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니스트 헤밍웨이는 그의 소설 제목을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로 결정하며 쾌재를 불렀을 것 같다. 이 소설의 클라이맥스에서 종소리가 울려퍼지지는 않으나, 제목 자체만으로도 혼자 남겨진 조던의 비장하고 애달픈 메시지가 전해지기 때문이다. 정호승 시인은 ‘가끔은 하느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시고…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라고 했다.‘종은 왜 울리는가?’라는 질문에 한 가지 정답이 있을 수는 없다. 같은 종소리에도 우리의 행동 규범을 결정해주는 알림의 목적, 도저히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아 차마 말로써 전할 자신이 없는 그 무엇을 간절하게 바라는 마음, 주위와 같이 나누고 싶은 주체할 수 없는 기쁨, 어떤 방법으로도 다 표현될 수 없는 깊은 슬픔이 각각 담겨 있기 때문이다.
종Bell은 인류가 역사를 처음 기록하던 시절에도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제黃帝와 염제炎帝가 종을 처음 주조했다는 기록이 있고, 은銀, 주周나라 시대의 종은 제법 많은 종류가 남아 있다. 서양에서도 3000년 전에 만들어진 바빌론의 유물에 종에 관한 기록이 있으며, 성경 출애굽기 28장은 ‘제사장의 복장에 종을 달아…’라고 썼다. 종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다. 세상에는 종을 둘러싼 신기한 전설도 많고, 자신들이 아끼는 종에는 자연 재해를 이기고자 하는 특별한 힘이나 역병이나 마법을 없애주는 영험이 있다고 믿는 사람들도 많다. 각각의 종에는 그들의 문명과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종교나 문화적인 차이가 뚜렷하게 나타나 있는 것이다. 고대 사람들은 신들과 소통하거나 영혼이 된 조상이나 초자연의 말씀을 듣기 위하여 종을 울렸고, 점차 동물과 인간과의 소통, 인간과 인간과의 소통을 위하여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통일신라시대의 성덕대왕신종(에밀레종)에는 “지극한 진리는 형상 밖의 모든 것을 포함하니 그것을 보려 하여도 그 근원을 보기 어렵고, 진리의 소리는 천지에 진동하니 들으려 해도 듣기 어렵다. 이에 신종神鍾을 달아 진리의 소리를 깨닫게 한다”는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제는 기계 소리, 녹음한 디지털 음향에 그 자리를 내어 주고 있는 종소리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아직도 평화롭게 소통하던 옛날에 대한 추억을 가슴 깊이 지니고 있다.
추억 속의 종소리를 기억하며, 아름다운 모습의 종을 수집한 지 사반세기가 지났다. 아직 멋진 수집가의 경지에 도달하지는 못했으나, 뒤를 돌아보니 꽤나 오랜 시간동안 종을 수집하며 혼자 즐거워했던 것 같다. 작가 말콤 글래드웰은 ‘아웃라이어Outlier’에서 많은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추적한 결과 만 시간 이상을 투자하면 어느 분야에서든지 수준급에 도달한다고 하였다. 그의 기준으로 평가해볼 때, 나의 종에 대한 짝사랑도 이젠 어느 정도의 수준에 도달한 것 같다.
그동안 종을 수집하며, 때로는 어디에서 유래한 것인지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던 종도 많이 보았다. 사기꾼들이 만든 가짜 종을 비싸게 구입한 뒤, 씁쓸한 마음을 홀로 달래야만 했던 순간도 있었다. 16세기에 스페인 성당의 복사소년altar boy이 흔들었다는 푸른 녹이 슨 금속 종을 구한 적이 있었다. 카리브 해에 침몰한 중세시대의 난파선에서 건졌다는 종이라고 했다. 소중한 인류의 유산이라 생각하고 몇 년간 애지중지하였는데, 어느 순간 이 종들이 30여 년 전 멕시코에서 다량으로 만들어 유포하였던 저가의 청동 종임을 알게 되어 망연자실하였다. 자연스럽게 종에 대하여 좀 더 전문적인 지식을 갖추어야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읽고 인터넷 검색을 하다가 미국 종 수집가들의 모임American Bell Association, ABA을 알게 되었다. 열성적인 종 애호가들에 의하여 결성된 ABA는 종에 관한 공부를 하고, 1940년부터 종에 관련된 다양한 사연들을 찾아‘벨타워Bell Tower’란 잡지를 만들고 있었다. 어느 날 고인이 된 어머니의 수집 자료를 판매하던 분에게서 지금까지 발행된 벨타워 잡지 전체와 관련 책들을 일괄 구입하였다. 고등학교 화학교사, 병원 간호사, 주말이면 교회에서 성가대로 활동하는 것이 가장 기쁘다는 평범한 가정주부, 의학잡지에서 이름을 본 적이 있는 메이요 병원의 종양내과 교수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만든 간행물이었다. 