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음식에 대한 책이자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에 대한 책이며,
음식을 많이 먹었고, 빅토리아 시대를 정의했던
한 여성의 삶을 통해 그것들을 조망하는 책이다.”
19세기 대영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빅토리아 여왕은 왕성하고 모험적인 식탐을 즐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먹보 여왕』은 음식이라는 소재로 여왕 빅토리아의 생애를 조명한 일종의 ‘요리 전기’이다. 음식은 빅토리아가 자기 삶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본 방식이었다. 젊은 시절 어머니의 압박에서 벗어났을 때, 남편 앨버트 공과 사별했을 때, 그리고 스스로 죽음을 앞두었을 때 빅토리아가 먹은 음식, 먹고자 했던 음식에는 왕실의 관습과 여왕의 자세는 물론 빅토리아라는 한 인간의 욕망과 열정과 고뇌와 좌절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 애니 그레이는 철저한 고증을 통해, 화려한 왕실의 식탁뿐 아니라 매일같이 수많은 음식을 치열하게 차려낸 왕궁 주방과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까지 묘사한다. 재료가 어디에서 왔는지, 누가 요리를 했는지, 주방시설은 어땠는지 등을 짚어볼수록 왕궁의 음식이 궁 밖의 더 넓은 사회와 연관이 있음이 드러난다.
그렇게 이 책의 주제는 ‘빅토리아의 음식’에서 ‘빅토리아 시대의 음식’으로 확장된다. 빅토리아 시대는 음식에서 혁신적인 변화가 일어난 시기다. 당시 사회 곳곳에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자본주의를 바탕으로, 식품 산업, 다양한 코스 요리, 미식과 다이어트 등 본격적인 현대 식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음식 역사학자답게 빅토리아 시대의 풍경과 민중의 밥상까지 세심하게 아우르면서 빅토리아의 생애와 빅토리아 시대를 음식으로 잇는다.
이 책 『먹보 여왕』은 음식에 관한 책을 대상으로 하는 제인 그리그슨 트러스트의 뉴 푸드 라이터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본문 중에서
우리의 삶에서는 식사가 표지가 된다. 날마다 먹는 아침, 점심, 저녁(여기에 차를 더할 수도 있다)의 일상, 해마다 돌아오는 생일, 부활절, 크리스마스 의식, 세례식, 결혼식, 장례식 등 삶의 단계들. 누구의 삶이든 음식으로 정의할 수 있겠지만, 빅토리아의 삶은 특히 그러했다. 빅토리아는 여왕만이 그럴 수 있는 방식으로 먹었고, 마땅히 어떻게 해야 한다고 지시하고 여자는 많이 먹으면 안 된다고 간섭하는 사람들의 말을 무시했고, 자녀들이나 시녀들을 자기 뜻대로 하지 못해 실망할 때도, 군주와 의회 사이의 힘의 균형이 확고하게 기울어갈 때도, 음식에 있어서만은 확실하게 자기 뜻을 고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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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빅토리아가 재위한 64년 동안 음식이 생산되고 조리되고 소비되는 방식이 현저하게 바뀌어, 1837년 사람들의 식습관과 1901년 사람들의 식습관이 크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다. 여러 면에서 빅토리아 시대에 현대 식문화가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다이어트의 유행, 산업 생산된 식품에 대한 우려, 레스토랑 비평가, 화려하게 장식한 요리 등이 이때 다 나타났다. 우리가 접시 옆쪽에 줄줄이 늘어선 커틀러리의 행렬을 보고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몰라 당혹해할 때 사실 후기 빅토리아 시대 사람들의 뒤를 따르고 있는 것이고, 제대로 만든 돼지고기 파이 생각이 간절할 때도 19세기 조상들하고 다를 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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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일을 게걸스레 먹던 십대 때부터, 여왕 즉위 직후 엄청난 속도로 몸무게가 늘었다가 줄었다가 하다가, 결혼하고 나서 제약을 받기도 하고 다른 일에 마음을 뺏기기도 하면서, 음식은 빅토리아가 자기 삶에 대해 통제권을 행사하는 기본 방식이었다. 앨버트가 죽은 직후, 그리고 그 이후에 삶에 대한 열정을 다시 발견하면서 음식은 위안이 되어주었고, 친구, 하인, 그리고 자식들을 먼저 떠나보냈으나 음식은 몇 안 되는 기쁨 가운데 하나로 남았다. 음식은 빅토리아의 삶에서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비난하지도 불평하지도 않고 실망시키는 일도 드물었고 한 걸음만 더 나아가면 늘 무언가 새로운 발견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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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사가 한창 진행 중일 때 두번째 코스를 차리기가 좀 곤란할 것 같지만 그래도 예외 없이 진행된다. 풋맨은 온갖 종류의 주의사항과 지침을 따라야 했는데 모든 요리를 수학적으로 정확하게 내어놓아야 한다는 것도 있다. 왕궁의 풋맨이라면 접시를 엉성하게 놓는 일이 있어서는안 된다. 왕궁에는 상차림을 계획하고 상을 차리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식탁 장식가라는 직책이 있다. 이들은 요리를 서빙하는 일은 하지 않고 어떤 요리를 정확히 어디에 놓을지만 지시한다. 두번째 코스도 순서를 따라 진행된다. 식사 전체의 하이라이트인 로스트부터 뚜껑을 열고 먹는다. 보통 호스트와 호스티스가 고기를 자르는 역할을 한다. 상류층에서는 고기를 얼마나 능숙한 솜씨로 써는지가 세련됨의 지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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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0년대에 아서 힐 해설이 첨가물이 들어 있지 않다고 주장하는 빵을 포함해 여러 빵을 분석했으나 첨가물이 없는 빵이 단 한 개도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며 큰 충격을 주었다. 왕궁에서도 정기적으로 빵을 주문해 먹으니 왕실조차도 다른 국민들과 마찬가지로 명반과 석고가 든 아침 빵을 먹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차에도 흔히 불순물을 넣었다. 진짜 찻잎은 조금 넣고 아무 말린 잎, 쉽게 구할 수 있는 아무 재료나 넣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가짜 차를 만들었다. 커피에는 흔히 치커리와 도토리를 넣고 색을 내기 위해 벽돌가루를 첨가했다. 사탕은 납과 구리로 색깔을 냈고, 설탕에는 석횟가루를 섞었다. 다행히 이 조사가 널리 보도되며 전환점이 되었다. 1880년대에는 최악의 불량식품은 사라졌고 브랜드를 내건 제품들은 흔히 불순물을 넣지 않아 건강에 좋다고 광고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