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츠비의 꿈과 이상과 좌절을
자신의 삶과 문학으로 보여준 작가”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이자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미국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읽어야 할 작가!
◎ 도서 소개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이자 『위대한 개츠비』의 작가,
미국의 꿈, 그 표면과 이면을 생생하게 비추어주는 자화상,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 여정을 따라가다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살다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에서부터
『위대한 개츠비』를 쓰며 가장 찬란한 시절을 보낸 뉴욕까지,
재즈 시대의 흥망성쇠와 함께한 피츠제럴드의 공간을 찾아서
- 재즈 시대의 아이콘 피츠제럴드를 따라가는 특별한 문학 기행
- 시대와 세대를 뛰어넘어 이어지는 거장과 명작의 인사이트
- 한눈에 살펴보는 거장의 삶과 문학의 공간과 키워드, 결정적 장면
- 내 인생의 거장을 만나는 특별한 여행, ‘클래식 클라우드’ 시리즈
1920년대 재즈 시대가 낳은 최고의 스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1896~1940). 그는 헤밍웨이, 포크너와 함께 제1차 세계대전 이후의 ‘길 잃은 세대’를 대표하며, 20세기 최고의 미국 소설 『위대한 개츠비』를 남겼다.
“『위대한 개츠비』를 세 번이나 읽을 정도면 나와 친구가 될 수 있지.”(무라카미 하루키, 『노르웨이 숲』) 하루키와 샐린저가 자신들의 작품 속에 『위대한 개츠비』에 대한 애정과 존경을 드러낼 정도로 피츠제럴드는 많은 후배 작가들로부터 찬사를 받았다. 그의 대표작 『위대한 개츠비』는, 21세기 미국 대학 영문학 강의에서 가장 많이 읽힌다. T. S. 엘리엇은 “헨리 제임스 이후 미국 소설이 이룬 첫 진전”이라고 상찬한 바 있다. 또한 랜덤하우스 편집위원회가 선정한 20세기 가장 위대한 소설에서 『율리시스』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개츠비’는 여러 번역본의 책을 비롯해 영화, 연극, 뮤지컬 등으로 재생산되고 있으며, 꿈과 이상을 좆는 인간형의 전형으로서 ‘개츠비스크gatsbyeque’라는 단어를 유행시키기도 했다. 한 세기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피츠제럴드는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으로 남아, 시대에 빛바래지 않는 시적인 문장으로써 감동을 전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최민석은,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 살다 생을 마감한 할리우드에서부터 볼티모어와 프린스턴을 거쳐, 가장 찬란한 시절을 보낸 뉴욕까지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의 여정을 따라간다. 소설만큼이나 극적인 그의 삶의 자취를 좇으며, 시시때때로 가방에서 피츠제럴드의 작품을 꺼내 읽는다. 그러면서 “작가의 삶이었고, 예술인의 삶이었고, 잡을 수 없는 꿈을 향해 손을 뻗은 이” 피츠제럴드에 점차 빠져든다. 그리고 최민석 작가는 한 가지 문제에 오래 주목한다. 이는 지금 우리가 피츠제럴드를 읽어야 하는 이유기도 하다. “피츠제럴드만이, 세상의 불편한 문제를 문학적으로 대담하게 대면했다. 그가 다룬 문학적 주제는 계급이다.”
근원적 상처에서 인생의 클라이맥스에 다다르는 욕망의 여정
피츠제럴드를 찾아가는 여행은 할리우드에서 출발한다. 피츠제럴드의 단편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연상시키듯 저자는 시간을 거꾸로 돌려, 피츠제럴드가 비참하게 추락한 후반부의 인생을 먼저 맞이한다. 아내 젤다의 정신병, 알코올중독, 막대한 빚으로 밑바닥까지 추락한 피츠제럴드가 유령 시나리오 작가로서, 마흔네 살의 ‘이미 죽은 작가’로서 살았던 할리우드 시절이다. 재기를 꿈꾸며 『마지막 거물』 집필에 몰두하지만, 그는 결국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고 연인 세일러 그레이임의 집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한다. 여기서 저자는 초라한 죽음을 맞이한 피츠제럴드의 근원적 상처와 좌절에 대한 이야기를 빼놓지 않는다. 평생의 상처를 남긴 애증의 뮤즈, 지네브라 킹. 2쇄밖에 찍지 못한 『위대한 개츠비』의 초라한 성적. 술을 끊기 위해 아이스크림으로 허전함을 달랬던 ‘슈밥스약국’. 명문대 출신의 고상한 취향을 되새겼던 ‘할리우드볼’ 등의 이야기를 통해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세계를 관통하는 근원적 상처를 돌아본다.
