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 듣기 교실
첫 이야기, 그리운 건널목 씨
아주 작은 집
따뜻한 에너지를 뿜는 사람
경비실로 숨는 아이
진짜 건널목이 생겼다!
고소한 쌀과자 냄새
너무 늦은 말
작가의 말
『내 가슴에 해마가 산다』 『완득이』의 작가 김려령이 선보이는
어린이와 어른을 위한 동화
문학동네어린이문학상, 마해송문학상, 창비청소년문학상을 동시에 거머쥐며 어린이청소년책 작가로 우뚝 선 김려령이 이번에는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동화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선보인다. 세련된 재치와 뜨거운 감성이 녹아든 이번 작품은 작가 김려령의 작법과 작가의식이 응집되어, 어린이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마음까지 단박에 사로잡는다.
때로는 힘들고 지쳐 주저앉고 싶을 때도 있을 테지요. 어른들도 부족한 게 많아 번쩍 안고 원하는 곳으로 옮겨 줄 수는 없습니다. 그래도 덜 힘들게 덜 아프게 덜 무섭게 그 시기를 건널 수 있도록 건널목이 되어 줄 수는 있습니다. 친구라도 좋고 이웃이라도 좋습니다. 먼저 손을 내밀어도 괜찮고, 누군가 먼저 내민 손을 잡아도 괜찮습니다. 우리 그렇게 살았으면 합니다._김려령
힘든 현실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아 주고, 어깨를 다독여 줄 수 있는 세상. 이번 작품에 등장한 ‘그 사람, 건널목 씨’는 우리 모두가 그러한 세상으로 갈 수 있게 건널목 역할을 해 준다. 빨간색 녹색 동그라미가 그려진 모자를 쓰고 건널목이 그려진 카펫을 짊어지고 다니며, 건널목이 없는 곳에서 마술처럼 건널목을 만들어 내는 건널목 씨. 그가 있기에 사람들은 안전하게 길을 건너고, 다소 신기한 모습에 웃음을 머금게도 된다.
보다 많은 독자들에게 건널목 씨의 ‘건널목’과 같은 소박하지만 꼭 필요한 ‘동화’를 선보이고자 한 작가의 진심 어린 마음이 작품 곳곳에서 엿보인다. 등장인물들이 어린 시절 만났던 건널목 씨를 가슴 깊이 품고 살듯, 우리도 가슴 한곳에 이 동화를 품고 살아가면 좋겠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의 출현은 우리 어린이문학에도 신선한 자극과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다. 화려하거나 자극적인 인공조미료가 첨가되지 않은, 천연 그대로의 담백한 동화 맛을 느끼게 해 주니 말이다.
이 한 편의 동화가 겨우내 얼어붙은 세상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기를 기대해 본다.
‘문밖동네’ 문학상으로 등단한 동화작가의 이야기 교실
칠 년 전 ‘문밖동네’ 출판사에서 문학상을 받고 등단한 동화작가 오명랑. 의기양양했던 그 시절은 온데간데없고 『내 가슴에 낙타가 산다』 이후 그럴싸한 작품도 못 내놓고 있다. 가족들 보기도 민망한 나머지, 그나마 본인이 할 수 있는 일을 생각하다 찾은 건, 바로 ‘이야기 듣기 교실’! 그런데 어떤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다 불현듯 머릿속에 번개처럼 스치는 것이 있었으니, ‘나는 그동안 독자들에게 마음을 연 작가였던가’! 듣는 사람의 마음을 열려면 이야기를 하는 자신부터 마음을 열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다.
독자들에게 들려주지 못하고 가슴에 꽁꽁 숨겨 둔 이야기가 있다. 부끄럽고 누추해서 숨기고 싶지만, 그렇다고 해서 따뜻한 사랑을 나누어 준 아저씨마저 숨기면 안 되지 않나……. 나는 아직 아이들에게 아저씨만큼 따뜻한 사랑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아저씨의 마음만큼은 잘 전달할 자신은 있다. 나는 이야기 작가니까.
