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성장을 위해, 민주주의 발전을 위해 경제민주화는 꼭 필요하다!
아주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김철환이 들려주는 진짜 경제민주화 이야기
막강해진 경제 권력이 정부의 순기능을 약화시키고 정치 위에 군림하는 세상!
소득 불평등 심화가 빈곤 계층의 자유까지도 침해한다?
부자들에 의해 남용되는 자유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손실은 얼마나 될까?
지금 한국 사회는 어두운 불황의 터널을 지나고 있다. 청년 실업률은 하루가 멀다 하고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으며, 생계 곤란을 이유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들의 소식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취업에 대한 강박과 공포가 젊은이들의 꿈을 앗아가고, 경제력이 없는 노인에게 최소한의 복지도 제공되지 않으며, 언제 삶의 기반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지 않는 사람이 없는 사회, 그것이 바로 현재 한국 사회의 비참한 맨얼굴이다.
우리 사회의 이 비참한 맨얼굴 뒤에는 양극화라는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삼성과 같은 재벌 기업의 오너들이 경제 권력을 이용해 더 많은 부를 쌓고, 그 부를 세습하는 동안 저임금의 서민들은 허드렛일만 하다가 기업으로부터 쓰고 버려져 일자리를 잃고 쫓겨난다. 힘없는 서민들은 인간으로서의 최소한의 존엄을 지키고 살기도 버거운 실정이다. 과연 우리 사회는 이러한 양극화의 늪에서 빠져나와 경제정의를 실현할 수 있을까? 한국 사회에서 경제 권력은 이미 너무나 거대한 산이 되었고, 그 때문에 이들에게서 기득권을 빼앗아 소득 불평등을 해소할 수 있는 길을 찾아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일은 너무나 요원해 보인다.
이 책의 저자 김철환은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심각한 경제적 불합리를 해결할 방법으로 경제민주화를 제시하는 ‘경제학자’다. 그는 한국의 주류 경제학계가 주로 미국식의 경제학 커리큘럼을 답습해 경제학 안에서 경제 권력이나 소득 불평등의 문제를 다루지 않는 것을 단호하게 비판한다. 또한 경제학이 ‘선출되지 않는 권력’이자 ‘세습되는 권력’인 경제 권력이 존재함을 인정하고, 그 권력을 평범한 사람들에게 돌아가도록 하는 일에 도움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하는 것이 불황 속에서 해매는 한국 경제가 다시 활기를 찾고, 지속가능한 경제 성장을 이루는 지름길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과잉과 결핍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인간 존엄의 가치를 실현해 줄 대안은 바로 경제민주화다
신자유주의 시대가 낳은 소득 불평등, 타개할 방법은 반드시 있다!
저자 김철환은 이 책 <경제를 살리는 경제민주화>를 통해 현재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불황이 이미 예견된 것임을 지적한다. 1930년대의 대공황과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했던 대불황의 원인이 그 직전 10년에 걸쳐 진행된 극심한 양극화에서 비롯되었음을 진단하며, 해소되지 않는 소득 불평등이 우리 경제에 얼마나 큰 해악을 가져오는지 경고한다. 특히 소득 불평등이 어떻게 경제 위기 불러오는지 그 기제를 분석해 설명한 부분은 꽤 주목할 만하다.
이 책에서 저자가 설명하는 경제 위기의 핵심은 저임금이다. 지금과 같이 경제적 잉여가 임금보다는 주로 이윤의 형태 분배되는 사회에서는 소비가 위축될 수밖에 없고 이는 필연적으로 경제 위기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저임금에 시달리게 되면 상품을 소비하고 싶어도 소비할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반면에 경제적인 잉여의 대부분을 이윤의 형태로 얻게 되는 부자들은 넘치는 돈을 다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다. 따라서 기업이 생산한 상품은 점차 시장에서 소비되지 않게 되고, 상품을 생산하는 기업과 공장은 생산을 줄이거나 멈춘다. 공장이 문을 닫으면 일자리를 잃어버리는 사람이 늘어나게 되고, 더욱 극심한 빈곤이 사회 곳곳에 찾아들게 된다는 것이 저자 김철환의 설명이다.
