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제1장. 주자철학 일반
제2장. 주자철학 총론
제3장. 주자철학 각론
이는, 고려 말의 사상적 전환과정에서 주자학을 수용하고, 그것을 시대적 지도이념으로 지향하여, 유교진흥책을 시도하고자 하였던 安珦(1243∼1306)의 사상적 특성에 대해 분석하고 재조명하고자 함이 목적이다.
무신란 이후, 고려 말에 이르는 사회적?경제적 상황은, 긴장과 혼란이 점철되는 위기적 상황이었다.
이러한 시기에, 안향은 주자학을 도입하여 사회의 폐단을 지적하고, 개혁하기 위한 노력을 시도하게 된다.
당시의 타락한 세속불교에서도, 그리고 무기력한 관인이나 퇴폐적인 문인으로서도, 현실을 개혁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氣風을 구하기 어려웠다.
여기서 불교로부터 유학으로, 사장의 말폐로부터 경학의 근본정신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유학의 중흥운동이 일어난다.
안향에 의하여 소개된 주자학은, 백이정과 이제현 등을 거치면서, 점차 폭 넓게 연구된다.
이러한 신진사류들의 현실적 요구가 동기가 되어, 결국 안향에 의하여 수용된 주자학이 크게 성행된다.
당시 불교계의 부패와 타락, 그리고 유학계의 쇠퇴에 회의를 느끼고 있던 학자들에게, 주자학은 마침내 관심을 받기에 큰 어려움이 없게 되었고, 이념적 지주로서 자리 잡게 된다. 晦軒 安珦의 朱子學 수용과 성격, 정성식, 동방학.
여말선초 주자학의 전개과정에 대한 일반적인 이해는, 지나치게 단순하거나 획일적이다.
대부분의 관점은, 그 전개과정을 과도기 유학과 사화기 유학의 2단계로 구분하거나, 주자학의 수용ㆍ양반사회의 통치이념화ㆍ도덕적 성격의 형성이라는 3단계로 구분하고, 그 특징을 논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들은, 고려 말 주자학 도입의 당위성이나, 여말선초 주자학의 전개과정에서 나타나는 주자학 이해의 질적 전환, 그리고 훈구파와 사림파의 성격과 퇴계학의 등장배경 등에 대한 적절한 설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이 시기의 주자학 전개과정을 도입기ㆍ분화기ㆍ대립기ㆍ전환기의 4단계로 구분함으로써, 기존의 시각에서 설명되지 못하였던 각 시기별 특징이나 문제의식뿐만 아니라, 그 지향점을 보다 분명하게 확언하고 있다.
이렇게 4단계로 여말선초 주자학의 전개과정을 개괄할 때, 이 시기 주자학은 윤리규범학 또는 정치적 이념으로부터, 인간과 우주 그리고 정치적 이념의 토대를 해명하는 철학으로 전환되는 과정이었다고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여말선초 주자학의 전개과정은, 단순히 조선주자학 성립의 전단계, 혹은 소화기 정도로 치부될 수 없는 중요한 의미를 함축하고 있으며, 조선주자학의 본질적 특정과 그 지향점을 결정한 중요한 시기라는 점이 확인된다. 麗末鮮初 朱子學의 전개과정과 시기별 특징, 김기주, 양명학.
이는, 晦齋 李彦迪의 經學思想에 대한 硏究이다. 大學章句補遺, 續大學或問, 中庸九經衍義를 중심으로, 朱子의 大學, 中庸 註釋과 比較하여, 晦齋의 經學思想을 考察하고, 經學史的 意義 및 朝鮮朝 儒學思想과의 관계를 흐름을 糾明하는 것이 硏究 目的이다.
生涯와 時代的 背景에서는, 그의 학문과 思想, 시대적 背景과 晦齋의 現實認識을 살펴보았다.
晦齋는 점필재의 門人인 外叔 孫仲敦을 쫓아, 양산·김해·상주 등지를 다니면서 修學하였다.
