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글쓰기 -‘서평쓰기’ 강의를 수료하며
서평에 대해 잘 모르는 만큼 그저 결석하지 않고 열심히 강의를 듣겠다는 각오 외엔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데 첫 시간의 끝 무렵 책을 정의하라는 말에 그제야 아차! 싶었다. 너무 가벼운(?) 마음으로 왔구나. 강의 첫날 경주에서 오신 서강선생님 말마따나 강의를 듣는 수료생 중 이미 책을 출간하신 분들이 반수라는 것을 알고는 ‘내가 왜 여기 있나? 의문이다’ 했듯이, 나도 조용히 추천 도서를 열심히 읽는 것으로 만족하면 되지 않을까 싶었다.
1기 수료생들의 서평모음집을 받아보기도 했지만, 그건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선생님들만 쓰면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내가 아무리 배우는 입장이더라도 하지 않을 권리 또한 내게 있다. 글을 쓰고 안 쓰고는 내 자유다. 그렇게 되도록이면 글을 쓰지는 않겠다고 다짐했던 내게, ‘내 인생의 책 100권을 만들어 보라’, ‘글은 생각이다’, ‘쉬운 책으로 서평하라’, ‘배운 대로 꼭 그대로 몇 번만 실천해 보라’ 진정성이 내포된 이 모든 원장선생님의 말씀들이 실은 글(서평)을 쓰게 하는 구체적인 동기가 되었다.
강의에 소개된 좋은 책들 가운데는 『책은 도끼다』와 같이 친절한 책들이 참 많았다. 그중에서 특히 『종이책 읽기를 권함』은 그 친절함이 가히 충격적이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는 한참을 그냥 멍하니 있었다. 친절하다는 형용사가 사전 속에서 몸을 일으키고 걸어 나와 실체를 보여준다면 이 책과 같은 모습이 아닐까? 나는 불현듯 ‘친절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친절-하다(親切--)〔형용사〕대하는 태도가 매우 정겹고 고분고분하다….
그리고는 친절하다는 단어를 언제 처음으로 인지했던가를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우습게도 나는 이 단어를 국어 시간이 아닌 중학교 1학년 영어 시간에 예문으로 쓰이던 문장에서 처음으로 인지했던 것 같다. She is kind. She is very kind. 한국 사람은 대부분 친절하지 못한 것인가. 외국에서도 남자보다는 여자가 친절한 모양이다.
사전적 의미의 피상적인 단어에 불과했던 ‘친절하다’가 그나마 어렴풋이 실체를 드러낸 적이 있긴 하다. 내 아이가 초등학교 2학년 때, 부모님의 장점을 한 가지씩 적으라는 워크북에 ‘부 : 장난을 잘 친다. 모 : 친절하다.’ 라고 적어 놓았다. 나는 아이의 코멘트에 살짝 감동했고, 친절하기 위한 나의 노력을 아이도 느끼는가 싶어 흐뭇했다. 나 자신이 너무 엄격하고 무서운 엄마 밑에서 자랐기에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나는 친절한 엄마가 되고 싶었다. 아이를 존중하는 마음이, 행동의 결과보다 과정이나 감정을 살펴주려는 노력이 아이에게도 전해졌던 모양이다. 친절함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 없이는 결코 표현될 수 없는 무엇이다.
이렇게나 친절한 책을 읽고도 서평을 하지 못한 것은 정말이지 ‘합당한 표현’1)을 찾지 못해서였다. 이렇게 좋은 책에 대해, 좀 더 생각이 깊어지고 또 넓어져서 글로서 ‘합당한 표현’을 찾을 수 있을 때 멋진 서평을 써 보리라 마음먹었다. 이런 책이 있다는 것을 알고도 읽지 않는 일이 “죄에 가깝다”는 간곡한 표현이 있는 줄은 강의 자료로 쓰신 원장님의 서평을 보고 나서야 알았다.
수료식 날 원장선생님은 강의를 하는 내내 “내가 이렇게 행복해도 되나” 싶을 만큼 좋았다고 하셨다. 그 말씀을 듣고 내가 가졌던 생각은 ‘나야말로 염치없이, 주는 대로 이렇게나 많은 것들을 다 얻어가도 되나’싶었다. 강의 시간에 소개한 책 못지않게 강의를 위한 선생님의 자료들도 한결같이 친절했다. 참 미안할 정도로. 서평뿐만 아니라 앞으로의 글쓰기가 어떤 형태가 되더라도 나 자신과 독자를 존중하는 친절한 글쓰기는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 하나가 꿋꿋하게 마음속에 자리 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