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제1장. 中國歷史는 漢族歷史가 아니다
제2장. 東夷文明과 古朝鮮
제3장. 古朝鮮, 歷史와 政治의 始作
8. 漢族은 누구인가
汉族(漢族, hànzú)은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집단으로, 中華人民共和國과 中華民國(臺灣)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 북아메리카 등, 세계 각지에도 거주하고 있다.
2008년 기준으로 漢族人口는 약 12억명으로, 중화인민공화국 인구의 약 92%를 차지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최대 인구의 민족이다. 세계 전체의 한족 총인구는 13억명을 넘는다.
漢族의 기원은 華夏族이며, 漢나라 이후 漢族으로 부르고 있다. 漢族은 중국과 타이완 인구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세계 각지에 진출한 민족이다.
遺傳形質的으로는 몽골로이드(黃色人種)에 속하지만, 중국 내부에서도 長身과 長頭의 華北形, 그보다 몸이 작고 短頭인 華南形 등 지방에 따라 차이가 있다. 대부분 中國語(簡體)와 漢字(繁體)를 사용하고 있지만, 지방에 따라 언어에도 큰 차이가 있다.
원래 漢族은 黃河의 중·하류 유역인 華北 일대에 분포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기원전 1500년 무렵, 서쪽으로부터의 영향을 받아, 黃河 유역에서 大河文明(黃河文明)을 개화시켰고, 이곳을 중심으로 점차 中國大陸 중·남부 지역을 뜻하는 華中, 華南 지역까지 세력을 넓혔다. 그리고 그 지방 先住民들을 漢文化로써 동화시켰다.
특히 양쯔강 유역 이남은, 기원 전후의 漢代까지 先住民의 세력이 강해서, 중국어 이외의 언어가 지배적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와 같은 先住民의 후손들은, 현재까지도 ‘먀오족(苗族)’, ‘야오족(瑤族)’, ‘리족(彛族)’ 등 소수민족으로서 특색 있는 문화를 간직하고 있다.
漢族은 대부분 農耕民으로서, 중국 본토뿐만 아니라 西域, 둥베이 변경, 타이완 등에 정착했다.
그러나 동남아시아, 나아가 미국과 유럽 등지에 진출한 사람들은, 주로 상업·서비스업 등에 종사하여 일정한 사회적 지위를 구축했다. 이렇게 해외에 거주하는 중국인은 華僑라고 불리며, 각 지역에서 예컨대 ‘china-twon’이라는 특이한 사회집단을 구성하고 있다.
9. 華夏族은 누구인가
華夏族은 중국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漢族의 원류가 되는 민족이다. 韓民族의 원류가 東夷族인 바와 같다. 中華 또는 華夏라는 말은 화하족에서 유래한 말로서, 중국을 일컫는 말이다.
현대 중국의 정식 國名인 中华人民共和国의 华와 中華民國의 華는, 모두 화하족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것이다.
華夏族의 華는 華山을 말하고, 夏는 夏水를 말한다는 설도 있고, 華氏 부족과 夏氏 부족이 서로 연합하여 華夏族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華夏族은 중국 전설상의 三皇五帝에 속하는, 黃帝軒轅氏와 炎帝神農氏의 후손이라고 자처했다. 화하족의 핵심 주체였던 黃帝族은, 처음에는 姬水 유역에 거주하다가, 점차 세력이 확대되면서, 神農氏의 후예를 자처하는 炎帝族을 복속시켰다.
이후 두 부족이 연합하여, 蚩尤(東夷族의 始祖)가 이끄는 九黎族과 涿鹿에서 전쟁을 하여 이긴 후, 세력이 더욱 강해져, 황하 유역 일대를 장악했다고 한다.
華夏族은 炎皇의 자손이라고도 부른다. 여기서 炎皇의 자손이란 炎帝神農氏와 黃帝軒轅氏의 자손이라는 뜻이다.
두 부족의 결합으로 화하족이 형성되었으나, 대등한 통합은 아니었고, 황제족이 염제족을 복속시킨 후 흡수하는 형태로 이루어진 통합이었다.
10. 黃河文明과 夏나라 왕조
최초 인류의 출현은, 약 400만 년 전의 일로 추측하고 있다. 남아프리카에서 발견된 ‘오스트랄로 피테쿠스(原人)’는 곧추서서 걸었고, 石器를 만들었다. 약 50만 년 전에는 ‘자바 원인(猿人)’과 ‘베이징 원인(原人)’이 출현하였다.
‘베이징 원인’은 동굴에 살면서 불을 다룰 줄 알았고, 돌망치 등 뗀석기를 사용해, 작은 짐승을 잡거나, 나무뿌리와 열매를 따 모아 먹을거리를 마련하였다. 그리고 간단한 언어로 의사를 전달했던 듯하다.
