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고 사랑하고 고민하고 살아남고 살아가는
이주노동자 마을 사람들의 일상에 관한 기록
저렴하게 가구를 살 수 있는 ‘국내 최대 가구공단’으로 알려진 경기도 남양주시 마석가구공단에는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 800여 명이 모여 살아가는 마을이 있다. 이 책은 한국 사회에 알려지지 않은 이주노동자 마을 사람들의 세밀한 일상을 1년 넘게 관찰한 기록이다. 노동과 생활의 공간에서 펼쳐지는 그들만의 독특한 희로애락을 풍부한 인터뷰와 사례들, 그리고 사진을 통해서 생생하게 전달한다. 또한 선주민인 한센인, 공장주, 주변 상인 등 이주노동자와 공생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한국 사람들의 이야기도 담았다.
밀려난 사람들, 잊힌 사람들의 공간: 마석가구공단
이 지역의 역사는 1960년대 고향에서 쫓겨나 전국을 떠돌던 한센인들의 정착마을로 시작되었다. 1990년대 산업화의 영향으로 영세 가구제조업체들이 낮은 임대료와 넓은 공간을 찾아 이 지역에 들어오면서 한센인들이 일군 농장은 마석가구공단이라는 이름을 갖게 되었다. 3D업종으로 분류되는 가구공장에서 일할 사람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온 이주노동자들뿐이어서, 공단에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국적의 이주노동자들의 마을이 생겨났다. 이제 마석가구공단은 차별받던 한센인, 영세한 제조업체들, 그리고 존재를 인정받지 못하는 이주노동자들이 서로 삶의 취약성을 공유하며 함께 만들어낸 작은 세계가 되었다.
폭로와 고발이 아닌 ‘사람 사는 모습’을 기록하다
지금처럼 ‘다문화’가 주목받기 훨씬 전부터 이주노동자들이 한국 경제의 가려진 한 축을 담당하고 있었다. 그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산재, 임금체불, 폭행 등)은 간간이 언론과 책을 통해 알려져왔으나, 한국 땅을 삶의 터전으로 삼고 살아가는 그들의 일상에 대한 기록은 전무했다. 이 책 ??우린 잘 있어요, 마석??은 이주노동자를 폭로와 고발 또는 사태 분석과 대책의 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공장과 집, 즉 일터와 삶터가 뒤섞여 있는 마석 이주노동자 마을을 중심으로, 그 속에서 ‘또 하나의 한국인’ 이주노동자들이 어떤 하루를 보내고 어떤 고민과 희망을 갖고 살고 있는지를 찬찬히 들여다본다.
다양한 사람들의 눈물과 웃음의 사연
이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털어놓는 각각의 사연은 때로는 눈물로 때로는 웃음으로 독자에게 전해진다. 고향의 가족에게 보내는 선물을 담은 ‘발릭바얀 박스’를 최근에 열세번째로 보낸 에드워드 씨, 송금이 끊기자 가족과 연락도 끊긴 안토니 씨, 심근경색으로 사망해 장례식을 치른 샬림 씨, 고된 노동을 위해 산행과 채소 생즙으로 건강을 유지하는 ‘바른생활 사나이’ 사티 씨는 오랜 한국생활을 한 고참급 이주노동자들의 인생역정과 노하우를 들려준다.
한편 전통적인 여자의 삶을 거부하고 새로운 세상을 찾아 네팔을 떠나온 아유시 씨, 마석의 생활을 바탕으로 단편영화 감독이 된 경제학도 하니프 씨, 한국에서 중고등학교를 나왔으나 졸업 후 더 이상 길이 막혀버린 스물한 살 아인 씨, 다섯 살 때 아빠와 함께 단속에 잡혀간 기억이 있는 아이 파루키는 마석 젊은 세대와 이주노동자 2세의 현실을 대변한다.
