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편 박정희
1.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다(1940)
인간존재의 삶, 그 자체야말로, 지극히 정치적인 과정이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표현은, 곧 ‘인간은 정치적 동물’이라는 것과 다름 아니다.
그래서 정치야말로, 가장 거대하며, 동시적으로 가장 세밀한, ‘인간 드라마’이다. 때문에 정치철학적 관점에서 살피는 현실세계의 모습은, 실로 다채로우며 재미있다.
국내정치는 물론이며, 국제정치에 관련된 뉴스를 접하다 보면, 그것만큼 흥미를 유발하는 것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세계의 인간존재들이 정치에 대해 무관심해지는 경향이 있다.
그러한 근본적인 원인은, 정치에 대해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의 정치적 사태를 이해하여 분석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적으로 전반적인 인문학적 지식을 지녀야 한다.
정치철학적 관점은 물론이며, 정치학, 경제학, 법학, 윤리학, 역사학, 심리학 등, 온갖 지식이 망라되어야만 정확한 이해와 분석이 가능하다.
그러다보니 그러한 과정에 버거움을 갖는 대부분의 서민대중들은, 정치에 무관심하거나, 정치적 선동질과 공작질에 의해 ‘개돼지 군중’ 노릇을 하기 십상이다.
정치에 무관심한 것도 큰 문제이지만, 정치적 ‘개돼지’가 되어버리는 것은 더 큰 문제이다. 그러니 정치적 ‘개돼지’가 되지 않으려면, 죽음의 순간까지 앎에 대한 노력을 멈추지 말아야 한다.
현대사회는 다양한 매체를 통해, 온갖 장르의 지식을 쉬이 접할 수 있다. 그러니 조금만 관심과 노력을 기울인다면, 금세 어느 정도의 정치적 판단을 가질 수 있다.
특히 政治史의 경우는, 서민대중의 흥미를 유발할 만한 다양한 시도가 행해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상황을 이해하고 분석할 수 있으려면, 지난 정치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대한민국의 현대정치사를 회고할 때, 이승만이든 김일성이든, 박정희든 김정일이든, 그야말로 그 나물에 그 밥이라는 생각이 앞선다.
그저 대한민국의 국민이므로, 다소의 의무감에 이승만이나 박정희에 대해 좀 더 호의적임은 人之常情이다. 분명 그들에 의해, 현재의 대한민국이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무작정 崇仰한다는 것은, 당최 비위에 거슬린다. 그러한 측면에서, 남한의 상황에 비한다면, 북한의 사이비 메시아 세습 왕조의 상황은, 실로 最惡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民族主義的 羨望에 사로잡혀, 從北主義的 作態를 보이는 ‘개돼지 群衆’을 대할 때면, 가슴 답답함을 감출 수 없다.
一言以蔽之하여, 북한은 남한에 대해, 동일한 韓民族이라는 同族意識을 전혀 갖지 않는다.
北韓人에게 南韓人들은, 그저 美帝國主義의 앞잡이로서, 돈벌이를 위해, 철천지원수인 일본과 동맹관계에 준하는 짓을 자행하는 傀儡集團일 뿐이다.
그러한 인식은, 남한이라고 해서 별 다를 것 없다. 많은 南韓人들이, 겉으로는 남북한의 민족의식에 찬동한다. 하지만 그것은 단지 겉으로 드러나는 이익 추구를, 은폐하려는 것에 불과하다.
실상, 대부분의 남한인들은 북한에 대해 별다른 관심이 없다. 굳이 북한이 아니더라도, 자기의 욕망을 충족시킬만한 것들이, 남한에 차고 넘치기 때문이다.
남한이든 북한이든, 늘 그 속내는 서로 다르다. 그러한 상황은, 광복 이후, 남북한이 분열을 맞으면서, 현재까지 지속되는 현상이다. 과연 이러한 상황을 극복하고서, 남북한이 통일을 실현할 수 있을까.
현재로서는 지극히 비관적이다. 南北韓이 서로 한 치의 양보도 없음은 물론이며, 중국, 일본, 러시아 등의 지정학적 인접국들이, 남북통일을 극단적으로 반대하고 있는 탓이다.
하지만 한민족은 통일을 목적해야만 한다. 그것만이 한민족이 생존할 수 있는 미래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남한의 입장에서는, 남한이 북한을 흡수하는 형태의 통일을 시도할 수밖에 없다. 물론 북한은, 목숨을 걸고서 남한에 대항할 것이다.
그렇다면 평화적인 통일을 시도하면 되지 않겠는가. 애석하게도 국제정치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또한 역사적 사례를 살필 때에도, 어떠한 통일이든, 그것이 평화적인 상황에서 실현된 사례는 거의 없다.
예컨대, 동독과 서독의 통일이 평화통일이었는가. 그것은 철저히 경제적 흡수 병합이었다. 서독을 중심으로 하는 자본주의 진영에 의해, 경제적 약자인 동독이, 공산주의 이데올로기를 포기하고서, 먹고살기 위해 무릎을 꿇은 것이다.
남북한의 통일 역시, 그러한 상황을 피할 수 없다. 남북통일을 불필요한 것으로 규정한다면 모르겠으나, 통일 이외에 남북한이 미래적 생존을 보장 받을 마땅한 방편이 있는가. 이것이 또한 문제가 된다.
현재의 상태라면, 북한은 ‘고난의 행군’이 지속될 것이고, 대한민국은 생존을 위해, 그저 먹고 살만한 弱小國으로서, 미국 등 서구 열강의 ‘시다바리’ 노릇을 지속해야 한다.
외교적인 차원에서 평화적 통일을 선전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은 허망한 말장난일 뿐이다. 결국, 남한이든 북한이든, 둘 중 하나가 무릎을 꿇어야 한다.
그런 것이, 국제정치의 弱肉强食 구도 안에서 실현될, 남북한의 미래이다. 이에 대해 불편한 감정을 가질 수 있지만, 지난 歷史는 이러한 상황을 너무도 여실히 검증해주고 있다.
‘朴正熙(1917~1979)’는 대한민국의 제5·6·7·8·9대 대통령이다. 本貫은 高靈, 號는 中樹이다.
대구사범학교(1932~1937)를 졸업하고, 3년간 교사로 재직하다, 1940년 봄, ‘만주국 육군군관학교’에 입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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