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안전 수칙 × 질 D. 블록
피에르, 뤼시앵 그리고 나 × 리 차일드
부채를 든 소녀 × 니컬러스 크리스토퍼
세번째 패널 × 마이클 코널리
의미 있는 발견 × 제프리 디버
이발사 찰리 × 조 R. 랜스데일
조지아 오키프의 꽃 이후 × 게일 레빈
암푸르단 × 워런 무어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 데이비드 모렐
아름다운 날들 × 조이스 캐럴 오츠
인류에게 수치심을 안기기 위해 우물에서 나오는 진실 × 토머스 플럭
홍파 × S. J. 로전
생각하는 사람들 × 크리스틴 캐스린 러시
가스등 × 조너선 샌틀로퍼
태양의 혈흔 × 저스틴 스콧
대도시 × 세라 와인먼
다비드를 찾아서 × 로런스 블록
그림 허가
옮긴이의 말
다시 한번, 형태와 색으로 빚어진 예술이
삶과 영혼을 가진 찬란한 이야기가 된다!
★ 브램 스토커 상 수상작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수록 ★
고대 동굴벽화부터 미켈란젤로, 고갱, 고흐, 르누아르, 마그리트와 달리에 이르기까지
다채로운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17편의 어둡고 기묘하고 매혹적인 이야기들
미국의 유명 하드보일드 작가 로런스 블록은 몇 년 전 기발한 아이디어를 하나 떠올리고, 스티븐 킹과 조이스 캐럴 오츠를 비롯해 일군의 걸출한 작가들을 아주 매력적인 문학 프로젝트에 초청했다. 화가 에드워드 호퍼의 그림을 하나씩 선택해, 그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단편소설을 써내는 것이었다. 기획자와 참여자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은 이 탁월한 기획은 2016년 한 권의 책이 되어 세상에 나왔고, 모든 단편이 최상급인 훌륭한 소설집이라는 찬사를 받으며 언론과 독자들로부터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그리고 이듬해인 2017년, 한국에서도 ‘빛 혹은 그림자’라는 제목으로 번역본이 출간되어 많은 사랑을 받았다. 하지만 그 눈부신 성공을 채 다 만끽하기도 전에, 이 기획의 책임자 로런스 블록의 마음에는 고민의 그늘이 드리웠다. ‘그렇다면 앙코르로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
전작의 성공으로 인해 높아진 기대치와 부담감을 짊어지고 씨름하던 그는 고심 끝에 단편집의 규칙을 약간 변경하기로 했다. 이번에는 화가 한 명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이야기를 엮는 대신, 참여 작가들이 각자 원하는 예술가의 작품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그리고 『빛 혹은 그림자』에 참여했던 쟁쟁한 작가들 모두에게 조심스럽게 청탁 메일을 보냈다. 그중 몇 명이라도 수락해준다면 다행이라는 심정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초대를 받은 대부분이 두번째 초청을 흔쾌히 수락했고, 피치 못할 사정으로 불참하게 된 이들을 대신해 네 명의 새롭고 개성 있는 작가들이 합류했다. 그렇게 조이스 캐럴 오츠, 리 차일드, 마이클 코널리, 제프리 디버, 데이비드 모렐을 포함해 재능 넘치는 이야기꾼 열일곱 명의 작품으로 구성된 소설집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의 막이 올랐다.
미술작품을 재료로 최고의 소설가들이 차려낸 예술적 만찬
예술작품의 선정에 제한을 두지 않은 덕에, 다양한 형식의 다채로운 작품들이 책에 실린 매혹적이고 흥미진진하며 때로는 오싹하고 긴장감 넘치는 이야기들에 영감을 주었다. 각각의 작가들은 이러한 자유로운 규칙을 날개삼아 기발하고 거침없는 상상력을 펼치며 저마다 독창적이고 매력적인 이야기를 완성했다. 그리하여 선사시대 동굴벽화부터 고흐, 고갱, 르누아르, 마그리트, 달리와 같은 유명 화가들의 그림을 비롯해 미켈란젤로와 로댕의 조각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에, 서로 다른 재료와 색채와 스타일로 빚어진 미술작품들이 소설이라는 또다른 예술을 통해 새로운 목소리와 생명을 얻게 되었다. 또한 전작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작가들에게 이야기의 요람이 되어준 작품들이 컬러 도판으로 수록되어, 소설을 더욱 생생하고 실감나게 감상할 수 있다.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는 다시 한번 다양한 취향과 기호를 만족시킬, 우아하고 영리하며 맛깔스러운 단편집이다.