이주노동자들과 끈끈한 공생관계를 이루고 사는 한국인들도 빼놓을 수 없다. 간판에 이주노동자들에게 친숙한 단어 ‘새끼야’를 적어넣어 친근함을 표시한 S마트 주인, ‘핵심인력’을 위해 자기 차로 출퇴근 시켜 보호한 라자 씨네 공장사장, 다 같이 힘을 합쳐 이주노동자들을 태운 단속버스를 막아선 마을 한국인 주민들 모두 이 마을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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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마석에 있는 신랑과 방글라데시에 있는 신부가 한날한시에 올리는 전화결혼식, 단속으로 본국으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가 보내온 편지, 평범한 공장 노동자로 일하는 이맘과 트랜스젠더의 사연, 마을의 유일한 호프집을 둘러싼 애정관계 등 내부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그들만의 일상다반사가 책 전반에 펼쳐진다.
1년여의 인터뷰와 취재로 일궈낸 이주노동자에 대한 문화기술지
2012년 초부터 1년여 동안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팀과 이 책의 작가가 마석 이주노동자들과 한국인 주민들의 인터뷰를 맡았다. 그리고 현지 이주노동자 지원단체인 샬롬의집의 취재와 자료제공을 통해 작가가 집필하고, 사진작가가 지역 곳곳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2013년, 5개월간 매주 진행된 기획회의에서는 글작가, 사진작가,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연구자, 샬롬의집 실무자, 그리고 출판사 편집자가 참여해서 이 책의 방향과 내용을 잡아나갔다. 각계 전문가들이 모여 1년 넘게 준비한 ??우린 잘 있어요, 마석??은 독자들이 우리 곁의 ‘보이지 않는’ 이주노동자를 이해하는 새로운 방식이 되는 동시에, 한국 이주노동자의 역사와 연구에서도 지금껏 없었던 값진 기록이 될 것이다.
본문 내용
1부(‘마석’이라는 공간)에서는 초기에 정착마을을 이룬 한센인들의 애환과 이주노동자들이 이곳에 등장하는 과정을 담았다. 1990년대 초반 이주노동자들의 정서와 문화, 그리고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어울려 살아가면서 만들어간 공동의 질서 등에 관해 다루었다.
2부(마석가구공단, 그 마을 사람들)는 이를테면 이 책의 무대와 등장인물 소개다. 마석가구공단은 어떤 곳이며 이곳을 삶의 터전으로 살아가는 이주노동자와 한센인들, 공장주, 상인들은 어떤 사람들인지를 설명한다.
3부(일터의 풍경)는 공단 내 공장, 즉 일터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공개한다. 월급은 대략 어느 정도 받으며 이들의 노동조건은 어떤지, 공장주와의 관계는 어떤지,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드러낸다. 또한 영세 공장주들이 겪는 어려움에 대해서도 전해들을 수 있다.
4부(공단 일상다반사)는 일터를 벗어난 이주노동자들의 일상 이야기다. 풍부한 일화들 속에서 드러나는 이들만의 휴일, 주거공간, 소비생활, 종교생활, 건강관리 등을 있는 그대로 모으고, 이곳에서의 사랑과 결혼, 경조사, 가족 간의 이별 등 희로애락을 그려보았다. 이어지는 5부(관계들)에서는 이들이 서로 관계를 맺어가는 방식에 대해 좀더 자세히 살펴보았다.
6부(또 다른 공간, 본국과 타국)에서는 이주노동자들의 본국으로 시선을 돌린다. 이들에게 본국은 어떤 의미인지, 어떻게 떠나왔으며 어떻게 돌아갈 예정인지, 이들의 몸과 마음의 여정을 뒤쫓는다. 한편 왜 이들이 귀환을 미루고 있으며 실제로 귀환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지도 살폈다. 그러면서 한국에서 추방당한 이주노동자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새롭게 자각하는 사례도 제시했다.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에게 ‘단속’과 ‘강제추방’은 공포스러운 사건을 넘어서 삶의 기반을 흔들어놓는 충격이다. 이는 7부(삶을 짓누르는 두 단어, 불법과 단속)에서 드러난다. 실제 일어난 대대적인 단속 사례를 살피면서 불법이라는 낙인을 찍어두는 한국의 법제도와 이주노동자들 앞에 놓인 현실적인 제약을 탐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