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세대에 전하고 싶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다음 세대가 묻다
“다른 사람의 말만 들어주면 결국 내 손해 아닌가요?”
서정록이 답하다
“어리석은 사람은 눈에 매달리고 지혜로운 사람은 귀로 듣습니다. 깊게 듣기 시작할 때 우리는 진정한 행복과 공존을 꿈꿀 수 있을 것입니다.”
각계 명사에게 ‘다음 세대에 꼭 전하고 싶은 한 가지’가 무엇인지 묻고 그 답을 담는 인문교양 시리즈 ‘아우름’의 서른세 번째 주제는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듣기’의 지혜를 배우는 것이다.
“영혼은 의식을 갖고 있는 귀
우리는 그 귀를 통해 영혼의 이야기를 듣는다
그 소리는 우리가 안으로 귀 기울일 때만 들린다”
? 에밀리 디킨슨
현대사회가 회복해야 하는 가치, '듣기'
우리를 둘러싼 모든 세계와의 공존, 균형 그리고 조화를 위한
아름다운 듣기의 비밀
현대사회의 가장 지배적인 감각은 ‘보는 것’이다. 우리의 눈은 24시간 새로운 정보를 쫓느라 쉴 틈이 없고, 머릿속은 어지러운 정보들로 가득하다. 늘 온라인 공간에 접속해 있고 누군가와 연결되어 있다. 이른바 ‘초연결 사회’ 속에서, 아이러니하게도 현대인들은 더욱 고립되고 외롭다. 우리는 때때로 수많은 정보 속에서 길을 잃지만, 침착하게 숨을 고르고 자신의 방향을 되짚어 보기란 쉽지 않다. 빠른 속도로 변하고 달려가는 사회 속에서 멈추는 순간, 낙오자 혹은 패배자로 남겨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최근 서구 사회에서는 소리, 듣기에 높은 관심이 쏟아지고 있으며, 글로벌기업의 세계적인 CEO들은 명상, 마인드풀니스 등을 통해 탄력성을 회복하고 진정한 휴식을 취하고자 한다.
저자 서정록은 동서양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듣기’의 비밀에 대해 천착해왔다. 이 책은 단순한 음성 언어를 듣는 소극적인 차원의 ‘듣기’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둘러싼 모든 세계와 들리지 않는 자기 내면의 소리에 이르기까지 넓은 의미의 듣기에 대해 성찰한다. 지각/감각적인 차원에서 나아가 듣기의 본질적인 가치와 의미에 대해 탐구하며 인간을 둘러싼 다양한 존재들과의 조화와 균형, 평화로운 공존을 위한 아름다운 듣기의 순간을 탐색하고자 한다. 이 책은 동서양과 시대를 아우르며 듣기에 관한 모든 지혜를 집대성했다. 인디언의 태교에서부터 초기 불교, 성경, 샤머니즘의 듣기 등 세상의 모든 듣기 문화와 소리와 음악까지 듣기의 힘을 규명함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진짜 귀 기울여야 할 것에 대한 성찰을 유도한다.
우리는 눈을 통해 세상으로 나가고
세상은 귀를 통해 우리 안으로 들어온다
현대사회가 잃어버린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듣는 것’이다. ‘듣는다’는 행위는 감각의 영역을 넘어 세계와 ‘내’가 관계 맺는 방식이며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관이다. 신비함을 뜻하는 영어의 ‘mystic’은 ‘눈을 감다’를 의미하는 그리스어 ‘myein’로부터 왔다고 한다. 눈을 감는다는 행위가 신비로 들어가는 문을 의미하는 것이다. 수피교의 예언자들은 모두 장님이었고, 델피신전의 여사제 피티아 그리고 트로이의 카산드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눈을 감는 대신, 온 마음을 귀에 실어 들었을 것이다. 그렇게 자기 내면으로, 소리의 세계로 들어갔다. 24시간 깨어 있는 귀는 세상의 모든 소리를 잡아 내 안으로 들여온다. 그렇게 귀는 나의 내면과 우주를 연결시킨다. 그리하여 침묵과 듣기는 우주와 자연 속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올바른 관계를 맺는 토대라고 할 수 있다. 소리를 무심하게 듣게 되면 단순한 소음에 불과하지만, 마음을 실어 듣게 되면 소리 뒤에 있는 존재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 상대방의 마음을 읽으려면 먼저 내 마음을 열고 그 소리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서 인디언들은 귀를 가리켜 마음을 열어 자신의 존재를 내주는 것이라고 말한다. 침묵과 듣기를 잃는 순간,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물질에 이끌리고 나를 앞세우고 남을 지배하려고 한다. 상대방 말을 듣기보다 내 이야기를 하고 싶어 한다. 그래서 사람들이 모인 곳은 언제나 소란스럽다. 그런 자리에는 주장만 있을 뿐 지혜가 들어설 틈이 없다. 저자는 바로 여기에 현대 문명의 비극이 있다고 지적한다. 지혜가 없는 문화는 죽은 문화라는 것이다.
귀를 내면의 세계와 연결되는 초월적 감각으로 본 것은 불교 사상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반야심경》에서는 ‘듣는 자신의 일체의 마음’을 듣는다면 최상의 도에 이를 것‘이라고 했다. 여기서 일체의 마음을 듣는다는 것은 소리 너머에 있는 마음을 듣고 보고 맛보고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불교에서는 오감뿐 아니라 의식 역시 감각 기관이라고 여겨 육근이라고 하는데 육근 중에서도 듣기가 깨달음에 이르는 가장 쉬운 길이라고 한다. 귀는 인간의 집착으로부터 가장 자유롭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를 길러내는
촘촘한 관계망을 짜는 일
무한경쟁 사회에서 아이들은 자신이 세상에 들고 온 자신의 ‘선물’이 무엇인지 알기 어렵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초등학생들이 꼽은 부동의 장래희망 1위는 공무원이었다. 사회적 안전망이 없는 대한민국에서 아이들은 자신의 능력이나 소질, 흥미 등을 탐색할 여지도 없이 시스템에 편입하기를 원한다. 청소년 시기의 장래희망은 그 시대의 가장 이상적인 가치와 목표를 드러낸다. 아이들에게 도전하고 실패할 여지가 우리 사회에는 없다.
저자는 이런 시대일수록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이 자신의 가족과 이웃,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모른다면 행복할 수 없다. 모든 일이 시시하고 덧없게 느껴진다. 심지어 ‘내가 왜 사나’ 싶은 절망감마저 들 수 있다. 어른들은 인내심을 갖고 그들의 말을 들어야 하며 그들의 말을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언제나 아이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격려해야 한다. ‘한 명의 아이를 키우는 데 온 마을이 필요하다’는 말처럼 부모뿐만 아니라 이와 관계된 모든 사람이 노력해야만 한다. 학교, 이웃, 친척 등 아이를 둘러싼 모든 이들이 함께 아이를 길러내는 감각을 키워야 한다. 서아프리카 다가라 마을의 영적 지도자, 소본푸 소메는 “선의로 뭉쳐진 공동체의 ‘통합된 관여’만이 촘촘한 관계의 그물망을 짜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고 말했다. 이런 관계망을 통해 아이들의 세계관과 지식은 확장된다. 여기서 비로소 우리는 알 수 있다.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결국 다음 세대를 잘 길러내기 위한 길이라는 것을. 다가라족 사람들은 우리의 선의와 관용 그리고 진실을 시험하기 위해 이 세상에 아이가 온다고 여겼다. 옛 인디언의 오래된 지혜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 한 명의 아이를 구원하는 것이 우리의 세상을 구원하는 일임을 잊지 않기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