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동주를 저항시인으로 규정하는 것은, 단일문화적 주체성의 관점이 개입한 것이다. 이것은 근대문학사의 연속성 확보를 위해서, 윤동주를 민족문학의 대표주자로 끌어들인 결과이다.
하지만 이때는, 윤동주가 滿洲國 출신이라는 사실이 무시된다. 만주는 식민지 조선의 연장선상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문학의 연구대상이 유?이민자, 디아스포라, 다문화주의 연구 등으로 영역을 확장하면서, 滿洲를 바라보는 관점에 변화가 생겼다. 윤동주가 만주국 출신이라는 사실이 새삼 부각된 것이다.
윤동주가 시인으로 활동할 무렵, 조선에서는 ‘만주 유토피아니즘’이 확산되어, 많은 지식인, 농민들이 환상을 품고 만주로 이주하던 때였다.
만주는 조선에서 불가능한 꿈이 성취될 수 있는 낙원으로 상상되었다. 이것은 만주국의 건국 이념인 ‘오족협화’에 대한 지나친 기대감에서 파생한 것이다.
‘고조쿠쿄와(五族協和)’는 만주국의 나라 표어이자, 건국 이념, 정치 슬로건이다. 중화민국 성립 초기의 정치 슬로건이었던 五族共和에서 유래된 것이지만, 오족공화의 五族이 한족, 만주족, 후이족(회족), 몽골족, 티베트족을 가리키는 것과는 달리, 오족협화는 일본민족(야마토민족), 만주족, 조선인(한민족), 한족, 몽골족의 협력을 뜻한다.
만주국의 국기에는, 노란색(만주족) 바탕 왼쪽 상단에 네 가지 색으로써, 빨간색(일본민족), 파란색(한족), 하얀색(몽골족), 검정색(조선인)의 가로 줄무늬가 그려져 있는데, 이는 오족협화의 이념을 뜻한다.
만주에서는 조선인이 다른 민족과 평등한 대접을 받고, 고유한 문화를 보존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제국의 이념을 신뢰하고 이주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친일의 논리를 이용하여 저항의 가능성을 찾으려는 사람들, 말하자면 협력을 통한 저항이라는, 이중적 전략을 구사하려는 사람들도 모여들었다.
하지만 윤동주는, 그 무렵 평양 유학의 실패를 통해, 만주 이데올로기의 허구성을 목격하였고, 만주에서도 조선인으로 살기 어려울 뿐 아니라, 內鮮一體가 강화되는 조선에서는, 일본인으로 살기를 강요받게 될 것임을 예감하였다.
어디에서건 조선인이 되기 위해서는, 만주국민이 되거나 일본인이 되어야 하는 모순적 상황에 처한 것이다.
이러한 모순적 상황을 자신의 주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 윤동주는, 단일문화적 주체성에서 찾아볼 수 없는 ‘복수의 주체성’을 경험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일본 유학을 통해서, 다시 ‘공허한 주체성’으로 전환되는데, 이는 조선인도 일본인도 아닌, 주체성 부재의 상태로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윤동주가 친일도 저항도 불가능했던 데에는, 이러한 주체성 부재, 혹은 주체를 결정지을 수 없는 복수의 주체성이 그 원인으로 작용한 것이다. 윤동주와 다문화적 주체성의 문학, 오문석.
尹東柱는, 詩人을 ‘슬픈 天命’의 존재로 命名하고 있다. 이러한 명명에 의하면, 詩를 쓴다는 것은 ‘천명’의 課業을 수행하는 일이다.
‘천명의식’을 詩텍스트 창작의 支配的 言述로 보고, 그러한 ‘천명의식’이 言述 主體에게 어떻게 작용하고 있으며, 그 의미작용은 어떤 것인지를 탐색하고자 한다.
윤동주에게 ‘천명’은 절대적 가치체계를 지니고 있는 ‘하늘의 法’이다. 따라서 ‘천명’의 詩텍스트는, 地上의 가치체계를 天上의 가치체계로 전환시키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때문에, 언술 주체는 늘 地上과 관계되는 自我와 天上과 관계되는 自我 사이에서, 自己 正體性 혼란을 겪는다. 이러한 정체성 혼란이, 그로 하여금 서울을 떠나 敵都인 東京으로 脫走하게 만든다.