아내 젤다의 조현병 치료를 도우며, 사교계의 명사에서 ‘쓰는 작가’로 살았던 볼티모어를 거쳐 최민석 작가가 찾은 곳은 프린스턴이다. 피츠제럴드의 ‘정신적 고향’이기도 한 프린스턴대 코티지 클럽을 취재하며 피츠제럴드가 체득했던 특유의 경쟁적이고 계급적인 면모를 살펴본다. 아울러 피츠제럴드의 교정 흔적이 남아 있는 『위대한 개츠비』 초판본과 대면하면서 누군가의 마음을 진동케 하는 문장을 만들기 위해 그가 얼마나 각고의 노력을 기울였는지를 실감한다.
피츠제럴드의 삶과 문학을 좇는 여행의 클라이맥스는 재즈 시대의 매혹과 환멸이 뜨겁게 교차했던 뉴욕이다. 평생 여러 도시와 나라를 떠돌며 유목민처럼 살았던 피츠제럴드이지만, 그럼에도 그를 가장 상징하는 도시는 단연 뉴욕이다. 데뷔작 『낙원의 이편』이 크게 성공하면서 뉴욕 사교계에서 오늘날의 할리우드 스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린 데다가,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위대한 개츠비』를 구상하는 등 삶과 문학이 가장 화려하게 만개한 곳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모두 안다. 그는 영원한 뉴욕의 작가라는 것을. 저 끝을 모르고 올라가는 엠파이어스테이트빌딩처럼, 마치 바벨탑처럼 하늘을 향해 올라가는 미국의 성장과 향락을 상징했다는 것을. 그는 우리가 문학을 해서 얻을 수 있는 최대치의 화려함을 가장 일찍 획득하고 이를 온몸으로 즐기고, 그 때문에 불나방처럼 그 화려한 불 속에서 타버렸다는 것을.”
“변한 것은 종이뿐이었다.
피츠제럴드의 문장은 시대에 빛바래지 않았다”
신분의 벽에 가로막혀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는 설정은 피츠제럴드의 작품들에 단골로 등장한다. 그만큼 그의 문학 세계에는 첫사랑 지네브라 킹으로부터 받은 실연의 상처가 짙게 드리워져 있다. 1915년, 그는 시카고 금융 부호의 딸인 지네브라 킹을 만나 사귀지만, 가난뱅이 청년은 부잣집 딸과 결혼해서는 안 된다는 그녀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혀 결국 실연을 당하고 만다. 훗날 그의 아내가 되는 젤다에게서도 한 차례 파혼을 당한 적이 있는데, 미래가 불투명하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동일한 종류의 상처에 절망한 피츠제럴드는 인생에서 돈과 성공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여기게 되었고, 이런 갈망은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을 강하게 지배하는 욕망으로 이어졌다.
아이비리그 대학 시절 쟁쟁한 집안 출신의 동문들에게서 느낀 계급적 위화감 역시 그의 인생에 긴 그림자를 드리웠다. 1913년, 프린스턴대에 입학한 그는 상류층 자제들이 교유하는 식사 동아리 ‘코티지클럽’에 가입했다. 우월 의식을 가진 멤버들은 내부 결속을 다지며 향후 미국 주류 사회의 일원으로 살게 될 경험을 미리 한다. 이들과 어울리며 계급의 민낯을 보게 된 중산층 출신의 피츠제럴드는, 프린스턴대가 속물을 길러낸다고 여기면서도 한편으로는 그것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적 감각이라는 점 또한 인정했다.
실연의 상처와 강렬한 계급 상승 욕구는 피츠제럴드의 삶과 작품 세계를 지배하는 두 축이다. 저자는 이 축을 중심으로 그려나간 피츠제럴드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리고 그가 고민한 문제의식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나는 21세기 한국이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30∼1940년대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 역시 태어날 때 이미 자기 삶의 색깔이 결정되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중략) 그렇게에 나는 피츠제럴드를 읽는 것은,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좀 더 관찰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것은 내가 사는 세상의 드러나지 않은 속성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 책 속에서
나는 21세기 한국이 피츠제럴드가 살았던 1930~1940년대 미국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낀다. 우리 역시 태어날 때 이미 자기 삶의 색깔이 결정되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우리 역시 부모로부터 ‘자본’과 ‘토지’와 ‘교육의 기회’와 심지어 ‘취향’까지, 유전자처럼 물려받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우리 역시 표면적으로는 이름에 ‘경’ 같은 호칭을 붙이지 않지만, 실상은 사는 곳에 따라, 외식을 하고 휴가를 보내는 장소와 방식에 따라, 그 사람의 실제 계급을 알고 싶지 않아도 강요받듯 알게 되는 사회에 속해 있으니까. 그렇기에 나는 피츠제럴드를 읽는 것이, 우리 사회의 맨얼굴을 좀 더 관찰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프롤로그〉 중에서
묘한 동질감에 휩싸였고, 죽은 미국 작가로부터 작은 위안을 느꼈다. 그는 이후에도 줄곧 비참하게 살다가 빚더미 속에 죽어버렸지만, 적어도 미국 호황기에 가장 성공했던 작가마저 이러한 길을 걸었다는 사실이 내 등을 두드려주는 것 같았다.
