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년 전 토미 더글러스의 연설이
아직도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이유!
이 책은 캐나다 정치인 토미 더글러스가 1962년 의회에서 연설한 ‘마우스랜드’ 이야기를 그림책으로 엮은 것이다. 마우스랜드 이야기의 주인공은 생쥐와 고양이다. 고양이는 소수 기득권 세력을 상징하고, 생쥐는 다수 일반 서민을 대표한다. 마우스랜드에서도 우리처럼 5년마다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뽑는데, 이상한 건 생쥐들이 검은 고양이들을 매번 지도자로 뽑아왔다는 점이다. 결국 고양이들의 횡포로 생쥐들의 삶이 어려워지자 견디다 못한 생쥐들은 5년마다 돌아오는 선거에서 검은 고양이를 퇴출시키고 새로운 비전을 제시한 흰 고양이를 뽑는다. 물론 그럼에도 생쥐들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고양이들은 고양이들만을 위한 정책을 펼쳤고 생쥐는 안중에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생쥐들은 삶이 피폐해질 때마다 색깔만 다른 고양이들을 지도자로 갈아치우곤 했다. 생쥐를 지도자로 뽑아야 한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은 것이다. 오히려 그런 위험한 생각을 내비치는 생쥐가 나타나자 그를 감옥에 처넣었다. 마우스랜드의 지도자로 생쥐를 뽑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논리가 그곳에서는 통하지 않았다. 결국 생쥐들은 고양이들의 배를 불리는 식사거리로 전락하거나 이용당하고 만다.
토미 더글러스는 바로 이런 비상식적인 일들이 지난 수십 년간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사회에서 끊임없이 반복되었다는 사실을 이 우화를 통해 이야기한다. 다시 말해 더글러스는 투표를 해도 변하지 않는 이른바 ‘민주주의 국가’ 국민들의 고단하고 비참한 삶을 신랄하게 풍자한 것이다. 비록 짧은 우화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우리가 처한 정치 시스템의 의미와 폐해를 함축적이면서도 명료하게 보여준다.
토미 더글러스는 국가권력이 노동자의 정당한 목소리를 탄압한 것에 항거하고,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국민을 위해 노력한 북미 지역 최초의 민주사회주의 정부(캐나다 서스캐처원 주 지방정부) 주지사였다. 더글러스 같은 이들이 앞장서기 전까지 캐나다에서도 더 보수적인 정당과 그보다는 조금 덜 보수적인 정당이 정치권을 양분했다. 캐나다의 ‘생쥐’들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두 보수정당 중 어느 쪽이 더 생쥐 편을 드는지 입씨름하며 선거 때마다 둘 사이를 왔다 갔다 했다. 마치 옆 나라 미국에서 늘 별 차이도 없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번갈아가며 정권을 차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캐나다는 미국하고 달랐다. 바로 ‘마우스랜드’의 원작자 토미 더글러스 같은 이들의 노력 덕분에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정당, 그래서 그런 약자들이 억압과 불평등에서 벗어나 권력을 쥘 수 있도록 세상을 바꾸겠다는 정당이 탄생했기 때문이다.
기득 권력이 사회를 지배하는 방식은 지구 어느 나라든 똑같다. 합법을 가장한 선거는 왜곡되고, 변화를 갈망하는 세력은 매도된다. 한국 사회에서도 기득 권력은 그동안 ‘경제 살리기’라는 공약을 내세워 서민들에게 잘살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었고, 그걸 이용해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어도 쉽게 당선되었다. 그렇다면 그들의 공약은 진실했을까? 물론 진실했다. 부자에게는 말이다. 우화에서처럼 한국 사회의 ‘생쥐’들은 기득 권력이 모두 색깔만 다른 ‘고양이’임에도 ‘생쥐’를 뽑자는 외침을 무시해왔다. 그리고 그 결과 서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65년 전 토미 더글러스가 외쳤던 연설이 여전히 한국 사회에서 유효한 까닭이다.
이 책을 통해 갑갑한 현실을 꿰뚫어보는 토미 더글러스의 놀라운 혜안을 접한다면 정치와 선거를 둘러싼 혼탁한 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가려낼 수 있는 통찰력을 얻게 될 것이다. 아울러 아이와 함께 읽고 이야기를 나누기에 더없이 좋은 정치 교재가 될 것이다.
책 후반부에는 장석준 글로벌정치경제연구소 기획의원과 강상구 정의당 교육연수원 부원장, 에세이스트 김현진 씨의 ‘덧붙이는 글’을 넣어 읽는 재미를 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