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을 수 있겠어요?
세 개의 일지
인 파이 오피니언
라이센스
아이러니와 에피파니
a long way home
그런 밤도 있었다
에필로그: What’s it all about?
‘나를 만든 세계, 내가 만든 세계’
아무튼, ○○
‘생각만 해도 좋은, 설레는, 피난처가 되는, 당신에게는 그런 한 가지가 있나요?’
아무튼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시인, 활동가, 목수, 약사 등 다양한 활동을 하며 개성 넘치는 글을 써온 이들이 자신이 구축해온 세계를 책에 담아냈다. 길지 않은 분량에 작은 사이즈로 만들어져 부담 없이 그 세계를 동행하는 경험을 선사한다.
특히 이 시리즈는 위고, 제철소, 코난북스, 세 출판사가 하나의 시리즈를 만드는 최초의 실험이자 유쾌한 협업이다. 색깔 있는 출판사, 개성 있는 저자, 매력적인 주제가 어우러져 에세이의 지평을 넓히고 독자에게 쉼과도 같은 책 읽기를 선사할 것이다.
아홉 번째 이야기, 택시
TAXI LOVER CHECKLIST
□ 택시가 있기 때문에 차를 사지 않는다고 주위에 말하고 다닌다.
□ 차를 사지 않았기 때문에 택시를 맘껏 타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 단지 택시를 타기 위해 외출한 적이 있다.
□ 목적지도 없이 무작정 택시를 탄 적이 있다.
□ 빈 택시를 보면 가슴이 두근거린다.
□ 택시를 탈 핑계를 만들기 위해 일부러 약속 시간에 아슬아슬하게 집을 나선다.
□ 택시가 나오는 노래를 열 곡 이상 알고 있다(자이언티 [양화대교] 말고).
□ 택시가 나오는 영화를 열 편 이상 알고 있다(송강호 [택시운전사] 말고).
□ 택시가 나오는 책을 열 권 이상 알고 있다(홍세화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 말고).
□ 지방에 내려가면 꼭 택시를 탄다.
□ 외국에 나가면 꼭 택시를 탄다.
□ 하루에 택시를 다섯 번 이상 탄 적이 있다.
□ 택시비로 한 번에 20만 원 넘게 낸 적이 있다.
□ 택시에 타고 있어도 택시를 타고 싶을 때가 있다.
□ 가끔은 택시에서 내리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이라면 이제 지긋지긋하니까…
그런데 택시라면?
서평가로서 ‘활자 유랑자’라고도 불리는 금정연의 택시 유랑 에세이다. 보통의 작가들이 물건 값을 원고료 단위로 매길 때(‘아, 이 바지가 원고지 12매라니!’) 금정연은 원고료를 택시비로 환산한다(‘원고지 1매를 쓰면 택시를 대충 18분에서 23분 정도 탈 수 있다.’) 그는 자신이 쓰는 모든 원고의 10퍼센트는 택시를 위한 것이고, 가끔은 순전히 택시를 타기 위해 원고를 쓰기도 한다고 말한다. 그는 택시를 좋아한다. ‘생각만 해도 좋은 한 가지’라는 주제의 ‘아무튼 시리즈’로 그는 그래서 택시를 주제로 택했다.
우리가 원하는 곳으로 가고 있기를 희망하면서 우리는,
매 순간 원하지도 않았던 지점들을 지난다
정부를 욕하는 건지 강남구 신사동이 아니라 은평구 신사동이 목적지인 나를 욕하는 건지 모를 혼잣말을 읊는 택시기사, 최고령 택시기사가 꿈이라며 손을 덜덜 떨며 운전하는 택시기사, 예상에 없던 경로로 달려 뜻밖에 추억을 소환케 만드는 택시기사……
매번 우연일 수밖에 없는 택시에서 그가 겪은 구슬픈 농담과도 같은 일들은 적당히 불안하고, 적당히 슬프고, 적당히 화가 나 있고, 그런 상태에 적당히 체념하면서도 그 안에서 기쁨을 발견하려 애쓰는 우리의 삶과 적당히 포개진다. 수많은 사람이 거쳐 가는 밀실 같은 장소가 택시이기에 그의 고유한 경험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기 때문이다.
그동안 문학 속으로, 책 속으로 파고들어가 특유의 스타일로 그 세계를 안내하는 역할을 했다면, 이번 책에서 저자는 저자 자신에게도 여전히 낯선 이 세계에서 살아간다는 일을 맥없이 웃게 만드는 유머와 적당한 온도의 리얼리티로 담아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