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세 겨울, 치매가 찾아왔지만
내 인생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실적 1위의 영업사원이자 두 딸의 아빠, 어느 날 그에게 찾아온 치매…
삶이 전부 무너져버릴 거라고 생각한 순간,
진짜 나로 사는 법을 발견한 한 사람이 전하는 희망과 위로의 기록
“내 안의 단어들이 하나둘 사라지지만,
웃는 얼굴은 잊어버리지 않아요.”
◎ 도서 소개
“기억력은 나쁘지만 평범한 사람입니다.”
치매와 함께 살아가길 선택한 30대 직장인의 두 번째 인생
노후에 걸리기 싫은 병을 조사하면 치매는 늘 1, 2위에서 빠지지 않는다. 어떤 병이든 달가울 리 없겠지만, 치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은 유난히 심하다. ‘진단 즉시 요양원에 들어가야 한다’, ‘금세 길을 잃고 배회하게 된다’, ‘단기간에 기억을 잃게 된다’ 등 치매에 걸리면 바로 사회에서 단절된다는 인식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39세의 자동차 영업사원 단노 도모후미 역시 그런 편견을 갖고 있었다. 단순한 건망증이라고 넘기기에는 석연치 않은 실수가 이어진 끝에 찾아간 병원에서 ‘알츠하이머’라는 진단을 받은 순간, 그가 엄청난 불안과 두려움에 휩싸인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장년층 치매’로 검색해보아도 나오는 것은 ‘노년기 치매보다 병세의 진행이 빠르다’, ‘사회생활이 불가능하다’ 같은 부정적인 정보뿐이었고, 어디에 가서 누구에게 뭘 어떻게 상담해야 좋을지 막막한 상태에 빠져 매일 밤을 눈물로 지새울 뿐이었다.
국내 전체 치매인의 10퍼센트가 ‘젊은 치매’,
그중 단 1퍼센트라도 삶을 포기하지 않기를 바라며.
진단을 받은 뒤에도 인생은 계속되니까.
장년층 치매는 우리나라에서도 드문 일은 아니다. 중앙치매센터가 발간한 ‘2018 대한민국 치매현황’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치매 환자 73만 명 가운데 65세 미만 젊은 치매 환자는 약 7만 명으로, 10명 가운데 1명이 젊은 치매에 걸린다고 한다. 초기 진단 이후 단노 도모후미가 그랬듯 절망감에 시달리다가 병세를 방치하고 마는 경우도 적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창 경제 활동에 기여해야 하는 시기에 사회생활에서 배제되면서 더욱 큰 무력감에 빠지기도 한다.
진단 직후 도모후미의 가장 큰 걱정도 일자리였다. 실적 1위의 영업사원이었지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는 사실을 회사에 알리면 곧 해고당할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놀랍게도 그는 사장으로부터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놓을 테니 돌아오라”는 말과 함께 본사 총무과에서 근무하라는 제안을 받는다.
“이제 무엇을 하고 싶어요?”라고 물어봐주세요.
기억을 잃었을 뿐, 감정까지 잃은 것은 아닙니다.
그가 운이 좋았던 것일지도 모른다. 직장생활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도, 지역 공동체인 ‘치매인과 그 가족을 위한 모임’을 알게 되어 같은 상황에 놓인 사람들과 만나 감정과 정보를 공유할 수 있었던 것도. 하지만 도모후미에게는 ‘운’을 넘어서려는 무언가가 있었다. 스스로를 ‘치매 환자’가 아니라 ‘치매인’이라 부르고, 다른 치매인들을 만나 그들에게 무엇을 하고 싶은지 듣고 지역사회기관에 의견을 전하며, 새로운 목소리를 듣기 위해 스코틀랜드의 치매인 공동체로 여행을 떠난다.