예술, 지금 여기의 시간 속에서 새롭게 태어나다
대다수가 미스터리와 범죄 소설의 성격을 띠고 있는 이번 소설집의 한 가지 특징은, 다수의 작가들이 미술작품의 풍경을 간접적으로 차용하는 대신 실제 작품과 예술가를 소설 속으로 적극 끌어들였다는 것이다. 허구적인 상상과 역사적인 사실의 결합은 단단한 현실에 균열을 일으켜, 그 위에 발을 딛고 있는 독자들을 가상의 세계로 즐겁게 추락시킨다.
리 차일드는 오귀스트 르누아르가 사망한 해에 부정한 방법으로 그의 정물화 〈국화꽃다발〉을 손에 넣은 한 사기꾼의 회고를 그린다(「피에르, 뤼시앵 그리고 나」). 니컬러스 크리스토퍼는 폴 고갱이 세상을 떠나기 일 년 전에 완성한 〈부채를 든 소녀〉에 담긴 아름답고 슬픈 사연을 상상력을 발휘해 재구성한다. 극중에 등장하는 프랑스 아를의 ‘노란 집’은 실제로 고갱과 그의 친구 빈센트 반 고흐가 함께 머물렀던 곳이다(「부채를 든 소녀」). 범죄소설의 대가 마이클 코널리의 「세번째 패널」은 15세기의 화가 히로니뮈스 보스의 대표작인 〈세속적인 쾌락의 동산〉을 모티프로 한 살인 사건에 대한 이야기다. 짧지만 강렬한 이 작품에서 독자들은 기괴한 사건으로 인해 미궁에 빠진 두 형사와 함께 전혀 예상치 못한 결말을 마주하게 된다. 세라 와인먼의 「대도시」에서 주인공은 애인의 집에 걸려 있는 누드화의 모델이 오래전 세상을 떠난 자신의 어머니임을 알아보고, 그 그림을 차지하려는 과정에서 어머니와 화가의 관계를 알게 된다.
한국어 번역본의 표제작이자 브램 스토커 상 수상작인 데이비드 모렐의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는 역사상 가장 유명한 화가 중 한 명인 반 고흐를 아주 기발한 방식으로 소설 속에 되살려낸다. 고흐를 모델로 한 것이 분명한 가상의 인상파 화가 ‘반 도른’의 그림 속에 숨겨진 비밀을 파헤치는 여정을 그린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하는 창의적이고 영리한 수작이다.
예술, 인간을 들여다보다
어떤 단편에서는 미술작품이 등장인물의 심리적 풍경을 대변하는 경우도 있다. 워런 무어는 살바도르 달리가 그린 〈전혀 아무것도 찾지 않는 암푸르단의 약사〉의 황량한 풍경을 단편 속 주인공의 공허한 심리를 반영하는 장치로 사용한다(「암푸르단」). 한 장소에 밤과 낮이 공존하는 마그리트의 유명한 그림 〈빛의 제국〉은 조너선 샌틀로퍼의 상상력을 입고, 남편에 대한 의심으로 파괴되어가는 여성의 심리를 묘사한 지극히 주관적인 풍경화가 된다(「가스등」).
조이스 캐럴 오츠는 화가의 화려한 명성이 아닌 추문을 바탕으로 이번 소설집에서 가장 어둡고 기이하면서도 작가의 인장이 뚜렷한 문제작을 완성했다. 아동을 성적으로 대상화했다는 비판을 받는 화가 발튀스의 〈아름다운 날들〉을 모티프로 삼은 이 단편은 그림 속에 갇혀버린 소녀의 목소리로 현실의 그늘과 예술의 그늘을 동시에 드러낸다. 오츠의 작품 속에서 현실과 예술은 서로를 반영하고 투영하며 경계를 확장하다가 마침내 하나가 된다. 그 세계에서 예술은 삶을 고양시키는 찬란한 빛이 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삶을 망가뜨리고 상처를 헤집는 어둠이 될 수도 있다(「아름다운 날들」).
예술, 시대와 형식을 뛰어넘다
회화가 아닌 다른 형태의 미술작품을 선택한 작가들도 눈에 띈다. 제프리 디버는 선사시대의 ‘동굴벽화’를 선택했다. 추락하는 명성을 되찾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하는 어느 고고학자 부부의 이야기를 다룬 「의미 있는 발견」은 라스코동굴벽화를 활용해 작품 속 인물들과 독자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컴컴한 동굴 속으로 밀어넣는다.
