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를 부른 중앙은행이
위기에 빠진 경제를 구원해줄 수 있을까?
《파이낸셜타임스》 주간 쉬진이 300년 경제사를 통해 전망하는
중앙은행과 중앙은행가 그리고 2017년 세계 경제의 미래
2016년 12월 15일, 바다 건너 미국에서 들려온 연준의 금리인상 소식이 대한민국을 말 그대로 ‘흔들어놓았다.’ 경제부 기자부터 금융감독원, 한국은행 총재, 경제학자와 시민운동가들까지 이 미국발 ‘악재’를 걱정하며 한국의 미래에 대한 전망과 대책을 쏟아놓았다. 환율이 하락하고 주식시장은 출렁였으며, 부동산 시장은 직격탄을 맞은 모양새다.
대부분의 전문가들은 이번 금리인상을 세계가 긴축의 시대로 접어드는 신호로 분석한다. 동시에 앞으로 늘어날 국가 간 자금이동에 따른 유불리를 따지느라 분주하다. 수출 위주 성장 전략을 택하고 있고 해외 자금의 흐름에 강한 영향을 받는 한국 경제에는 대체로 악재라고 여기는 추세다. 미국과의 금리 차이에 따른 자본 유출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이러한 악재들이 퍼펙트스톰으로 이어져, 금융위기라는 2008년과 1997년의 악몽이 다시 찾아오지 않을까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언제쯤 금융위기가 발생할까? 이 질문에 대해 정확한 답을 내릴 수는 없다. 그러나 모든 복잡한 일의 시작도 따지고 보면 대부분 단순한 것에서 시작한다. 경제의 본질은 돈이며, 돈의 유동과 정체에 따라 경제 상황도 움직일 수밖에 없다. 바로 이 책, 《돈을 찍는 자》가 태어난 이유다.
인류의 역사는 전쟁의 역사이며,
전쟁을 움직이는 돈의 역사고,
동시에 그 돈을 찍어내는 사람들의 치열한 권력다툼의 결과다!
책은 300년 전 중앙은행의 탄생에서부터 오늘날 미 연준까지 중앙은행이 걸어온 길을 꼼꼼히 분석한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세계 경제의 흔들림은 각국 중앙은행 사이의 치열한 힘겨루기의 결과다. 동시에 자국 내에서는 국가의 경제 지표를 좌우하는 ‘금권’을 놓고 처절하기까지 한 다툼이 첨예하게 벌어진다. 중앙권력의 유지를 위해 만들어진 중앙은행이 권력과의 분리를 통해 훗날 시민혁명의 초석이 되며 오늘날 국가를 넘어 세계 경제에 영향을 주는 강력한 위상을 갖게 되는 과정은 경제학이 아닌 역사학의 관점으로 보아도 하나하나 흥미롭다. 동시에 비슷한 모습의 사건이 300년의 시간을 넘어 오늘날까지도 주기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면은 역사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며 아이러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세계 경제는 이미 지나치게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은행으로 대표되는 금융의 발달이 세계 전체를 하나의 그물망으로 촘촘하게 엮어버린 결과다. 세계 경제는 ‘하나가 망하면 다함께 망하고, 하나가 흥하면 남은 곳도 함께 흥하는’ 공생공사의 길에 들어서버렸다. 홀로 살아남은 자가 되는 일이 불가능한 것이다.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 금융이며, 금융을 움직이는 곳은 결국 은행이다. 그리고 은행의 동향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바로 각국의 중앙은행과 중앙은행가들, 이른바 ‘돈을 찍는 자’들이다.
시장을 지키는 ‘히어로’인가, 아니면
시장을 휘두르는 베일 뒤의 ‘검은 손’인가?
“당신은 중앙은행이 민간은행인 걸 알고 있나요?”
이런 질문을 던지면 적지 않은 사람들은 한동안 멍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이 마치 세상을 놀라게 할 엄청난 비밀을 안 듯 착각하며 이 ‘음모론’을 숨겨왔던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최초의 중앙은행인 잉글랜드은행부터 오늘날 대한민국의 한국은행까지 그 본질은 언제나 정부 기관이 아닌 하나의 민간은행이었다. 오늘날 사람들의 눈에 비친 중앙은행가들은 경제위기를 막아내는 ‘히어로’면서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베일 뒤의 ‘검은 손’이라는 양면적인 이미지를 갖고 있다. 국가의 존망을 결정할 수도 있는 기관이 민간의 영역에서 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리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사람도 있을 것이다..
