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으려고 누구의 흉내를 내느냐.”
달빛에 드러난 새하얀 목. 한 번만, 단 한 칼만 제대로 베어 내면 된다.
그의 혼약자, 아령이 그의 눈앞에서 그리 멸하여졌듯이.
“실은 제, 제가 기억이 온전치 않습니다. 그리하여…….”
“그래야 몇 안 되는 정보를 짜깁기하여 날 흔들어 댈 수 있겠지.”
반드시, 죽여 없애야 한다! 륜은 멈추었던 칼을 다시 높이 들었다.
그러나 너는 어쩌면 령아보다도 더 령아 같은가.
“왜요, 왜 못 죽이십니까!”
“넌! 무얼 받고 이리 무서운 짓을 하느냐. 가영궁이 첩실로 삼아 주는 대가더냐.”
륜은 아이를 그대로 들어 벽으로 밀어붙였다. 선 채로 교접하는 것처럼.
아릿한 하초의 쾌감에 온몸이 아득해진다. 이딴 게 무어라고.
“재물이고 사람이고 못 얻을 게 무엇입니까.
예, 가영궁께서 전하를 유혹하라 하시더이다. 흔들면 흔들려는 주시렵니까!”
경방 따위에게 온 마음을 내어 준 아이, 그리하여 이런 무서운 짓을 하는 아이.
이대로 취하여 버릇을 가르치고 싶다. 그러하면 어찌 될까. 세상이 뒤집어질까.
“차라리 창기처럼 벗고 흔들려무나. 수컷의 본능이야 어쩌랴.”
“제가 명아령입니다! 그저 명아령이 살아 돌아온 게 싫으신 것 아닙니까!”
그저, 갖고만 싶다. 이런 것도 홀로 살아남은 천벌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