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동안 오마이뉴스 등 여러 매체에 발표했던 글들을 묶어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라는 책을 펴냈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우주는 원자가 아니라 스토리로 이루어졌다고 하는 뮤리엘 러카이저의 말에 동의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수도 서울의 상징일 뿐 아니라 2천5백만 수도권 시민들의 휴식처로 사랑받고 있는 북한산은 삼국시대 이래로 정치 군사적 요충지로서 한반도 역사의 중심 무대로 자리매김해왔다. 백운대 · 인수봉 등 천혜의 자연경관과 함께 청담사 · 용출사 · 신혈사 등 유서 깊은 사찰들이 즐비하였고, 보허각, 청담초당, 와운루, 귀래정 등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자와 초당들이 산재했던 곳이지만 그러나 오늘날 이 같은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정릉의 손가장(孫家莊)과 인수봉 북쪽 청담동은 그 아름다운 절경에 취해 옛 사람들이 다투어 시를 읊고 노래를 부르며 풍류를 즐기던 곳이지만 이제는 그 이름마저도 가물가물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없다.
『3인의 선비 청담동을 유람하다』는 ‘현해당의 북한산 이야기’라는 부제에서 알 수 있듯이 조계동 구천 은폭으로부터 출발하여 우이동 도성암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북한산의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추적해 본 작품이다. 거기에는 비운의 왕자 인평대군 이야기를 비롯하여 청나라 황실에서 하사했다는 장수불 이야기, 추사가 쓴 것으로 알려진 진관사 대웅전 현판 이야기, 이말산에 묻힌 비운의 시인 창랑 홍세태 이야기, 숙종이 사랑했던 고양이 금묘 이야기, 그리고 북한산 내의 비밀의 동부(洞府), 청담동 이야기 등등 지금껏 드러나지 않았던 북한산의 내밀한 이야기들이 하나 가득 들어있다. 이야기의 형식도 다양하다. 직접 현장을 답사하며 쓴 답사기도 있고, 도성암처럼 본래 있던 자리를 알 수 없는 경우에는 소설의 형식을 빌려 그 위치를 추적해본 것도 있고, 그때그때의 감흥을 읊은 시, 그리고 선인들의 유산기를 번역하고 해석한 번역문도 있다. 그렇다면 궁극적으로 이 책이 의도하는 바는 무엇인가?
문체부에서 발표한 ‘2017년 국민생활체육 참여 실태 조사 보고서’에 의하면 우리나라 등산인구는 대략 1500만 명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는데 그 중에는 고산이나 험산을 오르내리며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알피니스트들도 있겠지만 보통은 가벼운 산행을 통해 일상의 스트레스 해소, 신체 단련, 구성원 간의 친목 도모를 목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도시 근교의 산들은 주말이면 삼삼오오 무리를 지은 등산객들로 붐비고 여기저기 둘러앉아 음식을 나누고 술잔을 돌리는 모습을 심심찮게 발견할 수 있다. 물론 이것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이 각박한 시대에 그런 재미마저도 없으면 어찌 되었을까 할 정도로 우리의 삶이 고단하고 팍팍한 것도 사실이다. 문제는 그러다 보니 우리의 산이 나날이 파괴되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도시 근교의 주요 등산로들은 하나같이 흙이 파여 울퉁불퉁 돌부리가 드러나고 주변의 나무들은 뿌리를 드러낸 채 생존을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계곡은 나날이 오염되어 가고 곳곳에 쓰레기와 오물이 넘쳐나며 산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생명들의 개체 수가 나날이 감소하는 이 몰상식의 시대, 산은 얼마나 더 인간의 피난처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산이 더 병들기 전에 우리의 등산 문화를 바꿔보자는 것이 이 글의 숨은 의도이다. 나는 그것을 스토레킹(storekking)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야기가 있는 산행, 우리가 매일처럼 오르내리는 산의 역사와 문화유적들을 알고 그 산이 간직하고 있는 숨겨진 이야기들을 이해할 때 산은 더 이상 정복과 파괴의 대상이 아닌, 존중과 경배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의 등산이 다분히 인간 중심의 행위였다면 이제부터는 산과 그 산을 모태로 살아가는 생명들이 주가 되는 행위로 바꾸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