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힐은 내 삶에 너무 거추장스러워”
꾸미며 사는 대신 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살고 싶다
자기 색깔이 분명한 사람은 무리에 섞여 있어도 그 본색을 숨기기가 어려운 법이다. “자네는 외국에서 한번 살아보는 게 어때?”라는 대학 지도교수의 한마디에 용기를 얻어 20년째 미국 뉴욕에서 거주 중인 저자 사쿠마 유미코는 40대 중반의 싱글라이프 여성이다. 저자는 초중고 내내 ‘현모양처 육성’을 대놓고 표방한 가톨릭계 여학교에 다니면서 오히려 그에 대한 반발심으로 여성성에 갇히기보다 자신을 들여다보는 일에 더 열중하기로 결심한다.
뉴욕은 물가도 높고 경쟁도 치열해서 결코 살기 편한 도시는 아니지만, 이곳 사람들은 저마다 꿈을 위해 자기 방식대로 최선을 다한다. 어떤 자세로 사느냐에 따라 다양한 직업과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활짝 열려 있다.
그 덕분에 저자는 뉴욕에 와서 비로소 자신을 하나하나 발견해나간다. 힐을 신지 않기로 결심한 것도 겉으로 보여지는 삶보다 나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살아가겠다는 선언인 셈이다.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면 할수록 인생이 간단치 않다는 걸 알기에(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을수록 우리 모두가 느끼지 않는가) 이왕 사는 인생, 킬힐 따위 벗어버리고 한번 제대로 달려보고 싶은 것이다.
“처음엔 어른으로서 대우를 받으려고, 무시당하지 않으려고 힐을 신었지만, 이제는 스니커즈를 신어도 무시당한다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어깨에 힘을 뺀 내 모습에 호감을 느끼지 않는 사람과는 애초 친밀하게 사귀기 어렵다고 생각한다. 언제든 필요하면 달릴 수 있고 자전거도 탈 수 있는 스타일로 살고 싶다. 힐은 아주 가끔, 특별한 날에 기분을 내고 싶을 때 신으면 된다.”(26쪽)
저자 주변에는 연애와 이별을 반복하면서 자기 세계에서 활기차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많다. 미국 일주 프로젝트를 두 차례나 함께한 사진작가 그레이스, 자신을 성폭행한 대학 동문을 고발하기 위해 학교 캠퍼스에서 침대 매트리스 퍼포먼스를 벌인 엠마,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된 다음 날 여성 권리에 대한 인식을 일깨워주며 함께 ‘여성행진’에 참석한 캐롤라인, ‘지금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자신감을 불어넣어준 요가 선생 히코 등등.
《킬힐은 신지 않는다》는 여성으로서의 성공담이나 가치관, 싱글로서의 자기연민을 이야기하기보다, 여자라는 틀을 깨고 자기 개성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때론 진지하고 때론 유쾌하게 그려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