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지나온 수많은 밤과 앞으로 다가올 모든 술을 위해 건배!
소설가 부인, 음악가 남편의 알딸딸한 술톤 기행
◎ 도서 소개
딱 한 잔만, 아니 1리터만 더… 술이라도 있어야지!
기승전술 부부의 유쾌한 밤산책
『술이 달아 큰일이야』는 나오키상 수상작가 가쿠타 미쓰요가 남편인 음악가 고노 다케히로와 함께 쓴 술집 기행이다. 애주가인 두 사람이 도쿄 곳곳에 숨은 서른여덟 곳의 술집을 돌아다니며 꼭 먹어야 할 안주를 소개하고, 그곳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담아내었다. 야키소바를 맛깔나게 제공하는 이자카야, 토마토 술 같은 독특한 술을 제공하는 선술집, 돼지 특수부위로 만든 꼬치를 파는 꼬칫집, 파스타를 파는 정갈한 이탈리안 레스토랑, 동남아 정통 음식점까지 부부의 술집 탐방은 메뉴 불문 국적 불문이다. 또, 주인과 친해질 만큼 오랜 기간 찾은 가게에 습관처럼 들어가기도 하고, 깨끗한 간판을 단 새로운 가게에 냉큼 들어가보기도 한다. 그러니까 맛있는 음식과 술 앞에서 두 사람은 부부이기 전에 쿵짝이 너무나 잘 맞는 친구고, 무엇이든 시도하는 탐험가이자 쉽게 웃는 어린아이가 된다. 두 사람은 거의 모든 저녁‘딱 한 잔만 더…’를 반복하고야 만다.
같은 음식을 앞에 두고 두 사람이 떠올리는 술도 매번 다르니, 이들이 제안하는 술과 음식의 새로운 조합은 우리가 다 아는 것만 같았던 도쿄를 낯설게 한다. 같은 곳에서 같은 음식을 먹고 나서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하고 다른 것을 느끼는, 닮은 듯 다른 두 사람의 알딸딸한 밤을 엿보고 있노라면 절로 한 잔 마시고 싶어진다.
“맛있다……”라고 중얼거리고, 술을 자꾸자꾸 추가하고, 그러는 동안 밤은 천천히 깊어갔다. 시모키타자와에서 밤새도록 마시던 젊은 날의 나는 4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시모키타자와에서 연극을 보고 술을 마시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좋아하는 연극을 보고, 이렇게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p.106,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어느새 가게엔 우리만 덩그러니…
같은 걸 좋아한다니, 얼마나 멋지니?
두 사람은 사실 ‘술을’ 마시는 걸 무척 좋아하지만 그보다 더 좋아하는 것은 ‘사람들과’ 마시는 것이다. 좋은 사람과 함께 시간을 보낸다는 것 자체에 두 사람은 깊이 감동한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술은 싸구려 술이든 고급 술이든 상관없이 기억에 깊게 각인될 정도로 맛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건 모두가 저마다 즐거워야 한다는 점이다. 안주는 서로의 취향에 맞게 주문하고, 술은 먹고 싶은 만큼의 양을 먹고 싶은 속도로 마신다. 맛있는 술과 음식으로 기분이 한껏 고조된 상태에서 함께 나누는 시간은, 그 어떤 술보다 그들을 더 취하게 한다. 그러므로 술을 잘 마시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술은 도움을 줄 뿐이다. 한 잔에 꼿꼿이 세운 허리를 조금 굽히고 두 잔에 단추를 한 개 정도 풀고, 세 잔에 목소리를 한 톤쯤 올리며 대화는 흘러가고 밤은 깊어진다.
부부에게 술자리는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라는 물음의 답으로 자리한다. 요컨대 무엇이 자신을 기쁘게 하는지, 가장 확실하게 알 수 있는 방법인 셈이다.
우리에겐 음식보다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는 점이 삶에서 중요한 사항이었다.
음식 취향 차이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지만 만약 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살아야 했다면 인생이 꽤 가혹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p.9, 시작하며)
‘가끔은 소처럼 위가 네 개였으면 좋겠어’
메뉴판을 들고 골똘해지는 밤
메뉴판을 든 부부는 세상 누구보다 진지해진다. 두 사람 모두 위가 그리 크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도 맛있고, 저것도 맛있는데… 아, 그것도 먹고 싶다!를 반복하는 이 밤, 부부는 행복하다. 내가 좋아하는 것과 상대가 좋아하는 것, 이 순간과 오늘 밤에 이렇게나 집중하는 시간은 메뉴판을 든 지금뿐일 것이다. 그러니까 저녁에 먹을 음식과 술을 고르는 이 시간은 부부에게 오늘을 견뎌낸 나를 찬찬히 점검하는 시간이자 나의 기분을 살피는 시간이므로, 곧 숨을 고르는 시간이다.