물론 항상 흔들림 없이 강하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출근하지 않아도 되는 휴일에는 결국 해고당했다고 착각해 눈물을 흘리고, 출퇴근길에 가는 길을 헷갈려 당황해 낯선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그토록 좋아하는 운전을 포기하며 화가 나기도 한다. 그렇게 매일 절망을 반복하면서도 그는 하루의 끝에서 그래도 웃어보기로 마음먹는다. 아침마다 내리는 커피 맛이 이상해지고, 내려야 할 버스 정류장을 놓쳐도, 가끔은 하려던 말이 떠오르지 않아도 ‘괜찮아, 어쩔 수 없지’라고 스스로를 달래고 초조해하지 않으면서, 치매가 주는 생활의 곤란함에 나름의 방식대로 대응하며 일상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그에게 치매는 ‘인생의 끝’이 아니라, 또 다른 ‘전환점’이었다.
이제는 ‘치매 덕분에’ 너무나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났고, 세상에 나와 자신의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며, 무엇보다 누구도 내 인생을 대신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말하는 단노 도모후미. 이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그의 따뜻한 얼굴을 보면, 치매인을 편견 없이 대하는 사회가 곧 모두를 끌어안는 사회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 책 속에서
치매 진단을 받고 처음 며칠 동안은 ‘내 삶은 끝났다’고 생각해 밤마다 울었습니다. 울고 싶어서 울었던 게 아닙니다. 잠자리에 누우면 절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만큼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고 그런 감정에 금방이라도 짓눌릴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똑같이 치매에 걸렸음에도 활기차게 살아가는 사람, 치매에 걸린 사람을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지지해주는 여러 사람을 만나 조금씩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습니다. 이 책을 계기로 한국의 많은 분들이 치매에 걸리더라도 웃으며 살 수 있다고 생각해준다면 아주 기쁘겠습니다.
(본문 8~9쪽, 한국의 독자들에게)
내가 다른 사람보다 기억력이 나쁘구나 하고 느끼기 시작한 것은 2009년 무렵입니다. 일도 순조로워 보람을 느끼던 때였습니다. 통근하며 차 안에서 업무 생각을 하다 문득 잊고 있던 일을 떠올리는 경우가 늘었습니다. 그래서 잊지 않으려고 수첩에 메모하거나 다음 날 회사에 가면 바로 메모지에 써서 컴퓨터 주변에 붙였습니다. 다른 직원들도 메모지를 붙이긴 했지만 다른 사람과 비교해 양이 확실히 많았습니다. (…) 노트에 적는 양이 늘어났기 때문에 당연히 일반 노트로는 부족해졌습니다. 처음에는 A5 크기였던 노트도 B5로, A4 크기로 점점 커졌습니다. 그것도 하루에 한 쪽씩 사용해 적었습니다. 당시는 그렇게 의식하지 않았는데 지금 새삼 노트를 보면 해마다 기억이 쇠퇴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적는 내용이 아주 자세해졌던 겁니다.
(본문 23~25쪽, 메모투성이가 되어버린 책상)
낮에는 병원 사람과만 얘기했기에 병에 관해서는 거의 신경을 쓰지 않았으나 밤에 자려고 하면 머릿속이 병 생각으로 가득 차, 자려고 해도 잠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때 알츠하이머는 어떤 병인지 휴대전화로 찾아봤습니다.
우선 ‘30대 알츠하이머’로 검색했습니다. 30대에 알츠하이머라니 아주 희귀하죠. 그다지 도움이 될 만한 정보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나쁜 정보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이를테면 ‘장년층 치매는 진행이 빠르다’, ‘곧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게 되고 몸져눕게 된다’ 같은 부정적인 정보만 있었습니다. 그나마 조금 남아 있던 희망이 점점 사라졌습니다.
(본문 51쪽, 스마트폰 검색만 하는 불면의 밤)
회사에 병에 관해 어떻게 전할지 망설였습니다. 그러다 점점 에라 모르겠다 싶은 심정이 되어 아내와 둘이 회사에 가서 솔직하게 말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아내도 결혼 전까지는 같은 회사에서 일했기 때문에 그게 최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결론이 나오더라도 받아들이겠다고 각오했습니다. 하지만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지금 같은 생활도 힘들어집니다. 아내에게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영업은 불가능할지 몰라. 하지만 세차라도 좋으니까 일하게 해달라고 부탁할 거야. 그래도 괜찮아?”
