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청자는 실로 아름다우나 그것은 송나라 때 작품에 가깝고, 또한 비색(?色)이어서 완전히 귀족 이외에는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고려의 상안(象眼)(상감象嵌)으로부터 변화하여 조선왕조에 이르러 가장 융성한 그 아름답게 새긴 백회(白繪), 쇄모목(刷毛目) 같은 것을 교묘하게 쓴 것 등은 어떤 사람에게든지 사용을 허락한 백성의 일용품이었다. 조선의 진사(辰砂)는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볼 수 없는 특별한 것이다. 그것으로 자유로운 선을 표현하여 그 윤곽을 명료하게 남도록 하는 수법은 실로 교묘한 것이다. 중국의 진사의 빛깔과 조화하여 흐릿한 적색을 나타내는 것은 아주 독보적이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