이 같은 관점에서 보면 지금 우리는 코앞에 거대한 불황의 장막을 마주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몇 년째 제기되는 양극화 문제는 그 해결의 실마리조차 찾지 못하고 있으며, 실업 문제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는 가운데 대기업들이 속속 구조조정의 칼을 빼들고 있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 김철환 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우리 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내상을 입을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속적인 소득 불평등은 사회 불만을 고조시킬 수밖에 없고, 결국 그로 인해 분열과 혼란이 사회를 통째로 집어 삼키게 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경제적 불안이 정치적 불안으로 이어지면 단순히 ‘고장 난 사회’를 넘어서 체제 전복이라는 결과까지도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저자가 말하는 해결책은 무엇일까? 저자는 보편적 복지를 실현해 보다 많은 사람들이 최소한의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기반을 보장해 주고, 노동자의 경영 참여를 통해 부자들이 지나치게 많은 이윤을 자기 몫으로 돌리지 못하게 막는 제도를 만들며, 공동체의 회복과 시민의 사회 참여를 통해 모든 시민이 보호받으며 자기실현을 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한다. 그 이름이 바로 경제민주화다. 경제민주화의 요체는 지나치게 어느 한 쪽에 집중된 권력을 해체해 균형을 맞추는, 독과점 재벌 체제를 개혁해 공정한 경제 질서를 확립하자는 데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경제민주화는 결코 시장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시장 경제의 취약점을 개선해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더욱 강건하게 다듬고 보살펴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함께 병행 발전”할 수 있게 만들자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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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속에서
경제민주화 논의에 대해 부정적인 일부 계층에서는 경제민주화를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단어로, 혹은 네모진 원과 같은 형용 모순적인 개념으로 비하하며 경제민주화란 개념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과연 그들의 생각이 옳을까? 왜 ‘줄푸세’를 경제민주화라고 강변하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 통했을까? 집권을 위해 나열했던 핵심 공약이 대통령 선서문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폐기되고 있음에도 왜 시민들은 분노하지 않을까? 그 정도로 경제민주화는 허술하고 혼란스러운 주장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 <프롤로그: 경제민주화의 꽃은 이대로 시드는가> 중에서
경제학은 삶과 분리될 수 없다. 삶을 외면하는 경제학은 더는 학문으로 존재할 당위가 없다. 삶과 유리되어 현실을 설명할 수 없는 이론은 그저 탁상공론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삶에서 일어나는 중요한 문제가 기존의 경제학 교과서에서 다루어지지지 않는다고 해서 탐구의 대상에서 배제한다면 그 경제학자는 죽은 경제학자에 지나지 않는다. ‘가슴이 따뜻한’ 경제학자까지는 되지 못하더라도 경제학자라면 삶의 중요한 부분을 투영하는 문제를 경제학 밖으로 밀어내서는 안 된다.
- <1장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경제민주화?> 중에서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재벌 지배 체제가 국가 주도(개입) 체제 보다 더 낫다고 믿을 만한 이론적, 실증적 근거는 어디에도 없다. 국가의 개입이 정부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듯이 재벌의 지배도 시장의 실패를 초래할 수 있다. 국가의 개입이 시장의 자유를 억압할 수 있듯이 재벌이라는 큰 물고기의 지배는 중소기업이나 소비자라는 작은 물고기의 경제적 자유를 억압할 수 있다. 정부 가 민주주의를 후퇴시키듯이 재벌은 경제적 평등을 후퇴시킨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정치적 민주주의는 경제 권력의 막강한 무게를 견디어 낼 수 없는 살얼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 <3장 경제민주화는 성장의 함정?> 중에서
경제민주화라는 개념이 본질적으로 모호할 수밖에 없다면 가치의 충돌을 조화시키는 과정에서 제대로 작동하는 민주주의 체제는 더욱 중요하다. 민주적 제도란 정책의 입안과 입법 과정의 전면에서 인류의 선량한 본능이 서로 상호 작용하게 돕는 제도다. 또한 인간 본능, 윤리적 통찰, 민주적 절차에 의해 인간의 내면이 통제되는 상식의 커다란 저장고다.