역설적으로, 그는 東京에서 자기 정체성을 확보하는 천명의 詩텍스트를 산출하게 된다. 윤동주에게 천명의 詩텍스트는 존재 자체다. 요컨대, 그는 詩로써 자기 존재를 완성하고자 했던 것이다. 天命의 詩的 텍스트와 거울화의 意味作用 : 尹東柱論, 정유화.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과 ‘보편지향성’은, 그가 현실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모색했던, 시적 윤리의 구체적 結晶이다. 특히 그의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기존에 반복적으로 활용되어온 ‘부끄러움?성찰’이라는 평면적인 구조로는 온전히 파악될 수 없다.
그의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피해자가 동시대의 피해자들을 보며 느끼게 되는 감정이다.
가해자가 느껴야 할 부끄러움을 오히려 피해자가 고백하는 형국이기에, 우리는 관습적으로 이해해온 윤동주 시의 부끄러움을, 또 다른 관점에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그의 시에서 부끄러움이 본격적으로 나타나는 시기가, 정확히 전시체제로의 체제 개편이 이루어진 시기(1937년 중일전쟁 이후)와 일치한다는 점은 주목된다.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은, 국가권력에 의해 폭압적으로 파괴되는 생명(삶)의 반응적 감정이었다.
이는, 단순히 스스로의 결점을 마주하는 개인적 성찰의 개념을 넘어, 파괴되는 生 앞에서 피해자가 느끼는 존재론적 감정이다. 그는 이러한 감정인 부끄러움을 통해, 우리의 ‘삶-생명’이 언어적·형식적 제도에 의해 철저하게 분절되고 파괴되고 있음을 드러내고자 했다.
여기서 더 나아가 그는, 대문자 제도의 질서와 국가적 형식을 무화시키고자 했다. 바로 그 언어적 대응이, 그의 시에 나타나는 보편지향성이다.
윤동주는 끊임없이 생명을 詩化함으로써, 제도나 언어가 분절하고 해체할 수 없는 생명의 의미를 확보하려 했다.
즉, 국가가 언어·합리·측량·기호·법 등의 언어적 제도를 통해 생명을 ‘표준화’ 할 때, 그는 질서와 가치를 무화시키는 생명의 ‘보편화’ 작업으로 체제의 질서에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그의 시에는 감정이라는 비합리적인 영역의 능력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고, 생명을 향한 보편적 사랑이 나타난다.
이러한 맥락에서, 윤동주 시에 나타나는 ‘부끄러움’과 ‘존재적 보편(생명)을 향한 지향성’은, 강력한 국가적 폭력 앞에서 주체가 행할 수 있는 언어적·윤리적 대응이었다. 윤동주 시의 ‘부끄러움’과 ‘보편지향성’ -제도적 형식 앞에서의 시적(詩的) 윤리, 고명재.
윤동주의 생애는, 조국에서 쫓겨난 간도 이주민의 후예로 태어나, 조국의 식민지화로 인해, 외부세력으로부터 소외된 경험의 연속으로 이루어졌다.
처음에는 조국의 중심으로부터, 후에는 외부로부터 소외되는 그 같은 디아스포라의 환경은, 윤동주 생애의 이주경로를 따라, 시의 공간적 배경으로 등장하게 되고, 시의식 형성에 영향을 미친다.
서구적 근대와 일본적 근대가 혼재한 당시 대한민국의 근대화가, 식민지적 근대라는 새로운 형태로 나타났던 것은, 필연적 결과라 할 수 있다.
그러한 植民地的 近代의 體驗은, 식민주체인 일본에 대립하면서, 한편으로는 닮아가는 양상으로 전개되었다. 당시 한국문학에 나타난 근대성의 체험은, 그러한 혼재된 양가성의 표출로, 혹은 한 편에 치우친 형태로 나타났다.
그러나 양자택일이 불가피한 상황 속에서, 윤동주의 시는 동화를 거부하며 自發的 疏外를 보여주는 주체상을 형상화함으로써, 또 하나의 대립 방식을 구현해내었다.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자의 디아스포라 정체성이 만들어 낸 비판적 거리두기, 새로운 문화 건설의 의지가 간도, 서울, 일본 속에 단절된 공간을 형성함으로써, 자기소외의 방식을 통해, 국권 상실의 현실, 직면한 근대성에 대한 회의를 표출하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고향, 병원, 일본의 공간과 결부된 고향 찾기, 데카당스, 자발적 소외와 같은 일련의 응전방식을 통해, 윤동주 시의 주체는 식민근대의 소외를 극복하고, 다시금 참된 주체로의 귀환을 경험한다.
이는, 서양의 강제에 의한 동화가 아닌, 저항을 통한 자기 확립으로서의 동양의 근대를 가능하게 하는 應戰의 방식이기도 하다. 윤동주 시의 디아스포라와 공간 : 시의 창작방식을 통해 나타난 저항의지, 임현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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