- 〈프롤로그〉 중에서
프린스턴대 학생이자, 미국 중부의 중산층 출신이었던 그는 이 세상에는 애초부터 불가능한 게 있다는 걸 깨닫는다. 보통 집안 출신의 명문대생, 그것은 너무나 불충분한 것이었다. 결국 그는 이듬해 지네브라 킹으로부터 가난하다는 이유로 결별을 선고받는다. 지네브라 킹은 피츠제럴드에게 보낸 편지도 모두 되돌려 받길 원했다. 그는 완전히 다른 부류의 사람들에게 잊지 못할 상처를 받았다. 이는 훗날 『위대한 개츠비』를 작업할 때까지 영향을 준다.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지나간 인생은 고칠 수 없기에, 작가가 고칠 수 있는 것은 작품밖에 없다. 그로 인해, 남은 인생을 바꾸려는 것이다. 게다가 피츠제럴드는 자신을 시인으로 여기지 않았던가. 시로 점철된 소설을, 각 음절이 음악적이고, 각 문장이 시어처럼 울림을 주는 소설을 위해, 그는 이 빨간 의자에 앉아 『마지막 거물』을 고쳤을 것이다. 다시 한 번 거물이 되기를 바라며…….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만약 피츠제럴드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온다면, 바로 이때를 택하고 싶다. 파리 사교계의 중심인물로 반작이던 때가 아니라, 이 허름한 간이식당에서 육체는 시들어가지만 문학적 재능은 시들지 않았음을 확인하기 위해 원고와 씨름하던 시절 말이다. 아무리 화려한 생활을 했다 하더라도, 결국 작가에게 가장 어울리는 시기는 작품을 위해 생활의 군살을 깎아내는 시기이니까 말이다.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위대한 개츠비』는 물과 연관이 깊다. 개츠비가 비를 맞기도 하고, 물 위에 떠 있기도 하고, 물에 빠져 있기도 하다(그의 죽음은 물 위에 떠 있는 것이지만, 이는 상징적인 익사와 같다). 더욱이 이 소설에서 가장 상징적이고 자주 등장하는 것은 바로 밤마다 개츠비가 자기 집 맞은편의 녹색 불빛을 고독하게 응시하는 것인데, 그 녹색 불빛은 데이지의 집이고, 데이지의 집은 바다 건너편에 있다. 즉, 거대한 물을 무사히 건너야, 데이지에게 닿을 수 있다.
- 〈01 재즈 시대 거장의 퇴장-LA〉 중에서
피츠제럴드는 술에 취해 있건, 아내가 연애를 하건, 외국에 나가서 또 외국으로 여행을 가건, 써야 할 상황이 되면 쓰는 작가였다. 게다가, 그에겐 더 이상 물러날 곳이 없었다. 어쩌면 피츠제럴드에게 ‘쓴다’는 ‘산다’와 동의어였을 만큼, 사는 동안 써야 했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피츠제럴드는 아내가 정신병동에 입원해 있을 때에도, 더 이상 책을 내는 것이 불가능해 무명 시나리오 작가로 지낼 때에도, 계속 소설을 썼다. 빚더미에 앉았을 때에도, 계단을 오르내리기 벅찰 만큼 건강이 악화됐을 때에도, 죽기 며칠 전까지도 희망을 품고 재기작 원고를 썼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는 언제나 써야 했던 작가였다. 피츠제럴드라는 산에 비하면 고작 한 움큼 정도 자라난 풀에 불과하지만, 작가의 삶은 어떠한 상황에서라도, 어떠한 이야기라도 써내야 하는 날들의 이어짐이라는 사실이 다시 한 번 새겨졌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그 문장이 내게 말하는 듯했다. ‘인생은 원래 이렇다, 세계는 자신의 흐름대로 흘러가니 우리는 그 흐름에 떠밀리지 말고 우리의 속도와 방향으로 흘러가야 한다, 그것이 살아남은 자의 의무다.’ 자기 무덤에 찾아온 이에게 이런 말을 하고 싶다는 듯, 비석에는 『위대한 개츠비』의 마지막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돌아오며 생각했다. 길을 잘못 들고, 시간을 낭비하고, 진전 없어 보이더라도, 생을 살아가는 이는 앞으로 한 발짝을 내디뎌야 한다는 것을. ‘끊임없이 과거로 떠밀리어 가더라도’ 말이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묘지 위에는 언제 바쳤을지 모를 마른 꽃 하나가 놓여 있었다. 나는 꽃을 사 오지 못한 걸 후회하며, 대신 무덤 위에 달라붙은 새똥들을 맨손으로 치웠다. 딱딱하게 말라붙어 마치 비석과 하나인 것 같았다. 언제 붙은 것인지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오래된 것 같았다. 코를 훌쩍거렸고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이것이 미국에서 한때 가장 영화로웠던 작가의 최후라 생각하니 근원을 알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아마 이것이 작가의 최후, 아니 인간의 마지막 모습일지 모르겠다. 나는 그의 무덤 위에 손을 얹은 채 눈물과 콧물을 흘리며 한참을 앉아 있었다.