中宗 9年(1514) 文科에 及第한 후, 司憲府 持平을 거쳐 司諫에 임명되었다.
그러나 이 때 金安老의 再登用을 반대하다가 官職에서 물러났으며, 金安老 死後 다시 벼슬이 弘文館 부교리를 거쳐 直提學에 이르렀으며, 中宗 末年에 이르기까지 20여년간은, 그의 생애중 가장 활발한 정치활동을 펼친 시기였다.
그러나 乙巳士禍의 여파인 良才驛 壁書事件에 연루되어, 江界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일생을 마쳤다.
江界로 유배된 晦齋는, 세상을 떠나는 明宗 8년까지 약 6년 동안 그곳에서 學問과 硏究에 몰두하였다.
晦齋는 유배지에서 여러 가지 어려움도 있었지만, 학문연구 및 저술에 노력을 기울여 大學章句補遺를 완성하였고, 奉先雜義 求仁錄과 進修八規를 완성하였다.
또 中庸九經衍義의 저술을 구상하여, 집필 중에 병사함으로 그 完成을 보지 못하였다.
大學 註釋에 대한 比較 考察에서,는 朱子의 大學 改訂과 解釋의 입장을 밝히고, 晦齋의 大學章句補遺를 分析하여, 大學 註釋의 특징을 비교 고찰하였다.
晦齋는 大學章句補遺와 續大學或問에서, 朱子의 大學章句를 비판적으로 수용하여, 大學의 本義를 밝히려고 노력하였다.
그는 朱子의 大學章句의 編次를 부정하고, 經文에 속하였던 知止, 物有 두 節을 위치를 바꾸어 格致傳文으로 삼았으며, 聽訟 節을 經文의 結語로 옮겨, 經1章과 傳9章으로 하였다.
그의 格物致知說은 至近한 것과 人倫을 근본으로 하여 전개함으로써, 인간중심의 格致說을 주장하였다.
中庸 註釋에 대한 比較 考察에서는, 中庸의 成立과 特徵, 漢·唐 儒家와 朱子의 中庸 解釋의 입장을 밝히고, 晦齋의 中庸九經衍義를 分析하여, 中庸 註釋의 특징을 비교 고찰하였다.
晦齋는 中庸 一篇을 帝王의 爲政之書로 파악하고, 中庸九經衍義를 著述하여, 儒敎의 理想國家를 실현하려고 하였다.
中庸九經衍義의 編次를 독창적으로 재해석하여, 總論爲治之道, 爲天下國家之本, 爲天下國家之要로 나누었으며, 經世의 根本이 修身에 있고, 九經 중에 尊賢·親親 의 두 가지를 帝王爲治之本이라고 규정하였다.
晦齋는 國家의 興亡盛衰가 君主가 지닌 마음의 正·不正에 연유되므로 敎化의 중요성을 인식하였고, 君主의 어진 德을 통하여 仁政을 강조하는 實踐的 학문을 확립하였다.
따라서 그의 經世論은, 君主의 마음을 다스리는 學問으로 발전하였고, 退·栗의 聖學으로 전개 발전하였다.
經學史的 意義에서는, 朝鮮朝 經學思想과 後代의 評價, 晦齋의 經學史的 意義를 밝혔다.
大學章句補遺와 續大學或問은 大學에 대한 自身의 見解를 披瀝하고 있어서, 그의 經學思想을 把握하는 데 가장 重要한 資料가 되고, 中庸九經衍義에서 大學을 修己之學는 中庸을 爲治之學으로 認識하고 있으며, 이는 退溪의 聖學十圖와 栗谷의 聖學輯要의 형성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으며, 조선 중기 이후, 性理學이 心性論을 중심으로 展開되는 학문적 계기와 기반을 조성하였다고 할 수 있다. 晦齋 李彦迪의 經學思想 硏究 : 朱子의 『大學』『中庸』 註釋과의 比較를 通하여, 조창열, 성신여자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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