선물을 고를 때 우리는 그를 어느 때보다 깊이 생각한다.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고, 마주 앉은 사람에 대해 고심하는 시간을 갖는 게, 얼마나 큰 행복을 전하는지 두 사람의 밤에서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두 사람이 보낸 이 선물 같은 밤들은, 읽는 이로 하여금 오늘 저녁부터 곰곰 생각하게 한다. 오늘은 어떤 하루였지? 오늘은 무슨 일이 있었지? 낮엔 어떤 메뉴가 문득 생각났었지? 식당에서 새어나오는 어떤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렸지? 이렇게 많은 질문을 던지게 하는 밤은 온전히 우리의 것이다. 이런 밤에는 정말, 술이 달아 큰일이다.
이만큼 완벽하게 입가심을 했어도 결국은 두 잔 더 내지는 세 잔 더(이제는 딱 한 잔이라고 말하기 민망하다) 마시게 된다, 우리란 사람은.
(p.65, 결국 마시게 된다, 우리란 사람은)
◎ 책 속에서
부부처럼 남이면서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사이라면 서로 음식 취향이 맞아야 한다는 말을 지금까지 몇 번이나 들었다. 정말 맞는 소리라는 생각도 여러 번 했다. 그러나 남편과 내 취향은 다르다. 원고가 아니었으면 새삼스레 깨달을 일도 없었을 차이긴 하지만 글로 쓰다 보니 ‘정말 다르구나’ 하고 놀랄 정도긴 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 취향이 이렇게나 다른데 잘도 같이 지내는구나……. 그럴 때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음식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퍼뜩 깨닫곤 한다.
(p. 8, 시작하며)
우리에겐 음식보다 누구와 어디서 마시느냐는 점이 삶에서 중요한 사항이었다. 음식 취향 차이는 나를 힘들게 하지 않지만 만약 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과 살아야 했다면 인생이 꽤 가혹했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p.9, 시작하며)
책은 어느 한 시대에 쓰였어도 지금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위해 존재하는 글의 집합체다.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해주는 물체다. 그 속에서 마시기 때문에 용서받은 듯 보호받은 듯한 기분으로 나도 모르게 과음하는 것이리라.
(p.45~46, 고엔지의 헌책 술집)
처음 왔는데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던 듯한 곳, 나에게 소중한 장소는 어쩌면 하나 사라진다 해도 또 다른 하나가 반드시 생기게 되는 것인지도 모른다.
(p.48, 고엔지의 헌책 술집)
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회라는 요리는 그저 썰어서 내놓는 음식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차이가 있다면 신선도밖에 없을 거라고 믿었다. 그러니 어떤 가게에서 먹어도 똑같을 거라 생각했는데, 몇 년 전 사소한 계기를 통해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회가 맛있는 가게는 엄청 맛있고, 회가 맛없는 가게도 분명히 존재한다. 대체로 회를 제일 먼저 주문하기 때문에 서양 요리의 애피타이저처럼 회가 맛있으면 모든 요리가 맛있으리라고 기대해도 좋다.
(p.56, 이 한 잔을 위해 낚시를 한다)
손님이 있는지, 어떤 가게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내가 “여기 한번 들어가볼까?”라고 말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응 , 들어가자!”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게 아닌가. 우리는 조심스럽게 계단을 올라 낯선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카운터석이 있고 테이블석이 두 개인 산뜻한 느낌의 술집이었다. 테이블석에 마주 앉아 맥주와 레몬사와로 건배하고 끌리는 대로 요리를 주문한 후 제일 먼저 나온 생굴을 먹은 순간 무심코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신난다, 적중했다!
(p. 69, 술이라면 아직 들어가니까)
하지만 아무리 맛있는 요리라도 그 자리의 분위기가 좋지 않으면 아무 소용 없어진다. 늘 즐거운 기분으로 마실 수 있는 ‘하야토’에 가면 우리 부부가 노상 하는 ‘딱 한 잔만 더 하고 가자’라는 말도 저절로 ‘딱 1리터만 더 하고 가자’가 되어버린다. 점장은 가게에 맥주가 남아나지 않을까 걱정하는 척 농담을 하곤 하는데, 반쯤은 진담이었을지도 모른다…….
(p.72, 술이라면 아직 들어가니까)
언젠가 아내에게 물은 적이 있다. 과하게 매운 음식을 대체 왜 그렇게 먹고 싶은 거냐고. 돌아온 대답은 이랬다. “살아 있다는 걸 실감하거든.”
(p.83, 매운데, 멈출 수 없어!)
지금까지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나 영화나 애니메이션 이야기를 하다가, 가끔 말을 끊고 “맛있다……”라고 중얼거리고, 술을 자꾸자꾸 추가하고, 그러는 동안 밤은 천천히 깊어갔다. 시모키타자와에서 밤새도록 마시던 젊은 날의 나는 40대가 되어서도 이렇게 시모키타자와에서 연극을 보고 술을 마시리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다.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좋아하는 연극을 보고, 이렇게 분위기 좋은 장소에서 술을 마시고.
