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문
약어
1장 기호를 넘어서는 사진
2장 사진의 신화
3장 상응相應: 보들레르와 바르트
4장 『밝은 방』의 맥락: “제3의 형식”
5장 시간: 사진의 푼크툼
에필로그 사진과 포스트모던
옮긴이 해제 비포 앤 애프터: 사진 이론의 약진과 롤랑 바르트
참고문헌
도판 출처
연접하고 교차하는 바르트의 글쓰기와 사진 이론
발명 초기의 사진은 매체의 특성상 존재하는 대상을 환유적으로 복제한다는 점에서, 은유나 변형을 사용해 초월적이고 추상적인 가치를 표현해내는 예술의 반대항으로 여겨졌다. 바르트 역시 사진에 대한 그의 초기의 저술에서 예술 형식으로서의 사진을 인정하지 않았지만, 이후 『밝은 방』에서는 사진이 포착하는 생생한 현존성에 매혹되며 이를 사진의 노에마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롤랑 바르트의 사진』은 『밝은 방』을 구성하고 그에 영향을 미친 겹겹의 상호텍스트 중 다섯 가지의 요소에 주목했고, 이 요소들을 분석하는 다섯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기호를 넘어서는 사진」은 『밝은 방』 이전 바르트의 텍스트를 분석한다. 기호학이라는 문화 연구의 방법을 따르고 장려하고자 한 1950년대 바르트의 사진론은 구조주의적이며 기호학적인 관점을 따랐다. 1957년 『신화론』에 실린 에세이 「오늘날의 신화」에서 바르트는 사진을 해독 가능한 기호로 보는 입장을 취한다. 특히 바르트가 주목하는 것은 사진이 도상학적 증표를 사용함으로써 대중에게 반지성적 가치관을 전달하는 이데올로기로 사용된다는 점이다. 그러나 1960년대 바르트가 기호학에 대한 입장을 변경하면서 사진의 이데올로기에 주목했던 그의 관심도 다소간 변화한다. 「사진의 메시지」 「이미지의 수사학」에서 바르트는 시각 매체에서 메시지가 구축되고 전달되는 지점에 좀더 집중하기 시작하고,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그대로 복제한다는 점에서 ‘사진은 현실의 완벽한 아날로곤’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사진은 현실을 수학적으로 변형시키지 않으며, 따라서 대상과 이미지 사이에 코드라는 중개자는 설정될 필요가 없다. 이때부터 바르트는 사진이 “사물이 거기 있었다”는 의식을 강렬하게 일으킬 수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하지만, 여전히 바르트에게 사진은 주어진 외양 안에서 내포적인 메시지를 ‘자연적’인 것으로 꾸며내는 신화myth를 조성할 수 있는 위험한 것이다. 그러나 1970년대의 『기호의 제국』 『S/Z』 「제3의 의미」에 이르러 바르트의 비평적 입장은 상전벽해처럼 변한다. 기호학에 대한 환멸과 더불어 바르트는 더 이상 기호학자로서 기의를 해명하려 분투하지 않으며, 의미를 쥐고 있는 것의 근원으로 돌아가려 한다. 글쓰기의 스타일도 분석적인 것에서 벗어나 소소한 단편이나 단상을 기록하는 방향으로 전향된다. 1978년 바르트가 빌헬름 폰 글뢰덴 남작의 사진집에 관해 쓴 짧은 에세이에서 이 전환이 단적으로 드러난다.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입장 변경은 그가 단장 스타일의 글을 선호하게 된 것과 비슷한 결을 따라가는데, 단장이 ‘결정적인 해석’ 없이 여러 단상과 성찰을 흩뿌리듯 사진 역시 의미로부터 해방될 가능성이 발생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2장 「사진의 신화」는 사진이 공식적으로 존재하게 된 처음 20년 동안 사진이 구가한 참신함과 이를 통해 형성된 사진의 신화를 논한다. 이 신화를 가지고 바르트는 사진이 본질적으로 무엇인지를 알아내고자 하는 ‘존재론적 탐색’을 시작한다. 50년대와 60년대의 저술에서 바르트는 사진의 실증주의 신화에 의존하며 사진의 외면적 객관성이 대중에게 꾸며낸 메시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는 일관적인 입장을 보이는데, 그는 사진 매체가 만들어내는 신화적 입지에 의심을 표하면서도 사진 매체에 대한 서구 사회의 여러 신화, 즉 사진은 진실을 역사적으로 증명할 수 있는 기계적 매체라는 신화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사진술은 1839년 영국의 탤벗, 프랑스의 다게르에 의해 거의 동시에 발견되었다. 다게르와 탤벗은 사진술을 상이한 방식으로 바라봤는데, 탤벗의 사진이 과학과 예술의 협력을 지지했다면 다게르의 사진은 예술과 환영의 세계, 오락의 세계를 대변한다. 이 입장 차이는 사진의 신화의 거대한 양대 산맥이라고 할 수 있는데, 『밝은 방』에서 사진의 존재론을 이해하고자 하며 이 매체의 창조자를 찾고자 하는 바르트는 탤벗이 아니라 다게르와 동류가 되어 다게르의 신화에 가담한다. 바르트에게 사진의 잠재력이란 살아 있는 한 영혼을 이미지 속으로 끝어들이는 힘이다.