이제 곧 찾아올 아이들에게 아저씨의 마음을 전할 것이다. 나 잘난 작가의 허풍선을 터뜨리고, 조금 부족하더라도 진솔한 작가로 다가갈 생각이다._본문 중에서
드디어 세 명의 제자가 찾아오고, 오명랑 작가는 건널목 씨 이야기, 그리고 자신과 가족의 이야기를 꿋꿋하게 들려준다.
언제든 어디서든 건널목이 되어 주는 그 사람, 건널목 씨
건널목 씨는 직접 만든 신호등 모자와 카펫을 들고 다니며 건널목이 없는 곳에서 기꺼이 건널목이 되어 준다. 그의 선한 마음이 전달되면서 삭막했던 아리랑아파트 주민들의 생활과 분위기도 조금씩 달라진다. 좋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사람, 그냥 당연하게 남을 배려하는 사람, 그 사람이 바로 건널목 씨인 것이다.
둘둘 말린 카펫을 배낭에서 빼내잖아. (중략)
건널목 씨는 그 카펫을 들고 서서 도로를 살폈어. 그러더니 차가 안 오니까 잽싸게 도로에 까는 거야. 세상에, 건널목이야! 검은색 천에 흰색 페인트로 칠을 한 카펫 건널목인 거야. (중략)
건널목 씨는 재빨리 도로 중앙선에 섰어. 그리고 목에 걸고 있는 호루라기를 불었지. 운전자들한테 신호를 보낸 거야._본문 중에서
그뿐만이 아니다. 가정폭력 속에서 상처받는 아이 도희, 엄마 아빠의 부재 속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태석, 태희 남매의 마음에도 건널목 씨는 작은 건널목을 놓아 준다. 추울 때 따듯하게 손을 잡아 주고, 주머니를 털어 반찬과 기름을 사다 주고, 두려운 순간을 함께 견뎌 주고……. 그리고 무엇보다 기댈 수 있는 ‘어른’이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든든한 건널목인 것이다. 그 마음의 건널목을 통해 아이들은 덜 춥고, 덜 외로운 시간을 보낸다.
그리고 얼마 뒤 도희는 이사를 가게 되고, 태석이 남매에게는 엄마가 찾아온다. 낯설고 힘들더라도 아이들이 스스로 견뎌 내고 성장할 것을 믿고, 건널목 씨는 어느 날 갑자기, 또 다른 어딘가를 향해 길을 떠난다.
씨실과 날실처럼 교차되는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
재미와 감동, 두 마리 토끼를 잡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는 이야기 구성부터 독특하다. 현재와 과거의 일들이 씨실과 날씨처럼 엮어지다, 끝내 하나로 모아져 단단하고 야무진 매듭을 갖는다. 과거의 사람들이 현재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서로 어떤 관계 속에 살아가는지를 유추하며 읽어도 재밌을 것이다.
작가 김려령은 너무 진지하거나 어둡지 않게, 하지만 가볍지 않게 적절히 감정선을 유지하며 현재와 과거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그 안에는 작가로서 독자들에게 하고 싶었던 말, 그리고 작가로서 본인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 등이 녹아들어 있다.
좋은 동화는 읽는 이의 마음에 큰 울림을 주게 마련이다. 그리고 그 울림은 여기서 저기로, 저기서 또 저기로 전해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커다란 울림은 이 세상을 좀 더 맑고 따듯하게 변화시킬 수 있다.
글에 꼭 맞는 그림옷이 오래도록 눈길을 머물게 한다. 화가 장경혜는 이번 작업에서 다양한 색감과 그림체를 선보이며 한 컷 한 컷을 정성들여 작업했다. 이처럼 김려령, 장경혜 두 작가가 만나 맺어 낸 이 귀한 열매를 이제 자신 있게 독자들 품으로 보낼 순간이다. 『그 사람을 본 적이 있나요?』를 만난 독자라면, 마음속에 작은 건널목 하나를 갖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