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토르 위고 이후에 시단은 많은 변천이 있었으나, 1866년에 고답파(高踏派) (파르나시앵Parnassien)의 제1시집이 파리에서 출현한 뒤에 20년 동안(1866~ 1885)의 프랑스 시단에서는 고답파의 신조가 권위적이었다. 그들의 신조는 감정이나 사상을 멸시하고 사실이면 자아를 절제하고, 냉정한 객관미의 중시, 무감각(Impossibilite)이었다. 그러고 이 학파의 공덕으로는 시형(詩形)의 절대적 완미(完美), 기교의 최고 극치이며 시가에 음악, 조소(彫塑)의 미를 더한 것이었다.<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