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장. 王守仁의 陽明學
1. 主觀的 觀念論者 王陽明
王守仁(1472~1528)은, 중국 明나라의 정치인이고 교육자이며 사상가이다. 陽明學의 창시자이며, 心學의 集大成者로 꼽힌다. 號는 陽明, 字는 伯安이다. 明代(1368~1661) 中期의 대표적 철학자로서, 정치가이며, 주관적 관념론자이다.
明나라 초기에는 朱子學이 지배적이었는데, 이에 대해 그는 독자적인 儒學思想을 내세우고, 특히 陸象山의 사상을 계승하였다. 그의 사상은 知行合一, 靜座法, 致良知 등을 원리로 하는데, 이것들은 또한 그의 사상 발전의 단계를 가리키기도 한다.
그의 사상을 통해 일관하고 있는 것은, 物의 理, 즉 우리의 마음이며, 우리의 마음 이외의 곳에서는 그것을 찾을 수 없다고 하는 말에서 보이는 바처럼, 心卽理라는 주관적 관념론의 입장이다.
2. 王陽明과 陸象山
陽明學을 불러일으킨 陸九淵(1139~1192)은, 중국 南宋의 사상가이다. 字는 子靜, 號는 象山, 諡號는 文安이다. 撫州 金谿縣(江西省) 사람으로, 兄인 九韶와 함께 학문으로써 이름을 남겼다. 1172년(乾道 8년) 진사시험에 합격한 후, 지방관으로 종사하면서 자제교육에 종사했다.
陸象山 사상의 특색은 心卽理이다. 그에게 있어서의 理는, ‘천지가 천지여야 할 것’으로서, 그 입론의 기초는 宋代의 다른 사상가와 다른 바가 없다. 그런데 理는 어디에 있는가, 어떻게 파악하느냐 하는 점에 있어서는, 北宋 이래 개개의 사상가에 따라서, 논리의 입증이 달랐다.
그것은 주로 그와 같은 존재의 窮極者(존재를 존재로 하는 것)와 ‘나’인 주체와의 관계에 있어서, 경향을 달리했던 것이다. 陸象山은 이에 대해서, 마음(心)은 一心이며, 理는 一理이다. 이 心은 이 理여서, 둘로 나뉘어 있는 一은 없다고 말하고, 우주 안의 一은 자신의 分內의 一이며, 자신의 분내의 一은 우주 안의 一이라고 했다.
다시 사람의 心은 지극히 靈(뛰어나다)하고, 이는 지극히 분명하다. 사람은 모두 이 心을 가졌고, 心은 모두 이 理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이는 朱子가 格物致知論에서 주장한, 一物에 一理가 있고, 事事物物의 理를 밝힘으로써 만물의 일리를 얻는다는 논리와는 다르다.
3. 陸象山의 心卽理
陸象山의 理는 사물에 내재하는 것이 아니고, 그와 같은 존재의 理는, 그것을 그것이라고 조정하는 바, 나의 마음 속에 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나의 마음이 理 그것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존재를 존재하게 하는 것, 즉 理는 내 마음의 理라고 하여, 心卽理를 설파한 것이다. 따라서 이 一心이 만물의 理이기 때문에, 나의 마음에는 여하한 물건도 부가할 필요가 없고, 마음을 가리고 있는 惡弊만을 제거하면 된다.
그래서 독서 강학이라든지 사색 등도 도리어 유해하다고 한다. 그의 유명한 “六經은 나의 註脚에 불과하다”는 말은, 이러한 사고방식에서 나온 것이다.
太極圖說을 둘러싼 朱子와의 논쟁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었다. 朱子가 陰陽二氣와 道를 形而上下로 나누고, 無極이면서 太極인 것을 道, 즉 理라고 한 데 대하여, 象山은 無極은 老子의 말이니, 易의 太極이라는 말로 족하다고 하였다.
즉, 易에서 “一陰 一陽, 이를 道라고 한다”고 하였듯이, 그는 도설의 위작론을 더하여, 더욱 격렬한 논쟁으로 朱子에 대항하였다. 象山의 사상은 명대의 陳白沙를 거쳐 王陽明에게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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