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은 동물의 종 보전을 위해 존재하는 것, 부작용은 받아들여야 한다.”
Vs
“동물원은 동물을 학대하는 인위적인 공간일 뿐, 좋은 동물원이란 애초부터 없다.”
동물원 옹호론자들은 야생동물의 종 보전을 위해 동물원이 반드시 필요하며 동물원은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을 구하기 위한 연구 기관으로서의 순 기능을 오래전부터 갖고 있었다고 주장합니다. 게다가 자라나는 어린이들의 정서 발달과 성장에 있어 동물과 교감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는 동물원의 존재를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과연 그들의 말이 맞을까요? 오래전부터, 동물원은 올바른 동물 종 보전과 동물 복지에 관심을 기울이기보다 동물의 입장을 우선하지 않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 동물 전시와 동물 쇼, 체험 행사 등을 행하고 있습니다. 단지 동물원은 인간의 쾌락을 충족하기 위해 산업적 측면으로만 발전해 온 것이지요. 또한 동물원은 인지 능력과 지능, 자아의식을 갖고 있으며 무리생활을 하여 사회성까지 갖추고 있는 돌고래나 코끼리, 오랑우탄 같은 동물까지도 ‘동물 쇼’에 동원하고 있습니다. 이런 고등 동물들은 동물 쇼를 위한 모진 훈련을 통해 늘 우울과 소외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물원은 인간의 욕심 때문에 동물을 가두어 두는 인위적 공간입니다. 인간을 위해서도 동물을 위해서도 동물들은 드넓은 자연으로 돌아가서 살도록 해야 합니다. 동물이 행복하지 못한데 그들을 바라보는 인간이 온전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까요? 과연 진정한 의미에서의 ‘좋은 동물원’이란 있을까요?
《세상에 대하여 우리가 더 잘 알아야 할 교양 51 동물원, 좋은 동물원은 있을까?》는 동물원이 야생동물의 종 보전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기관인지, 아니면 동물 전시와 동물 쇼, 체험 행사 등을 통하여 동물의 삶의 질을 훼손하는 공간인지에 대하여 올바로 판단할 수 있도록 다양한 사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먼저, 근친교배로 태어난 호랑이 ‘크레인’을 통하여 동물원의 종 보전의 기능에 의문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사육사를 물어 죽인 ‘로스토프’, 동물원에서 안락사 한 ‘마리우스’의 사례를 통하여 종 보전이라는 미명 아래 야생동물을 동물원에 가두는 일이 동물원의 모순 상황과 같음을 지적합니다. 더 나아가, 다양한 형태의 동물 전시, 동물 쇼, 체험 행사 등을 소개함으로써, 동물 복지는 뒤로 제쳐 두고 상업적 용도로 동물을 학대하거나 이용하고 있는 동물원의 잘못된 의도와 그 열악한 환경을 살펴봅니다.
동물을 돈이 아니라 생명으로 보아야 한다는 생각, 동물은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동물원보다 생태계가 어우러지는 광활한 자연 속에서 살아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생각이 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동물이 인간을 위한 눈요깃거리의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로 신성한 생명을 간직한 고유의 존재라는 것이지요. 게다가 인간이라고 해서 그 동물의 권리를 함부로 침해하거나 훼손할 수 없다는 생각이 그것입니다.
이 책은 지친 코끼리가 우리에서 탈출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새끼 돌고래가 어미와 떨어져 먼 곳으로 옮겨 가 묘기 쇼를 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 호랑이가 먹이를 주는 사육사를 물어죽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 대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또한 동물과 인간이 서로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진정한 의미의 공생 방안과 동물 복지, 그리고 동물원 관람 예절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지요.
이 책이 여러분 각자에게 동물에게나 인간에게 필요한 좋은 동물원에 대해 그리고 동물과 인간이 어우러져 살아가는 새로운 방안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 책 속에서
동물원이 동물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기관이 되려면 어떤 조건이 필요할까요? 동물원은 사람에 의해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공간입니다. 자연 생태계라면 동물들이 스스로 균형 있게 조절하면서 살아가지만 동물원은 인공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많은 문제점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 23쪽, 동물원의 존재 이유
자연 상태에서 동물들은 자연적으로 근친교배를 피합니다. 근친교배는 유전적 다양성이 결여되어 결국 그 종의 생존을 위협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동물원에서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동물원이 인위적으로 동물을 가두어두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자연 상태를 벗어나면 동물들의 삶은 매우 다르게 변합니다. 동물이든 식물이든 환경(자연)과 결코 동떨어져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지요.
- 29쪽, 위태로운 동물 복지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유럽 여러 나라가 아시아와 아프리카로 진출하면서 동물을 포획해서 데리고 오는 숫자가 더욱 늘어났습니다. 무엇보다 이 동물들은 돈이 되었습니다. 동물은 일부 귀족이나 특권층이 보유하는 진귀한 물건 그 이상이 되었습니다. 동물을 사고 팔고 전시하는 것은 하나의 산업으로 발전했습니다.
- 36쪽, 동물원의 역사
동물 복지란 동물이 종 고유의 특성에 맞는 환경에서 신체적, 정신적 고통 없이 만족감을 느끼며 살 수 있는 조건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동물원이란 인위적 공간에서 동물들이 모두 만족감을 느끼며 살기 어렵다는 사실은 불을 보듯 뻔합니다. 이런 이유에서 1960년대 이후 동물원은 환경운동단체의 주된 공격 대상이 됩니다. 왜냐하면 동물원이 '자연에 대한 감금의 상징'이었기 때문이지요.
-45쪽, 동물원의 역사
오래 전부터 코끼리를 길들이기 위해 동남아시아의 주민들이 사용하던 '파잔'이라는 방식이 있습니다. 즉 어린 코끼리를 좁은 틀 안에 가둔 후, 눈과 항문 등 민감한 부위를 찌르는 일종의 고문 방식이었지요. 파잔 의식 후에 많은 코끼리들이 죽었지만, 일부는 인간에게 복종하는 심리를 익힌 후 살아남아 각종 노역에 동원되었습니다. 이들이 코끼리를 조련할 때 사용하던 도구로 '엔커스'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끝이 뾰족한 갈고리처럼 생긴 도구로, 이 도구의 목적은 코끼리를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66쪽, 동물원에 가둘 수 없는 동물들
동물 쇼는 사람이 동물, 즉 자연을 굴복시켰다는 것을 보여 주는 하나의 명백한 증거가 되는 셈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자연 상태에서는 절대로 할 수 없는 동물의 묘기 같은 것들을 관람합니다. 동물에게 인간과 비슷해 보이는 행동, 즉 동물의 다양한 묘기들을 보여 주는 일은 무척 비교육적인 것입니다. 아이들은 조련된 동물들의 묘기를 통해서 왜곡된 자연의 모습을 실제라고 배우고 믿게 되는 것이지요.
-86쪽, 동물 쇼와 체험 행사는 왜 나쁜가?