- <7장 애매모호한 경제민주화의 개념> 중에서
문어발식 확장이나 합병 등을 통해 기업 단위가 점차 대규모화 하면서 대기업군은 점차 강력한 경제 권력을 획득한다. 시장 권력이 소유한 집중된 부는 정치권력을 조종하여 기업의 이익을 증진할 입법을 가능하게 한다. 기업의 이익에 직접적으로 연관된 입법 가운데 하나는 노동자 길들이기도 포함된다. 정부 정책에 의한 노동자 길들이기는 다시 노동자들이 선택할 수 있는 대안을 제한하는 경제 환경의 조성을 통하여 강화된다. 노동자의 신분은 약화되어 결국은 고용주의 처분에 매달려야 하는 취약한 형편으로 전락하게 된다. 최근 박근혜는 이를 “노동 개혁”이라고 이름 붙였다.
- <8장 자유는 존엄의 전제다> 중에서
자유주의가 시장 권력을 부인하는 근거는 시장이 사적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자유주의는 사회적 공간을 사적 영역과 공공 영역으로 구분한다. 공공 영역은 국가이고, 사적 영역은 가족과 자본주의 경제를 포함한다. 자유주의는 자유, 평등, 민주주의 등 자유주의의 기본적 조건을 국가라는 공적 영역에만 제한적으로 적용시킨다. 자유주의는 시장과 기업에는 자유를 최대한 요구하지만 평등이나 민주라는 가치에는 자유를 적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시장과 기업이 사적 영역에 속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경제의 운용에는 사회적으로 중대한 권력 행사가 포함되지 않는다. 또한 자발적인 시장 교환에는 억압이나 강제가 존재 하지 않는다고 믿는다. 예를 들어 누군가 강제로 집을 팔라고 강요해도 사람들은 언제나 그 거래를 거부할 권리를 보장받는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시장이 사적 영역이기 때문이다.
- <9장 시장을 움직이는 검은 손> 중에서
공동체와 자선이라는 사회적 개념과 개인의 자기 계발이라는 경제적 개념이 서로 충돌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적인 관계일 수는 없을까? 이러한 가능성의 단초는 뉴욕 항구의 자유의 여신상에 쓰인 현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현판에는 “너의 지친 몸을, 너의 가난을, 너의 고민 덩어리를 나에게 주고, 자유롭게 숨을 쉬라.”고 쓰여 있다. 자유의 약속뿐만 아니라 관대함의 자세까지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너의 빈곤을 나에게 달라는 구절은 나도 너에게 줄 수 있는 무엇이 있다는 것을 함의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에게 무엇인가를 주려는 배려는 자유의 소중함, 혹은 자기실현의 중요성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가진 중요한 가치다. 그렇다면 자선이라는 사회적 가치와 자기 계발이라는 개인적 가치 의 뿌리는 동일하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 <17장 경제적 평등과 사회적 연대 의식> 중에서
과연 자본주의 체제는 붕괴될 것인가? 2008년 미국의 금융 위기는 지난 30년간 세계를 지배한 신자유주의의 종말을 초래할지는 몰라도 자본주의의 종말을 초래하지는 못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는 자본주의가 “불변의 내재적 법칙을 가진 완성된 체제가 아니라 역사 속에서 계속 끊임없이 변화해 나가는 존재”임을 보여 주고 있다. 자본주의의 장점은 “자체 교정 능력을 갖는 유연성으로 인해 현실의 사회 경제적 변화와 만나면서 굉장한 현실 적응 능력을 실현”해 왔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자본주의는 구부러지기 때문에 부러지지 않은 것이다.
- <18장 자본주의는 붕괴될까?>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