약 20만 년 전에 나타난 ‘네안데르탈인(舊人)’은 시체를 매장하는 종교적 감정도 가지고 있었다.
약 4만 년 전에는 사냥 기술이 발달하여, 뼈로 창과 낚시 등 骨角器를 사용하였다. ‘크로마뇽인’은 많은 사냥감을 얻게 해 달라고 빌며 그린 동굴 그림도 남기고 있다.
약 1만 년 전, 빙하 시대가 끝나고 沖積世가 되면서, 농사와 목축을 시작하였고, 舊石器 시대에서 新石器 시대로 바뀌었다.
뗀석기와 질그릇을 만들 수 있었으며, 움집에서 생활하였다. 또한 祖上이 같다는 의식으로 맺어진 氏族을 단위로 하여 공동 작업을 하였고, 토지와 재산도 공동 소유였다.
黃河 유역의 황토 지대는, 물대기만 제대로 되면 농사짓기에 좋은 땅으로서, 조와 수수가 재배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黃河文明이 성립되었다.
기원전 5000~3000년 전 무렵부터 시작되는 仰韶文化는 彩陶, 기원전 3000~1500년 무렵에 시작되는 龍山文化는 黑陶로 유명하다.
촌락들이 邑을 이룩하였고, 신분의 높낮이도 존재하게 되었다. 이윽고 이들 읍 가운데서 몇몇 도시 국가가 탄생하였다.
오늘날 확인되고 있는 가장 오랜 왕조는 夏王朝로서, 기원전 2,100년쯤부터 황하 유역에서 문명의 초기 단계가 시작되었다.
이어 기원전 1,300년쯤 安養 근교 殷墟에 도읍한 殷(商)의 유적지에서는, 많은 청동기와 갑골문자가 새겨진 龜甲(거북 껍질)과 짐승의 뼈가 출토되어, 당시의 정치와 문화 등을 말해 주고 있다.
기원전 11세기에, 殷王朝를 쓰러뜨리고 渭水 유역의 鎬京에 도읍한 것이 周나라이다.
周에서는 왕족과 공신이 각 지방을 다스리고, 그들을 세습의 諸侯로 삼아, 納稅와 軍事의 의무를 이행하게 하는 封建制를 실시하였다. 또한 제후는 왕실을 본가로 하는 혈족집단으로서의 규범, 곧 宗法에 따르게 하였다.
11. 遼河文明은 東夷文明이다
대체로 中國文明은 현재의 중국 영토에 기반한 모든 문명의 묶음체를 말한다. 이를 흔히 中華文明이라고 지칭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문명인 遼河文明이 그 중 하나이며, 동아시아의 중심 문화 중 하나로서, 이 지역에 상당한 영향을 주었다.
漢族中國人들은, 遼河文明을 단지 현재 中華人民共和國의 영토 內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자기들의 역사인 것으로 규정해버린다. 이른바 中華文明 探源工程이다.
그러나 요하문명은 분명히 東夷族의 문명이며, 동이족은 우리 韓民族의 시조이다. 따라서 필자는 遼河文明을 東夷文明으로 규정한다.
中國歷史의 기반이 된 문명은 주로 黃河文明과 長江文明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漢族中國人들은, 북방 동북 지방의 초원 문명인 遼河文明을 억지로 中華文明에 편입시키려고 한다.
遼河文明이라 지칭된 遼西地域의 신석기문화권은, 그 문화의 성격상 古朝鮮(東夷族)의 起源이지만, 중국의 文明探原工程으로써 中華文明의 기원이 되어 억지로 융합되어버린 것이다.
12. 中華文明은 漢族文明이 아니다
현대에 이르러 漢族中國人들이 强辯하는 中華文明은, 근래에 생긴 개념으로서, 중국 고대 史書들의 漢族 중심 역사관과 관계 없이, 현재 中華人民共和國의 영토를 중심으로, 현재 그 영토에 사는 모든 민족 관점의 역사와 문명관이 죄다 억지로 혼합되어버린 역사 개념이다.
이는, 마치 中國歷史와 漢族歷史가 전혀 일치하지 않는 개념인 바와 같다. 따라서 漢族中國人들이 사용하는 中華文明이라는 개념 역시, 中原大陸을 무대로 삼으며, 黃河文明과 長江文明을 기원으로 하는, 漢族文明과는 별개의 개념으로서 분별되어야 한다.
遼河工程은 중국 동북부 遼河地域의 역사와 현황에 관련하여 제시된 공정의 하나로서, 정식 명칭은 2003년 6월부터의 中華文明 探源工程이며, 一名 中國歷史 뿌리찾기 운동을 말한다.
漢族中國人들은 黃河文明보다 빠른 遼河文明을 中華文明의 뿌리로 규정하고 있는데, 이는 억지스런 歷史歪曲이며 歷史造作일 따름이다.
-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