옮긴이 정탄
홍익대학교 영문학과를 졸업했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와 작품을 찾아서 읽으며, 가치 있는 무명작가와 작품을 재조명할 때 큰 보람을 느낀다. 스티븐 킹의 『그것』, 『러브크래프트 전집』 외에 『세상의 절반은 어떻게 사는가』, 『덩케르크』, 『위대한 쇼맨』, 『리지』 등을 번역했다.
추천사 / 원서 발행인의 말 / 수훈비행십자훈장을 수여하며
1. 허를 찔리다
2. USS 호넷
3. 전장으로
4. 제8뇌격비행대
5. 미드웨이 해전
6. 또다른 임무
7. 솔로몬제도
8. 과달카날 전역
9. 동부 솔로몬 해전
10. 헨더슨 비행장
11. 참호의 열기
12. 고향 앞으로
미드웨이 해전 참전 장병이 집필한 저서 중
가장 뛰어난 고전의 하나
2차 대전의 향방을 결정한 미드웨이 해전,
그 현장에 있었던 뇌격기 조종사의 생생한 기록
1942년 6월 4일 단 하루 동안 벌어진 미드웨이 해전은 태평양 전쟁의 서막을 올린 진주만 기습 이후 미 해군이 처음으로 거둔 승리였다. 그것은 단순히 국지적인 승리가 아니라 2차 대전 전체의 향방을 가른 전환점 중 하나이기도 했다. 7개월 동안 연전연패를 거듭했던 미 해군은 미드웨이에서의 승리 덕분에 비로소 일본 해군과 대등하게 싸워볼 수 있게 되었다.
이 책의 저자이자 주인공인 프레더릭 미어스 중위는 태평양 전쟁 초반의 가장 치열했던 싸움터를 몸소 헤쳐 나온 뇌격기 조종사였다. 그는 진주만 기습 이후 미 해군의 주력 항공모함 중 하나인 USS 호넷의 항공대에 배치되어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에 참전했고,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딱 1년째 되는 날 마침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조종사로서 가장 영예로운 훈장이라 할 만한 수훈비행십자훈장을 받기도 했던 미어스 중위는 불운하게도 2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살아남지 못하고 이후 1943년 6월 남태평양 상공에서 전사했다.
태평양 전쟁의 전환점이 된 하루,
미국의 승리와 일본의 패배를 예고하다
미드웨이에서 미 해군이 거둔 승리는 치밀한 사전 준비 덕분이었지만 상당한 행운이 따라주었다는 사실 또한 부정할 수 없다. 미드웨이에서 양측의 전력은 백중지세에 가까웠다. 항공기는 미군이 훨씬 많았지만 병력 면에서는 오랜 실전으로 단련된 베테랑 조종사와 승무원이 풍부했던 일본군이 우위였다. 벼랑 끝에 몰려 있던 미 해군 사령관 니미츠 제독은 결전을 각오하고 미드웨이에 운용 가능한 모든 전력을 쏟아 부었다. 반면 일본 해군은 그동안의 승리에 도취되어 방심했으며 허술하고 무계획적인 작전으로 패배를 자초했다. 그 결과 일본 해군은 정규 항공모함을 4척 잃은 반면 미 해군은 단 한 척만 잃었다.
그러나 일본 해군의 손실은 1:4라는 산술적 계산 이상이었다. 항공모함과 항공기 자체보다도 인적 손실이 더욱 뼈저린 타격이었기 때문이다. 일본 해군은 전쟁이 끝나는 순간까지도 이 손실을 결코 메울 수 없었다. 일본 해군의 패배는 불운과 판단 착오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일선 병사들의 목숨을 하찮게 여겼던 특유의 군사문화, 터무니없는 자만심과 상대에 대한 경시, 전략과 소통의 부재 등 총체적인 난맥상 때문이었다.
왜 미드웨이가 한국사에 중요한가
원폭 투하와 38선으로 이어진 역사적 흐름의 시작
미드웨이에서 패배했다면 미 해군의 반격은 한참 늦어졌을 것이다. 미국이 원자폭탄을 완성한 뒤에도 태평양을 장악하지 못한 상태에서는 일본 본토에 투하할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그사이 얄타 회담에서 대일 참전을 약속한 소련군이 만주와 한반도, 일본 북부를 침공했을 가능성이 크다. 38선은 없었을 것이며 소련군은 별다른 방해 없이 손쉽게 한반도 전체를 차지했으리라.
