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 글을 쓰겠다고 결심한 것은 고교시절 한 여고생과 함께 찾아갔던 김천시 지례면 산골 동네를 61년이라는 긴 세월이 흐른 뒤 다시 다녀오면서 부터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던 나는 여름방학을 맞아 학급 친구의 고향집을 방문하기 위해 태어나서 처음으로 대구의 집을 떠나 먼 길을 나섰다.
친구의 집은 경북 김천시 지례면 산골짜기에 있었고, 나는 기차와 버스를 갈아타고, 포장도 되지 않은 길을 걷고 내를 건너 그의 집을 찾아가는 중이었다. 태어나서 처음 떠나는 먼 여행이었고, 친구가 사는 동네 이름 하나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게다가 마지막에는 구불구불하고 좁은 산길을 따라 높은 산을 넘어가야 하는 길이었다.
물어물어 낯설고 먼 길을 가야 했던 내게 뜻밖의 동행이 생겼다. 장복순. 여고 3학년이던 그녀는 기차 안에서 나눈 짧은 인사를 인연으로 가파르고 깊은 산길, 날이 저물어 어두운 데다 언제 산짐승이 튀어나올지 모를 무서운 길을 나와 동행해주었다.
그 짧은 인연은 긴 세월이 흘렀지만 늘 내 가슴을 아리게 하는 애틋함으로 남아있다. 손을 잡아본 일도, 어설픈 고백을 한 적도, 내일을 약속한 적도 없었지만 나는 그녀를 잊지 못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고, 그동안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사업체를 일으키고, 우리 사회에 내가 공헌할 수 있는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나는 부지런히 살았다. 아무데나 함부로 퍼질러 앉아 쉬거나 곁눈질 하지 않았다. 언제나 어디서나 최선을 다했고, 쓸모 있는 사회인, 존경받는 아버지와 남편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 그렇게 길고 힘겨운 세월이 흐르는 동안에도 그때 험한 산길을 동행해 주었던 그 사람을 잊은 적은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백발의 노인이 되어 그녀와 함께 걸어갔던 길을 다시 한 번 가보리라 결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