그들이 종을 좋아하게 된 시시콜콜한 내력부터, 종과 관련된 문화인류학적 지식과 그 시대의 예술사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이 되어있었다. 공예나 미술사 전공자들이 아닌 아마추어들이 이런 수준의 책을 정기적으로 발간해 왔다는 사실에 신선한 감동을 받았다. 즉시 ABA에 가입하였다. 대부분 할아버지 할머니들인 회원들은 사이버 공간에서 서로 교류하며 마치 그들의 해박한 지식을 자랑이라도 하듯이 종을 설명하고 있었다. 또 자신들의 궁금증을 서로 해결해 주고 있었다. 한때 주한 미군으로 근무한 적도 있다는 앨런 영감님은 미국 경매 사이트에 올라온 세계의 종들을 찾아내서 그 종들에 관한 상세한 설명과 예상 가격, 그리고 거기에 연관된 종교, 문화, 문학, 예술학적 배경에 관한 상세한 내용을 올려주었다. 캐나다의 전직 교사인 롭과 샐리 로이Roy 부부에게서는 종뿐만 아니라 다 방면에서 많은 것을 배웠다. 그들과는 아직 한 번도 만나보지는 못했으나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ABA에 참여한 것은 문화적 충격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가끔 특별한 분야에 대한 책을 발간하거나 취미를 전문가 수준으로 승화시킨 블로그 운영자들을 본적이 있으나, 이곳은 회원들의 집단지성으로 전문가 수준의 백과사전을 만들고 있었다. 이들도 처음에는 취미로, 그리고 일상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하여 이런 활동을 시작하였을 것이나, 서로 도와가며 만든 그들의 잡지나 회원들의 공간에 수록된 기록들은 실로 깊고 방대하였다. 세상에 종에 미친 사람들이 이렇게 많다는 것도 경이로웠지만 그 할아버지 할머니 회원들이 종에 대한 역사와 지식을 기록한 전문서적들의 깊이와 이를 만든 그들의 열정에 정말 감동했다. 나도 사소한 것 하나라도 제대로 이해한 후, 그 바탕 위에서 체계적인 수집을 해 보겠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훗날 나의 수집품에 대하여 궁금하게 생각할 사람들의 호기심과 의문점에 미리 답변해줄 준비를 할 책임이 나에게 있다는 의무감도 생겼다.
내가 만난 종에 관한 설명과 그 종이 만들어진 역사적 배경을 찾아서 글로 정리하였고 나의 개인 SNS에도 남겼다. 주로 종소리에 담긴 내력을 문화 인류학적, 세계사적 관점에서 바라본 내용이었다. 2014년 이성주 대표의 권유로 세계의 종들에 얽힌 역사적인 사건과 배경에 관한 글을 의료 사이트에 정기적으로 기고하기 시작했다. 넓고 깊지 않은 지식에 관한 책이 유행을 해서 일까? 나의 중구난방식 글에 따뜻하게 호응을 해 주신 분들이 있었고, 연재 횟수가 많아지자 사이버 공간에 남겨진 글들을 모아서 책으로 발간해 보라는 권유를 해주셨다. 순전히 나의 눈높이에서, 그리고 세상의 삶에 관심을 가진 한 사람의 지적 호기심으로 시작하였던 완숙되지 못한 글이었으나, 용기를 내어 《종소리, 세상을 바꾸다》란 책으로 나오게 되었다. 마침내는 속편을 발간하게 되었다.
“지즉위진애知則爲眞愛 애즉위진간愛則爲眞看 간즉축지이비도축야看則畜之而非徒畜也”.
(알면 참으로 사랑하게 되고, 사랑하면 참으로 감상하게 되며, 감상하다 보면 모으게 되니 그것은 그냥 쌓아두는 것은 아니다).
정조 때의 문장가 유한준兪漢雋의 글이다. 유홍준 교수는 그의 책에서 ‘사랑하면 참으로 보게 되며愛則爲眞看를 알면 참으로 감상하게 된다.知則爲眞看’로 바꾸어 썼다. 아는 만큼 볼 수 있다는 뜻일 것이다.
‘수집蒐集’은 사라져 가는 물건에 다시 혼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라 하였다. 몸을 떠나가는 혼을 다시 잡아넣어 주는 것은 귀신이 할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사라지는 혼을 다시 불어준다는 수집과 그리고 그들의 출생에 관한 비밀을 찾는 일은 기쁜 마음으로 도전해 볼 수 있는 일이었다. 내가 만난 종을 만들었던 장인들이 쏟아 부었던 열정을 나의 글로 세상에 알릴 수 있다는 것도 큰 보람이라 생각되었다.
자기의 관심 대상을 순수한 호기심으로 깊이 파고드는 열정적인 사람을 마니아mania라 한다. 이들은 수집가적 기질이 강한 사람일 것이다. 일본어로‘당신’의 존칭인 ‘댁宅’을 뜻하는 오타쿠御宅는 “이상한 것에 몰두하거나 집중적으로 연구하는 사람”이다. 오타쿠의 의미에는 마니아를 넘어 자기가 좋아하는 곳에 집중하여 자신들만의 문화를 창조할 정도로 몰입하는 사람이 포함되어 있다. 오타쿠는 다른 사람의 시선은 아예 무시하고, 혼자만의 기준으로 자신만의 세상에 깊게 몰두하여 돈과 시간, 정열을 낭비한다고 생각한다. 과도하고 부정적인 시각이 담긴 용어이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 스스로의 삶에 매우 만족하고 있다고 한다. 나는 마니아와 오타쿠의 삶을 존경한다. 그들은 즐겁게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