물론 원자폭탄을 손에 넣은 미국의 트루먼 대통령이 소련의 참전을 막기 위해 일본 지도부와 협상을 벌일 가능성도 있었다. 일본이 마지막까지 항복을 망설인 진짜 이유는 한국과 타이완을 내놓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1차대전 이전에 획득한 식민지는 마땅히 일본 제국의 일부이며 연합국도 이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트루먼 행정부에서도 반공주의자들을 중심으로 조기 종전을 위해 일본과 협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제시되었다. 트루먼은 추축국과의 단독협상은 없다는 루스벨트의 선언을 뒤집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부했지만, 전쟁이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면 받아들였을지도 모른다. 여러 면에서 미드웨이 해전은 전쟁사만이 아니라 한국의 역사에도 큰 영향을 준 중요한 싸움이었다.
일선 병사의 생생하고 솔직한 기록
풍부한 도판과 해설을 통해 되살아나다
1941년 12월 7일부터 1942년 12월 7일까지 1년간 태평양 전장에서의 기록을 그 직후에 정리한 이 책은 무엇보다도 1인칭 서술의 현장감이 돋보이며, 단순히 미드웨이 해전뿐만 아니라 그 전후 진주만에서 과달카날까지 전쟁의 맥락을 짚어볼 수 있다. 뇌격기 조종사의 비행술과 전술, 선상 훈련과 실제 교전에서의 표류 및 실종까지 항상 위험이 따르는 비행 과정, 항공모함에서의 일상생활 등은 여느 역사서에서 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읽을거리다. 또한 감수자 해설과 각주, 도판 등 풍부한 보충자료가 현재 시점에서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미어스 중위는 유명하거나 지위 높은 군인이 아니었으며 역사학자나 작가는 더더욱 아니었다. 저술가가 책상에 앉아 쓴 역사 서적, 영화나 TV의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저자가 생사를 함께한 전우들이었고 어쩌면 그 자신일 수도 있었다. 페이지마다 신출내기 조종사의 패기와 희망과 각오가 전해지며, 이미 세상을 떠난 상당수 동료들의 이름과 외모와 성격을 하나하나 묘사한 필치에서 절절한 애정이 느껴진다. 미드웨이에서 출격하여 단 한 명만 빼고 전멸한 비행대 동료들을 기다리는 모습은 안타까움을 자아내며, 부하들을 희생시켰다는 역사적 오명을 쓴 지휘관의 명예를 회복하기 위한 그 나름의 해명 또한 감동적이다. 인간으로서 느끼는 살상의 죄책감과 군인으로서 제 구실을 할 수 있다는 안도감 사이의 갈등, 적에 대한 복수심보다도 냉철한 판단력이 최우선이어야 한다는 조종사로서의 사명감도 인상적이다. 이 책 『미드웨이』는 태평양 해전의 현장 기록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몰랐던 진정한 영웅들을 만나볼 수 있는 휴먼 드라마이기도 하다.
책 속으로
전투기 조종사는 외로운 상어다. 혼자 비행하고 혼자 화내며 혼자 얘기한다. 반면에 급강하 폭격기와 뇌격기에서는 조종사 외에 추가로 승무원 1, 2명이 비행과 교전의 감정을 공유한다. 급강하 폭격기 조종사와 통신수 겸 사수?후자는 조종사 뒤에서 기관포를 마주보고 동체의 꼬리 너머로 하늘을 응시한다?는 뇌격기의 승무원들보다 더 친밀해진다. 급강하 폭격기에 몸을 싣고 태양 아래 창백한 창공으로 솟구친 두 사람은 결속감을 느끼기 마련이다. 긴 초계 비행 동안 이런저런 농담을 주고받기도 하고, 고향에 남겨두고 온 서로의 여자 친구 얘기를 늘어놓거나 때로는 인터폰에 대고 노래를 부르기까지 한다. 제이미는 위험한 폭격 임무를 띠고 출격할 때면 어김없이 통신수 겸 사수에게 “난 세상을 불태우고 싶지 않아. 그저 사랑을 하고 싶을 뿐이야”라는 잘 알려진 노래를 요들 창법으로 불러준다. 함께 비행하는 시간이 길고 조종사가 매번 같은 대원과 출격한다면 그들은 단 몇 번의 비행만으로 서로를 아주 잘 알게 된다. 우리가 항모전단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항공모함 갑판에 착함할 수 있는지 증명해야 했다. 우리는 줄곧 그 기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_2장 ‘USS 호넷’
항공모함 함재기 조종사들이 공통적으로 지닌 특징을 꼽으라면 사실에 근거한 객관성일 것이다. 나는 세간에 알려진 것처럼 남은 제8뇌격비행대원들이 깊은 슬픔과 복수심에 몸부림쳤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해군은 (특히 전시에는) 명령에 따라 움직여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전우를 잃게 된다면 감당하기 어렵겠지만 그렇다고 분노한 복수자로 변모하지는 않을 것이다. 전우의 죽음을 자주 겪다보면 선한 사람들이 너무도 많이 죽는다는 생각에 느꼈던 절망감도 차차 무뎌지고 결국에는 일본군을 격퇴하여 전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변함없고 냉철한 결심을 되새기게 될 터이다. 감상적인 말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전투 조종사는 언제든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내가 다음 출격에서 생각할 일은 피아식별과 타격지점이다.” 그냥 감정을 표출해버리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전투 비행사가 되기에 적합하지 않다. 목표물을 타격하기 위하여 뇌격기 조종석에 가져가야 할 생각은 표적의 위치, 표적각, 표적 속도, 투하 지점, 적의 대공포 회피를 비롯해 오로지 객관적인 고려사항뿐이다.