책에서 밝히듯, 세계 최초의 은행인 중앙은행이 생겨난 까닭은 전쟁으로 자금 융통이 힘들어진 왕실을 보조하기 위한 단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면을 따져보면 전쟁으로 인한 왕가의 과도한 지출을 막아 자금부족의 여파가 시민에게로 쏟아지지 않게 하기 위한 민간 영역의 자구책이기도 했다. 하지만 소위 ‘돈’을 휘두를 수 있는 저울추가 민간으로 넘어간 순간, 왕권을 위한 기관이던 중앙은행은 시민 혁명의 든든한 뒷배가 되는 기관으로 탈바꿈한다. 중앙은행은 민간은행이기에 때로 다른 민간은행과 경쟁하고, 민간의 영역을 넘어선 공적 결정을 내리기에 국가의 권력과도 각을 세웠다. 그러면서 타국의 중앙은행과 국가의 미래를 건 치열한 수 싸움을 벌여나갔고, 그 결과는 한 나라를 넘어 전 세계의 흥망을 좌지우지했다. 이것이 중앙은행의 역사이며, 금융이 세계화되는 역사이고, 우리가 사는 세상이 번영과 쇠퇴를 거듭해온 역사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적을 알고 나를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 자신이 만들어낸 역사의 자취다
금융의 세계화는 달리 말해 금융위기의 세계화다. 현대 경제는 신용경제이며, 금융위기 혹은 경제위기는 신용경제의 필연적 산물이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위기 속에 있지 않으면 위기로 가는 길목을 걷고 있다. 주기적이든 그렇지 않든 경제위기는 필연적으로 일어나고야 만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지만, 우리의 적이든 친구든 세상을 사는 존재라면 인간은 역사라는 무대를 결코 벗어날 수 없다. 대한민국과 세계의 경제는 어떻게 움직이고 있으며 또 어떻게 변해갈 것인가? 우리를 위기에 빠뜨린 중앙은행이 이번에도 우리를 다시 위기에서 구해줄 수 있을까? 금융과 권력을 무대 삼아 중앙은행과 은행가들의 300년 세계사를 다룬 이 책, 《돈을 찍는 자》는 과거를 살피며 현재를 관찰하여 미래를 대비하려는 자에게 좋은 선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에서
경제 갈등의 배후에는 언제나 정치가 버티고 있다. 잘 알려져 있듯, 잉글랜드은행은 휘그당 당원들이 설립했다. 반면 남해회사는 토리당의 지지를 받았다. 토리당이 정권을 잡았던 시기만 해도 정부는 수천만 파운드에 달하는 부채를 안고 있었고, 자금을 지원해줄 이가 절실했다. 이때 지원사격을 하기 위해 탄생시킨 조직이 남해회사다. 기자 대니얼 디포 등 많은 유명 인사들이 남해회사를 홍보하고 위상을 높이는 일에 적극 동참했다. 이들에게 남해회사는 정부의 대출 업무를 독점하는 잉글랜드은행을 견제하고, 나아가 휘그당을 공격하는 효과적인 수단이었다.
? 62~63쪽, 〈18세기: 중앙은행 VS 유럽의 패권 전쟁〉 중에서
당시의 자료를 찾다가 놀라운 점을 발견했다. 붕괴가 시작되기 전 시장에 대한 전망은 대체로 낙관적이었다. 정치가와 경제학자, 큰손과 개미들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시장이 혼란에 빠질 때면 누군가는 꼭 나서서 모든 상황이 정상적이며 문제없다고 이야기했다. 붕괴가 시작되기 전, 경제학자 어빙 피셔는 “주가는 영원히 하락하지 않을 고지대에 도달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폭락 직후인 10월 25일 금요일 허버트 후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내놓는 제품의 생산과 분배는 완전하고 발전된 기반 위에서 진행되고 있다”고 선언하기까지 했다.
? 124쪽, 〈20세기: 대공황 VS 위기 극복〉 중에서
게임의 ‘칩’인 금은 미국에 집중적으로 쌓여갔다. …… 당시만 해도 금은 여전히 부의 초석이고, 금본위제도도 금융 체제 안정의 초석이므로 세계는 하루빨리 금본위제도로 다시 돌아와야 한다는 생각이 주류를 이루었다. 중앙은행 총재들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국제금융 체제의 재건을 논의할 때도, 많은 부분에서 이 생각이 주로 반영되었다. 이들은 국제외환시장의 안정과 자금 유동의 자유화 등을 강화해 경제를 회복시키고자 했다. 그러나 금을 다시 구제한 대가는 세계 파멸이었다.
? 151~152쪽, 〈중앙은행가: 파멸과 기사회생〉 중에서
위기가 도래할 때마다 극단적인 보수주의자들은 경제 주기에 따라 위기는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주장한다. 이들은 시장에는 자체 필터링이 있으며, 파산하는 금융 기관은 바로 이 과정에서 걸러진다고 믿는다. 문제는 현실 세계에서 경제 운영과 공공 정책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한 관계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제가 바닥을 친 뒤의 ‘뼈를 깎는 듯한’ 비용 지출과 길고 긴 회복의 시간을 모든 정부가 수용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장기적 시각에서 본다면, 정부가 이러한 정책을 시행하면 모두가 공멸하고 만다.
? 229쪽, 〈금융위기의 계시록〉 중에서
“신용 대출은 그저 돈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기에는 유혹이 숨어 있습니다. 신용 대출은 바로 그런 유혹이라는 특성을 사회 전체 구성원들이 마음껏 누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죠. 하지만 그들에게 이 같은 방임의 대가를 감당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죠. 신용 대출이 전국적으로 모든 계층에게 ‘이제부터 불을 끄겠습니다. 누구든지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어요. 당신이 무슨 짓을 하든 알아볼 사람들은 없으니 안심하세요’라는 메시지를 보낸 거죠. 불이 꺼진 곳에서 사람들이 빌린 돈으로 각자 이루고자 하는 소원은 모두 천차만별이었죠.”
? 246쪽, 〈아이슬란드의 ‘파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