바르트는 이제 사진의 잠재력이란 구경꾼을, 즉 살아 있는 한 영혼을 한 이미지 속으로, 즉 구경꾼의 영혼과 동등하게 살아 있는 한 영혼 또는 실체로서 존재하는 이미지 속으로 끌어들이는 힘이라고 본다. 사진은 “분리로서의 역사”보다 더 많은 것을 줄 수 있다. 사진은 “유토피아적으로, 유일무이한 존재에 대한 불가능한 과학”을 성취할 수 있는 것이다.─2장에서
3장 「상응: 보들레르와 바르트」는 샤를 보들레르가 쓴 글들과 사진에 대한 그의 복합적인 견해를 바르트의 것과 비교해본다. 보들레르는 은판사진술이 예술의 ‘아우라’를 감소시킨다고 우려하며 사진이 보유할 수 없는 예술만의 독창성, 새로운 것을 강조한다. 회화나 드로잉이 충실하게 실물을 묘사하는 것은 훌륭한 미덕이지만, 상상력이나 픽션적인 요소가 없이 그저 복제만 한다면 보들레르에게 그것은 예술이 아니다. 보들레르는 사진의 본질이나 목적이 예술 바깥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바르트는 보들레르와 다른 입장을 취한다. 바르트 역시 사진이 꿈을 꾸게 하는 매체가 아닌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사진에서 발견할 수 있는 마법과 각성은 회화에서 발견할 수 있는 ‘예술가’의 마법과 각성이 아니라, 물리적 시간의 전통적 경계나 좌표 너머에서 살아남는 ‘빛’의 마법과 각성이다.
『밝은 방』과 바르트의 맥락에 대한 섬세한 비평
4장 「『밝은 방』의 맥락: “제3의 형식”」은 바르트의 사유가 에세이와 소설의 성격을 겸비한 ‘제3의 형식’을 통해 맥락화되는 배경을 살핀다. 1970년대가 되자 바르트는 새로운 글쓰기의 유토피아적 형식을 창조하려 드는데, 이 형식이란 모든 환원적 체계에서 벗어난 글을 말한다. 이 장르는 에세이의 방식과 소설의 방식을 통합한 미결정 상태의 장르다. 문장과 문장은 반드시 논리적으로 혹은 정합적으로 굳게 연결되어 있을 필요가 없으며, 오히려 이 연결 고리를 건너뜀으로써 분석하고 해부하는 작업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이 장은 『밝은 방』의 난해하고 해석하기 어려운 형식이 학문과 글쓰기, 사진에 대한 바르트의 생각과 어떻게 조응하는지를 조망한다. 『밝은 방』은 1부와 2부로 이루어져 있고, 각 부는 24개의 절로 되어 있다. 이 절들은 단장 형식을 취하는데, 한 절에서 다른 절로의 이동이 무작위적이거나 비약적이기까지 하다. 그럼에도 『밝은 방』이 바르트의 책 중 가장 완결성이 있는 이유는 바르트의 저술 전반에 산재한 실마리들을 끌어모으기 때문이라는 것을 분석한다.
『밝은 방』의 생산은 대칭적인 두 부와 각 부별 24개의 절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개개의 절은 단편(전체 또는 좀더 큰 실체가 조각나 떨어져 나온 부분이라는 의미의)보다는 모자이크?현재 더 큰 작품 속에 들어 있지만, 작품보다 앞서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는 조각들?구실을 한다. 이런 비유와 비슷한 것이 “모자이크 시각”이라는 관념인데, 여기서는 시야가 단순하고 독립적인 많은 시각 단위―체스보드식 틀들로, 서로 약간씩만 다르고, 본질적으로 동일한 장면 또는 대상에 대한 관점을 동시에 여러 개 준다―의 혼합물이 된다.─4장에서
5장 「시간: 사진의 푼크툼」은 시간이 사진의 푼크툼이라는 점을 시간과 빛에 대한 현대 물리학의 논의를 통해 이해하는 작업이다. 19세기에는 우주에 대한 뉴턴식 이해, 특히 절대적이고 균일한 고전 물리학의 시간에 대한 이의가 제기되기 시작했다. 20세기에는 운동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들이 과학에서 등장하기 시작했는데, 객관적인 시간을 부정하는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객관적 관찰자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하이젠베르크의 불확정성의 원리가 그 예다. 『밝은 방』에서 바르트는 시간을 고정하고 틀어막는 것이야말로 사진의 독특한 푼크툼임을 인식한다. 그의 이런 인식은 시간 및 객관성에 대한 인식이 정교해지기 시작한 당대의 자연 이론들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바르트는 시간이 틀어막혀 있기 때문에 사진이 영원한 것처럼 보인다는 것을 강조했다. 이 장은 자연과학의 새로운 시간관들이 어떻게 바르트의 사진론에 외삽되었는지를 섬세한 비평적 언어로 탐구한다.
중요한 점은 이렇게 시간을 틀어막는 것이 모든 사진 이미지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사진의 본성 가운데 일부인 것이다. 물리적 시간을 틀어막는 것은 사진을 제작하는 방법이다. 사진이란 시간의 그림이고, 그 무엇보다 이것이야말로 사진인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시간을 틀어막는 것이 각 사진의 필요조건이기 때문에, 사진은 완전히 시간을 벗어난 영원한 것처럼 보일 수 있다.─5장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