크리스틴 캐스린 러시와 로런스 블록은 역사상 가장 유명한 조각 두 점에서 영감을 얻었다. 『빛 혹은 그림자』에 크리스 넬스콧이라는 필명으로 단편을 기고했던 크리스틴 캐스린 러시의 「생각하는 사람들」은 1970년 오귀스트 로댕의 〈생각하는 사람〉을 대상으로 일어난 실제 테러 사건에 바탕을 두고 있다. 끝내 공식적인 범인이 밝혀지지 않은 이 사건의 뒷이야기가 사십여 년의 시간을 오가며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로런스 블록의 「다비드를 찾아서」에는 작가가 창조한 유명한 캐릭터 중 하나인 매슈 스커더가 등장한다. 전직 형사인 그는 은퇴한 후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피렌체를 여행하던 중 이십오 년 전 자신이 체포했던 범죄자와 마주친다. 이제 노인이 된 그 범죄자는 과거에 자신이 저지른 끔찍한 범죄가 미켈란젤로의 〈다비드〉 조각상과 관련이 있음을 털어놓는다.
예술, 영원히 완성되지 않는 미완의 미학
예술은 어느 시점에서 ‘완성’되는 것일까? 마지막 붓질이 끝나는 순간, 혹은 작가의 펜이 종이를 떠나는 순간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혹은 작품이 미술관에 전시되는 순간, 책의 형태로 출간되는 순간이라고 답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수십 년, 수백 년 전에 예술가의 손을 떠난 작품이 지금 여기, 완전히 다른 시대에 새로운 공기를 호흡하며 새로운 사람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예술은 영원히 완성되지 않기 때문에 영원한 것일지도 모른다. 바로 그 미완성성이 예술을 위대한 것으로 만드는지도 모른다. 소설가가 미술작품과 치열하게 대화하며 써낸 『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의 이야기들은 예술에 생기를 부여하는 가장 적극적인 관람 행위이자, 그 자체로 또다른 예술이다. 그리고 이 책에 담긴 이야기들의 삶은 바로 지금부터 시작된다. 그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일은 오롯이 우리 독자들의 몫이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놀라움 가득하고 상상력 넘치는 소설집. 로런스 블록의 노련한 지휘 아래 또다시 예술과 서스펜스가 맛깔스럽고 도발적으로 결합했다. 북리스트
소설에 강렬한 매력을 부여하는 빛깔과 색채와 분위기를 빠짐없이 포착해낸 단편들이 실려 있다. 미스터리 신 매거진
범죄와 미스터리 소설의 팬들을 위한 책. 단편의 모티프가 된 예술작품과 그 작품이 작가들을 각기 어떤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직접 목격할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제공한다. 북가슴
매혹적인 기획이 낳은 어두운 빛깔의 보석들. 퍼블리셔스 위클리
▶ 책 속에서
앰퍼샌드가 뜻하는 ‘그리고’라는 접속사는 무엇이든 얘기하는 사람이, 생각하는 사람이 결합하기로 마음먹은 두 대상 사이에 위치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앨런의 일상에 존재하는 접속사는 하루 위에 또다른 하루가 얹어지는 것일 뿐이었으니 이곳에서, 이 일상에서 마침표는 별 의미가 없게 느껴졌다. 이곳 주민의 일상은 하루하루 이어지는 날들이 말줄임표가 되다가 어느 날 저마다 문장의 끝에 다다를 따름이었다. _「암푸르단」, 183∼184쪽
“생각이 덫이 될 수 있어요. 그게 고문이 될 수 있어요.” _「주황은 고통, 파랑은 광기」, 228쪽
어머니는 여동생과 내 팔을 잡아당기며 웅장한 계단을 올라가 어머니도 명확히 알지 못하는 것?예술이 주는 위안, 예술의 비인간성, 예술로의 도피?을 찾으려고 했어요.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으로, 또는 상처를 찢어서 더 큰 고통을 야기하는 능력으로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예술이라는 수수께끼. _「아름다운 날들」, 262쪽
우리는 육신이 있는 존재로 지내는 게 힘든 일이라는 걸 깨달아요. 육신은 인형처럼 예쁜 얼굴을 배신하고 미모를 조롱거리로 만들죠. _「아름다운 날들」, 274쪽
“하지만 내가 강조하고 싶은 건, 예술은 죽음이 아니라 삶을 향한 원동력이라는 거야. 화가는 오래 살아야 해.” _「태양의 혈흔」, 420쪽
“나이들어서 가장 좋은 게 그거요, 어쩌면 딱 한 가지 좋은 점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신경쓰는 게 점점 줄어들어요, 특히 남의 의견 같은 거.” _「다비드를 찾아서」, 48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