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환경과 인류 그리고 한반도,
그 왜곡되고 잊힌 역사를 다시 톺아보다
-서양에 그리스와 로마가 있었다면 동양에는 ‘가야’가 있었다?
-근대의 질서를 만든 것은 총, 균 그리고 환경변화다?
-한반도에서 인류 최초의 문명이 발생했다?
새로운 유물이나 유적이 발굴될 때마다,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해석되느냐에 따라 역사학계 내에서는 여러 주장이 제기되며 새로운 담론이 만들어지곤 한다. 새 정부의 100대 국정과제로 언급된 가야사 복원 문제도 그중 하나다. 해상국가로서 가야의 위상을 입증할 증거가 속속 발견되면서 지난 수십 년간 재야 역사학자들이 주장해온 가야사 재정립 문제가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이다. 서구에서도 이런 논란은 수없이 많다. 오랜 기간 세계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으로 존재했던 유럽이 제일 먼저 ‘근대’라는 문을 열게 된 데는 기후변화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는 몇몇 학자의 주장은 설득력을 더해가면서 주류 역사 담론에 도전하는 중이다. 아시아로 눈을 돌리면, 요하문명에 관한 이야기가 흥미롭다. 중국 요하 유역에서 발견된 유물과 유적들은 세계 역사학계의 정설들을 흔들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기존 제1문명보다 앞선 문명이 그 지역에 존재했다고 웅변하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곳에서 출토된 유물들이 중국보다 한반도에서 발굴된 것과 유사하다는 점이다. 연대를 고려해보면 당시 그 지역을 점유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국가는 고구려밖에 없다. 한반도에 거주했던 사람들이 제1문명의 주인공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주장은 중국의 ‘통일적다민족국가론’에 부딪혀 표류 중이다.
기존 역사 담론에 도전하는 새로운 담론들은 우리가 교육과정에서 배웠던 것과는 상당히 다르며, 당연히 기존 역사학계는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다. 그렇다면 새 담론들은 허황된 픽션에 불과한 걸까?
새로운 관점으로 바라본 세계 그리고 한반도
《지구 위에서 본 우리 역사》는 그 새로운 담론들이 전혀 허황된 이야기가 아닐 것이라는 데에 초점을 맞춰 역사를 새롭게 바라보려 한다. 한동안 주류 학계의 관행이었던 실증주의적 역사 고증 방법, 곧 글자로 기록된 것이나 유물, 유골처럼 눈에 보이는 것들만 신빙성 있는 역사자료로 취급했던 시각은 지난 세기 말부터 그 한계를 드러내며 비판받았고, 자연스럽게 새로운 관점에서 역사를 해석하려는 움직임이 힘을 얻었다. 실증주의 역사관과는 다른 개념인 구전 역사관, 곧 글자로 남아 있지 않아도 과거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콘텐츠를 중시하는 역사관이 바로 그것이다. 20세기 들어 주목받기 시작한 이 사관은 과학적 분석방법이 발달해 과거 환경에 관한 구체적 사실이 밝혀지면서 더욱 주목을 받았다. 이는 역사를 또다른 각도에서 재조명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런 학문의 흐름 가운데 하나를 ‘환경사’라 하고, 이처럼 새로운 자료를 통합해 과거 삶의 모습을 총체적으로 판단하려는 태도를 ‘역사인류학’이라 부른다. 이 책은 이와 같은 다양한 관점에서 주류 담론들을 들춰보며 우리가 왜곡된 형태로 알고 있거나 놓치고 있었던 ‘사실fact’은 무엇인지, 또 그 원인은 어디에 있는지 살펴본다. 지은이 이진아는 기후변화 같은 지구환경의 변화가 인류 역사, 특히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하며 구체적 자료를 토대로 그 논거를 펼쳐보인다.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한반도 남단에 존재했던 해상국가 가야다. 지은이는 이 책 1부에서 《삼국유사》 <가락국기>에 실려 전해 내려오는 ‘인도 공주의 가락국 왕비설’이 실제였는지, 아니면 허구였는지를 추적하며 한반도사에서 오랜 기간 자취를 감추었던 해상국의 역사를 지리?생태 환경과 연계해 조명한다. 2부에서는 흔적이 거의 지워진 해상국의 역사를 복원하기 위해 먼저 세계사의 유명한 몇 장면이 기후변화와 어떻게 연동되어 나타났는지 들여다본다. 페니키아, 이집트, 고대 그리스와 로마, 카르타고 같은 유럽 지역이나 남아메리카의 역사가 지구기온의 변화나 화산 폭발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는 사실을 설득력 있게 이야기하는 것이다. 3부에서는 기존 제1문명보다 앞선 문명으로 평가받는 요하문명의 시작과 끝에 관한 시나리오를 시작으로 백두산 폭발이 동아시아 판세에 미친 영향을 자세히 살핀다.
총 3부로 구성된 이 책을 통해 지은이는 지구환경이 일정한 패턴을 보이며 인류사에 강력한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을 논증한다. 그런데 지은이는 그 변화가 21세기 들어 더욱 가속화되고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질문을 던진다. “지구환경의 변화가 점점 가속화되는 이 시기에 현대인들은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 걸까?” 이 책은 이 질문에 대한 궁극적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다. 복잡해 보이는 인간사회의 법칙을 단순한 패턴으로 정리해 파악하려면 무엇보다 시간적·공간적 거리를 두고 이 땅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차분히 살펴봐야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그 방법론을 일러주며 깊은 통찰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책을 마무리하면서 지은이는 지구가, 세계가, 인간이 더 높은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한 진통을 겪고 있다면서 수천 년간 일정한 궤적을 그리며 이어져온 지구환경의 변화 상황을 적극적으로 인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말한다. 아울러 이 글이 엄연한 학문적·사실적 근거에 입각한 것임을 강조한다. 다시 말하면 이 글은 픽션이 아니다.
정확한 정보와 지식을 전달하기 위한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