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콜라철학은 무엇인가
1. 神學의 下女 스콜라철학
‘스콜라哲學(scholasticus, Scholasticism)’에서 스콜라는, 고대 그리스어에서 ‘餘裕’라는 뜻을 가진 ‘스콜레(σχολη)’를, 라틴어 ‘schola’로 소리 나는 대로 적은 낱말로서, 오늘날 學派라는 뜻으로 이해되고 있다.
특히 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서, 유럽의 정신세계를 지배하였던 神學에 바탕을 둔 철학사상을 일컫는다. 때문에 哲學思想史에서는, 이 시기의 철학을 통틀어서 흔히 ‘스콜라主義’라 부르고 있다.
스콜라철학은 기독교의 신학에 바탕을 두기 때문에, 일반철학이 추구하는 진리탐구와 인식의 문제를 신앙과 결부시켜 생각하였으며, 인간이 지닌 理性 역시 神의 啓示 혹은 全能 아래에서 이해하였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은, 유럽의 中世를 ‘暗黑의 世紀’로 만들고 말았다. 虛無孟浪한 形而上學的 ‘神 image’에 의해 작동하는 세계는, 현실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하지 않으며, 虛妄한 유토피아를 꿈꾸기 때문이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도 중세 유럽과 유사하다. 허무맹랑한 左派 이데올로기에 의해 현실세계를 조작하려고 하는 탓에, 현실세계는 온통 뒤틀려버리고 말았다.
더욱이 현재 執權하고 있는 ‘문재인 정권’은, 국제사회에서 그 정권의 正當性과 正統性을 전혀 인정받지 못한다. ‘세월호 사건’을 시작으로, 온갖 프로파간다 여론조작으로써, 기존의 ‘박근혜 정권’을 탄핵시키고서 정권을 簒奪했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국제적 왕따’가 되어버린 상황이다. 현재 진행중인 韓日 무역전쟁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발행한 사건이다. 북한이나 중국은 말할 나위 없으며, 동맹관계에 있는 미국과 자유민주 진영에 있는 일본으로부터도 따돌림 당하는 것이다.
이런 일련의 국제정치적 상황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허무맹랑한 좌파 이데올로기로써 현실세계를 조작하기 때문이다. 세계사 안에서 이미 그 실패를 여실히 目睹했으면서도, 자기들의 이득을 목적하며 국민들을 ‘개돼지 군중’의 상태로 내몰고 있는 탓이다.
중세 유럽에서도, 司祭 집단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목적하며, 온갖 허무맹랑한 神的 이데올로기로써 프로파간다 선동질을 하고, 惑世誣民하는 탓에 ‘암흑의 세기’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기괴하게도 이러한 흐름은, 기존의 唯一神思想을 더욱 功固히 하였다. 絶對者 唯一神의 獨存은, 현실세계의 모든 권력의 最上位에 배치되었다. 따라서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들은, 응당 全知全能한 神의 權能으로써, 유토피아가 실현되길 바란다.
하지만 唯一神思想은 그저 死後의 千年王國을 모색할 따름이었다. 그러다보니 그러한 시절을 흔히 ‘暗黑의 世紀’라고 分別한다.
‘天國行 티켓 발행권’을 지닌 세력으로서 司祭集團에 의해 旣得權이 독점되고, 온갖 不正腐敗와 惡行이 자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서양문명의 역사에서 中世처럼 암울한 시절도 드물다는 의미이다.
서양문명의 中世가 ‘게르만족의 대이동(南下)’에 의해 시작되었음은 周知의 사실이다. 그런데 게르만족이 南下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 유럽인들은 어쩐지 은폐하거나 외면한다. 유럽에 있어 치욕스러운 역사로서 인식하는 탓이다.
게르만족이 남하하게 된 까닭은, 동아시아와 중앙아시아의 匈奴族이 西進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에서 흉노족은 ‘Hun族’으로 지칭된다. 훈족 세력이 유럽을 점령해 들어오자, 게르만족들은 생존을 위해 地中海 지역으로 南下했으며, 이를 ‘게르만족의 대이동’이라고 규정하는 것이다.
