영웅 이미지’에 의한 파시즘
12. 국제정치적 상황과 파시즘
13. 파시즘은 보수주의와 진보주의를 모두 부정한다
14. 北韓은 파시즘과 개인숭배의 결합체제이다
15. 파시즘은 集團的 結束을 의미한다
16. 각국의 파시즘 등장 배경
17. 國家가 최상의 價値다
18. 파시즘은 集團의 獨裁이기 십상이다
19. 資本主義的 利潤과 社會主義的 統制
20. 파시즘은 資本主義的이다
21. 政經癒着은 현대의 파시즘이다
22. ‘10월 維新’과 파시즘
23. 네오파시즘과 軍部獨裁의 경제발전
24. 나치즘은 파시즘과 人種主義의 결합이다
25. Utopia와 Dystopia
26. 人種主義와 Nietzsche의 Ubermensch
27. 나치즘은 ‘大衆 集團無意識’을 煽動했다
28. 파시즘과 나치즘의 뿌리는 基督敎다
29. 이탈리아 공산당의 실권을 장악하다
30. 감옥에서 사망하다
31. ‘그람시’의 ‘獄中手稿’
32. ‘hegemony(覇權)’ 개념을 제시하다
33. 교육을 통하여 反문화를 확산시켜야 한다
34. 레닌주의를 재발견하다
35. ‘부하린’과 ‘크로체’를 비판하다
36. 서유럽의 ‘프롤레타리아 혁명’ 전략
37. 市民社會를 대상으로 하는 혁명 전략
38. ‘大衆 集團無意識’을 선동하는 전략이 요구된다
39. 현대 공산주의 이론에 대한 ‘그람시’의 공헌
40. ‘그람시’의 진보주의 이론
41. 市民社會와 政治社會
42. ‘헤겔’과 ‘그람시’
43. 이데올로기는 ‘大衆的 信念’의 필연적 반영이다
44. 後代의 ‘그람시’主義者들
45. ‘그람시’의 統合國家(integral state)
46. 헤게모니의 정치적 특성
47. ‘그람시 政治哲學’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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