(p.106, 제법 괜찮은 어른이 되었구나)
세 번째 코스인 ‘마루추 가마보코’가 아무튼 최고여서 마키모토 씨가 추천한 ‘이마짱하이’라는 술을 잇따라 추가하는 바람에…… 그즈음부터 기억이 모호하다 . (어쩌면 그 후에 맥켈란을 마셨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 후에 한 곳 더 간 것 같기도 하고 안 간 것 같기도 하고.) 미안합니다. 정말, 기억이 안 나요. 그래도 예전처럼 즐거웠는지 아닌지 그것조차 모르는 기억 상실에는 걸리지 않아 정말 다행이었다…….
(p. 115, 먹는 즐거움, 찾는 기쁨)
야키소바로는 부족했던 친구가 생선구이를 주문했고, 그걸 한 입 먹은 시점 이후로 기억이 끊겼다. 다음 날 휴대폰에 저장된 사진을 봤는데 놀랍게도 주먹밥 사진이 있었다. 사장님이 주먹밥도 만들어주셨구나! 제대로 기억하는 게 없다는 사실에 조금 우울해졌지만, 지난밤의 사진을 보는 동안 다시 행복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역시 친한 친구와 소박한 가게에서 먹고 마시는 시간이 가장 행복하다(는 말엔 분명 남편도 동의하리라).
(p. 132, 기억나지 않아도 즐거우면 그만)
이럴 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기로 했다. 부침개나 고기처럼 직접 구워 먹는 요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사랑이다. 부침개를 사랑하는 사람이 구운 부침개는 틀림없이 맛있다. 고기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불 앞에 앉았다는 이유로 구운 고기는 솔직히 말해 맛없다. 바비큐도 바비큐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 구워야 한다.
(p.143, 러닝 후 바비큐)
나에게 마라톤이란 맛있는 맥주를 마시기 위해 존재하는 것, 맥주를 향해 달린다고 말해도 좋다.
(p.146, 러닝 후 바비큐)
바꿔 말하면 ‘완벽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라면 이 세상에 너무나 많고 그야말로 사람 수만큼 존재한다는 뜻으로, 결국 내가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면 ‘생맥주와 생굴’의 조합은 나에게 완벽하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p.151, '굴맥'을 아시나요)
옛날에 어느 연장자에게 “드럼은 두들기기만 하면 소리가 나니 간단한 악기지”라는 말을 듣고 ‘으음, 뭘 모르는군’ 하고 생각한 적이 있는데, 회도 정말로 맛있게 제공하려면 ‘잘 썰기’만 해서 되는 게 아닐 것이다. 재료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내려면 어느 정도의 솜씨가 필요한가에 대해 (뮤지션 나름대로) 이해하기 때문에, 나는 ‘신포’의 생선을 맛볼 때 경외심이라고 하면 좀 과장일지 몰라도 분명 일종의 존경심을 품고 ‘맛있다’라고 말하려고 한다. 최고의 악기에서 아름다운 음색을 고스란히 끄집어내는 연주자를 대하는 듯한 마음으로.
(p.190, 해물을 연주하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흥겨움에도 가속도가 붙었지만, 내일이 되면 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열심히 떠들고 뭣 때문에 그렇게 웃어댔는지 나는 아마도 기억하지 못하리라. 하지만 까닭도 없이 즐거웠던 기분만큼은 기억할 자신이 있다. 나이도 직업도 다르지만 그냥 왠지 마음이 맞는 사람들, 함께 마시는 걸 좋아하는 이들이 한자리에 모여 호탕하게 웃을 수 있는 만남이 가진 묘한 매력.
(p.205, 꿈의 술잔치)
재료의 활용 방식이나 독자적인 조리법, 그리고 완성 이미지의 명확함. 야마모토 씨는 엔지니어이자 어레인저이자 프로듀서라고 해도 좋으리라(물론 그전에 아티스트이기도 하지만). 열빙어를 만두피로 감싸서 구운 걸 내놓으며 말하길 “만두피를 두르면 그게 만두야”, 이것이 고정관념을 뒤집는 ‘아티스트적 관점’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만교엔’은 세상에 둘도 없는 음악적인 만두 전문점이다.
(p.214, 만두의 저택)
남편과 나의 가장 큰 공통점은 ‘술을’ 마시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람과’ 마시는 걸 좋아한다는 점이다. 그랬기에 우리 두 사람도 친해졌다고 생각한다. 남편은 오늘 테이블을 둘러싼 편집자들과도 술을 매개로 친해졌다. 나를 빼고도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다. 이런 식으로 관계의 지층이 뒤섞인다.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는 술은 싸구려 술이든 고급술이든 상관없이 기억에 각인될 정도로 맛있다.
(p.243, 이 밤, 모두와 건배)
나는 누구랑 마실 때 가장 즐거운가? 그건 내가 무엇을 나눌 때 기쁜가, 라는 질문과도 같으며, 다시 말해 ‘나는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살고 있는가’라는 뜻이기도 하다. 그런 걸 감각적으로 공유하는 사람과 마실 수 있다는 것이 나의 가장 큰 기쁨이다.
(p.246, 이 밤, 모두와 건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