여기서 흉노족이 東夷文明의 東夷族 계열로서, 韓民族과 동일한 文明的 始原을 갖는다는 점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
유럽의 歷史家들은, 자기들이 침략당한 불편하고 불쾌한 역사인 탓에, 훈족 세력의 역사에 대해 歪曲하거나 貶毁하는 樣相을 보이는데, 이는 人之常情이다.
그러다보니 서양문명이 世界支配를 하게 된 이후, 줄곧 편향된 歷史가 人類史를 주도하고 있다. 우리 입장에서는, 중국이나 일본의 歷史歪曲만이 아니라, 저 먼 과거에 유럽에서 이미 역사왜곡이 발생한 것이다.
이처럼 역사라는 것은, 어느 누구라도 自己勢力에게 이익되는 역사를 구성하기 마련이다. 역사를 객관적으로 記述한다는 것은, 애당초 불가능한 바람일 뿐이다.
예컨대, 대한민국의 최근 現代史의 경우, ‘43 사건’, ‘518 사건’, ‘세월호 사건’, ‘박근혜 대통령 탄핵 사건’ 등, 불과 몇 년 길어봐야 몇 십년 전의 사건마저도, 객관적으로 규명되지 않으며, 온갖 曰可曰否가 횡행하고 있다.
결국 역사라는 것은 ‘기록하는 자의 역사’이며, ‘기록하는 자의 이익을 위한 역사’일 수밖에 없는 것이, 역사의 숙명인 탓이다.
가령 스콜라철학에서는 神의 존재 문제를 애써 다루었는데, 여기서 스콜라철학자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물질적 혹은 추상적 방법론으로 관찰 또는 연구하지 않고, 언제나 기독교의 신앙에 따라 해결하고자 노력하였다.
이와 같은 노력의 산물 혹은 수단으로써, 스콜라철학자들은 ‘아리스토텔레스’의 전통 아래 광범위하게 論理學을 발전시킨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콜라철학은 그리스도교의 敎義를 학문적으로 체계화하려는 철학으로, 중세 초기에 ‘샤를 大帝’는 유럽 각지에 神學院을 설립하고, 학문육성에 진력하였다.
스콜라學의 명칭은, 이 ‘神學院敎授(doctores scholastici)’에서 유래하며, 그 후 중세의 신학원과 대학에서 연구되는 학문을 널리 스콜라학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스콜라철학은 그 가운데 한 부문인 철학 분야이다. 스콜라학은 이 때문에 중세의 神學, 철학연구 전반을 총괄하는 것으로, 매우 다방면에 걸친 것이지만, 거기에는 전체적으로 공통되는 몇 가지 특징도 있다.
그것은 중세의 학문연구방법(스콜라學的 방법)에서 오는 것인데, 이것에 의하여 중세철학의 본연의 자세가 근본적으로 규정되었다.
그 특징은 중세의 학문연구는 대체로 聖書와 敎父의 저서, 고대 그리스나 로마의 철학자, 기타 저술가의 저서에 대한 문헌적 연구에서 시작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이들 저서의 讀解, 註釋, 解釋이 그 첫째 작업이었다.
이 무렵 성서는 神의 말을 전하는 것으로서 가장 중시되었다. 신의 말은, 먼저 신앙에 의하여 인간에게 받아들여지지만, ‘신앙’은 인간이 거기에 내포되는 신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새 사람으로 재생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래서 ‘신앙의 이해’라는 것이, 스콜라학이 지향하는 목표였다. 이때 信仰과 理解(理性)는, 서로 한쪽이 다른 한쪽을 요구하면서도, 한쪽이 다른 한쪽에 용해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 긴장관계에 있으며, 이것은 바로 중세철학을 구성하는 두 요인이다.
따라서 중세철학을 ‘神學의 下女’라 하여, 한편에 대한 예속관계로서만 보는 것은 일면적이다.
스콜라철학은 한쪽이 다른 한쪽에 예속되는 곳에서는 상실되며, 긴장관계에 있는 양자의 종합에 의해서만 스콜라학이 성립된다. 스콜라학의 다양성은, 이 綜合의 다양성에 있다. 敎父와 哲學者의 저작은, 이를 위해 사용되었다.
하나하나의 문제점에 따라 참조되는 여러 典據에서 볼 수 있는 여러 說이 수집·정리되었다. 12세기 초, ‘페트루스롬바르두스’의 ‘命題論集’은 이런 종류의 대표적인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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