_5장 ‘미드웨이 해전’
일주일 후 나는 파견 명령을 받고 짐을 꾸리는 딕 재커드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이삼주 후면 또 만나게 될 거야, 미어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악수를 나누었다. (…) USS 와스프의 비행단으로 파견되었던 재커드의 전사 소식을 들은 곳도 그 정글 막사였다. 나와 헤어진 직후 재커드는 와스프에 배속됐다. 와스프가 어뢰 공격을 받는 동안 자기 침상에서 곤히 잠들어 있던 그는 두 번 다시 깨어나지 못했다. 그가 만약 비행중이었더라면 그 어떤 일본군도 그를 건드리지 못했을 것이다. 어쨌든 재커드가 조종간을 붙잡고 있는 한 죽일 방법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가 자주 하던 말이 떠오르는 걸 어쩔 수 없다. “그게 전쟁이지. 그게 인생이지. 그게 사랑이지.”
_9장 ‘동부 솔로몬 해전’
포탄 몇 발은 참호에서 불과 몇 미터 거리에 떨어졌다. 묵직한 한 발이 근처에 떨어졌을 때는 초콜릿 푸딩을 숟가락으로 탁 치는 것처럼 참호 벽이 뒤흔들렸다. (…) 70명가량의 장병이 비행대에 배정된 대형 트럭에 빽빽이 올라탔고, 나머지 인원은 이용할 수 있는 지프 몇 대에 오르고 매달렸다. 일부는 도보로 이동했다. 우리는 그렇게 해변의 커다란 방공호로 향했다. 우리가 아직 트럭에 오르는 동안 또다시 포격이 시작되었다. 병사들이 사방에서 기어오르는 와중에 갑자기 트럭이 구르기 시작했다. 병사들은 멈추라고 소리쳤다. 성질 급한 경주마가 멈췄다가 뛰쳐나갔다가 하기를 반복하듯이 우리는 몇 번이나 트럭을 세웠다가 다시 보냈다가 했다. 그래도 타지 못한 장병들을 내버려두고 트럭은 달리기 시작했다. 해변까지 가는 과정은 내가 술에 취하지 않고 제정신으로 가본 최악의 길이었다. 병사들은 악을 쓰고 심지어 울부짖었으며 서로의 뒤에 숨으려고 하거나 비집고 들어가 트럭 바닥에 바짝 엎드리려고 난리도 아니었다. 그중 몇몇은 입고 있는 상의를 끌어올려 철모처럼 머리에 뒤집어쓰기도 했다. 트럭 운전병은 운전 실력이 뛰어나서였는지 아니면 천천히 간다는 건 상상할 수 없어서였는지 아무튼 근처에 떨어지는 포탄의 화염 외엔 빛이라고는 없는 어둠 속에서 시속 60킬로미터로 질주했다. (…) 한 병사가 오히려 더 위험한 곳으로 끌려왔다고 생각했는지 이렇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놈들이 우릴 모조리 죽이고 말거야! 놈들이 우리를 모조리 죽이고 말거야!” 누군가 트럭 뒤로 던져버리겠다고 윽박지른 다음에야 그는 입을 다물었다.
_11장 ‘참호의 열기’
추천사
이 책은 진주만 기습부터 미드웨이 해전과 과달카날 전투를 거쳐 저자가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의 기나긴 여정을 다루고 있다. 그가 모처럼 고향에 돌아온 것은 진주만 기습으로부터 딱 1년째 되는 날이었다. 저자가 온몸으로 체감해야 했던 치열한 전투 묘사는 영화의 한 장면마냥 생생하여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또한 출격한 뒤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동료들을 하릴없이 기다리는 모습은 보는 이가 안타까울 정도이다. 항모에서의 일상생활, 뇌격기 전술과 관련된 다양한 설명 또한 여느 책에서는 보기 어려운 흥미로운 읽을거리이다. _권성욱, 추천사에서
태평양 전쟁의 함대항공전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 보물과도 같은 필독서다. _Wire Guy(아마존독자)
짧다면 짧지만 그 내용에서는 마땅히 찬사를 받아야 할 작품. _10Ring(아마존 독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