아내와 둘이 본사에 가서, 사장님 외에 중역과 인사부장이 있는 앞에서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았다고 솔직하게 전했습니다. 놀란 것은 그때 사장님의 입에서 나온 말 때문이었습니다.
“오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줄 테니까 돌아오세요. 아직 몸은 움직일 수 있죠? 본사의 총무인사 그룹으로 돌아와요. 책상을 옮기는 것부터 일이라면 얼마든지 있으니까.”
(본문 59~60쪽, 회사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회사가 쉬는 날이었습니다. 아침에 “회사에 가야지”라며 옷을 갈아입고 있는데 아내가 “오늘은 쉬는 날이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럴 리 없어. 가야 해’라고 생각하고 계속 옷을 갈아입었습니다. 하지만 아내는 또 “쉬는 날이니까 안 가도 돼”라고 말했습니다. 그때 무슨 착각을 했는지 “역시 회사가 더는 오지 말라고 했구나. 해고당했어. 나는 이제 쓸모가 없구나”라고 오해하고 울어버렸습니다.
집에 있으면 아무것도 할 맘이 생기지 않아 이대로 있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장을 보러 나간 것까지는 좋았는데 뭘 봐도 머리에 들어오질 않았습니다. 그저 가게 안을 걸어 다닐 뿐이었습니다. 집 안에서는 초조해하는 자신을 제대로 제어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도 잘못하지 않았는데 이대로는 가족들에게 화를 풀 것 같아 유성 펜으로 팔에 ‘화내지 말자’라고 적고 참았습니다.
(본문 63~64쪽, 아빠, 우리가 도와줄게)
어떤 사람이 나더러 뇌가 망가졌다는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망가졌다’라는 것은 원래의 기능을 하지 못한다는 말이겠죠. 실제로 내 뇌의 일부는 제대로 기능하지 못해 기억력이 떨어진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전부 망가진 게 아닙니다. 걸을 수도 있고 말할 수도 있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전부 망가졌다는 식으로 말하면 듣는 당사자는 정말 고통스럽습니다. 시력이 나쁜 사람에게 “네 눈은 망가졌네”라고 말하나요? 안경을 쓴 사람에게 ‘눈이 망가진 환자’라고 말하나요?
치매에 걸린 사람에게도 감정이 있습니다. 감정이 있기에 오히려 듣고 싶지 않은 말이 있는 겁니다. 앞으로 65세가 넘으면 열 명 중 다섯 명은 치매에 걸린다고 합니다. 모두 자신의 일이 됐을 때 듣기 싫은 소리로 불쾌하지 않도록 지금부터 바꿔가고 싶습니다.
(본문 71~72쪽, ‘환자’라고 부르지 말아요)
치매 카페나 쉼터에서 치매인을 아무것도 못하는 환자로 취급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솔직히 그것은 치매인에게 편한 상황이 아닙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구태여 도와주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하고, 함께 즐길 수 있는 동료와 즐거운 이벤트가 있으면 다음에도 참가하고 싶은 생각이 들 겁니다. 그것이 일생생활을 유지하는 큰 버팀목이 되고 결과적으로 치매인을 집 안에 틀어박히지 않도록 합니다.
(본문 198쪽, 집 안에만 틀어박혀 있지 않도록)
내 옆에 치매 초기 진단을 받은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말할 겁니다.
“괜찮아요, 괜찮습니다. 아직은 정말 괜찮아요.”
하지만 이 말은 치매인만이 할 수 있습니다.
“나도 4년이 돼가는데 이렇게 웃으며 사니까 괜찮아요.”
이 말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다음은 늘 웃는 겁니다. 치매 선배인 내가 웃고 있으면 치매 진단을 이제 받은 사람은 ‘뭐야! 치매라도 밝아 보이네’라고 생각할 겁니다. 그거면 된 겁니다. 말보다는 웃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치매인을 가장 건강하게 하는 방법 아닐까요.
(본문 234쪽, 이제 막 치매 진단을 받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