- 〈02 피츠제럴드가 사랑한 도시-볼티모어〉 중에서
피츠제럴드가 받은 상처의 대부분은 태생적인 것이었다. 유년기에는 곱상한 외모 때문에 세인트폴의 고약한 소년들에게 시달렸고, 청소년기에는 뉴저지의 명문 가톨릭 기숙학교 뉴먼에서 상류층 자제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겪으며 지내야 했다. 대학생이 된 후에는 지네브라 킹의 아버지에게 거절당했다. 부자 가문 출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태생적 결정 요인에 의해 상처를 주고받는 미국 사회에 대해 그는 어찌 느꼈을까. 이런 사회에 태어난 자신은 어떻게 살아가야 한다고 느꼈을까. 그리고 자신들만의 공고한 벽을 쌓아둔 미국의 지배 계층, 그중에서도 부자들에 대해 어떻게 느꼈을까.
- 〈03 성장과 인식의 공간-프린스턴〉 중에서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원고 중 많은 부분이 불필요하다고 느꼈다. 글은 쓰면 쓸수록 채우는 게 아니라 비우는 것이라는 걸 느끼는데, 피츠제럴드는 책을 내고 난 후에도 덜어내고 싶어 했던 것이다. 후대로부터 미국 문학을 대표하는 작품으로 인정을 받았지만, 그는 더 완벽에 도달하고 싶었던 것이다. 녹색 불빛을 향해 끝없이 손을 내뻗은 개츠비처럼……. 개츠비에게 녹색 불빛은 데이지였겠지만, 피츠제럴드에게는 누군가의 마음을 진동케 하는 문장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 〈03 성장과 인식의 공간-프린스턴〉 중에서
파이어스톤에서 만난 『위대한 개츠비』의 무수한 교정 흔적 역시 내게 문신 같은 자극을 남겼다. 그건 이미 출간된 책도 다시 펴낼 기회를 노리며 끊임없이 고쳤다는 뜻이니까. 『밤은 부드러워』 역시 상업적으로 실패하자 서사의 순서를 바꿔 재출간하지 않았는가. 『낙원의 이편』에서부터 『밤은 부드러워』까지, 그는 끊임없이 고친 것이다. 그러니 유고작 『마지막 거물』은 얼마나 고친 원고였을까.
- 〈03 성장과 인식의 공간-프린스턴〉 중에서
문학의 길은, 아니 예술의 길은 성공해봐야 결국 태생적으로 다시 슬퍼질 운명이다. 그리고 이 중 가장 큰 슬픔은, 이 모든 일들이 사실은 당대 사람 대부분의 관심 밖에서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 또한 문학이 다루는 주제가 본질적으로 관심 없는 곳을 조명하고, 그 조명을 끈질기고 줄기차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관심을 받아봤자, 문학의 성공은 ‘그들만의 리그’에서 이뤄지는 작은 축제에 불과하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열리는 파티의 화려함과는 본질적으로 거리가 멀다. 그렇기에 피츠제럴드는 소설 속에 개츠비의 파티를 그토록 화려하게 그려냈는지도 모르겠다. 피츠제럴드는 이 슬픈 길을 걸은 작가라 생각한다.
- 〈04 미국 문학의 꺼지지 않는 ‘초록 불빛’ ― 뉴욕〉 중에서
피츠제럴드에 관한 책을 정리하며, 계급 이야기를 빼놓을 수는 없다. 그가 고민하고, 괴로워한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 유효성은 1920년대와 2010년대라는 시간을 뛰어넘고, 미국과 한국이라는 공간을 뛰어넘는다. 피츠제럴드의 삶은 자기 욕망을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경우지만, 사실 그 욕망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그를 따라가봤을 뿐인데, 과거 미국 사회의 맨얼굴뿐 아니라, 현재 우리 욕망의 이중적 얼굴도 들여다본 기분이 들었다. 그가 해결하고자 했던 고민의 그림자가 오늘날의 우리에게도 드리워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에필로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